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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7/20
    [6월 2일] 전자주민증: 신분증명제도를 중심으로 (한상희) _녹취록
  2. 2011/06/14
    [6월 2일] 전자주민증: 신분증명제도를 중심으로 (한상희) _영상
  3. 2011/06/14
    [5월 26일] 프라이버시권과 감시 : 법과 인권의 관점에서 (홍성수) _영상
  4. 2011/06/14
    [5월 26일] 프라이버시권과 감시 : 법과 인권의 관점에서 (홍성수) _녹취록
  5. 2011/05/30
    [5월 19일]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감시 : 사회철학적 논의를 중심으로 (엄기호) _영상
  6. 2011/05/27
    [5월 12일] 상업적 감시 : 구글, 페이스북 등 온라인 사이트를 중심으로 (최철웅) _영상
  7. 2011/05/27
    [5월 19일]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감시 : 사회철학적 논의를 중심으로 (엄기호) _녹취록
  8. 2011/05/23
    [5월 12일] 상업적 감시 : 구글, 페이스북 등 온라인 사이트를 중심으로 (최철웅) _녹취록
  9. 2011/05/11
    [4월 28일] 이명박 정부와 감시 : 시민 감시를 중심으로 (진중권) _영상
  10. 2011/05/11
    [4월 28일] 이명박 정부와 감시 : 시민 감시를 중심으로 (진중권) _녹취록

[6월 2일] 전자주민증: 신분증명제도를 중심으로 (한상희) _녹취록

 

감시사회 대강연회 제6강(한상희) 녹취록

 

□ 일시 : 2011년 6월 2일(목) 저녁 7시

□ 장소 : 여의도 이룸센터 교육실

□ 사회 : 박래군

□ 강사 : 한상희

 

박래군

예. 예정된 시간보다 한 5분 정도 지났죠. 그죠. 시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생각해보니 제가 이 감시사회 대강연회 첫 회와 두 번째 회를 제가 사회를 봤어요. 첫 번째가 4월 20일날인데 벌써 6월 2일이죠. 여섯 번 강의를 했는데 강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혹시 여섯 번 다 들으신 분 계신가요? 스텝들 빼고. 여섯 번,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그러신 분 안 계세요? 오늘 한상희 교수님 선물 주실 수 있는데. (웃음) 안 계시네요. 아유 안타깝네요. 여섯 번 다 들으셨으면 좋았을 텐데. 감시사회 대강연회 이거 해가지고 여기 책자에 나와 있는 거기, 홈페이지 여기에 매번 올린다고 약속을 했는데 제대로 약속을 못 지키고 있죠. 한 두 번 지나고 나서 올라가는, 녹취록이나 이런 것들이요. 지금 네 번 한 것까지 4회분까지 지금 올라가 있어요. 보시구요. 영상도 또 올라가 있으니까 같이 함께 참고하시면 좋겠고. 지난번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번에 강연 내용들 다 모아서 나중에 책자로 만들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관심을 가져주시고요. 우리는 국가가 정보 감시하는 문제점도 알았고 상업적 감시 문제점도 알았고, 등등 많이 알았잖아요, 그죠? 오늘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데요. 전자주민증, 계속 정부에서 도입하려고 하는 이 전자주민증의 문제, 이 부분을 가지고 오늘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계시는 한상희 교수님께서 해주시면서 지금까지 나왔던 우리가 6회 동안 해왔던 이 내용도 간략하게 아마 정리해주시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죠 선생님? (웃음) 사람 잡으라 그러시네요. (웃음) 오늘 이렇게 피피티(PPT) 자료까지 가지고 오셨으니까 오늘 강의가 굉장히 다른 때보다도 기대가 됩니다. 오늘 박학다식한 우리 저 한상희 교수님이시기 때문에 질문도 많이 하셔도, 어려운 질문 하셔도 다 넉근히 충분히 해주실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질문도 생각을 하시면서 강연을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예, 한상희 교수님 소개드리겠습니다. (박수)

한상희

반갑습니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건국대 로스쿨에 있는 한상희입니다. 반갑습니다. (박수) 한 시간, 두 시간이죠? 질문 안 받으려면 9시에 끝내면 되겠네요. (웃음) 여섯 번째 마지막 대미를 장식해야 되는데 사실 뭐 제 능력이나 재주나 이런 것들이 대미는 아니고요. 오히려 다시 문제를 제기하는 그 정도 수준에 멈출 것 같습니다. 너무 기대는 하지 마시구요. 이런 이야기가 있거니, 그 정도만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천천히 시작을 하죠.

대충 제가 오늘 말씀드릴 것은, 뭐 PPT 준비해서 별건 아니고요, 재미있는 그림이 있다든지 그런 건 아니고 여기 제 발제문에 적혀 있는 것, 그걸 정리를 했습니다. 그냥 읽으면서 이야기하기는 그러니까 요걸 읽기 힘드니까 이거를 읽자, 그런 생각을 한 거거든요. 그 전에 인제 어떻게 보면은 앞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을 좀 저는 재가공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다 이야기 나왔던 겁니다만은 정보화사회에서 감시라는 것이 어떤 역할을 가지는지, 그 다음에 인제 그 감시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국가신분증 제도, 이런 것들이 가지는 문제점들, 뭐 이런 것들을 한번 정리를 해볼 생각입니다. 인제 개인정보라는 것은 정보유형은 맨 끝에 별첨으로 정리해보았습니다. 발제문 맨 끝에 있고요. 수없이 많은 개인정보들이 있습니다. 거기에 미처 적지 못한 것은 생체정보, 지문정보라든지 뭐 동공이라든지 이런 것들에 대한 정보는 아직 적지를 못하기는 했습니다만. 어쨌든 수없이 많은 정보들이 있습니다. 이런 정보들이 국가 이상 속에서는, 국가 속에서는 왜 필요한지 요걸 정리를 해봤습니다. 기본적으로 근대국가라는 게 시민혁명이 일어나면서 인제 뭐 시민들, 그냥 시민들이죠, 부르주아들이 자기의 자유와 생명, 그리고 행복, 또 이제 어떤 사람들은 재산으로 바꾸죠. 모르겠습니다. 재산이라고 해서 꼭 우리가 이야기하는 단순한 소유의 문제뿐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어떤 것, 자기에게 하나님이 준 어떤 것, 그걸 재산이라고 본 거죠. 바로 그게 인제 생명, 자유, 행복입니다. 이런 것들을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가 행사하겠다는 그런 이념이 하나가 있고요. 그러나 그와 동시에 봉건 체제가 무너지면서 하나의 국가, 하나의 영토, 더 나아가서 하나의 시장을 만들어야 된다는 이런 형식도 나오게 됩니다. 이러다보니까 개인들은, 사람들은 개인주의로 흘러가지만은 그러나 법이상은 또는 국가이상은 강력한 중앙집중적인 그런 통제장치를 만들게 됩니다. 물론 이제 이 두 개의 대립관계를 인제 해결했던 것이 인제 헌법이라는 그런 입헌주의적인 방식을 통하기는 했습니다만은. 어쨌든 저 갈등은 항상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갈등의 틀 속에서 인제 그 일단 그, 정보에 대한 요청이 나타나게 되는 거고요. 요게 인제 현대사회에 오면은 이런 그 주권을 중심으로 하는 또는 국경을 중심으로 하는 국민국가의 개념이 조금씩 바뀌어 나갑니다. 인제 뭐 올림픽이니 뭐니 해 가면서 어쨌든 세계화 국면이 이루어지죠. 그러니까 생산이 세계화되고, 생산이 세계화되고 시장이 세계화되고요, 그러니까 그거죠, 그 뭡니까. 테니스 라켓, 저는 테니스를 좋아하니까 테니스 라켓 예를 많이 드는데요. 처음에 미국에서 만들다가 요게 인제 노동력도 많이 들고 환경오염 되니까 한국에서 만들다가, 한국에서 만들어서 미국 팔다가, 한국도 먹고 살만 하니까 저기 저 동남아에서 만드는. 뭐 이런 식의 생산의 세계화. 또는 인제 비엠더블유(BMW)하면 우리 사람들 꼴딱 넘어가지 않습니까? 시장의 세계화죠. 외자 유치한다는 건 자본의 세계화고요. 이런 것들을 미국 본사에서 관리를 할려면은 전 세계적인 네트워크가 되어 있어야 됩니다. 실시간적으로 생산량을 파악하고 소비 정도를 파악하고 돈의 흐름을 파악할려면은 네트워킹이 되어 있어야 되는 거죠. 바로 이게, 그게 이제 정보의 세계화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보라는 것은 세계화와 정보화라는 것은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뭐 어쨌든 인제 전 세계가 한마디로 자본을 중심으로 해서 엮어지면서 그 한 방식으로 정보화라는 게 이루어집니다. 인제 어쨌든 이런 틀 속에서 국경은 없어지고요, 인제 국경이 없어지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 있어서는 그런 정보화의 틈을 타서 개인이 자유로운 해방적 공간으로서 사이버공간을 이야기하는 그런 형태가 되어 버립니다. 이제 요 2가지 측면들을, 그러니까 위에서 말했던 근대국가가 가지는 하나의 그, 자유라는 측면과 지배라는 측면, 그 다음에 이제 오늘날에 나타나는 어떤 전 세계의 시장화, 자본의 지배죠. 위에는 정치권력의 지배라 한다면 이거는 자본의 지배입니다. 이러한 권력으로부터 이제 해방을 이야기하는 이러한 대립관계들. 이런 것들이 인제 서로 복합적으로 얽매이는 그 충돌하는 지점, 여기에 인제 감시라는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항상 도망치는 사람이 있고요, 인제 이 도망치는 사람을 엮어내려면 누군가가 그 도망치는 걸 적발하고 추적하고 잡아들이는 이런 사람들이 필요하게 됩니다. 가령 인제 어떻게 보면은 이 모든 과정 속에서 감시라는 것은 이런 정치권력이나 또는 자본권력의 생활세계,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식민화시키는 한 방식이 되지 않느냐, 이런 이야기를 할 수가 있을 겁니다.

보통 인제, 감시라고 했을 때 크게 두 가지 정도로 나눕니다. 여러 가지 감시의 틀들이 있는데요. 일반적으로 그냥, 일반적으로 그냥 말이 이렇다는 정도만 보시면 됩니다. 모니터링이라고 한다면은 특정한 상대방을 찍어서 저 녀석이 뭘 하고 있는가를 추적해 나가는 그런 거죠. 이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그런 사람에 대한 감시, 뭐 이렇게 보시면 될 겁니다. 그러다보니까 한번 감시가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적이고 또 상당히 많은 감시자원들이 그 사람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그런 성격을 가집니다. 서베일런스(surveillance)라고 하면은 그냥 이게 일반적으로 씨씨티비(CCTV) 켜다 놓고 어떤 녀석이 지나가나 기다리는 거죠. 그물 쳐놔 놓고 물고기 지나가는 것 기다리듯이. 그렇게 포괄적이고 전반적으로 감시를 합니다. 다만 이제 요런 경우는 대체로 보면은 무차별적이고요, 그리고 이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그 상태에서 감시가 이루어지는 그런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그거는 인제 뭐 사람을 감시하느냐, 장소를 감시하느냐 이런 문제들도 있고요. 참 이거는 사람에 대한 감시라면 보통 인제 어떤 일을 하는가,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더 나아가서 인제 뭡니까, 저 녀석이 어떤 짓을 하는가, 이런 걸 보고 있는데요. 장소적인 감시는 또 요것하고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여기는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행동을 못하게 하는 것, 요게 이제 주된 목적이라고 한다면 장소적 감시는 상당히 많은 부분 구획정리입니다. 그 구획 특히 이제 CCTV가 대표적인 경우거든요. CCTV가 설치되어 있는 장소 같으면은 틀림없이 거기는 그 CCTV를 설치한 사람이 그 장소에 대해서 일정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 것을 뒷받침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딘가 CCTV를 설치해 놔 놓고 애들은 출입금지, 라고 붙여 놨습니다. 요거는 그 CCTV를 붙인 사람이 이 장소는 퇴폐장소라는 걸 선언하는 게 되죠. 낙인을 찍는 거니까. 또는 어떤 곳에서는 그러니까 CCTV를 붙여놔 놓고 아주 화려한 그 뭐, 전구 같은 것들을 만들어 둡니다. 여기는 너무나 고급스럽고 너무나 돈이 많은 곳이기 때문에 남의 호주머니 노리는 사람은 출입금지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는 조금 컴컴한 데 CCTV가 붙어져 있으면은 여자들은 요런 데 지나갈 때는 조심하라는 얘기입니다. 그 나름의 낙인찍기, 또는 평가라는 게 들어가 있는 이런 경우들이 생깁니다. 이러다보니까 인제 통상적으로 우리가 근대 국가, 근대 인권 이야기를 할 때 법의 지배를 이야기를 합니다. 법에 의해서 지배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 사람의 지배가 아니라 법의 지배다. 문제는 요런 부분은 법이 지배하는 게 아니라 아키텍쳐가 지배를 합니다. CCTV를 설치를 하고 지나가는 통로를 어떻게 구획하는가, CCTV를 저기다 설치하느냐, 여기다 설치하느냐 또는 CCTV를 들어가는 입구에 설치를 하느냐, 또는 입구 바로 전에 설치를 하느냐, 어디에 설치를 하느냐 여기에 따라서 사람의 행동들이 다 달라집니다. CCTV가 있는 위치, 간단하게 이런 거죠. 컴컴한 주차장, 지하주차장에 들어서면은 여기는 CCTV가 있습니다, 그러면은 대체로 여자분들은 안심할 거예요, 그죠. 저도 마음 놓이죠. 그러면은 그러니까 걸음걸이가 달라지죠, 불안할 때와 안심할 때와. 사람 행동이 달라지는 거거든요. 이건 무슨 이야기냐 하면은, 종래 인제 사람을 지배하는 것은 두 가지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보다 우월한 자의 명령, 요거는 사람의 지배입니다. 또는 법, 도덕규범. 그런데 지금은 거기 하나 덧붙여서 뭔가 이런 구조에 의한, 구조에 의한 지배가 이루어집니다. 어떻게 길을 내고 어떻게 감시체계를 만들고 이것을 어떻게 알리느냐 알리지 않느냐, 이런 것들이 하나같이 사람의 행동을 바꾸게 만드는 그런 형태가 되어 버렸죠. 그 외 인제 감시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통신, 전화, 도청, 감청. 감청하고 도청하고 차이는 뭡니까? 불법도청은 동어 반복입니다. 그죠?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어쨌든 법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은 감청이고 법을 어겨가면서 하는 건 도청입니다. 그러니까 불법도청은 동어반복이죠. 인제 근대국가가 들어서면서, 근대국가가 들어선다는 거는 다른 말로 하자면 봉건체제가 가지고 있는 공동체가 해체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어느 마을에, 인제 저는 청주 한씨인데, 저희 청주 한씨 집성촌이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에 있습니다. 거기는 가면은, 저희 어머니는 아직도, 여든 다섯인데요, 아직도 어느 집에 숟가락 몇 개 있는가, 물론 바뀌는지 모르겠습니다만은, 제삿날 다 외워요. 거기서는 신분증이 필요 없습니다. 근데 그러한 공동체가 없어지고 하나의 통일된 주권, 통일된 영토, 이게 형성되다 보니까 그 사람을 특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집니다. 그러니까 누구의 아들 누구, 하면은 다 이야기되는 것이 누구의 아들, 누구의 아들, 누구의 아들, 암만 가도 아무도 모르는 그런 상황이 되었죠. 바로 인제 이런 상황에서 국가는 할 수 없이 통치를 위해서 또는 통치에 필요한 어떤 자원을 위해서 정보를 파악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동네에 얼마나 몇 명의 장정이 있는가를 알아야 전쟁 대비를 합니다. 병력을 차출할 수가 있죠. 어느 마을에 풍년이 들었는지 알아야 세금을 거둬들입니다. 세종대왕이 측우기 만든 게 세금 거둬들이려고 만든 거 아닙니까? 그 당시에 비가 얼마나 왔는가 알아야 풍년이 드는지 알고 풍년이 드는지를 알아야지 쌀을 많이 거두어들일 거 아닙니까? 바로 이게 전부 정보죠. 그런 것들을 알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감시입니다. 바로 인제 감시라는 게, 뭐 경우에 따라서는 그러니까, 그 뭐, 사람을 데리고 온다든지 물건을 빼앗는다든지, 징발의 대표적인 경우가 세금이고요. 이런 수단. 또 인제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의 권력이 전 국토에 미치기 위해서는 그 모든 부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다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까 중앙 관료들을 파견해 가지고 저 지방에 있는 도둑놈을 잡아오는 이런 구도가 됩니다. 이게 형사사법의 수단이 됩니다. 일종의 경찰통제의 수단이 되는 거죠. 결국 이제 이런 목적, 요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 첩보를 수집하는 것, 첩보를 수집한다는 건 필연적으로 감시가 요청된다는 거죠. 바로 인제 그런 것들이 됩니다. 바로 인제 요런 것을 통해서, 요거는 인제 그러니까 뭔가를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감시입니다. 근데 그렇게 감시를 하다 보면은 나중에는 이제 감시 자체가 하나의 지배를, 지배 그 자체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뭐 이런 거죠. 간단히 말하면 뭘까요. 저 옛날에는 지방에서 반역을 도모할 때는 자기들이 군사 막 키우면 되죠, 그죠? 왜냐하면 중앙에서 모르니까. 그래서 갑자기 임금님한테 쳐들어가면 되는데. 저렇게 감시하고 있으면은 군사를 못 키워요. 군사를 키우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바로 요 부분입니다. 중앙권력을 항상 의식하게 되고요, 그 권력에 따라서 자기 행동을 변경하게 되는 그런 양상이 벌어집니다. 이것이 감시의 효과입니다. 스스로 인제, 감시라는 게, 뭔가를 다른 것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용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하나의 권력이 되어서 사람의 행동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아예 그냥 저항을 하지 않겠다는, 또는 그 규범에 복종하겠다는 그런 의식구조를 바꿔 버리게 됩니다. 그게 인제 어떻게 보면은, 이렇게 되는 거죠. 그런 거죠. 우리가 복종하는 게 우리가 교통신호를 위반하지 않는 것이 이명박의 명령에 복종하는 게 아니죠. 법의 명령에 복종하는 겁니다. 그죠? 자, 그런데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4색 신호등을 3색 신호등으로 바꾼다고 그래요. 자, 바꾸면 또 그대로 복종해야 됩니다. 죽자 사자 저같이 뭐 적녹색약인 사람도 그걸 외울려고 노력해야 돼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그걸 바꾼 사람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아니라 특정한 사람입니다. 그게 경찰청장이 됐든 그 밑에 있는 뭐, 생활국장이 됐든 누군가가 바꾼 거죠. 그 사람의 명령을 법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복종하게 됩니다. 요게 뭐냐 하면은 지배가 익명화되는 거죠. 바로 이렇게 그 인제 규율을 일상화, 규율이 일상화되다 보면은 규율을 내 행동준칙으로 삼다 보면은 어떤 사람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명령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전체의 명령인 것처럼 복종하게 되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는 거죠. 뭔가 지배 자체가 비인격화되는 그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바로 그 틀 속에서 그 명령은 아주 정당한 것처럼 보여요. 실제 그렇거든요. 그 4색 신호등이 3색 신호등으로 바뀌는 거, 몰라요, 뭐 그 내막은 어떨런 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은. 뭐 그럴 수도 있죠. 어떤 경우에는 아주 나쁜 경우에는 누군가 돈 받아먹고 그걸 바꾸려고 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는 뭐라고 이야기하느냐 하면은 요거는 세계 표준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항상 참 이해가 안 되는 게, 세계 표준이면 왜 따라야 돼요? 바로 그걸 하는 사람들한테 인권보장하는 건 세계 표준이라고 그러면 콧방귀도 안 껴요. (웃음) 그 웃음소리 좀 조그마하게. (웃음)

자, 그 다음에 이제 본격적인 감시 이야기로 들어갑시다. 자꾸 <동아일보>가 나와 가지고 좀 기분이 나쁘기는 한데요. 그 뭐 몇 가지, 3가지 사례 정도 한번 찾아봤습니다. 여기 이제 일산구청에서 그 인제 그 난동을 부렸습니다. 얼마 전에 파출소에서 난동을 부리니까 이제 권총 쓰자 하는 것과 똑같은 얘기입니다. 난동을 부리니까 그러니까 카메라 설치해라, 그래가지고 이 난동꾼들 찍어가지고 요놈 잡아가지고 족치겠다는 이야기죠. 그 이제, 그 다음에 인제 음성을 녹음하는 그런 감시카메라도 나옵니다. 그래서 명분은 인명 구조가 필요한 사고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다, 뭐 이런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 감시카메라와 이 감시카메라, 음향 장비를 같이 가진 감시카메라, 구조는 똑같죠. 어떤 사고가 있었을 때 이 사고에 대해서 국가가 빨리 알아차리고 그것에 대해서 국가권력을 실현하는 그런 메커니즘을 만들겠다는 겁니다. 사실 근데 지금 요거는 위헌이거든요, 음향 전달하는 감시카메라는. 왜 그러냐하면 우리 헌법에서는 통신의 비밀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는 거는 가능한데 엿들으면 안돼요. 참 그 헌법이 조금 만들 때 그냥 그 함부로 엿보지, 그러니까 통신의 비밀과 엿보이지 않을 권리, 그렇게 해 놓으면 좋은데 그냥 통신만 이야기해가지고.

그 다음에 인제, 요거는 그러니까 무인단속 카메라를 통해 가지고 도난 차량이나 수배차량 잡아넣겠다. 그러다가 사실, 참 기분 나빠요. 고속도로 과속. 저는 보통 운전하면 160 밟거든요. 가다보면 감시카메라 있으면 100으로 줄이는데. 요 카메라 이게 감시카메라 비슷하게 생겼죠. 그래 가지고 기껏 보고 속도 줄이고 가다보면 요거는 뭐 도로단속용이 아니고 과속단속용이 아니고 뭐, 교통정보 수집용입니다, 이런 식으로 넣잖아요. 맥 빠져요. (웃음) 그래 이제 요거는 감시카메라를 이용해서 도둑놈을 잡겠다는 이야기고요. 요거는 뭐냐 하면 그 인제 형사사법 정보시스템입니다. 법원과 검찰, 경찰, 여기 하나 빠졌습니다. 구치소와 교도소까지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도둑놈이 생기는지 안 생기는지 감시하는 것부터 그 도둑놈이 형을 받고 형을 살고 풀려나기까지, 더 나아가서 인제 보안처분이나 이런 것 받으면 고것까지, 일괄 관리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집니다. 아주, 지금 그 법무부에서는 이거 만들어서 좋다고 이야기를 하는데요. 실제 모든 형사 관련 정보, 여러분들이 그, 뭐 예를 들자면은, 그 뭡니까? 뭐 어찌어찌 술 한 잔 먹고 하다가 입건되지 않습니까? 그 기록까지 모든 4개의 기구, 그러니까 법원, 검찰, 경찰, 거기에 교도소까지, 다 그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이런 통로들을 만들어놨습니다. 4개의 데이터베이스를 한꺼번에 연동시켜 가지고 그 이제 뭐, 형사사법정보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결합을 시켜놨죠. 아주, 그 어떻게 보면은, 원래 근대권력이 시민혁명이 일어나면서 근대권력을 제한해야 된다고 했을 때 그 타겟이 된 건 두 갭니다. 사람을 잡아넣는 권력, 그 다음에 재산 빼앗아가는 권력. 형사사법권 하고 조세권이었거든요. 그것을 분할시키려고 그렇게 노력했던 것이 일거에 요 시스템이 들어오면서 한꺼번에 그냥 하나로 되어버리고 맙니다. 원래 권력분립이라는 게 입법, 행정, 사법 분립입니다만은 실제 이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건 뭐냐 하면 어떤 일의 프로세스가 한 사람에 집중되지 않는 거죠. 지금 보면요, 도둑놈 하나 잡는 것도 지금 시스템은 그렇거든요. 경찰이 수사를 하고 검찰이 기소하고 법원이 판결을 내리고 교도관이 형을 집행하는 구조입니다. 4명이 있어야 됩니다, 최소한. 그런데 요렇게 되어 버리면은 그 정보를 한 사람이 다 장악할 수 있는 게 되죠. 옛날에 왕이 이 모든 권력을 다 가지고 있던 것을 그 피땀을 흘려 가지고 빼앗아서 나누어 놓은 것을 인제는 하나로 합쳐버리는 이런 현상이 발생합니다. 여기는 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요거는 이제 얼굴인식 시스템이고요, 요 밑에는 G20, 발음 잘해야 되죠, 그 이제 거기에서 똑같은 그런 인식시스템을 이제 관리를 했던 거죠.

넘어갑시다. 어쨌든 다시 또 반복이 됩니다만은, 이제 그 감시라는 게 왜 이뤄지는가, 하는 게 한번 정리를 해봤습니다. 인제 우선 통치를 위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첩보수집이죠, 필요한 자원을 파악하기 위한 그런 모니터링이 있고요. 그 다음에 인제 경우에 따라서는 위험을 배제하거나 또는 하나의 권력으로서 모니터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너를 감시하고 있다, 네가 지난 여름에 한 일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러면은 꼼짝 못하잖아요, 내가 이제. 그 이야기죠. 그와 동시에 이제 이런 2가지, 내가 너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이용해서 그 사람들이, 피감시자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하는, 그래서 국가권력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게 만드는 그런 3가지 기능들이 존재합니다. 실제 이제 그 중에서 이제 제일 문제가 되는 게 훈육이죠. 그러니까 국민들이 스스로 알아서, 막말로 알아서 기게 만드는 것, 그게 바로 인제 감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거든요. 인제 아까도 이야기했습니다만은 구획정리라는 뭐 그런 것들이 이루어지는, 요것도 인제. 대체로 이제 감시가 이뤄짐으로써 어떤 법이라든지 명령에 복종하는 것, 요거는 이제 1차적인 목표이고요. 2차적인 목표는 뭐냐 하면, 뭔가,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그 장소에 대한 또는 그런 감시가 이루어지는 그 부분에 대한 감시자의 평가를 피감시자에게 주입시키는 겁니다. 이 동네는 집창촌이니까 애들은 오지 마라, 나쁜 동네다. 다른 말로 하자면, 섹스는 나쁜 거야. 그 인제 자꾸 헛소리해도 되는가 모르겠습니다만은, 우리나라는 참 이상한 나라예요. 열세 살 만 넘으면은 그러니까 섹스를 할 수 있거든요. (어디서요?) 응? (웃음) 그건 나는 모르겠고요. 열세 살 이하 애하고 섹스를 하면은 그건 의제강간입니다. 그런데 열세 살만 넘으면은 걔가 오케이하면 섹스 같이 해도 돼요. 그런데 열여덟 살 될 때까지 성교육도 제대로 안 시켜요. 열여덟 살이 넘으면은 겨우 벌거벗은 장면이 나오는 영화를 볼 수가 있습니다. (웃음) 거꾸로 된 거죠, 그죠? 뭐 하여튼 그 이제, 그 뭐 바로 그런 식의 이야기죠. 여기는 집창촌이다, 카메라를 달고 애들은 접근금지. 그러면은 집창촌은 나쁜 곳이다. 왜? 섹스를 사고파는 곳이기 때문에. 사고파는 것이 나쁜 것이라기보다는 섹스가 나쁜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 거죠. 똑같은 구조입니다. 자, 이게 일산구청, 여기에 CCTV를 단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왜? 여기는 폭력이 있어서는 안 되는 곳이니까. 다른 말로 하자면은 여기는 폭력을 빙자한, 그 민원인이 그 민원을 좀 세게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지역이에요. 조용히 이야기를 해야 됩니다. 일산구청이 만들어 놓은 그 절차와 그 방식에 따라서 이야기해야 되는 구역이라는 이야기죠. 그 한 상징입니다. 형사사법정보시스템은, 이거는 뭐, 더 말할 나위 없고요. 요게 인제 법무부를 중심으로 해서 만들어지다 보니까 이렇게 되죠. 4개의 기구가, 그 인제 경찰, 검찰, 법원, 교도소, 일단 구조는 다른 이 4개의 구조가 법무부를 중심으로 하나로 합쳐집니다. 이 법무부를 장악하고 있는 게 검찰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나라의 형사사법권은 법원이 장악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검찰이 장악하고 있는 구조로 갑니다. 어떻게 보면은 사법의 최정점에 있어야 될, 최고 꼭대기여야 되는 법원을 끌어내리고 검찰이 그걸 관리하는 체제가 되는 겁니다. 이런 형태가 되죠. 그 뭐, G20 여기는, 이거는 뭐 뻔하죠. 그냥 요걸 한번 적어 봤습니다. 이런 일화가 있지 않습니까? 3상회의, 모스크바 3상회의인가? 그거 할 때 인제 처칠이 목욕하고 있는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와서, 루즈벨트 맞습니까? 트루만인가 루즈벨트인가 그래요. 그러니까 벌거벗은 채로 가 가지고 만나요. 악수하고. 인상을 쓰니까 나는 너한테 숨길 게 없다, 그렇게 이야기하죠. 아주 뻔뻔스럽죠, 사실은. 이제 G20 회의도 마찬가지입니다. 거기에 들어오는 사람은 숨기는 게 없어야 되요. 숨기는 게. 경호라는 이름을 이야기하지만은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20명의 정상들이 만나서 하는 이야기들은 아주 순결한 것이 있다는 겁니다. 그 순수하고 순결한 곳, 여기에 피 묻은 사람은 들어오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 피 묻은 건 뭐냐 하면 뭐 테러리스트일 수도 있고요, 시위자일 수도 있고 뭐 여러 종류일 수도 있죠. 이런 것들을 구획하는, 그런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요거는 조금, 넘어가고요.

어쨌든 인제 요런 식의 이야기들을 하면서 특히 국가영역에서는 이런 이야기들을 많이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어떤 감시가 이뤄지는 공간, 또는 감시로, 감시에 의해서 배제되는 어떤 것들, 이런 것들이 전부 정의에 봉사한다, 선에 봉사한다, 또는 아름다움에 봉사한다,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바로 그 틀 속에서 국가의 권위를 확립하는 이런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그 다음에 인제 이 감시국가가 가지는 문제점이 인제 여기에 또 하나가 있는데요, 초감시국가가 나타나게 된다, 이 점입니다. 말을 길게 썼는데요. 보통 우리가 개인이라고 이야기를 할 때 또는 개인주의자라고 이야기를 할 때 2가지의 그 측면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자기의 삶을 살아가는 주체로서의 개인, 지 삶을 지가 살아가는 그 개인이 있습니다. 또는 그 모든 것들을 다 털어 내고, 그냥 저 사람은 남자고 나이가 뭐 오십 몇 살이고 키는 몇 센티고 허리둘레는 얼마였다가 뭐 하루 만에 얼마가 됐다, 하는 그런 식으로 순, 그러니까 숫자로만 계산되는 그러한 인간이 있습니다. 국가가 어떤 통치를 한다고 했을 때는 그 통치의 대상, 어떤 그 어떤 국가를 영위하는, 또는 국가를 구성하는 사람은 이런 생활 주체로서의 개인이어야 됩니까, 그렇지 않으면은 같은 숫자의 결합체인, 단순히 저 집합체여야 되는지, 요걸 이제 고민해야 될 때가 되었습니다. 여러분들 주민등록증 한번 꺼내 보세요. 그런다고 꺼내지는 마시고요. (웃음) 한번 생각해 보세요. 거기에 적혀 있는 게 여러분입니다. 문제는 아니죠, 그죠? 나는 이경호하고, 이 친구 잘 알거든요. 그런데 이 친구가 주민등록증에 뭐 적혀 있는가는 몰라요. 요게 인간관계인데 국가는 이 친구에 대해서 주민등록증에 적혀 있는 거는 압니다. 이 친구가 왜 여기 와서 큰 소리로 떠들고 하는 지는 전혀 몰라요. 그러면서 이 친구에게 할 수 있는 자기의 권력들을 다 행사합니다. 이 사람, 어떤 사람을 하나의 생활의 주체로 보는 것이 아니고 단순히 통치의 대상으로 보는 그런 현상들이 발생할 수가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모든 인간은 그, 분편화되었다고 그러죠? 쪼개진, 단위 단위로 쪼개진 그런 정보의 집합체일 따름이지, 어떤 다른 사람하고 관계를 맺고 또는 어떤 상황 속에서 살아가는 그런 인간으로 보지를 않습니다. 요게 정보화가 가지는, 또는 감시로 인해서 획득되는 정보를 바탕으로 해서 작용이 이루어지는 이게 국가의 가장 큰 문제점입니다. 뭐, 어떻게 보면은 양적인 관계가 질적인 걸 쫓아내 버려요. 어떻게 사느냐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저거는 남자냐 여자냐, 또는 몇 살이냐, 소득은 어떻게 되냐, 이것 가지고 모든 것들이 다 해결되는 그런 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실제 이제 바로 요런 형태가 되는 거죠. 이 한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을 총체적으로 한꺼번에 직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기호들을 바라봅니다. 남자, 여자, 몇 년생, 요런 것들을 바라보고요. 그런 것들을 가지고 인제 죽 그 국가 정보를 획득하고 이 정보를 바탕으로 해가지고 행정에 자기 목적에 따라서 이런 정보들을 마음대로 그냥 갖다 붙여요. 집합을 만듭니다. 정보가 이렇게 있으면은 뭐, 행안부는 요 정보만 가지고 요렇게 해 가지고 하나의, 저 사람을 규정을 하고 법무부는 이 정보를 가지고 그 사람을 규정을 합니다. 그러니까 똑같은 사람인데 저쪽에서 바라보는 것하고 이쪽에서 바라보는 게 달라져요. 다른 행위가 이루어지는, 이런 형태가 나옵니다. 인제 이러다보니까 사실, 실제의 국민생활이라는 것은 적어도국가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거죠. 그 뭐, 어떤 책인가 보니까 강아지가 보는 사물하고 사람이 바라보는 사물이 전혀 다르다고 그러네요. 호랑나비가 바라보는 사물하고 그 뭡니까, 벌이 바라보는 사물이 다르고요. 그 똑같은 거죠. 우리가 바라보는 우리들의 생활과 국가가 바라보는 우리들의 생활이 전혀 다른 그런 현상이 생깁니다. 그 뿐만 아니라 관료들은 또 자기들 편한 대로 해요. 그 마저도 자기 마음대로 그냥 자의적으로 정보를 취사선택하고요. 뭐 경우에 따라서는 어떻게 보면은 그런 거죠,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을 찾아다니기도 하는 그런 경우도 생깁니다. 인제 여기 관료체계가 인제 가지는 문제점이죠.

그 이제, 일단은 여기서 먼저 이야기합시다. 관료들은, 우리는 우리에 관한 정보를 모으는 데 한계가 있지만 관료들은 전국적인 조직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그 수많은 정보들을 모을 수가 있습니다. 거기에 이제 인력도 있고 기술도 있고요 시설도 활용하고. 인제 이러다 보니까 우리와는 다른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엄청난 정보권력을 가지고 있죠. 그런 엄청난 정보권력을 바탕으로 해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정보를 해석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정보를 조작할 수도 있고요. 또 어떤 경우에는, 참 이런 문제가 생기는데요, 너무 많은 정보를 모으다보니까 그걸 감당을 못해요. 그러니까 자기가 원하는 것만 그냥 아무 거나 잡아가지고 그것만 보고 행정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보가 너무 많다보니까 이거 다 못하고 이거 다 못하고 여기만큼 뽑아가지고 그냥 해버리는 그런 경우도 있죠. 그 뭡니까? 학생인권조례 서명 받은 게 8만 5천장 아닙니까? 그 인제, 그 인제 서울시교육청의 장학사 한 명이 담당을 하거든요. 인제 이러다보니까 요걸 다 못해요. 못 봐요. 그러니까 밑에 인제 사람들 고용하고 또 뭐 용역 주고 해가지고 처리를 하거든요. 그러면서 어쨌든 8만 5천장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봐야지 이게 유효한지 아닌지를 알 텐데 그걸 못하니까 한 움큼 떠가지고 대충 봐요. 뭐 그럼 되겠지, 하고 넘겨요. 이런 현상들이 나타난다는 거예요. 그래 이제 바로 이제 요런 부분에서 문제가 되는데요. 요 이야기인데요. 70년대 초 보고가 나왔던 부분인데 인디애나 남부, 미국 인디애나 주의 남부가 산악지대래요. 못 사는 사람이 많답니다. 그래서 인제 국가가 인제 생활보호 대상, 우리 식으로 하면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해 가지고 생계비를 대줘요. 그런데 인제 그때 인제 사회복지사가 산 마을로 조사를 하러 갑니다. 이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사는지. 보러 가는 거예요. 보러 가가지고 그 중에서 인제 직장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은 수혜 대상에서 빼고 또 뭐 새로 이사 와 가지고 못 사는 사람이 있으면 집어넣기도 하고. 근데 갈 때마다 보면은 차가 뭡니까, 뒤집힌 채로 위에 올라가 있대요. 저수지 비슷한 물탱크 위에 얹어, 올라가 있답니다. 그래 저거는 장식인가, 자기들끼리 저렇게 해놓고 사는가 보다. 뭐 그렇게 하고 인제 조사하고 내려오면은 주민들이 막 달려들어서 그걸 바로 놓는대요. 그래 그걸 타고 어디로 가느냐 하면, 고 밑에 부자 마을에 가 가지고 일하러 간답니다. 직업이 있으면은 소득이, 국가 수혜를 못 받거든요. 그러니까 인제, 근데 인제 직업이 있느냐 없느냐를 아는 기준 중의 하나가 차가 있느냐 아니냐예요. 차가 없으면 직장을 못 가니까. 그러니까 이제 사회복지사가 와 가지고 차가 있으면 의심부터 한대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의심을 안 받으려고 그 차를 뒤집어 가지고 꼭대기에 올려놓는 거예요. 미국 사람들 힘도 좋죠. 인제 그렇게 해서 살면서 큰 문제는 없었는데요. 그게 나중에, 그 마을에 전부 다 전산화를 다 했답니다. 전산화를 하다 보니까 어떻게 되느냐 하면 이 사람들을 가정부나 요런 걸로 고용했던 사람들이 자기 소득공제를 받을 때 그걸 전부 다 신고를 다 해요. 체크가 다 되어 버리는 거죠. 인제 이러다 보니까 그 마을 사람들이 사회복지 수혜로부터 전부 다 배제가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까 그냥 뭐 뭡니까, 그 가정부 일만 해 갖고 먹고는 못살거든요.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더 시골로, 그러니까 산 쪽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아요. 산 쪽으로 들어가면 뭐라도 주워서, 열매라도 따 먹으니까. 그래서 그 마을 공동체가 붕괴된 그 케이스가 보고된 일도 있어요. 물론 이제 그 사회복지사, 처음에 이제 직접 가서 보던 사회복지사도 생각해 보면은 분명히 알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상당히 많은 부분, 눈감아 준 부분도 있을 겁니다. 알면서도 모르는 척. 이게 사람이 하는 일이거든요. 근데 컴퓨터라는 기계가 하는 일은 바로 그렇게 그 공동체를 와해시킬 만큼 그렇게 엄청난 역할들도 합니다. 요게 이제 그러니까 정보가 어떻게 수집되고 어떻게 분석되고 어떻게 그 어떤 국가작용을 이끌어 내는가에 따라서 사람의 생활 자체가 달라지는 그런 대표적인 양상. 어떻게 보면은, 경찰 같은 경우에는 나쁜 놈 잡아내는 거야, 나쁜 놈만 잡아내면 돼요. 운 좋게 나만 안 걸리면 되거든요. 그런데 복지라는 건 우리 생활 전체에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뭐 복지라고 해서 그냥 단순히 작은 부분이 아니라 저는 크게 지금 생각을 하는데요. 뭐 교육이라든지 문화라든지 위생, 건강, 환경, 저는 그 모든 개념을 다 털어서 이야기를 합니다. 이런 것들이 단순히 단편화된 정보만 바탕으로 해서 컴퓨터 처리 과정을 통해서 이루어질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문제점으로 대표적인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어쨌든 이런 것들이 전부 복합되면서, 그러니까 국민들의 생활 자체를 국가가 개입해서 흔들어 놓을 수 있는 이런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에서 국가가 전 방위적으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고 이것을 관료적인 편의주의에 의해서 처리하는 그런 형태가 되어 버리면은 결국은 근대시민혁명이 이루어 내었던 해방이라는 것, 이게 인제 거의 없어져버리는 그런 가능성이 생기지 않느냐, 뭐 이런 이야기가 가능합니다.

뭐, 몇 가지 대안들은 이야기는 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 가지 정보 민주화니 쌍방향적 감시니 민주주의를 강화하자느니 뭐 그런 이야기들을 합니다. 다 맞는데요, 뭐 틀린 이야기들 하는 거는 없는데요. 지금 요 부분에서 인제 좀 강조하고 싶은 것은, 그거죠. 렉 휘태커(Reg Whitaker)라는 사람이 <프라이버시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인제, <사생활의 종말>이죠, 거기에서 인제 저렇게 썼는데요. 이 부분을 볼 때마다 저는 뭡니까, 피눈물 나요. 몇 년 전에 이 책을 보니까 참 괜찮아요. 그래서 여름방학 내내 앉아 가지고 번역을 했거든요. 번역 다 해놓은 초벌 번역 해가지고 조교한테 한번 읽어보라고 던져 주고 그러고 나서 기분 좋게 휘파람 불고 책방에 책 사러 갔더니 번역되어서 나와 있어요. (웃음) 이 이야기는, 제일 중요한 게 노드다. 뭐냐 하면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은 기본적으로 국가권력을 제한하는 방식은 권력을 분할하는 겁니다. 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게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삼권분립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대통령이 모든 권력을 다 가지는 것처럼 하지만은 그 밑에 총리를 두고 장관을 두고 차관을 두고 하는 것, 요게 이제 결재가 올라가는 과정이 있지만은 동시에 어떤 권력이 분할되는 과정이거든요. 대통령이 아무리 지가 하고 싶어도 밑에서 결재가 안 올라오면 못해요. 요게 권력분립이거든요. 절대 하나에 집중시키지 말라는 겁니다. 이제 정보화가 이런 초감시국가를 만드는 제일 큰 의미는 뭐냐 하면요, 여러 가지 데이터베이스가 연동되기 때문입니다. 아까 봤듯이 법원에서 수집한 데이터베이스, 경찰이 수집한 데이터베이스, 검찰이 수집한 것, 따로 따로 따로 있으면은 그 자체로 큰 문제 없습니다. 근데 요것이 하나로 연계되어 버리면 엄청난 권력을 가지게 되는 거죠. 그 연계되는 지점, 그게 바로 노드입니다. 요것만 장악하고 있으면 그래도 어느 정도 문제점은 커버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 인제 요런 이야기들을 하거든요. 2009년도에 영국 런던에 안식년을 갔다 왔는데요, 여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그겁니다. 인제 그 뭡니까, 수도값, 전기값 이런 것, 가스값, 여학생들이 자취하니까, 그런 것 인제 꼬박꼬박 내다가 한국에 돌아올 때 되면은 좀 아깝잖아요? 비록 자기가 쓴 거지만은. 그냥 이왕 갈 건데 뭐, 도망치면 어때요, 그러거든요. 그러면 인제 옆에 있던 고참 여학생들이 공통된 답변이 뭐냐 하면은, 그냥 가라, 에요. 그러면 인제 전부 걱정하는 게 그냥 가면 좋기는 한데 내가 만약에 다음에 영국에 다시 들어올 때 공항에서 잡히지 않을까. 한국은 잡히는데 영국은 안 잡혀요. 왜냐 하면은 수도값하고 전기값하고 냈는지 안 냈는지를 파악하는 시스템이 없습니다, 다른 데서는. 데이터베이스가 연동이 안돼요. 연동될 수가 없습니다. 연동시켜주는 식별자라고 하죠, 코드가 없어요. 그러니까 여러분들 뭐, 영국 가가지고 사고치고 한국에 도망 왔다가 다시 들어갈 때 문제있지 않을까. 뭡니까, 자기 뭐 생체정보나 요런 것만 없으면 절대 문제없어요. 그래서 저도 수도값 떼먹고 왔거든요. (웃음) 바로 그거죠. 두 가지입니다. 데이터베이스와 데이터베이스가 연결되는 지점은, 이거는 반드시 누군가가 들어가서 독립된 권위로 그것을 통제할 수 있어야 됩니다. 법원과, 법원의 데이터베이스와 검찰의 데이터베이스가 연동될 필요는 물론 있습니다. 제대로 범인을 제대로 잡고 처리를 하려면. 다만 그렇다고해서 그것을 법원이 주도를 하거나 검찰이 주도해서는 안 되죠. 제3자가 그 연결을 주관해줘야 됩니다. 그러면은 권력이 집중될 우려는 없어집니다. 마찬가지, 이 2개를 연결시키는 공통된 코드, 보통 이제 식별자라고 부르죠. 우리 식으로 하면 주민등록번호입니다. 영국이 저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가 주민등록번호가 없기 때문이거든요. 우리나라가 가능한 게 주민등록번호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제 그런 것들, 그런 것들만 통제하면 되는 거죠. 그 인제, 바로 인제 요런 맥락에서 인제 두 번째 나왔던 공통식별자, 공통식별자의 문제는 그것과 관련해서 얘기가 나오는 게 신분 부분입니다.

조금 이제 논의가 좀 달라지는데요. 국가신분증명제, 이 이야기가 나옵니다. 역시 근대사회에서부터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옛날에는 신분증명을 하지 않아도 나는 어느 동네에서 왔다는 말 한마디로도, 또는 경우에 따라서는 내 옷차림이라든지 내 말투라든지 그거 하나만으로 내 모든 것들이 상대방에게 다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개인이 쓰다보니까 저 개인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증명서밖에 없는 거죠. 저 녀석이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고 뭘 하는 녀석인지, 그걸 증명하는 그런 시스템이 일어나게 됩니다. 대충 인제 2가지 그거죠. 그러니까 어떤 거래관계를 형성, 성립시키기 위해서는 무엇이 내 것이고 무엇이 네 것이고 이 물건이 누구 것이냐, 한 아무개 것이다, 라고 했을 때 그 한 아무개라는 그 신분이 증명될 필요가 있고요. 그래서 인제 어떤 근대적인, 자본주의적인 시장경제를 이루게 되는 기본적인 토대입니다. 그와 동시에 인제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국가가 국민을 관리하기 위한 그런 수단으로서 신분이 필요하게 됩니다. 대충 요렇게 신분, 근대적인 신분제가 발생하게 되는 어떤, 그것도 국가가 중심이 되어서 신분을 처리하는 방식이 있고요, 지역사회가, 공동체라 했습니다만, 지방이죠, 지방자치단체가 그 신분을 부여하는 방식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이제 호적 같은 것은 이거는 인제 국가가 관리하는 거고요. 그 인제, 따옴표를 붙였습니다, 우리 주민등록제 말고. 그 이제 영국이든지 미국이라든지 이런 데 가면은 자기가 여기 살고 있다는 걸 신고해야 하는 경우들이 있거든요. 영국은 가면은 신고를 해야 됩니다. 왜 신고를 하냐 하면 신고를 하면 카운티 택스(county tax)를 내요. 주민세를 내거든요. 그 주민세를 내게 되면은, 굳이 안 내도 되긴 합니다만은 의료가 전부 공짜에요. 완전 공짜 의료니까, 그러니까 이제 자기 전속 의사, 병원을 정할 수가 있거든요. 그 인제, 그런 시스템이죠. 그 다음에 이제 내 모든 것들을 증명하는 증명제가 있습니다. 주민등록이나, 우리나라 주민등록이나 호적 같은 것들은 내 모든 것들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운전면허증 같은 것은 내가 운전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거죠. 내 한 부분만 증명하는 겁니다. 사회보장번호 마찬가지고요. 가족관계부, 특히 이제 지금 좀 포괄적으로 적혀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나하고 이 아무개가 서로 부부관계다, 라는 걸 증명하는 것. 내 전체가 아니라 내가 누구랑 같이 사는가를 증명해주는 것, 요런 게 이제 개별적 영역별 신분등록제라고 얘기를 하는 부분입니다. 어쨌든 대충 종류는 이런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충 요런 것 중에서도 주로 국가가 중심이 되어서 그 사람의 모든 인격을 다 등록을 시키는 이런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인제, 대체로 제도들이 이런 것들이 있거든요. 요거는 호적제도고요, 호적제도를 없애고 인제 가족등록제죠. 그런 거고요. 그 다음에 인제 요거는 주민관리를 위해서 내가 이 동네 와서 살고 있습니다, 라는 걸 신고하게 만드는 그런 시스템입니다. 더 나아가서 인제 이런 것은 이제 그 뭡니까, 사업자등록번호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되죠. 내가 장사를 한다, 라고 신고하는 것들이고요. 그 외 인제, 요거는 이제 내가 어떤 자격을 가지고 있는가, 라는 걸 이야기합니다. 대충 상당히 많은, 뭐 어떻게 보면은 이렇게 많은 국가영역에서 네가 누구냐를 확인하는 그런 절차들이 이루어지고 있다,라는 거죠.

문제는 신분증제도입니다. 보시면은요, 신분증을 반드시 발급받아야 되는 나라들이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여기 보면요, 벨기에가 발급 받아 가지고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근데 벨기에는 지방에서 발급을 해줍니다. 국가가 발급하는 게 아니고요, 지방자치단체가 발급을 하죠. 또 봅시다. 독일은 인제 국가에서 발급을 하고요, 15세 이상은 반드시 갖고 있어야 됩니다. 그리스 역시 마찬가지고요. 스페인 역시 마찬가지고요. 자, 스페인과 그리스의 공통점은 뭡니까? 한마디로 후진국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 인제 독재가 있었던 그런 국가고요. 독일과 벨기에의 공통점은 뭡니까? 벨기에는 요즘 와서 인제 세 나라로 쪼개지겠다고 야단이죠. 아직도 싸우고 있습니다. 지금 뭐 독립하니 마니 그렇게 싸우고 있죠. 독일은 평생의 소원이 통일이었던 나라였어요. 그 인제 로마 지배를, 야만 상태로 있다가 그 인제 로마 지배를 받다가 신성로마제국으로 있다가 그러면서도 쪼개져가지고 워낙 엉망이 되었다가, 그래 인제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나폴레옹 전쟁 나면서 겨우 뭉쳐지면서 국가가 되는 거거든요. 아직도 대독일주의, 소독일주의, 하고 싸우고 있는 나라가 독일입니다. 뭔가 지방이 흩어져가지고 있던 것을 합쳐진 나라에요. 그러다보니까 이 지방에서 저 지방으로 가고 하는, 사람들이 왕래하는 것에 대해서 그 사람의 신분을 확인해야 될 필요성이 있는 나라입니다. 각자 따로 살던 나라들이 합쳐진 그런 나라거든요. 자, 다른 나라, 뭐 오스트리아도 좀 구별적인 성향이 있기는 합니다만은. 대체로 보면은 단일국가를 형성했던 나라에서는 별로 신분에 대한 욕구가 그렇게 강하지 않습니다. 이탈리아 같은 경우에는 상업이 상당히 발달한 나라죠. 통행이 상당히 많았던 나라거든요. 그런데도 신분제도가 그렇게 우리나라처럼 중앙에서 발급하고 강제로 가져야 되고 그거 안 가지고 있으면 잡혀가고, 이런 건 없다는 거죠. 아예 뭐 이딴 나라들은 신분증 자체가 없는 거죠.

그래 이제 우리나라의 주민등록,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제도는 다 알고 있으니까 설명 안 해도 될 것 같습니다. 뭐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문제가 뭐냐 하면요, 주민관리를 위한 거거든요. 그래서 동사무소에서 합니다. 동사무소에서는 동사무소가 가지고 있으면 되는데 이걸 동사무소가 하는 게 아니라 동사무소는 대행을 하고 국가가 관리하는 게 되어버려요. 이름은 주민등록이라고 해놔 놓고 실제로는 국민등록입니다. 그래서 호적등록 해야 되죠, 주민등록 해야 되죠, 그 뭐 취직 한번 하면은 갖고 오라는 게 한 두 개가 아니잖아요, 서류가. 주민등록등본, 초본에다가 호적등본, 호적초본, 저희 때는 그까지 뗐거든요. 뭐 그걸 뭐에다 쓸려고 할지. 어쨌든 다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국가가 모든 걸 다 장악하려는 그런 형태가 됐죠. 그 다음에 인제 이 주민등록을 할 때, 발제문에도 주민등록 신청서 그걸 한번 카피해서 넣어 놨습니다만은, 한 140개 항목 정도를 수집을 합니다, 정보를 갖다가. 이름부터 시작해서 나이, 그 하다못해 지금 현재 학력이 중학교, 고등학교 재학 중인지, 졸업을 했는지 중퇴를 했는지, 그것까지, 더 나아가서 대학에는 무슨 과인가, 그런 것까지 다 정리하게 그렇게 만들었어요. 그 다음에 인제 지문까지도 수집을 합니다. 참 이게 재밌는 게요, 주민등록법에는 지문을 채취할 수 있다, 라는 그런 조항이 없습니다. 주민등록법 시행령에도 없습니다. 시행령 별표에 주민등록증 신청하는 양식이 나와 있습니다. 그 양식에 지문 찍는 란이 있습니다. (웃음) 이게 법, 헌법재판소는 그것도 법규정이라고 이야기를 하니 별로 할 말은 없기는 합니다만은. 법률에서 규정하지 않은 것을, 그것도 양식이라는 희한한 고걸로써 생체정보를 빼가는 그게 우리나라의 지금 주민등록증 문제죠. 거기에다가 문제는 뭐냐 하면, 주민등록 사항을 신고할 때 통장 도장을 찍게 만듭니다. 지금에야, 지금 그건 안 하는데요, 그래 이제 시골 같은 경우는 아직 그런 경우가 가능성이 있죠. 이러다보니까 통장이나 이장 이런 사람들은 내 생활하는 바로 옆에서 나를 감시하는 사람입니다. 감시한다기는 뭐하죠, 하여튼 서로 허물없이 터놓고 이야기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으로 하여금 나의 모든 정보들을 감시하게 만들고 있는 게 기본적인 구조입니다. 어떻게 보면은 대통령에서부터, 보통 인제 우리가 국가조직 설명할 때 대통령에서부터 9급 공무원하면 끝이에요. 근데 여기는 뭐냐 하면 대통령에서 9급 공무원이 아니라 통장 이장까지 들어갑니다. 이렇게 그 뭡니까, 북한이 그렇다고 그러죠. 몇 가구에 감시를 하면, 옛날에 저희들 윤리시간에 그거 배웠거든요. (5호담당제) 그게 그거죠. 이렇게 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그럴까. (웃음) 하여튼 뭐 이제 그런 문제가 생기죠. 또 문제가 뭐냐 하면은 우리나라에서는 주민등록이 돼 있지 않으면은 아무런 국가적인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국가적인 혜택뿐만 아니라 아예 국민 취급을 못 받습니다. 요게 인제 주민등록 말소자의 비애, 뭐 그렇게 이야기 되고. 모든 국가작용이 주민등록을 중심해서 이뤄지다 보니까 저 문제가 발생합니다. 요렇게 되다 보니까 뭐냐 하면은, 자기의 원래 살던 데를 떠나 있는 사람은, 상당기간 떠나 있으면 통장님이 조사를 해 가지고 주민등록 말소시켜 버려요. 그래놓고 이 사람은 그러니까 국민이 아닌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장소적으로 관리하는 게 되어버려요. 네가 이 장소에서 떠나 있으면은 다른 떠나 있는 데를 신고를 하지 않으면은 너는 대한민국 국민 아니야, 이런 식. 상당히 위험한 제도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거죠. 거기에 인제 전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주민등록번호가 달려 있다는 것, 제일 큰 문제점입니다.

인제 주민등록번호, 다 알고 계시죠. 제 주민등록번호는 저희 애들이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주민등록번호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우선 모든 사람에게 한 사람에게 다 하나의 번호가 부여됩니다. 주민번호만 알면은 그 사람이 누군지를 바로 지정할 수 있는, 요게 인제 있고요. 그 다음에 이제 모든 사람에게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똑같은 기준에 의해서 주민등록이 부여됩니다. 앞에 생년월일이 있고요, 그 다음에 인제 그 사람의 성별, 그 다음에 태어난 세기가 결정되지요. 그러니까 19세기에 태어났는지, 20세기에 태어났는지, 21세기에 태어났는지, 또는 외국인인지 아닌지. 인제 그게 뒷자리의 제일 첫 자리에 나와 있는 거고요. 그 뒤에 네 자리는 그러니까 이 사람이 어디서 주민등록을 했는지 그게 들어가고, 또 끝에서 두 번째 자리는 얼마나 부지런한지가 드러납니다. 그 날에 몇 번째로 주민등록 신청을 했는가, 이거든요. (웃음) 그러니까 1번이면 상당히 부지런한 사람이죠. 뭐 하여튼 그런 것들, 그런 식으로 되어 있고요. 그 다음에 요것하고 요것하고 비슷합니다만은, 그 어떤 사람도, 그러니까 그 어떤 두 사람도 똑같은 주민등록 갖고 있지 않아요. 만약에 두 사람의 주민등록번호가 똑 같다면 이거는 국가적인 사고입니다. 절대 같지 않게 하고요. 문제는 평생 동안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정보 관리를 위한 표지로 사용하고 모든 국민들한테 강제적으로, 자기가 좋든 말든 쓰게 되고요. 그 다음에 그 안에 방금 이야기했듯이 그 많은 개인정보들이 담겨 있습니다. 언제 태어났느냐, 어디서 태어났느냐 또는 어디서 주민등록을 했느냐, 네가 외국인이 아니냐, 남자냐 여자냐, 뭐 이런 것까지 다 들어가 있는 그런 것. 그래 인제 바로 그래서 인제 이런 문제점들이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했던 이야기 좀 이제 반복되는 거죠. 실제 우리나라가 전자정부 논의가 인제 2000년도 말에, 그러니까 20세기 말에 디제이(DJ)정부에서 본격적으로 이야기되죠. 그 이야기되면서 급속도로 전자정부가 구축됩니다. 전자정부가 구축된 제1등 공신은 이 주민등록번호입니다. 주민등록번호 하나 가지고 모든 국민의 정보들을 전부 다 관리할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그 시스템 구축하는 거야 특별히 문제가 없는 그런 상태가 됐죠.

요거는 이제 주민등록번호의 변천사고요. 문제점. 다시 반복이 됩니다만은. 요거는 이제 주민등록증의 문제입니다. 좀 전에 주민등록증에 적혀 있는 내용이고요. 그 인제 주민등록증에도 너무 많은 정보들이 들어갑니다. 한번 잘 한번 보세요. 여러분이 이사한 것까지 다 적어 넣게 되어 있어요. 그거 참 지저분하게 다 적게 만들어 놨어요. 그 다음에 인제 그 인제 용도가 너무 많이 쓰여요. 관공서에 갈 때마다 주민등록증 내놔야 됩니다. 또는 순경 아저씨가 지나가면서 너 수상해, 주민등록증 까봐, 그러면 까봐야 되죠. 없으면은 요 밑에 요게 있죠. 주민등록 신분을 확인하기 위해서 경찰관은 그 사람을 가까운 관공서로 동행을 요구할 수가 있습니다. 끌려가야 돼요. 안 가면은 나쁜 놈이니까 잡혀 갑니다. (웃음) 이런 그, 그게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전 국민을 범죄자로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인제 바로 그게 제일 큰 문제죠. 거기다가 인제 지문정보까지 들어갑니다. 생체정보까지 집어넣고요. 뿐만 아니라 지문정보를, 그 이제 지문찍은, 주민등록증 신청할 때 십지문 찍거든요, 이 지문 찍은 것을 왜 주민등록을 관리하는 동사무소에서 갖고 있지 않고 경찰청에서 한꺼번에 다 모아가지고 가지고 있어요. 대한민국 국민들 18세 이상 되는 주민등록 발급받은 그 사람들의 지문정보를 경찰청이 다 가지고 있습니다. 원래 이것의 존재목적은 주민관리거든요. 범죄자 관리가 아닙니다. 근데 경찰청에서 그걸 갖고, 너희들 왜 가지고 있느냐, 그러면은 뭐라 그럽니까? 도둑놈 잡는데 필요하다, 라고 안 그래요. 여러분들이 만약 실종되어 가지고 변사체로 발견되면은 그 신원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런 식의 이야기가 과연 타당한 건지.

거기에다가 인제 더 나아가서 인제 오늘의 본론이 나옵니다. 근데 본론은 그렇게 많이 이야기할 필요가 없습니다. 전자주민증 제도가 나옵니다. 모르겠어요. 행정안전부의 평생, 일생일대의 과업인 것 같습니다. 끊임없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은 우여곡절들을 겪었거든요. 그런데도 끊임없이 나오는 걸 보면은 행안부의 존재 목적이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현행 주민등록증이 사실 뭐 이게 탈색되고 문제가 좀 많아요. 제 주민등록증만 해도 앞면에는 아무것도 없거든요. 하얘요. (웃음) 그래서 저는 운전면허증을 들고 다니는데. 하여튼 요런 문제점들이 있다, 사실 이거는 문제점이 아니죠. 주민등록증 가지고, 주민등록증의 본래 목적하고 디지털시대는 다른 거거든요. 근데 이제 갖다 붙인 거죠. 어쨌든 이제 요런 문제점이 있다 보니까 요런 필요성이 있다는 겁니다. 지금 이제 가지고 있는 주민등록증이 요렇게 잘못된 게 있으니까 새로 아주 멋지게 만들어가지고 여러분들이 개인정보도 보호하고 뭐 행정 편의도 도모하고 여러분들이 필요하면은 그거 가지고 결제도 하고, 뭐 이렇게 만들자, 그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 인제 지금 주민증록증이 가지고 있는 정보들이 너무 많이 적혀 있으니까 그 정보들 중에 일부분만 적고 나머지 정보들은 전부 다 그 안에 칩에 다 집어넣겠다. 그러면은 누가 당신 주민등록증 보자, 그래도 보여줘도 괜찮지 않느냐, 그런 이야기죠.

인제 요 이야기가 가장 기본적인 틀이죠. 지금 인제 주민등록증이 재질이 별로 안 좋아 가지고 위변조하기가 쉬우니까 신소재를 사용해 가지고 위변조를 막자, 뭐 이런 얘기고요. 인쇄 기술이 별로 안 좋아 가지고 잘 지워지니까 아주 뭐 레이저로 그냥 인쇄를 해버리자, 그럼 평생 안 지워진다, 뭐 그런 이야기. 전자칩을 탑재하면은 전자칩에다가 주민등록번호라든지 이런 민감한 정보들을 집어 넣으면 옆에서 누가 주민등록증 가서 봐도 그걸 모른다, 리더기가 없으면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인제 사생활도 보호되고 변조도 못하고 뭐 이런 이야기들 죽 합니다. 역시 마찬가지로 죽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고. 어쨌든 요렇게 하기 위해서 전자주민증이 필요하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정말 그런지 문제가 되죠. 그래 인제 제일 문제가 뭐냐 하면요. 그렇지 않아도 지금 그 주민등록증에 정보가 많아요. 주민등록번호만 해도 엄청난 정보를 가지고 있고 그 주민등록증 보면은, 그 인제 그런 게 있죠? 신용카드 뭐 이런 거 할 때 주민등록번호 불러 보세요, 뭐 그러다가 발급일자만 가르쳐주세요, 그런 이야기를 하죠. 그것도 정보에요. 내가 이 주민등록을 발급받은 당시에 어디서 살았는지까지 다 알게 됩니다. 그런 정보까지 다 있거든요. 거기에다가 더 나아가서 뭐, 그 인제 혈액형이라든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그런 사항 중에서 주민들이 원하는 거는 칩에다가 넣어주겠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자, 아까 지문 찍는 것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법률에도 지문 찍으라는 규정이 없습니다. 시행령에도 그 규정이 없습니다. 시행령 별표에 주민등록증 신청 양식에 지문 찍는 란을 만들어 놨어요. 그래서 온 국민들 정보 다 뺏어 가거든요. 똑같은 이야기가 가능합니다. 비록 법에는 요렇게 해놔 놓고요 대통령령에다가 이상한 어떤 그 신청양식만 만들어 놓으면은 그거는 어느 날 갑자기 임의기재사항인 것이 어느 날 갑자기 강제기재사항이 되는 수도 있습니다. 실제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원이 법률을 만들어 놨는데 이 법률이 정부에서 시행령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법률의 내용이 왜곡되는 게 한두 건이 아닙니다. 이런 부분들 보고 우리 보고 믿으라 그러죠. (웃음) 그 다음에 인제 뭐, 제일 문제는 인제 주민번호를 칩에다 넣어놔 놓고 표면에는 그냥 발행번호를 적겠다. 이건 아 다르고 어 다른 거지 뭐 그게 그거죠. 주민등록번호는 누가, 내 주민등록번호 훔쳐 가가지고 게임 사이트에 가입하는 것, 이게 걱정이잖아요. 근데 그걸 칩에다 집어넣어 놓고 밖에다 발행번호 집어넣으면은 게임사이트는 틀림없이 발행번호 달라고 할 거예요. 그게 그거죠. 전자칩, 이거 보안 잘 된다, 진짜 보안 잘돼요? 그 농협 은행 보안도 북한이 뚫었습니다. 뚫었다고 해요. 이 정보를 보고 아직도 북한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고 그러면서 이걸 하겠다고 그래요. 말이 됩니까, 이게. 둘 중에 하나는 잘못된 거겠죠. 뭐 어쨌든 그게 문제가 아니죠. 보안이 문제가 아니고 중요한 건 뭐냐 하면 아날로그 정보는 옆에서 훔쳐본 놈, 그놈만 알아요. 근데 디지털 정보는 한번 유출되면은 인터넷에 다 퍼져버립니다. 자, 아날로그 정보가 유출돼 다른 사람이 훔쳐 볼 확률이 만분의 일이고, 디지털 정보가 유출될 확률이 1억분의 1이라고 합시다. 어느 게 더 힘들어요? 그걸 퍼져 나가는 빈도로 해서 곱하기를 하면 그게 기대치죠. 그거랑 엄청나게 클 겁니다. 그런데도 보안이 돼요. 이거는 보안이 아닙니다. 보안의 문제는 기술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퍼져나가서 얼마만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지 얼마나 충격을 줄 것인지, 이게 보안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되는 거죠. 사실 그렇거든요. 자장면 값을 보안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잖아요? 옛날에 국가보안법에 짜장면값 가르쳐 줬다고 국가기밀 누설했다고 잡혀간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은. (웃음) 그게 문제가 아니라, 뭐 예를 들어서 수소폭탄 만드는 법이 보안이어야 돼요. 왜냐 하면은 그거는 한번 알려지면 너무나 큰 그게 나오기 때문에. 완전히 논리가 거꾸로 바뀐 그런 것이 되어 버리죠. 보통 이제 요런 논의에 덧붙여서 인제 음모론까지 나옵니다. 지금 이제 전자주민등록증 이야기하면서 행안부가 계속해서 뭐냐 하면은 그러니까 전자화시키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정보 안 넣을게, 다른 정보 왜 넣니, 그냥 지금 인제 있는 주민등록증에 있는 그 정보만 칩에 넣고 너 사생활 보호해줄게, 요게 행안부의 명분이거든요. 그런데 사생활 보호 안 됩니다. 그렇다면은 결국은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정보들 집어넣어 가지고 그걸로 장사해서 부가가치를 늘리겠다는 그 음모가 아니냐. 전자화된 주민등록증이 아니라 스마트카드를 만들겠다는 이야기 아니냐. 그래서 신용카드 정보도 넣고, 이렇게 해가지고 기업들이 결국은 부가가치를 만들 수 있는 그런 틀을 만드는 그게 아니냐는 그런 음모론도 제기해볼만 합니다. 더더군다나 우리나라 주민등록증이 가지고 있는 주민번호부터 시작해서 그 문제점은 하나도 개선이 안 됩니다. 이런 게 인제 문제가 되는 거죠.

그냥 인제 정리를 조금 해도 되겠네요. 하여튼 결론은 뭐 별거는 없습니다. 정보화하라는 게 실제 우리 생활과 가장 붙어있습니다만은, 어떻게 보면은 우리 생활 자체가 그 정보를 장악하고 있는 자에 종속시키는 그 어떤 것이 되기도 합니다. 홈쇼핑은 처음에는 편하지만은 거기에 빠져 들면은 사라는 것 사지 않고는 안 되죠, 그죠. 게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재밌지만은 나중에는 필생을 걸고 해야 하는 거거든요. 역시 마찬가지죠. 정보화도 국가가 어떤 편의를 위해서 한다고 하지만은 그건 나중에 우리 생활을 지배할 권력이 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뭐 인제 그런 과정에서 자칫 잘못하면은 헌법이 원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것, 이 정부가 그렇게 지키고 싶어 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것은 핵심적으로 뭐냐 하면 자의적이고 폭력적인 지배가 없는 겁니다. 모든 사람이 참여하는 그런 체제를 만드는 게 우리가 만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거든요. 거꾸로 가는 겁니다. 권력이 한손에 장악이 되고 그래서 국민은 자기 소리 한마디 하기 전에 저쪽에서 이미 나를 다 파악하고 있는, 그래서 저쪽에서 나의 행동까지도 일거수일투족까지도 조종할 수 있는 그런, 그런 형태가 되어버리죠. 그게 바로 전체주의 내지는 독재국가에 다름이 아닙니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하고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그런. 사실 디지털 독재의 가능성이라고 했지만은 실제 이런 부분들, 뭐라고 그럴까요, 뭐 대안들은 많이 나오기는 합니다만은, 제일 중요한 건 우리가 눈 크게 뜨고 쟤들 뭐하는가 감시하고 항의하는 것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일단 제 발제는 이 정도로 마치겠습니다. (박수)

박래군

예, 강의 잘 들으셨나요? PPT가 그림 하나 안 나오고. (웃음) PPT가 그림도 좀 들어가고 동영상도 들어가고 그럴 줄 알았더니 별거 없이 노트, 강연자료들을 정리해 놓은 수준인 것 같습니다. 어쨌든 한 시간 정도 강의해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강의 들으시면서요, 교수님한테 꼭 이 주제만이 아니라 지금까지 주제와 관련된 부분들도 같이 질문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요, 이따 가시면서 여기 자료집에 맨 뒤에 보면요 강연평가가 있어요. 이거 진짜 우리나라 사람들 안 하시는데요, 강연평가 여기 3가지 항목 밖에 없으니까 요 3가지 항목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들으신대로 평가를 해서 남겨주시면. 잘라서 해 주시는 겁니다.

 

한상희

오늘 한참에 강의평가 받는 날이네. 학교에서 강의평가 받는. (웃음)

 

박래군

오늘 것만 아니라 지금까지 해왔던 강연, 느끼신 대로 그거에 대해 평가를 해주시면 다음 기회에 행사를 할 때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이거 먼저 말씀드리고, 교수님께 질문하실 내용. 아무도 없나요?

 

청중

외국은 주민등록번호 안 쓰고 어떻게 해요?

 

한상희

주민등록번호를 꼭 써야 될 이유가 없죠. 이름이나 자기 주소라든지. 예를 들어서 인제 책을 빌려 주고 할 때 책 들고 도망칠 걱정이 있으면은 너 사는 집에 온 우편물을 갖고 와 봐라 그래요. 특히 은행거래 했던 계산서 같은 것, 그런 걸 붙여 온 우편물 봉투를 들고 오면 네가 그 집에 살고 있는 걸 인정을 해주는 거죠. 그런 식으로 해도 되고요. 정 안되면 그러니까 주민등록증 아니고 뭐 보통 이제 미국 같은 경우 사회보장번호 같은 것 많이 쓰잖습니까? 운전면허증 같은 것. 이런 것들을 하면 되죠.

 

청중

영국은 어떤 것 쓰는데요?

 

한상희

영국은 주로 뭡니까, 은행 거래 내역서. 그거 온 편지봉투를 들고 오라고 그래요. 대부분 그래요. 내가 은행 거래를 할 때는 내 주소를 등록하거든요. 그러면 은행에서 내가 돈 넣고 빼고 한 거를 한 달에 한 번씩 보내줘요. 그 계산한 거를. 그러니까 그걸 들고 가면 되는 거죠.

 

박래군

우리가 굉장히 비정상적인 것에 너무 익숙해 있는 것 같애요. 우리부터 그렇잖아요. 주민등록번호 다 잡아야 되는 거고 이걸 통해서 사실 은행 거래 때도 그렇고 병원 갈 때도 그렇고 다 주민등록번호잖아요. 통제가 되는 거고 너무 익숙해져가지고 다른 게 상상이 안 되는 거죠.

 

한상희

인제 그러면 인제 그걸 또 묻게 되거든요. 은행은 뭐 믿고 통장을 개설해 주느냐. 뭡니까. 영국은 제가 갔을 때는 추천서를 써오라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는 학교에 그 학과장한테 추천서를 써달라 해가지고 그러니까 써줘요. 별 말도 없어요. 이 사람은 우리 학교 와서 공부하는 사람입니다. 그걸 들고 가서 쓰니까 그냥 그대로 개설해 줍니다. 그 사람이 진짜인지 거짓인지 이것도 확인 안 해요.

 

박래군

자, 질문 있으신 분? 우리나라에 주민등록제도가 없어지면 큰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맨 처음에. 68년부터 이렇게 되어 있으니까.

 

한상희

담배 끊으셨죠? 담배 끊는 순간 혼란이 일어나거든요. 그러니까, 그렇죠. 그러니까 시대가 바뀌면은 바뀐 시대를 위해서 과거를 청산해야 되는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 혼란은, 그건 어쩔 수 없는 거겠죠. 다만 이제 그런 혼란에 대해서 서로 지혜를 모을 수 있으면 그 혼란의 강도는 조금 약해질 거고요.

 

박래군

이 주민등록증 제도가 사라진, 주민등록제도가 사라진 시대를 상상하는 만화책 뭐 없을까요?

 

한상희

저는 이제 지금 그러니까, 키티부터 그리는 것 배우고 있어요. 헬로키티. 제일 그리기 쉬운 만화잖아요.

 

박래군

자, 또 어떤, 질문이나.

 

청중

교수님께서 정보가 처리 과정에서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집중되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그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효율성이나 이런 측면에서 아주 집중을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걸 들었거든요. 제3자의 손에 들어와야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경우에도 끊임없이 문제제기가 있지 않을까요?

 

한상희

그렇죠, 문제는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다만 문제는 뭐냐 하면요, 한 사람이 가지고 있으면 이 문제를 숨기거나 조작할 수가 있습니다. 두 사람이 있으면 그 조작이 쉽지가 않거든요. 다섯 사람이면은 정말 골치 아파져요. 입이 안 맞고 어떤 놈이 배신하는 사람이 분명히 있거든요. 그 중에 마음 약한 사람은 조금만 옆에서 찌르면은 바로 불어버리잖아요. 바로 인제 그게 권력 분립의 기본 원칙입니다. 혼자서 하면 지 마음대로 하는 걸 둘이서 하면 자기 마음대로 못하는 경우들이 있는 걸, 그걸 노리는 거거든요. 바로 그 과정에서 그 몇 명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국민들이 보게 만들고 또 경우에 따라서는 국민들이 거기에 대해서 참여하게 만들어주면은 그게 바로 민주주의죠.

 

청중

다른 곳에서 공부하셨을 때 자기소개를 해보라는 요청을 받았거나 그런 자리에 있다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왜 그러느냐 하면 학생들하고 만났을 때나 여러 가지 모임에서도 자기소개를 해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게 저는 몇 살이고 어디서 태어났고요, 뭐, 너무나 똑같은 자기소개여서 나중에는 재미가 없거든요. 그게 혹시 우리가 주민등록증이나 뭐 이런 것들에 의해서 이렇게 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고. 만약에 그게 바뀌면 좀 그런 것조차도 자유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한상희

문화적인 게 큰 것 같애요. 그러니까 내 나이가 몇 살이고 이거는 인제 거꾸로 얘기하면 인제 민증 까봐, 하는 것하고 연결되는 거거든요. 우리나라는 항상 이제 형 아우가 결정되어야 되니까 그런 것들이 있고요. 특히 이제 아마 이거는 강요된 것 같아요. 소속을 밝히는 것. 나는 어디 소속이다, 라는 것. 내가 뭐 청주 한씨 몇 대손이다, 라고 이야기하는 것하고 그건 옛날식이고. 그 인제 군사정권 때 강요되었던 것은 나는 어느 학교 출신이다, 라는 것. 뭐 이런 것들, 조금 그 집단주의적인 그러한 문화가 좀 변형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청중

항상 보면요, 뉴스나 이런 데서 보면은 개인정보 사고가 진짜 많이 일어나잖아요. 무슨 어떤 홈페이지에서 천만 명이 넘는 개인정보가 유출됐다, 금융정보가 유출됐다, 그런데 그런 일이 솔직히 우리나라에서 있었던 게 상당히 오래된 것 같고. 아까 전에 강의하실 때도 농협 같은 데서 국가안보, 심지어 북한이 그런 거 아니냐, 얘기하는데도 우리나라 개개인이 느끼는 정도가 인제는 익숙함을 넘어서 가지고 그냥 뭐 그런 것 아니냐는 듯하게 넘어가는 것 같은데 실제 그런 점에서 저희가 문제점이 있다는 건 개개인이 인식은 하고 있는 것 같애요. 심지어 게임을 하는 사람들조차도 나 무슨 게임 하다가 아이디 해킹 당했다, 라는 경우가 상당히 많잖아요. 애들도. 그런데도 과연 이 제도가 없어질 수 있을까 그냥 과연 감시 기능이 너무 인제 구조화된 것에서 그냥 그걸 벗어나서 무슨 생물체, 없으면 안 되는 것으로 인식되는 듯한 끔찍한 생각이 들어가지고 교수님께서는 그게 언제쯤 가능하실지 궁금하고요, 그냥 개인적인 견해를 좀 듣고 싶어요.

 

한상희

몰라요. 음. 요렇게 대답을 대신할게요. 사실 대답하기 상당히 어려운 질문인데요. 상상이 필요한 부분일 것 같애요. 옛날에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일어나게 된 사건이 드레드 스콧(Dred Scott) 사건이 있습니다. 연방대법원에서 노예는, 흑인은 인간이 아니다, 라고 판결한 사건이 있거든요. 거기에 인제 드레드 스콧이라는 사람이 노예였는데요, 그 당시 인제 미국에서 37도를 기준으로 해 가지고 37도 북쪽으로 가면은 아무리 노예도 자유인이 됐습니다. 남쪽에서는 노예가 인정이 됐고요. 그런데 이 녀석은 자기 주인을 따라서 37도를 넘어 갔다가 거기서 2년을 살다가 다시 내려왔어요. 자유인이 됐거든요. 그런데도 내려 와가지고 자기 주인을 끝까지 섬기다가 죽였어요, 죽었어요. 자유라는 게 뭔가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변혁이라는 게 없어요. 그 사건이 일어난 거는 그 사람이 너무 안타까워서 원래 주인의 사촌 조카가 그 주인을 상대로 해 가지고 소송을 제기한 거거든요. 지고 말고 그래가지고 남북전쟁이 일어나긴 했지만은. 실제 이제 뭔가 다른, 다른 생활을 할려면은 그 다른 생활에 대한 상상이 제일 먼저 우선이 되어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우리는 주민등록증 번호 또는 주민등록증 제도에 너무 익숙해 있거든요. 사실 뭐 제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 갈 때는 주민등록증 내놓고 그냥 가거든요. 뭐 거기 익숙하니까 몸에 그냥 젖어 있으니까. 근데 이제 그게 아니라 그런 것이 없이 살아가는 것, 그게 어떤 불편을 야기하고 그 불편 속에서 우리는 어떤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인지. 그 상상이 이루어지고 그걸 우리가 받아들이면은 변혁은 바로 일어날 것 같아요. 조금 제가 추상적으로 이야기를 할게요. 어떻게 보면은 이 말은 거꾸로 하자면은 정말 깨기 어려운 시스템이에요. 우리나라 관료들이 워낙 익숙해 있고요. 우리나라 어떤, 국가가 운영되는 체계가 바로 거기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지만은 그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다시 또 거꾸로 이야기를 하자면은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그런 삶의 방식들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서는 또 깨야하는 것이기도 하거든요. 문제는 그 새로운 삶의 방식을 어떻게 상상하고 어떻게 공감하느냐의 문제일 것 같아요.

 

박래군

지금 우리 사회에 전자주민증이 이야기되고 있는데 이미 전자화된 신분증이 굉장히 많죠. 전자화된 신분증이 굉장히 사회적으로 많이 보급되어 있잖아요. 국가에서 전자주민증을 새로 도입한다고 해서 뭐 크게 문제가, 이미 이렇게 되어 버렸는데. 뭐 이런 생각도. 우문을 던지는 건데, 제가 우문을 던져서 현답을 하셔야죠.

 

한상희

또 거꾸로 이야기할게요. (웃음) 감시라 했을 때 감시가 일어나는 게 국가감시가 있고요, 그 다음에 인제 기업이 소비자를 감시하는 게 있을 거고요, 또 작업장에서 노동을 끄집어내기 위해서 감시하는 것들이 있을 거에요. 크게 3가지로 본다면요. 어쨌든 그 모든 감시들이 개인 생활을 결정해버리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그렇다면은 국가가 정말 선하다고 한다면은 국가는 국민들을 그런 감시들로부터 보호해줘야 될 역할이 있습니다. 그게 국가의 역할이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국가가 스스로 나서서 그 감시를 용이하게 해 주겠다고 나서는 것, 이거는 말이 안되죠. 사회 내에서 어떤 전자화 카드 같은 것들이 통용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거는 어떻게 보면은 거기에 한정되어 있거든요. 제가 제 연구실 문을 열 때 카드로 대고 엽니다. 그러면은 인제 학교에 그 뭡니까, 그 경비회사 있잖아요, 세콤, 맞아요, 세콤에서는 한상희라는 사람이 몇 시에 출근하고 몇 시에 퇴근하고 언제 화장실을 가고 하는 걸 다 파악합니다. 그래도 그거는 거기서만 머무는 거거든요. 국가 전자주민증은 대한민국 전체에 미치는 거예요. 내가 어디에 있고 대한민국 어디에 다니고 하는 것은 지금 제 학교에 전자열쇠 가지고는 제 학교에서는 파악을 못합니다. 학교 안에서만 파악하죠. 그런데 국가는 전자주민증 가지고 전국을 다 파악할 수 있는 게 문제가 되요. 그렇게 전국을 다 파악하는 것을 지피에스(GPS)하고 연동시키고 뭐하고 연동시키고 해가지고 기업이 어떻게 보면은 소비를 착취하는 또는 노동을 착취하는 그런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회가 얼마든지 열리게 되는 것이죠. 그래서 아까 제가 마지막 부분에서 전자카드가 아니라 스마트카드다, 라는 것이 걱정된다는 게 바로 그 때문입니다. 스마트카드라는 게 여러 가지 정보를 담아 가지고 연동시키는 걸 의미하는 거거든요. 이거는 결코 바람직하지가 않죠,

 

청중

복지카드가 전자주민화 되는 거랑 똑같은. 혹시 저기 복지카드는 딴 용도로 버스 카드 타고 신용카드.

 

한상희

복지카드에 버스카드, 신용카드, 의료보험, 그 다음에 주민등록 넣으면 스마트카드죠. 행안부가 원하는 스마트카드일 거예요.

 

청중

저는 한국개인신용평가원이라는 회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런 쪽으로 관심이 많아서 왔는데 실질적으로 주민등록번호라는 게 아까 말씀하신 경우, 저희가 제휴하고 있는 회사들도 평가하는 방식에도 사회관계 시스템이라고 해서 아까 영국에서 사례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상당히 많은 것들을 비교분석 해가지고 이 사람이 실제 그 사람이 맞는지를 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부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루어지고 있고 뿐만 아니라 전체 금융권뿐만 아니라 상당히 많이 공용화된 주된 키 요소이기 때문에 제 개인적으로 봤을 때는 관료적인 그런 측면으로 보셔도 상관없는데 현실적으로 없어질 것 같지는 않아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드는 생각이 뭐냐면 신용정보 쪽과 관련해서는 신용정보 제공 통보 요구권이라는 게 있습니다. 내 신용정보를 어디다가 제공했는지 나에게 통보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도입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그것과 관련해서 통신사하고 최근에 소송까지도 하기도 했는데. 신용정보라고 하는 건 개인정보에 거래정보, 신용도, 실적이라든지 이런 게 붙기만 하면 신용정보라고 해석될 수가 있고 통신사 한군데만 해도 1800군데 이상으로 내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동의를 해야만 됩니다. 그래서 법원에서 제가 졌는데 교수님, 법학대학원이다 보니까 앞으로 이런 부분에 대해서 오히려 주민등록번호를 못 쓰게 하는 그런 어떤 접근보다도 국민들이 이런 것들에 대해서 권리를 좀 더 명확하게 인식하고 그런 것이 개인정보까지 확대되도록, 제도를 좀 보완되는 데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하는데 혹시 그런 부분은.

 

한상희

원래 제도개선이란 게 제일 가깝고 제일 급한 것부터 개선하는 그런 것들이 있을 거고요, 아예 처음부터 그냥 왕창 다 바꾸는 것도 있을 것이고 여러 가지 방안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주민등록번호 제도나 주민등록증 제도를 아예 없애는 것은 변혁이죠, 큰 변화입니다. 급한 것부터 한다면은 제일 먼저 할 수 있는 건 뭐냐 하면요, 한번 유출된 주민등록번호는 바꿔주는 겁니다. 제 애가 지금 제 주민등록번호 지 마음대로 쓰고 다니거든요. 그런데도 못 바꿔요. 그렇다고 애 보고 그걸 잊어버리라고 할 수도 없잖아요. 이게 첫 번째입니다. 거기다가 그 인제 주민등록번호를 한정된 곳에만 쓰게 하는 것도 방법이죠. 정 그거하면은 행정목적, 그 다음에 또 좀 더 그런다면은 신용, 금융, 거기만 한정하라. 그 외 민간부문에서는 딴 번호를 쓰게 만들면 되는 거죠. 그렇게 단계 단계로 바꾸어가는 방법도 얼마든지 있거든요. 문제는 지금 현재 행안부에서는 이 모든 걸 다 못하겠다는 거죠.

 

청중

교수님, 인터네 상에 아이핀이라는 게 있잖아요. 그러면 교수님 말씀하신 그런 측면에 조금은 그게 가까이 가 있는 건가요?

 

한상희

그러니까, 아주 미세한 개선이죠. 아이핀을 쓰면은 그러니까 그 아이핀 가지고는 국가기관에 뭐 하고 하는 거는 제대로 못하지 않습니까? 어느 정도 용도가 한정된 게 되어버리죠. 우리나라 주민등록번호 가지는 문제점, 아까도 이야기했습니다만은 안 바뀐다는 것 하고요, 그리고 이거는 범용이에요. 모든 것에 다 통용되니까, 만능열쇠가 되어 버리니까 그게 문제거든요. 뭐 최소한, 그걸 좀 나눠서 어떤 때는 이 번호, 어떤 때는 저 번호 정도만 되어도 그 폐해가 이렇게 심하지는 않을 것 같애요.

 

청중

제가 그 기억나는 사례가 있는데, 어떤 사람이 주민등록번호를 받을 때 그 앞에 생년월일이 들어가잖아요. 근데 저희가 2월달에 28일날이 있는 것도 있고 29일날이 있는 것도 있죠. 그 해에 28일이 없었는데 28일을 썼었대요. 그러니까 이 사람이 다행히 강원도에 15년 살았었는데 지금까지 번호가 지금 쓸 일이 그렇게 없어가지고 문제가 없었는데 나중에 조회해 보니까 이 번호가 있을 수 없는 번호가 된 거예요. 그래서 국가로부터 어떤 혜택도 못 받았었다고. 그래서 나중에 이걸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 게 기억이 나더라고요. 사실은 주민등록번호가 그런 문제점이 되게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고쳐지고 이게 계속 몇 십 년 동안 있어온 거잖아요. 저희가 편리함 때문에 계속해서 사용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상희

실제 그 편리함이라는 게 지금 편리함이거든요. 처음에 도입하고 하는 단계에서는 그렇게 편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지금 인제 문제는 뭐냐 하면 그게 조금 어느 정도 진행되다보니 모든 게 거기 맞춰서 다 만들어져 버린 거죠. 그러다 보니까 그 안에서만 편리한 거죠. 그래서 조금만 떠나 버리면 전혀 편리한 것도 없거든요. 누구나 다 주민등록번호 적어라고 하니까 뭐 하나 서류 하나 작성할 때마다 꺼내 가지고 확인해야 돼요. 안 그러면 외우거나. 이건 불편한 거죠. 그런데 그걸 불편하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잖아요. 문제가 많은 부분들이죠. 그 인제 그 사례가 있었고 주민등록번호가 똑같아가지고 그런 사례도 몇 번 있었잖습니까? 몇 번 그 경우가 있었어요. 아마 그 인제 동사무소 직원이 적으면서 잘못 적었거나 그랬겠죠.

 

박래군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오늘이 이 대강연의 마지막 강연이니 대미를 장식하죠. 앞에 다섯 번 한 것까지 못 물어 봤던 것, 지금까지 강의 들으면서 의문 났던 것, 궁금했던 것, 이런 것 물어보면 한상희 교수님 대답을 해주실 거거든요.

 

한상희

대답이야 하죠. 그게 맞다는 증명은 못하죠. (웃음) 요즘 대학이 기말고사 기간인데요. 항상 묻는 게 그래요. 교수님 문제 쉽게 냅니까. 문제는 쉽게 내죠. 답이 어려우니까 탈이지. (웃음)

 

박래군

질문이 없으시네. 근데 참 이게 아까 이제 결론 비슷하게, 우리의 가능성, 이걸 통해 우리가 감시해야 된다, 이렇게 얘기하는데요. 진짜 막연해요. 어떻게 감시를 할 거냐. 더군다나 지난번 강의시간에 그런 얘기 나왔거든요. 신자유주의에서 이런 상업 감시, 이런 부분 같은 경우는 도리어 자발적인 어떤 협조, 이렇게 되면서 자기 개인정보를 넘겨준단 말이죠. 이렇게 해가지고 거기에 동의하고 협조하는 이런 저기까지 만들어져 있는 이런 상황에서 감시할 때, 디지털 독재체제, 벌써 와 있는데 이걸 어떻게 막아 가지고 이걸 다시 해체시키고 재구성할 거냐, 이런 것들이에요. 감시의 방법, 감시라고 해서 그럴 듯한 말로 대충 넘어가지 마시고 어떻게 감시할 수 있을 것인지.

 

한상희

아니 그걸 제가 알고 있으면 우리 장여경 선생님이 벌써 가져 가가지고 다 만들어 놨죠. (웃음)

 

박래군

외국의 뭐 어떤 이런 사례라든지 경우는 어떻게 되나요?

 

한상희

뭐 여러 사례들이 있죠. 정보위원회를 만들어서 감시하는 것도 있고요. 특히 데이터베이스 연동 자체가 외국은 잘 안되니까요. 그러다보니까 우리나라처럼 심각한, 또는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의식을 못하는 그런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은 걸로 알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그 인제 이런 거거든요. 형사사법정보시스템 같은 경우만 해도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저 보고 자문위원으로 오라 그래요. 그래서 갔어요. 가 가지고 이거는 안 된다, 라고 이야기해도 그냥 묵살 해요.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부르지도 않아요. 뭐 그러고 요 다음에 부르겠지, 하고 있다 보면은 구축됐다고 자축한다고 그냥 밥 먹으러 오라 그러거든요. 그래가지고 돌리고 있어요. 만약에, 외국이라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은요, 유럽이나 미국에서 그렇게 구축이 그렇게 됐다면은 우선 의회부터 가만히 안 뒀을 겁니다. 아니 아예 의회에서 그런 예산을 승인을 안 했을 거예요. 근데 우리나라는 아무런 그것도 없이 아무런 문제제기도 없이 그게 그냥 해가지고 구축이 되어 돌아가고 있거든요.

 

청중

그걸 깰려면 어떻게?

 

한상희

몰라요. 정권을 장악한다고 해서 될 것 같지는 않아요. 오히려 이런 강령이 힘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어쨌든 국민들이 각성을 하지 않으면은 힘든 부분일 거예요. 사실은. 정권으로서 처리할 부분도 아니고요. 이런 게 있거든요. 나이스가 요즘 개편이 됩니다. 종합교육정보망 거기에. 네이스(NEIS). 거기에 뭐가 들어가느냐 하면은, 우리 애가 지금 고2인데요, 우리 애가 여태 읽은 책의 내용들이 들어갑니다. 나는 요런 책 읽었대요. 뭐 그래가지고 두줄, 석줄 적어가지고 학교에 내면 선생님이 그걸 인정을 해 줍니다. 그러면은 그걸 나중에 대학 들어갈 때 입학사정관 제도 이래가지고 입학사정관한테 그걸 보내줘요. 입학사정관이 보면은 요 녀석은 삐딱한 책만 읽었네, 이게 다 나와요. 어떤 종류의 서적을 읽었다는 게 다 나오거든요. 제가 이 비슷한 이야기 할 때마다 하는 이야긴데, 하도 기가 안 차가지고. 영국에 있으면서 그 인제 맑스뮤지엄이라는 데가 있습니다. 칼 맑스 그 인제 내놓고 있는데요. <맑스 인 런던>이라는 조그마한 팸플릿이 있습니다. 맑스가 런던에 와 가지고 어디서 살고 누구랑 바람을 핀 것, 어디 가서 술 먹었는 거, 요걸 전부다 죽 적어 놓은 게 있거든요. 재밌어요. 제가 봐도 재밌어요. 그래서 애 보고 영어공부할 겸 읽어라 그랬습니다. 지도 읽었으니까 당연히 이거는 기록에 남기고 싶잖아요. 적어가지고 선생님한테 주니까 선생님이 입력을 안 해줘요. 삐딱한 책이라고. 그러니까 우선 애도 쇼크를 먹고, 사실 선생님은 애를 위해서 그런 거긴 하지만은. 이게 거꾸로 이야기를 하면 그게 인제 그렇게 입력되면은 다른 사람이 얘를 그렇게 본다는 거 아니에요. 이게 지금 우리나라에서 구축되어가지고 돌아가고 있거든요. 마침 현 교육청에서 그걸 막았어요, 서울시는. 다른 도시는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인제 알게 모르게 만들어지고 있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국격 이야기하는 그런 나라죠. 사실 하나하나 대들고 저항하고 반항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정 안되면은 뭐 그런 이야기를 하죠. 뭡니까, 결을 거스른다고. 정상적인 작동이라도 뭔가 방해하는 그런 행동이 있어야 될 거 같애요. 단순히 그냥 이야기를 하고 뭐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한다고 될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박래군

정말 마지막으로 질문. 없으신가요?

 

청중

강연 처음 왔는데, 외국에서 핸드폰 만들 때는 주민등록증이나 여권 같은 것 요구하지 않고 슈퍼마켓에서 물건 사듯이 핸드폰을 만들 수 있어서 되게 깜짝 놀랐었거든요. 한국에서는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하니까 핸드폰과 일대일, 사람이 특정이 돼서 도감청 같은 게 자유롭게 일어나는데 외국에서는 이런 식으로 일대일 대응이 없는 데서는 도감청 문제가 한국보다 덜한지.

 

한상희

도감청은 조금은 그거는 다른 맥락에서 봐야 할 거 같애요. 도청하고 하는 거요. 그거는 인제 그러니까 어떤 국가신분제하고 바로 연결되지 않아도 되는 거니까.

 

청중

핸드폰이 특정이 안 되잖아요. 그 나라는 핸드폰 번호를 알아낼 수 없잖아요.

 

한상희

아주 고도의 정보기관에서 알아야 되는 정보일 것 같은데요. 몰라요. 그거는 제가 대답하기는 그러네요. 아마 그럴 거에요. 그 인제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국가정보원이 편하죠. 그러니까 한상희라는 사람이 어떤 전화번호, 몇 번 짜리 휴대폰을 쓰는 가는 자기 탁자에 테이블에 앉아 가지고 두드려보면 다 나오잖아요. 근데 영국 같은 경우에는 뭡니까, MI6인가, 첩보기관, 007이라고 하더라도 두드려서는 안 나올 거예요. 이름 두드려보면 똑같은 이름 몇 개는 죽 나오겠지요. 그놈한테 찾아 가가지고 그놈 쓰고 있는 전화번호 보고 이거 쓰고 있네, 하고 확인해야 될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국정원은 편할지 모르죠, 뭐. 그게 우리나라 제도가 가지는 맹점, 단점이죠. 그 미국 헐리우드 액션영화 보면 그런 것 많이 나오거든요. 그 사람을 찾기 위해서 컴퓨터를 두드려 보면은 이름이 좍 나오거든요. 그럼 하나하나 연락을 다 해보잖아요. 근데 우리나라는 그게 아니잖아요. 이름 옆에 주민등록번호 좍 나오니까 그거 확인해 가지고 저 놈이다, 하고 바로 가버리죠. 헐리우드 영화를 많이 보시면 돼요.

 

박래군

자, 이걸로 오늘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보면은 한상희 교수님 강의가 재밌거든요. 굉장히 재밌으셨죠. 한상희 교수님께 큰 박수를. (박수) 우리 뭐 앞으로 감시사회와 관련된 문제, 주목해서 봐야할 것 같은데요. 우리 사회에 많은 감시 문제, 정보와 관련된 이런 인권 문제에 무디어서 이걸 일깨우는 활동을 해야 하는데 그런 속에서 소금과 같은 존재, 빛과 같은 존재가 바로 진보네트워크센터입니다. 오늘 우리 자료집에 보면은 후원회원 가입 신청하는 게 있잖아요. 아직 안 하신 분들 진보넷 꼭 후원회원 가입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까 말씀해주신 강연 평가하는 것 있잖아요? 그거 좀 분명히 안 적으시는데 적으시고 세 항목 밖에 안 되니까 그리고 개인정보 안 쓰셔도 되거든요. 꼭 하셔 가지고 두고 가시면 참고해서 쓰도록 하겠고요. 그리고 또 함께 인권센터 만들자는 리플렛도 있습니다. 그것도 보시고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주춧돌 가입에도 많은 분 함께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자, 이상으로 올드빅브라더에서 뉴빅브라더로, 라고 하는 주제로 진행된 6번 동안 진행된 감시사회 대강연회 모두 마치겠고요. 오늘 참가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관심 갖고 함께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 고맙습니다. (박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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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6일] 프라이버시권과 감시 : 법과 인권의 관점에서 (홍성수) _녹취록

 

감시사회 대강연회 제5강(홍성수) 녹취록

 

□ 일시 : 2011년 5월 26일(목) 저녁 7시

□ 장소 : 여의도 이룸센터 교육실

□ 사회 : 장여경

□ 강사 : 홍성수

 

(앞부분 녹음 누락)

 

홍성수

예, 반갑습니다. 소개받은 홍성수라고 합니다. 지금 장여경 선생님 말씀해주신 것처럼 다른 분은 굉장히 재미있는 주제가 이렇게 배당이 되어 있는데 저한테만 다소 인제 딱딱하고 재미없는. 법 이런 것 나오면 재미가 없는 주제인데. 제가 하겠다고 그런 게 아니라 해달라고 한 거기 때문에 저의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웃음) 어떻게 보면 다른 강의랑, 다른 강의를 포괄하는 내용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다른 강의들과 연결되는 지점도 있을 거고. 그런데 어쨌든 좀 최대한 많은 사례들과 또 여러 가지 중요한 논점들을 소개하면서 나름대로 좀 재밌고 유익하게 한번 강의를 진행해 보려고 노력을 하겠습니다.


* 비마이너 제공 http://www.beminor.com

먼저 여는 이야기를 좀 보시면요, 최근의 사건 몇 가지를 제가 좀 이렇게 정리 해왔습니다. 선별기준은 제가 한달, 두어 달 전에 강의해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 이후에 인제 벌어진 일들입니다. 짧은 시간동안 참 많은 일들이 이 주제와 관련해서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 여러분들 다 아시겠지만 서태지 씨가 이혼을 한 사건들이 있었죠. 그 사안에서 인제 서태지라고 하는 가수는 나름대로 혼인사실을 공개하지 않겠다, 라고 하는 자신의 개인적인 선택을 한 거였고요. 거기에 이제 대상자였던 이지아씨 같은 경우에는 과거에 있었던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채 연예계에 데뷔하겠다는 나름대로 선택을 한 거였는데 대중들은 거기서 배신감을 느꼈다고 하기도 했었고.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거는 과연 인제 그런, 일종의 공인인데요, 연예인도 뭐 알려진 인물이니까 일종의 공인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그들의 사생활이 어디까지 공개되어야 되고 공개되지 않았을 때는 그들이 뭔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라는 의문을 제가 던져보고 싶고요. 또 그 이후에 인제 아이폰의 위치정보 수집이 굉장히 또 문제가 됐었습니다. 저는 이걸 사적 권력의 어떤 욕망이라는 점에서 좀 보고 싶은데요. 사적권력, 주로 기업체겠죠. 대부분의 이 기업체에서는 정보가 일종의 권력이자 돈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근데 이런 위치정보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아요. 나름대로 편리한 점도 굉장히 많죠. 특정한 지역에 갔을 때 관련된 음식점 정보가 뜬다거나 아니면 뭐 미아를 찾는 경우에 유용하게 되는 서비스들을 보면은 저도 이제 활용하고 있는데 편리한 것들이 많습니다. 저희가 편리함을 즐기기에는 무시무시한 감시의 그늘들이 곳곳에 있다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이렇게 모든 것이 발가벗겨진, 나의 위치정보고 공개되고 개인정보도 공개된 세상이 과연 행복한 세상인가, 이런 질문을 하나 던지고 싶고요. 그리고 불과 며칠 전에는 한 스포츠 아나운서가 자살한 사건도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 사건은 굉장히 개인적인 문제였고 개인적인 연애와 관련된 문제였고, 사실 연애라는 것이 밖으로 드러났을 때는 사실 누구나 치졸하다는 생각도 들고 쪼잔하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 것 아닙니까? 쿨하지 못해 미안해, 이런 노래도 옛날에 있었는데 쿨하지 않죠, 사실 연애하는 것 보면은. 그런데 두 사람 관계에서는 추억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좋은 기억일 수도 있고 나쁜 기억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남들에게 공개되었을 때는 사실은 정말 많은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이 사안을 통해서도 좀 봤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 이제 공인은 방송인과 야구선수였는데요. 이들의 어떤 사생활은 어디까지 공개되었어야 했을까. 또 그것을 가지고 대중들이 이렇게, 어떻게 보면 가지고 논 건데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어디까지 사생활이 공개되어야 되고 어디까지가 한계인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불과 며칠 전에는 한 장관 후보자의 종교생활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건 어떤 공인이죠, 정치인 내지는 고위관료의 사생활의 문제인데요. 종교생활이야말로 전형적인 사생활에 해당하는 것일 텐데. 문제는 이런 공인의 사생활은 도대체 어디까지 공개되어야 하는 것이냐가 문제가 될 겁니다. 물론 이 사안은 그의 개인적인 종교생활이 공적인 영역과 관계가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좋은 논쟁거리를 좀 던져주는 게 아닌가, 생각을 해봤습니다. 강의 마지막에는 이 네 가지 사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되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에 대해 얘기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에 또 하나 여는 이야기로 한국에서의 프라이버시 현실에 대해서 좀 얘기해보고 싶습니다. 어디까지가 솔직함이고 어디까지가 프라이버시인가 하는 문제를 한번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요. 한국에서는 이 프라이버시를 지킬려고 하는 사람이 다소 별나고 괴팍한 사람으로 치부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떤 얘기를 할 때 서로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 나이를 모르면 굉장히 답답하죠. 어느 고등학교 나왔니, 어디 출신이니, 나이는 얼마니, 이걸 모르고서는 대화가 불가능한 그런 상태에 놓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뭐, 호구조사부터 해보자, 민증 까보자, 뭐 이런 얘기들을 하면서 얘기들을 시작하는 게 보통이고 그런 게 공개되지 않았을 때 둘의 관계는 투명하지가 않다, 뭔가 솔직하지가 않다, 이런 인상들을 많이 갖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 그건 제 프라이버시입니다, 라고 얘기하는 사람 보다는 우리 툭 터놓고 한번 얘기해보자, 이런 사람들이 더 이렇게 좋은 사람으로 평가받는 그런 분위기가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한국사회는 그 어떤 사회보다 국가권력이 광범위한 정보 수집을 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주민등록제도, 다른 강의에서도 계속 논의가 됐을 텐데 주민등록제도라든가 연말정산 서비스. 연말정산 서비스 해보신 분들 아시겠지만 그 이전에는, 2009년만 해도, 제가 일일이 어떤 카드를 썼는지를 카드회사에서 받아 가지고 국세청에 냈는데 2010년부터는 국세청에서 아예 알려줍니다. 너 이런 카드 썼지? 알려줍니다. 굉장히 편리하죠. 그런데 그 편리하다는 게 과연 이제 국세청이 그런 정보를 하나 하나 알고 있다는 것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끔찍한 일이었거든요. 왜냐 하면 저 같은 경우는 거의 모든 거래를 신용카드로 긁는데 제 동선이 다 나오잖아요. 그걸 카드회사가 아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국세청이 도대체 이걸 왜 알아야 되나. 그래서 뭔가 굉장히 편리하기는 하지만 이런 광범위한 정보수집에 대해서 우리가 경각심을 안 가지고 있는 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국가권력뿐만 아니라 사적권력도 굉장히 광범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한국만큼 채용서류에 많은 정보가 기재되는 나라도 없을 겁니다. 사진을 붙이는 것도 굉장히, 제가 알기로는 사진을 붙이는 것도 일본 외에는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는 경우는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고요. 한국은 아버지 직업도 적어야 되죠. 아버지 나이와 아버지 직업과 심지어는 아버지 학력도 적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대체 뭘 참고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광범위한 정보수집이 별로 문제되지 않는 그런 경우들이 더 많습니다. 근로자 감시도 마찬가지죠. 회사의 비밀을 보호한다는 목적으로 근로자의 사적 이메일을 갖다가 이렇게 통째로 이렇게 보는, 물론 회사 메일이겠지만, 그런 일들도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거기에 대해서 우리는 큰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고 있지 않습니다. 뭐,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사례가 있습니다. 뭐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예를 들면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참 저는 거슬릴 때가 많은데. 꼭 가면 인제 생활기록부를 열어보죠. 교감선생님이 나와 가지고 자랑스럽게 생활기록부 이렇게 딱 꺼내 가지고 보여주는 장면이 항상 나오는데 되게 끔찍한 장면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물론 이제 사전 또는 사후에 동의를 받고 방송을 할 거라고 저는 생각합니다만. 어쨌든 생활기록부를 보겠다는 그런 어떤 궁금증 자체가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이상한 거거든요. 생활기록부는 어떻게 보면 학교와 저와의 사적인 기록이고 선생님과 저와 또는 학부모 사이의 은밀한 어떤 교육적인 목적에 의해 쓰여진 것인데 그것이 일반 대중들에게 공개된다는 것은 생활기록부 쓴 목적과 굉장히 다른 목적으로 활용되는 거거든요. 만약 그 생활기록부의 그 발달상황을 적은 선생님이 만약 그게 나중에 <TV는 사랑을 싣고>에 나온다고 생각을 한다면 그렇게 적지 않았을 겁니다. 저 같은 경우도 지금 생각하기에, 규칙을 지키는 일이 소홀합니다, (웃음) 뭐, 이런 게 적혀 있었던 기억이 나는데. 나중에 공개되면 어떡하나, 법대 소속이 되어 있는데 큰일 났다, 이런 생각도 했습니다. 실제로 대통령 생활기록부가 공개되잖아요. 노무현 대통령이 어린 시절에 독선적이고 이런 것 보도되기도 하고. 옛날에 감사원장 후보는 대학교 성적표까지 다 나왔죠. 나오고 생활기록부까지 다 조회해 가지고. 회계학 성적이 이 정도인데 감사원장이 될 수 있겠냐, 근데 그 분은 회계사 자격증이 있거든요. (웃음) 자격증이 있는데 도대체 대학교 때 회계학 성적이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는데. 결국 그 감사원장 후보는 죄송하다고 했습니다. (웃음) 성적을 많이 받지 못해서. 물론 청문회법에 의해 가지고 우리가 정보를 요청하면 그 정보가 이제 오게 되어 있는 구조가 돼 있는데, 왜 그 국회의원은 생활기록부나 성적표 열람을 요청했을지 그것도 참 의아한 일입니다. 그걸 알아서 도대체 뭘 하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이게 한국에 놓여 있는 프라이버시의 안타까운 현실이고요. 그래서 제 강의 내용에서는 이 프라이버시권의 역사적 발전을 인권의 역사와 관련해서 좀 짚고, 그 다음에 한편으로는 현대사회에서 프라이버시 침해라는 게 불가피하다는 점을 좀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완전히 프라이버시를 다 보호하고 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고요. 그렇다고 해서 현대사회에서 프라이버시가 이렇게 많이 공개되는 것은 또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반대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제 결론적으로는 이 프라이버시가 모두 공개되어 있는 벌거벗은 사회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될지 이런 말로 강의를 마무리 지으려고 합니다.

자,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요. 근대 이전의 어떤 프라이버시나 인권을 보면은 근대 이전의 사회에서는 이른바 인간으로서의 권리가 부재했던 그런 사회인 것 같습니다. 불평등과 계급지배가 사회를 지배했고요. 예를 들면 노예나 농노는 영주의 소유물이고 노예는 주인의 소유물이고 농노는 이제 영주의 소유물이었고 자신의 공간도 가질 수 없었고 자신의 시간도 갖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프라이버시는 지배계급, 또는 이제 귀족들의 전유물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은 통속소설들이 귀족의 사생활에 이렇게 가는 거는 되게 급진적인 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은밀하게 자신들만 누리는 것을 은밀하게 들여다보면서. 마님하고 변강쇠 뭐 이런 사람들이 바람 피는, 물레방앗간에서. 이런 것이 당시로서는 급진성을 가진 소설이 아니었나 뭐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근데 인제 근대 시민혁명 이후에는 프라이버시권이라는 게 전면에 등장합니다. 근대 시민혁명 과정에서 주장하는 이념이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개인주의와 또는 자유주의인데. 이 정신에 따르면, 이 이념에 따르면 국가의 간섭 없이 시민들이 최대한의 자유를 누릴 때 최상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었고요. 이걸 다시 말하면 타인에게 내 정보를 얼마나 공개할지를 내가 결정할 수 있을 때 타인이 나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아는 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때 더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개인의 자유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정보를 어떻게 통제하느냐와 밀접하게 관계가 되어 있다고 할 수가 있겠고요. 그 다음에 여기서 이제 국가의 의무라는 것은 굉장히 소극적이죠. 개인의 영역을 갖다가 철저하게 보호하고 그것에 개입하지 않고 그것을 지켜주는 파수꾼 역할에 불과했습니다. 법치주의의 정신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국가가 국민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법으로 묶어 달라, 라고 하는 그런 요청이 바로 법치주의였고요. 어쨌든 사기나 강제가 없는 한 프라이버시에 대한 개입, 자유에 대한 개입과 간섭은 적을수록 바람직하다, 라는 게 당시의 어떤 시대정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유의 내용이라는 것은 재산권도 있을 거고 영리활동도 있을 거고요, 거주이전의 자유도 있을 거고 신체의 자유도 있을 거고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 같은 것도 있을 겁니다. 또 이때의 어떤 또 하나의 이념중의 하나는 공사이분론인데요, 뭐냐 하면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이 분리되어 있고 공적인 영역은 사적인 영역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라고 하는 공사이분론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프라이버시권이라고 하는 것이 이 근대 시민혁명 과정에서 전면으로 등장했던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근대 시민혁명의 여러 가지 문서 중에서 프라이버시권이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사실상 프라이버시권은 다른 여러 가지 자유와 권리의 전제가 되고 있다고 저는 생각하는데요. 자유를 달라는 주장은 프라이버시를 달라는 주장과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볼 때 인제 모든 자유의 기본적인 전제로서 적용할 수 있을 거고요. 자유롭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표현하기 위한 전제가 혼자 있을 시간과 공간이. 혼자 있을 시간과 공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행동할 수도 없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프라이버시는 인격의 자유로운 발전과 자기 실현과 인간 존엄의 보호를 위한 기본적인 전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프라이버시가 단순히 개인정보라든가 사생활이라든가 이런 점에 한정되는 게 아니라 다른 권리, 다른 자유를 실현하기 위한 기초로서 작용한다는 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프라이버시권이라고 하는 것은 포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고 다른 권리의 기본이 되는 어떤 그런 권리라고 이야기하고 싶고요. 그래서 표현의 자유, 사상의 자유, 종교의 자유, 인신의 자유, 주거의 자유, 통신의 자유, 혼인과 가족생활의 보장 등등 우리 헌법상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권리들은 사실 프라이버시권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뭐, 참고로 거기 보시면요, 프라이버시가 없다면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것도 사실 불가능합니다. 상대방이 내가 주말에 무슨 책을 읽었고 주말에 어떤 사람을 만났고 무슨 대화를 나누었는지 전부 알고 있다면 상대방과의 대화가 편할 리 없습니다. 그쵸? 예를 들면 내 컴퓨터와 전자우편 계정을 압수수색한 검사하고 대화를 나눠요. 어떤 공포가 있냐면 이 사람이 내가 아는 걸 얼마만큼 알고 있을까, 내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 또는 내 이메일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내 편지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를 검사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른다면은 자유로운 대화라는 게 불가능한 겁니다. 이 프라이버시라는 거는 자기가 생각할 수 있는 여지를 주는 기본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한 전제이기도 합니다. 내가 이런 부분은 알려주고 이런 부분은 감추고 상대방과 대화하겠다고 하는 것을 본인의 힘으로 선택할 수 있을 때 대화가 자유로울 수 있는 거죠. 근데 나에 대한 정보를 상대편이 어디까지 아는지 모른다, 이러면은 사실 대화하기 정말 어려운, 소통이 될 수가 없는 그런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프라이버시라는 것은 정말 권리 중의 권리이고. 어떻게 보면 우문일 수 있겠지만, 인권 중에 가장 중요한 권리가 뭐냐, 이런 질문은 사실 우문이죠. 왜냐하면 모든 권리는 연동이 되어 있기 때문인데. 생명권 뭐 이런 게 굉장히 중요한 권리이고 양심의 자유도 중요한 권리이겠지만 저는 프라이버시권도 어떤 권리 중의 권리이고 다른 권리의 바탕이 된다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권리라고 해도, 가장 중요한 권리 중의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거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근데 이제 현대사회에 와서는 프라이버시가 다시 위기에 봉착합니다. 근대 시민들은 자기가 혼자 있을 공간들을 정말 피를 흘려가면서 얻어내는데 성공했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완벽하게 자기의 프라이버시를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조금 좀 거시적으로 보면요, 자유주의의 모순이 심화되면서 이른바 사회국가, 복지국가가 발전을 하게 되는데요. 예를 들면 이제 강자와 약자의 양극화가 심화되게 되고 우리가 형식적인 평등, 국가의 불간섭 원칙 같은 것들이 오히려 불평등을 야기하고 강자와 약자의 대립을 심화시킨다고 하는 문제가 제기되게 되고요.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가와 법이 다시 사적영역에 개입해야 된다는 문제의식이 생깁니다. 사적 영역이라고 할지라도 국가의 일정한 개입이 있을 때 오히려 진정한 자유가 실현될 수 있다는 생각들이 나타나게 되는 거죠. 뭐, 사회복지국가가 나쁘다는 얘기는 절대 아닙니다만, 이 사회복지국가가 도래하면서 오히려 국가가 개인의 사생활에 간섭할 여지는 사실은 더 생겨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한 일인데요. 어떻게 보면 이건 민주주의의 역설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자유 보장을 위해서 오히려 공공질서의 민주적 강화가 요구되는. 그러니까 개인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 오히려 국가가 약간은 개입을 해줘야 된다, 예를 들면 사회적 약자를 위해서는 이런 조치를 취해야 되고, 뭐 이런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고요. 이념적으로 보면 이걸 수정자유주의라고도 하고 사회적 자유주의라고도 하고 사회국가, 복지국가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합니다. 어쨌든 공익을 위해서 국가의 역할이 증대된다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근데 이것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프라이버시의 위기 현상으로 이어지게 되는데요. 예를 들면 사회복지를 광범위하게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개인정보 수집이 불가피합니다. 그쵸? 국민들이 어떤 경제생활인지 알아야, 경제생활을 하고 있는지 알아야 어려운 사람이 누군지를 알고 도와줄 수 있습니다. 국민들에 대해서 보건정책을 실시하기 위해서는 국민들의 어떤 민감한 건강정보를 알고 있어야 보건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어쨌든 국민의 개인정보 수집을 복지국가에서는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뭐 요즘 많이 얘기되는 저소득층 무상급식을 한다, 또는 저소득층에 대해서 장학금을 지급하기 위해서는 누가 문제가 있는지 알아야죠. 저도 인제 가끔 저소득층 학생들을 위해서 추천서를 써주는 경우가 있는데 정보를 모르면 써 줄 수가 없습니다. 이 학생이 얼마나 힘든지를 장학금 추천서에 써 줘야 되는데 제가 그 학생의 개인적인 정보를 알지 못하면 사실 써 줄 수가 없는 거거든요. 이런 문제들이 정말 좋은 의도임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사생활을 공개하게 되는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희망근로 같은 것도 마찬가지죠. 희망근로를 하고 있는 사람이 공개될 수밖에 없고. 더 좀 제가 볼 때 황당한 거는 희망근로 하고 나면 희망근로 상품권을 꼭 또 써야 됩니다. 상점 가서 과연 자기가 희망근로를 통해 얻은 소득이지 다른 소득인지 밝히고 싶지 않을 수도 있죠. 근데 그걸 공개하지 않으면 쓸 수가 없게 되어 있습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수급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자신의 경제생활을 국가에다가 알려줄 수밖에 없습니다. 또 페미니즘의 도전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적영역 내에도 예를 들면 가족이라든가 연애 관계라든가 그런 개인의 사사로운 영역이 결코 평등하지가 않다, 개인의 사사로운 영역도 불평등하고 특히 남녀가 불평등한 상태로 여자가 남성에게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국가가 사적영역에 개입하지 않으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하는 페미니즘의 도전도 있었습니다. 이것도 마찬가지로 물론 선한 의도에서 시작된 것이고 이 자체로는 정당성을 가지지만 가족의 어떤 사사로운 내용이 공개되어야 되고요. 그 다음에 성희롱 주제 같은 경우에는 사사로운 연애 사실을 법원에서 명백하게 밝히지 않으면 구제받을 수가 사실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나타난다는 거고요. 그 다음에 소수자의 권리 보호를 위해서도 이제 프라이버시 공개가 필요합니다. 장애인 혜택을 받으려면 국가에 등록을 해야 되고요. 동성애자들이 자신들의 결혼을 보장해 달라, 라고 주장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보를 국가한테 줄 테니까 등록 좀 하게 해달라, 라는 요구로 이어닙니다. 동성애자의 동성 결혼 제도 같은 거죠. 정리하자면, 프라이버시를, 사회복지국가라고 하는 선한 이념을 가진 어떤 그런 목표 자체가 때로는 프라이버시의 일정한 침해가 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을 우리는 좀 알 수 있었고요. 이런 것이 오히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좀 우리가 중요하게 주목을 해야 될 점입니다.

그 다음에 또 한 가지는 2번 사회복지국가하고 연결이 되어 있는 건데요. 현대사회의 어떤 공익적인 요구들, 공적 요구들이 프라이버시 침해를 요구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범죄예방을 위해서 또는 보도적 가치를 위해서. 그쵸? 알 권리를 위해서 교육을 위해서 공공질서를 위해서 국가안보를 위해서 개인정보가 조금은 희생되어야 된다고 하는 내용들이 나올 수 있습니다. 저도 인제 아까 수업을 할 때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Enemy of the State)라는 영화를 학생들과 같이 보고 이렇게 토론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영화에서도 보면은 끔찍한 감시사회가 이렇게 나오게 되는데, 그 감시사회가 감시해 가지고 사적 이익을 추구하려고 나오는 건 아니죠, 사실은. 국가안보를 위해서 사실은 감시 시스템을 짜는 겁니다. 그러니까 공익적인 목적이라는 거죠. 뭐 또 예를 들면 이제 범죄 예방의 요구 때문에 방범용 씨씨티비(CCTV)를 설치해야 된다거나 뭐 신상공개를 해야 된다거나 전자발찌를 해야 된다거나 또는 피의자의 얼굴이 공개되어야 한다는 주장. 이건 사사로운 요구가 전혀 아닙니다. 공적 요구에 의해서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는 거고요. 또 인제 뭐 예전부터 있었던 겁니다만 수사상의 필요를 위해서 구속 또는 압수, 수색을 한다거나 또는 지문을 날인하게 한다거나 이런 것도 전부 공익적인 요구에 의해서 프라이버시가 일정 정도 침해되는 모습들이고요. 또는 보도적 가치를 위해서, 보도 가치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의 사적 정보가 어느 정도는 공개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 다음에 교육적인 필요에 의해 수집하기도 하죠. 학생들에 대한 지도와 상담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일정 정도의 정보가 필요하다는 것. 그 다음에 또 공공질서를 위해서는 음주가무를 해서 소란을 핀다거나 과다노출을 한다거나 이런 것들도 전부 경범죄 처벌법에 의해서 처벌되고 있습니다. 즉 굉장히 자기가 어떤 복장을 할지 사사로운 영역이라고도 볼 수 있을 텐데 이런 것들이 규제를 받는 것이죠. 그 다음에 뭐 국민 관리를 위해서 주민등록제도 들어온다는 것, 성도덕을 위해서 음란문제 규제하는 것, 또 여성인권 보호를 위해서 프랑스에서는 부르카라는 그런 어떤 종교적인 복장을 금지한다거나 뭐 이런 것들. 그 다음에 국가안보를 위해서 대통령의 사생활을 일정 정도 제한해야 된다거나. 대통령은 사생활이 없잖아요, 사실은. 어디 돌아다닐 때 전부 이제 보고되어야 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감시를 받아야 되는데. 그거는 대통령이 내 사생활이다, 이렇게 주장을 해봐야 소용이 없는 거죠. 왜냐면 대통령의 목숨은 국민의 어떤 안보와 국가 안전과 직접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일정 부분 포기해야 되는 거거든요. 어쨌든 이런 공적인 요구에 의해서도 프라이버시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사적 권력이 확대되면서 이 문제가 똑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업의 힘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신용거래를 할 때나 회원가입을 시킬 때나 휴대폰 이용을 할 때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경우 빈번하고요. 또 사원을 채용하는 과정에서 직무능력, 경력, 건강상태, 심지어는 자산 상황, 취미, 교우관계, 이런 것들을 조사하고 있고요, 실제로. 어떤 채용 과정에서는 트위터 계정 좀 알려 달라, 해서 이걸 갖다가 이 신입사원이 도대체 어떤 인간관계를 맺고 있는지. 그게 중요한, 기업 입장에서는 중요한 정보일지 모르지만 어떤 개인이, 제가 나름대로 이제 취업 대상자가 돼서 상대방이 내가 어떻게 뭐를 썼는지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 사실은 트위터에 그럴려고 쓴 건 아니거든요. 그런 것들이 이제 빈번하게 벌어집니다. 그 다음에 기업들이 근로자 감시, CCTV나 이메일을 통해서 근로자 감시를 하는 일들도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고요. 이건 이제 사적 권력에 의한 이러한 프라이버시권 침해는 통제하기가 사실 어렵습니다. 방범용 CCTV 규제하는 거랑 이런 조그만 숍에 설치된 CCTV 규제하는 거랑 이건 다른 문제거든요. 굉장히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고 더 방어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 다음에 인제 이건 너무 잘 알려진 거니까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정보사회가 도래하면서 또한 프라이버시가 위기를 맞고 있다, 여러분 너무 잘 아시니까 간단히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자, 이런 과정을 통해서 인제 어떤 인권이라는 문제가 국가권력을 거꾸로 필요로 하는, 이제 근대 인권이라고 하는 건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권리인데, 인제 현대 사회의 인권이라고 하는 건 오히려 국가의 힘을 필요로 하는 이런 것으로 변신이 되면서 바로 인권 중의 인권인 프라이버시도 동시에 위기상황에 봉착했다는 겁니다. 이런 점을 좀 생각하시면서 이제는 프라이버시권의 발전 자체에 초점을 맞춰서 다시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프라이버시의 예를 보시면요, 사적 자유, 사생활, 남의 눈을 피함, 은둔, 혼자 있는 상태, 사생활, 사적인 공간, 이렇게 보통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사전을 제가 찾아 본 거고요. 근데 이제 프라이버시를 사생활이라고 굳이 번역하지 않은 이유는 프라이버시를 사생활이라고 번역하면 사실 많은 뉘앙스가 죽어버리기 때문에 사실은 그대로 프라이버시라고 음역을 했습니다. 사생활의 일반적인 의미는 어떤 개인의 사사로운 일상생활을 뜻하는 거잖아요, 일상생활. 그래서 뭐 사생활 침해, 하면 뭡니까? 전문적으로. 도청, 창문으로 엿보기, 뭐 이런 것. 이걸 가지고 우리는 보통 사생활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런 점도 물론 있습니다만, 프라이버시에는, 그걸로 환원될 수 없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이제 개인정보에 관한 건데요, 영어 표현을 보면 이제 다 나오는데, 프라이버시 오브 보터스(privacy of voters)라고 하는 것은 투표자의 사생활이 아니라 비밀투표 얘기하는 거거든요. 그 다음에 프라이버시 폴리시(privacy policy)는 사생활 정책이 아니라 개인보호 정책을 privacy policy라고 합니다. 그 다음에 뭐 썰티파이드 프라이버시 프로텍션 제너럴(Certified Privacy Protection General)이라고 하는 것은 개인정보 관리사, 최근에 등장한 개인정보 관리사를 뜻하고. 그러니까 프라이버시라는 개념을 사생활이라고 번역했을 때는 한국말로 이렇게 전환해서 쓰면 뉘앙스가 많이 죽어버립니다. 개인정보라는 의미와 사생활이라는 그런 어떤 풍부한 의미가 죽기 때문에 그냥 좀 프라이버시라는 말로 불가피하게 음역을 좀 했습니다.

자, 프라이버시권이 권리로서 등장하게 된 거는 1890년에 워렌(Warren)과 브렌다이즈(Brandeis)라고 하는 사람이 쓴 논문에 나와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혼자 있게 내버려두라, 라는 개인의 일반적인 권리라는 표현이 등장하고요, 이 권리가 이제 미국의 판례를 통해서 발전해 나가면서 지금의 프라이버시권의 원형이 되었습니다. 각국의 입법 태도를 좀 보면은 일본이나 독일에는 명시규정이 없습니다만 행복추구권이나 인격의 자유 발현권 등에 근거하여 프라이버시권을 사실상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이렇게 해석하기도 하고요. 한국이나 터키나 이집트 같은 경우에는 아예 프라이버시권이 사생활 권리로서 명시규정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 국제규범에도 대부분 프라이버시권이 권리로서 명시가 되어 있고요. 뭐, 헌법에 규정이 없는 경우에도 개별 입법에 의해서 프라이버시권은 권리로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 이제 국제협약이나 법령은 죽 참고하시면 될 것 같고요.

근데 이 프라이버시권은 아까 이제 Brandeis가 얘기했던 혼자 있을 권리에서 좀 더 광범위한 개념으로 발전되어 왔습니다. 먼저 첫 번째는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른바 혼자 있을 권리입니다, 혼자 있을 권리. 이건 굉장히 소극적인 권리에요. 내가 혼자 있는데 누가 방해하면 안 되겠다, 이런 권리입니다. 일차적인 의미는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받지 않을 권리입니다. 프라이버시의 라틴어 어원은 어떤 것으로부터 분리, 단절, 공적 영역으로부터 잘려져 나오는 나만의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되어 있고요. 그것은 이제 홀로 있을 권리를 뜻하는 겁니다. 타인으로부터 떨어져 있는 어떤 심리적 상태, 소외라고 불리기도 하고요, 고독이라고도 할 수 있고, 자신만의 것이고 공동체가 간섭할 수 있는 은밀한 영역이기도 합니다. 공적영역에 의해서 접근이 제한되어 있는 그런 비밀스런 영역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영역에 대해서 침해하거나 방해하거나 간섭하지 말아 달라, 라고 하는 것이 이제 프라이버시의 일차적인 내용이라고 할 수가 있겠고요. 그런데 방해받지 않을 권리뿐만 아니라 방해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가 사생활을 형성하고 전개해 나갈 권리도 사실 포함되어 있는 겁니다. 이런 부분은 이제 결혼이라든가 임신이라든가 피임이라든가 성생활이라든가 교육 등등의, 교육 또는 양육 이런 문제들에 있어서 자기가 결정한대로 그 생활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권리. 이런 건 약간 적극성이 내포되어 있는 그런 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죠. 단순히 외부로부터 간섭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외부로부터 간섭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사생활을 영위하고 발전해 나갈 어떤 권리까지도 포함해서 해석을 해야 될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최근에 등장한 개념은 이른바 자기정보통제권이라는 건데요, 이건 좀 적극적인 권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정보를 약간은 공개할 수밖에 없습니다. 너, 뭐 어디 소속이니, 뭐 심지어는 나이가 뭐니, 등등의 내용을 때로는 공개하지 않으면 교유할 수가 없습니다. 근데 이 교유 과정에서 내가 내 정보를 공개하더라도 언제 어떻게 어떤 범위 내에서 공개할 지는 본인이 결정하는 겁니다. 남이 결정해줄 수 없는 거예요. 예를 들면 트위터에 내가 글을 갔다가 남긴 것이 신문에 보도된다는 것은 자기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거라고 봐야죠. 그래서 인제 요즘 예의 있는 어떤 그런, 뭔가를 아는 기자들은 트위터에 있는 말을 인용할 때 전화를 걸어서 확인합니다. 보도 돼도 되겠습니까. 이게 원칙적인 거죠. 그럼 오케이(OK)하면 나갈 수 있는 거죠. 트위터에 올렸으니까 누가 뭐 신문에 내라는 것 아니냐, 이렇게 본다는 것은 자기가 원래 생각했던 트위터의 소통방식과 달라지는 것이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자기한테 있다는 거죠. 누가 그걸 결정해줄 수 없다는. 친구들과 메신저로 나눈 얘기가, 얘기를 그 메신저 서비스업체 직원이 알 수 있다면 끔찍한 일이겠죠. 서비스 직원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쑥덕쑥덕한다면 더 끔찍한 일이 될 거고요. 그거를 다른 사람에게 공개된다면 말할 수 없는 위험으로 작용할 겁니다. 그런 부분을 전부 자기가 통제할 수 있어야 된다, 라는 것이고요. 그것이 바로 자기정보통제권 또는 개인의 정보자기결정권이라고 부르고요. 그거는 인제 독일의 판례에서 발전되어 온 그런 이론이고 현대사회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이 프라이버시권의 하나의 내용으로 자기정보통제권이 들어간다, 라고 이렇게 해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인제 헌재 판례에 의해서 헌법에 비록 이 부분이 명시적으로 나와 있지는 않지만 헌법에 나열되어 있지 않은 기본권으로 해석을 하고 있는 게 주의적인 해석이고, 헌재 판례에도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 이 자기정보통제권의 내용을 보면요, 일단은 수집 단계부터 문제가 됩니다. 일단은 정보의 자의적인 수집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고요, 그 다음에 자기 정보를 열람할 수 있는 청구권을 갖습니다.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왜 내 정보를 수집해야 되는 지를 본인이 알아야 된다, 라는 것이고요. 그 다음에 자기 정보에 오류가 있을 때는 정정을 할 수 있는 권리가 본인한테 있다는 것이고 그 다음에 적절한 제도적 장치, 법률이나 기구로서 이게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게 이제 자기정보통제권의 어떤 내용이고. 한국에도 관련된 법제가 죽 이렇게 있습니다. 이번에 이제 가장 정리가 잘 된 것은 오이씨디(OECD) 개인정보 8원칙인데요, 수집제한의 원칙, 정확성의 원칙, 수집목적의 명확성 원칙, 이용제한의 원칙, 안전보호의 원칙, 공개성의 원칙, 개인 참여의 원칙, 책임원칙 이런 내용들을 가지고 있는데. 지금도 이 8원칙은 개인정보를 관리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이제 최근에 또 논의되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반감시권입니다. 이건 뭐, 학계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고 있는 그런 이 프라이버시권의 내용은 아니지만 굉장히 의미가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떻게 보면 이제 첫 번째 제가 말씀드렸던 프라이버시권의 내용은 내가 내 사생활을 영위하는데 간섭하지 말아 달라, 라는 것이고요, 두 번째 자기정보통제권은 내 정보가 어떻게 활용되는지 내가 좀 알아야겠다, 내가 좀 통제해야겠다, 이런 내용인데 그런 식의 논리가 어떻게 보면 좀 내 정보를 결국에는 내줘야 된다는 논리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거든요. 예를 들면 OECD 8원칙 중에서 수집목적 명확성의 원칙은 거꾸로 얘기하면 수집목적이 명확하다면 공개될 수 있다, 이런 원칙이라고도 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정보의 집중과 감시를 적극적으로 반대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권리로서 이제 반감시권의 내용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어떤 국가나 사적 권력이 감시를 계획하는 단계부터 그 대상자는 참여하고 반대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요, 국가권력과 민간권력이 이렇게 하는 것에 대해서 철저한 감시를 하고 그것을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는 권리입니다. 제도로서는 예를 들면 뭐, 프라이버시위원회가 설치되어야 된다거나 프라이버시 보호와 반감시에 대한 통합법을 제정해야 된다, 이런 요구로 연결이 됩니다. 사실 엄격하게 얘기하면 학문적으로 봤을 때는 반감시권은 사실 개인의 자기정보통제권의 내용의 일부를 구성한다고 할 수 있는데, 요걸 이제 독자적으로 좀 떼 놓으면서 하나의 이제 권리로서 구성하는 것도 굉장히 흥미로운 시도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다음에 이제 이런 프라이버시 침해가 일어났을 때는 우리는 여러 가지 법적인 절차를 통해서 구제를 신청할 수 있다, 이런 것은 그냥 참고로 한번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제가 말씀드린 내용에 따르면, 제가 프라이버시권은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되니까 절대 침해될 수 없다, 이렇게 말씀드린 것이 아니라 일정한 목적을 가지면 거꾸로 이제 제한이 가능하다는 식으로 말씀 드렸는데. 그렇게 말씀드리는 게 굉장히 위험한 설명 방식일 수도 있습니다만, 현실이기도 합니다. 현실이기도 하고. 그 통제 방법을 우리가 어떻게 설정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이게 이제 법적으로 봤을 때는 프라이버시권이 일종의 기본권이기 때문에 기본권도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목적에 의해서 제한될 수 있거든요. 프라이버시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정한 목적과 일정한 필요성에 의해서 프라이버시권도 제한될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뭐, 국가안전보장이나 질서 유지나 공공복리에 의해서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적인 표현을 그대로 따르자면, 인정될 수 있는 거고요. 예를 들면 목적이 정당해야 되고 방법은 적절해야 되고요. 그 다음에 피해는 최소여야 되고 그 다음에 침해하려는 이익이 얻으려는 이익보다 더 커서는 안 된다는 그런 원칙들을 지킨 가운데서 우리가 기본권을 일정 정도 제한할 수 있고. 그 다음에 또 형식은 법률에 의해서 침해될 수 있고 그 다음에 본질 내용은 거기다 침해할 수 없다, 이런 원칙들이 이제 헌법상에서 이야기하는 일반적인 기본권 제한의 원칙인데 이것이 인제 프라이버시권에도 거의 그대로 적용된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유럽인권협약 제8조 2항에서도 비슷한 규정들을 가지고 있고요. 일정한 경우에 필요하다면 이 사생활권을 제한할 수 있다, 라고 하는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자, 그래서 우리가 이제, 거듭 말씀드립니다만 제가 뭐 일종의 프라이버시 근본주의를 얘기하려고 하는 건 아닙니다. 감시사회 강연회 하다보면 저 사람은 뭐 프라이버시권 절대 침해될 수 없으니까 그런 사회를 꿈꾸나 보다. 근데 아무리 뭐 정보인권운동을 하고 이런 분들이라고 할지라도 프라이버시권이 전혀 침해될 수 없고 제한될 수 없는 절대적인 권리다, 이른바 프라이버시 근본주의를 주장하시는 분은 아마 없을 겁니다. 문제는 지금 사회에서 너무 많이 우리 사회에서 너무 많은 프라이버시가 공개되고 또는 제한 없이 이렇게 유통되기 때문에 거기에 이제 반대하는 과정에서 마치 그런 주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죠. 그래서 프라이버시는 어쨌든 일정 정도 제한은 가능하지만 어떻게 그 한계를 갖다가 설정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고 그 부분을 자세히 좀 설명 드리려고 합니다. 현대사회에서는 프라이버시가, 제가 봤을 때 어떤 세 가지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한편에서는 공적권력과 사적권력의 욕망입니다. 공적권력에서는 정보를 더 많이 그리고 자세히 알면 알수록 국민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인제 권력을 잡은 사람의 유혹이에요. 사적 권력에서는 기업체나 자본에서는 더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으면 있을수록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다, 라고 이제 생각하는 경향이 당연히 있습니다. 생각이 아니라 이건 하나의 욕망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요.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도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미래에는 정보를 가진 자가 권력을 가진다. 정보에 대한 유혹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원조가 박정희 대통령이죠. 이 사람은 아주 이 프라이버시를 통제했을 때 어떤 효과가 날지 너무 잘 알고 있었던 그런 대통령입니다. 그래서 사실은 사생활을 통제했던 거죠. 두발, 치마 길이, 복장 단속하고 금지곡 만들고 야간 통금하고 이런 어떤 사생활에 대한 통제를 한다면 단순히 복장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복장을 통제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의 모든 걸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연결되는 거기 때문에 사실은 복장을 통제한 거지 실제로 박정희 대통령이 국민들의 두발에 그렇게 큰 관심이 있었겠습니까? 그 자체에. 그걸로 얻어지는 효과에 관심이 있었을 거예요. 그게 실제로는 치밀하게 계산이 되어 있었건, 아니면 본인의 의도가 그 속에 숨어 있었건 간에 상관없이 어쨌든 그런 효과를 낳는 게 사실입니다. 어쨌든 현대 국가권력은 국민들의 개인정보와 사생활에 가능하면 많이 가지고 있으려고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적 권력의 개인정보 수집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업 채용 과정에서 개인정보를 수집하려고 하고 포털서비스 업체에서는 거리의 장면을 수집해서 무슨 스트리트뷰(Street View)라든가 로드뷰(Road View)라든가 이런 것을 가지고 뭔가 하려고 합니다. 공익적인 목적 아니겠죠? 나중에 뭘로? 돈으로 쓰일 수, 이윤을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뭔가 위치정보를 갖다가 얻어내는 걸 테고요. 보험회사에서는 의료정보를 수집하고 기업에서는 노동자를 감시하고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서는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광범위하게 수집합니다. 때로는 이걸 왜 줘야 되지 싶은데, 기업 입장에서는 이거죠. 당장에는 어떻게 쓰일지 모르지만 일단 회원가입 요건으로 놓고 어쨌든 가지고 있으면 뭔가가 되지 않을까? 그게 뭐 일부 옛날에 문제가 됐던 경우는 실제로 팔아넘긴 적도 있었죠. 이름 하나, 주소 하나, 전화번호 하나에 뭐 20원, 뭐 이렇게 해서 판매한 경우도 옛날에 있었지만. 지금 그렇게까지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만 어쨌든 축적을 하고 있다, 라는 건 무서운 겁니다.


* 비마이너 제공 http://www.beminor.com

자, 이런 공적권력과 사적권력의 욕망이라는 것도 있지만 사실은 우리도 그런 욕망이 있습니다. 이거는 아까 이제 권력에 관한 건데요, 우리도 어떤 일반 국민들도 그런 유혹이 있습니다. 정보를 많이 공개하면 공개할수록 우리의 생활이 편리해진다, 라는 생각을 사실 할 수 있습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연말정산 시스템이 옛날에 카드회사별로 제가 다 일일이 출력해 가지고 상당히 힘들었거든요. 근데 국세청에서 딱 해가지고 거기서 나와요, 아예. 공개가 다 되어 있습니다. 딱 내가 카드 썼는지, 뭘 썼는지 나오니까 너무도 편리한 거예요. 그 편리성에 대한 유혹을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거죠. 아, 이렇게 편리하구나. 근데 그 과정에서 침해되는 프라이버시의 문제라고 하는 것은 저 같이 뭐 인권을 공부하는 사람조차도 잠깐 잊어버려요. 나중에 생각해보면 국세청이 이걸 왜 알았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차라리 옛날처럼 불편하게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제가 나름대로 카드회사를 견제할 수 있거든요. 돌아다닐 때마다 다른 카드를 쓰면 되죠. 그럼 이제 어디가 어떻게 되는지 알 수가 없는데. 지금 국세청 연말정산시스템에 따르면 제가 돌아다니면서 다른 카드를 다 써도 소용이 없습니다. 다 이제 공개가 되게 되면은. 그러면 제 위치를 추적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현금으로 모두 써야 된다는 이런 결론밖에 나오지 않겠죠. 어쨌든 국민들의 생활이 편리해지는 이득이 있습니다, 분명히. 사생활을 어떤 개인정보를 공개했을 때. 하지만 그 이익에, 우리는, 이익을 즐기기만 있기에는 너무 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걸 좀 생각해야 되고요.

그 다음에 또 이제, 이것도 좀 비슷한 맥락이지만 국가의 꼭 의도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제 공익적 필요에 의해서 프라이버시 침해를 용인하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방범CCTV 설치를 국민들이 요구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예전에 제가 도서관에서도, 도서관에 막 그 좀도둑들이 많았어요. 학생들이 요구를 해요. 학생들이 설치해달라고, 도서관에다가. 공부하다 찍혀도 좋으니까 좀도둑만 막아달라고. 우리 그런 어떤 요구를 국민들도 합니다, 사실은. 이걸 이제 저번에 강의하셨던 우리 엄기호 선생님 강의를 제가 보니까 신자유주의 시대에 안전에 대한 불안을 갖다가 광범위하게 국민들에게 유포시키고 국민들이 이제 안전에 대한 욕구를 갖게 한다, 뭐 이런 강의내용이 재밌었던 것 같은데. 그런 그게 이제 신자유주의에 의해서 창출됐건 아니건 간에 어쨌든 국민들이 그런 어떤 요구를, 국가권력이 나서서가 꼭 아니라 국민들도 일정한 요구를 하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해 달라. 성범죄자들 뭐 그냥 다 신상공개해 달라, 우리 안전을 위해서. 이런 요구를 국민들이 하게 된다, 라는 거죠. 사실 우리 이런 것도 꼭 부정적으로만 볼게 아닌 게 예를 들면 진료기록을 갖다가 국가가 관리해 준다는 것은 나름대로의 공익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전 국민의 진료기록이 국가에 의해서 통합적으로 관리된다면 국민의 건강 상황을 지역, 직업, 가족, 나이별로 분류해 가지고 되게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고 국민 보건 대책을 세우는 데 굉장히 유용하고요. 그 개인의 질병치료에도 굉장히 유용합니다. 예를 들면 제가 A라는 병원에 가서 진료 받은 기록을 옆에 있는 B병원 갔을 때 이 의사는 모르잖아요. 근데 사실 굉장히 비효율적인 거거든요. 다 알아야죠, 자기가 병원을 언제 언제 갔고. 그러다 보면은 자기는 배가 한번 아팠고 그다음에 머리가 한번 아팠는데 그래서 각각 갔지만 의사가 봤을 때는 이 2개가 연결된 것일 수 있거든요. 근데 굳이 얘기하지 않으면 이 의사는 모를 수도 있는 거예요, 이거 원래 머리도 아팠다는 사실을. 근데 무슨 병인지 모르지만, 지금 지어낸 거기 때문에 연결시킬 수 없지만, 요때 머리가 아팠고 지금 배 아팠으면 이건 이 병이다, 이걸 알고 있다면 굉장히 편리한 어떤 국민의 어떤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거든요, 실제로. 실제로 국민 보건에 대한 국가서비스를 시행하는 영국 같은 경우에는 실제로 지피(GP)라고 하는, 일종의 인제 그 뭐라고 해야 하나요, 가정의인데, 전담의사입니다. 개인에 전담의사가 다 붙어 있는데 그 의사가 그런 관리를 사실 다 해주거든요. 물론 거부할 수 있습니다, 국민은. 거부할 수 있습니다만, 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질병 치료에 유용한 여러 가지 자료를 확보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이 경우라고 할지라도 개인이 원하지 않으면 이 통합 관리가 제한돼야 되는 것이 맞고요. 개인이 삭제를 원할 경우에 삭제해야 되는 것이 맞겠죠. 영국 같은 경우에도 이 GP에 소속돼 있다가 GP를 옮기게 되면 정보를 이전시킬지 안 이전시킬지는 자기가 결정할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결정으로 정보를 옮기게 되면 그 다음 어떤 의사가 전 의사에게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를 소상하게 차트를 다 볼 수가 있거든요. 그런 점은 사실 이득이기도 합니다. 이게 그러니까 그런 어떤 사생활의 공개라는 게 한편으로는 공익적인 측면이 분명히 있고요, 또 다른 한편으로는 굉장히 위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들이 좀 생각하면서 그 경계를 도대체 어떻게 설정해야 되는지를 한번 고민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래서 이제 제가 마지막으로 이제 말씀드리려는 부분은 그렇다면 이 프라이버시가 침해된 사회, 패커드(Packard)라고 하는 사람이 얘기했듯이, 이 벌거벗은 사회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 이걸 이제 같이 고민하면서 내용을 정리해 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지만 지금은 어떻게 보면 그 어느 것도 소유할 수 없는 사회가 돼 버렸습니다. 정보화 사회는 우리에게 놀라운 평등의 가능성과 또 인제 정보를 통한 자유의 가능성을 열어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불평등한 사회를 열어주기도 했고요. 정보격차라는 말로 대변되는. 그 다음에 또 놀라운 어떤 감시와 통제의 시스템을 동시에 제공하게 됐습니다. 정보화 사회는 한편으로는 더 자유로운 사회이지만 한편으로는 더 억압적인 사회가 됐다, 라고 하는 겁니다. 우리가 모두 투명하게 공개하고 산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우리는 더 평등하고 더 자유로울까,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제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 거기에 대해서 인제 제가 몇 가지, 우리는 어떤 전력을 가져야 되나. 첫 번째는 일단 개인적으로는 다른 사람의 프라이버시에 대한 관심, 관심이 있거든요. 재밌습니다, 사실. 남의 걸 알게 된다는 건 재밌고요. 그 재미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남의 사생활에 대한 관심이 결국에는 나의 사생활도 내줘야 되는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어떻게 보면 남의 사생활에 대해 눈 감는, 관심을 끄는 그런 어떤 사회문화적인 노력이 일단 전제되어야 될 것 같다. 타인의 프라이버시와 좀 거리를 두고요 눈을 감아야 되고. 예를 들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스포츠 아나운서와 야구선수의 사생활. 궁금하죠 사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저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아나운서와 야구선수였기 때문에 궁금해요, 당연히. 하지만 그걸 관심을 갖고 신상을 털고 하는 순간 결국에는 나중에 저도 그 대상이 똑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이지아 씨가 과거에 어떤 행적을 가졌는지 궁금할 수 있죠, 당연히. 누구랑 결혼했는지도 궁금하고 고등학교 때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하고 서태지와 결혼생활 어땠는지 궁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대해서 관심을 끄고, 그거는 자기들이 알아서 할 일이지 뭐 내가 관심가질 문제가 아니야, 이런 식의 우리 태도가 확산될 때 우리 사회는 좀 더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다, 프라이버시 침해로부터 안전한 사회가 될 수 있고요. 항상 타인의 프라이버시 침해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서 자기한테 돌아온다, 라고 하는 것을 좀 우리가 명심해둘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결국에는 공적 사적 권력이 강화된 세상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라는 생각들을 좀 해야 될 것 같고요. CCTV가 뭐 필요할 때도 있죠, 필요할 때도 있고. CCTV가 없어져야 된다고 저도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범죄예방을 위해 CCTV를 요구할 때 그것이 어떤 식으로 자신의 권리를 다시 침해할 수 있는지. 예를 들면 도서관에서 CCTV를 설치해 달라는 학생들의 요구는 충분히 정당합니다, 그 자체로. 오죽하면 그런 요구를 했겠어요. 얼마나 좀도둑이 사실 심각한 문제고. 왜냐면 도서관에서 훔쳐가는 물건은 대부분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이거든요. 자기가 낙서해 놓은 것, 줄 친 것, 이런 걸 가져가는 것이기 때문에 정말 감시당해도 좋으니까 CCTV 설치해 달라고 하는 건데. 인제 그 요구가 과연 어떤 결과를 낳을지, 그리고 우리가 도둑을 막아야겠지만 좀 다른 방법은 없을까, 이런 것들을 좀 고민을 하면서 그런 요구를 하더라도 해야 된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은 사례에도 나온 거지만 흉악범 얼굴 보기의 유혹 같은 겁니다. 범죄자의 얼굴이 진짜 궁금할 수도 있어요. 저는 그 욕망 자체가 뭐, 잘못된 거라고 반드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충분히 인간적으로 그럴 수 있지만요, 우리가 인제 고민해야 될 것은 도대체 그 얼굴을 공개해서 어떤 이득이 있을까, 라는 것도 같이 생각해 봐야 된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헛된 욕망일 수도 있어요. 무익한 궁금증일 수도 있고요. 만약 그 무익한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 흉악범의 얼굴이 공개된다면 그 법이 점점 늘어날 겁니다. 처음에는 아동성범죄 후에 살인을 저지른 정도는 허용하자. 자, 살인은 아니어도 아동성범죄는 허용하자. 아니다, 성범죄도 허용하자. 아니다, 범죄도 허용하자. 이러다보면 결국에는 모든 범죄자의 얼굴이 다 공개되어야지만 직성이 풀릴 겁니다. 예전에 제가 전자발찌 문제가 제기되었을 때 어떤 얘기를 했냐 하면 성범죄자들에게 전자발찌 채우는 걸 저는 완전히 반대하지는 않거든요 어느 정도 수준에서는 될 수 있다고 보는데. 특히 이제 형벌에 대한 대체형으로, 형벌 좀 줄여주면서 오히려 전자발찌 하는 거는 충분히 검토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만. 그때 제가 무슨 얘기를 했냐 하면, 지금 이렇게 아무런 검토 없이 전자발찌를 채우면은 결국에는 성범죄자한테만 채우는 게 아니라 일반 범죄자에게도 다 채우게 될 겁니다, 라고 말씀을 드린 적이 있는데. 본의 아니게 그 예언이 맞아 들어갔어요. 그 다음해인가 다다음해, 뭐 이제 뭐, 방화범이라든가 살인범이라든가, 비성범죄자에게도 전자발찌를 채우는 식으로 사실 늘어났거든요. 계속 확대될 겁니다. 결국 줄어들지 않아요. 그러니까 성범죄자한테 채우는 데 설사 찬성한다고 하더라도 왜 채워야 되는지를 우리가 물어보지 않는다면 그 범위는 계속 확대될 수밖에 없다, 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에 얼굴공개도 마찬가지죠. 결국에는 잡범들의 얼굴까지도 다 공개되어야 되고. 이런 식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거고요. 첫 단계에서 우리가 그 무익한 유혹을 참아낼 때 그 다음 단계로 나가는 것을 막을 수가 있습니다. 물론 흉악범의 얼굴이 공개되어야 될 필요성이 있을 때도 있어요. 예를 들면 범죄 저질렀는데 그 사람이 도망 다니고 있는 거예요. 근데 우연히 사진이 찍혔습니다. 그거 공개해서 잡아야죠. 공개수배 하잖습니까? 그걸 가지고 뭐라 그러는 거 아니거든요. 그거는 그 범죄자를 잡아야 된다는 공익적 필요가 분명히 있는 경우에는 공개하는 거죠. 하지만 일반적인 형사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은 그냥 궁금증을 채워주는 것 이상의 아무런 효과를 갖지 못합니다. 요렇게 생긴 사람 앞으로 조심해야겠다, 뭐 이런 공익이 있을까요? 그런 공익도 없다면은 사실은 우리가 참아야 되는 문제죠, 궁금하더라도. 그 다음에 이건 저의 얘기입니다만, 저랑 같이 공부하는 학생들이 와 있지만, 교육자의 입장에서 보면 학생의 개인정보를 되게 알고 싶어요. 왜냐하면 어떻게 보면은 학생들의, 저도 이제 그런 경험이 있는데, 학생이 자기의 정보를 제가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모르면 저한테 권력이 되거든요. 딱 이제 넘겨보면서 1학기 때 좀 놀았나 보네. (웃음) 학점 알고 있는 거예요. 학교에서 인제 학점을 제가 시스템으로 알 수 있게 되어 있거든요. 그럼 학생들이 공포가 생기죠. 이 사람이 나의 어디까지 아는 걸까. 저는 이제 권력자가 되는 겁니다. 근데 2학기도 안 좋았잖아, 이렇게. 아버지는 지금 뭐하시네, 이런 얘기를 하게 되면은 학생 입장에서는 도대체 내 정보를 이 사람이 어디까지 아는 걸까, 그러면서 약자가 되는 거죠, 그 순간에. 그리고 저는 어떻게 보면 그 개인 상담을 굉장히 유리하게 끌어갈 수 있습니다. 저한테는 유리하게 끌어갈 수 있는 거죠. 근데 이제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그 개인정보를 아는 게 어느 정도까지는 상담에 도움이 되지만 도대체 제가 아버지의 직업과 나이를 아는 게 도대체 어떤 상담에 도움이 될 지는 저 스스로도 자문해봐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또 해봤습니다. 그러니까 어디까지 정말 교육적인 목적으로 필요한 것이고 어디까지는 제한되어야 되는 지를 저조차도 사실 인권을 전공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에 즐기고 있는 그 모습을 보면서 야, 이건 좀 학교에 항의를 해야 하지 않을까, 왜 내가 이 정보를 볼 수 있는지, 제한해 달라고. 또는 이게 뭐 저만 아는 거냐 아니면 학교 관계자가 어디까지 알 수 있는 건지를 좀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됐습니다. 근데 이런 것처럼 인권을 전공하건 뭘 하건 간에 다 그런 유혹이 사실 있는 거거든요. 근데 꼼꼼히 따져보면 사실은, 이건 몰라도 되는 건데, 라는 것들이 분명히 있을 거예요. 그것을 우리가 구분하려는 노력이 사실 필요한 거죠. 서태지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서태지의 경우에도 어떻게 보면 굉장히 혼자 있고 싶어 하는 취향 자체가 괴팍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가 어떻게 살려고 하는 지에 대한 것은 사실은 그의 자유이고 그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합니다. 그의 선택을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결국에는 우리의 사생활까지도 다 드러나는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을 겁니다.

그 다음에 이제 첫 번째와 관련되는 문젠데, 개인적인 그런 노력도 해야겠지만 만약 국가권력이나 사적권력이 개인정보를 수집하려고 할 때는 우리 시민들의 입장에서는 끝까지 따져 물어야 합니다. 뭘 물어야 되냐면, 이거 진짜 필요한 거냐, 무조건 하지 말라, 이게 아니라 끝까지 따져, 이거 진짜 필요한 거냐, 물어야죠. 그 때 이런 프라이버시를 제한해 가지고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고 그 이익이 프라이버시를 넘겨준 손해보다 클 것인지를 증명해야 되는 부담은 제가 지는 게 아니라 프라이버시를 수집할려고 하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메일 서비스에서 내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한다면 우리는 이메일 서비스에게 왜 주민등록번호가 필요한지를 물어야 되는 거죠. 그리고 그 서비스업체는 왜 주민등록번호가 수집되어야 되는 지를 저한테 설명할 의무가 있다는 겁니다. 제가 그걸 물어가지고 따질 문제가 아니라 그 쪽에서 사실은 그걸 설명해야 된다. 국가가 개인정보를 수집해야겠다, 지문날인을 해야겠다, 국가가 증명해야 합니다. 왜 지문날인을 해야 되는 지는 제가 증명할 문제가 아니에요. 저는 문제제기할 수만 있어요. 왜 하는데, 물어보기만 하면 되는 거고. 그 의문에 철저하게 답할 책임은 국가에게 있는 거죠. 그게 해명이 되지 않는 한 우리는 그 수집이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해야 되고 그 수집을 끝까지 막아야 됩니다. 국가가 충분하게 증명하기 전까지는. 그래서 예를 들면 프라이버시 침해에 필요성이 있는지 자체를 물어야 되고요, 불가피한 경우라도, 이런 방법도 있잖아, 이렇게 하면 덜 침해될 것 같은데, 라는 것들을 우리가 제시할 수도 있어야 되고 국가도 그런 선택을 해야 됩니다. 범죄 예방을 위해서 CCTV가 불가피하다고 할지라도 혹시 CCTV말고 다른 방법은 없는지 국가가 생각을 해야 된다는 거죠. 예를 들면 이제 이 CCTV 문제가 사실은 굉장히 많은 문제가 되어 있고 다음 시간에도 다루는 것으로 이렇게 알고 있는데. 제가 인제 자료들을 보니까 무척 황당한 게 많습니다. 서울시내 버스 대부분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고요. 한 3~4개정도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저장기간이 5일에서 7일 정도 되는데 음성 녹음 기능이 탑재되어 있어 가지고요 수시로 회사에서 녹화된 내용, 녹음된 내용을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심지어는 무슨 일까지 벌어졌느냐 하면 어떤 운전기사가 동료하고 사장 욕을 했어요, 버스 안에서. 사장 나쁜 놈이다. 그렇게 욕을 했는데. 그게 녹음이 돼 가지고 실제로 해고까지 됐고 실제로 법원은 모욕죄를 인정을 했습니다. 이런 어쨌든, 욕이 좀 심했나 봐요, 제가 볼 때는. 근데 없는 자리에서는 나랏님 욕도 하는 건데 사장 욕 한 게 앞자리에서 한 것도 아니고. 모욕죄가 왜 됐는지 지금 저도 판례를 안 봐서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만. 조금 의아한데 이렇게 처벌받은 사례까지도 있습니다. 물론 CCTV 설치가 왜 돼야 되느냐를 물어 본다면 승객을 보호해야 된다, 운전자를 보호해야 된다, 버스 내 범죄 예방을 해야 된다, 사고 발생 시 책임소재 파악을 해야 된다, 라고 하는데 우리 이것도 한번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목적이 진짜 CCTV를 설치해야 되는 목적하고 맞는지 한번 따져봐야 되는데요. 첫 번째로 사고 발생시 책임 소재. 무슨 사고를 얘기하는 걸까요? 버스 내에서 사고는 아닐 것 같아요, 이 경우에. 그럼 바깥에다 설치하면 되지 안에다 설치할 이유는 없습니다. 두 번째로 성희롱을 막는다. 무슨 CCTV 설치한다고 해서 그런 은밀한 성희롱을, 예를 들면 인제 뭐 추행 같은 거죠, 이걸 잡아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왜냐면 다 은밀하게 하잖아요, 만원버스 안에서. 근데 CCTV로 어떻게 잡아낼 것이냐, 이런 문제도 사실 있을 수 있을 거고. 별로 효용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 다음에 폭행 같은 경우는 꼭 CCTV가 아니더라도 시내 승객이 없는 것도 아니고 사실은. 어느 정도는 충분히 컨트롤(control) 할 수 있는 문제고 CCTV를 꼭 설치해야 될 이유라고 보기에는 좀 어렵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좀 들고요. 그 다음에 운전자를 보호하는 목적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다른 식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영국의 버스는요, 택시도 마찬가지인데, 승객이 버스 운전사가 있는 공간하고 완전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들어가지 못해요, 절대로. 안에서 열기 전까지는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택시도 그렇게 되어 있어요. 택시는 이제 승객도 보호하고 택시 운전사도 보호하는 2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인데 승객이 있는 공간하고 택시 운전사가 있는 공간이 분리가 되어 있고, 유리문으로 이렇게 딱 짜여져 있거든요. 택시 운전사도 승객을 어떻게 할 수 없고요, 그 다음에 승객들도 택시 운전사를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렇게 작은 공간에 손 넣어가지고 간지럼 태우고 이런 건 가능할 것 같은데 (웃음) 그 이상의 것은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대화를 뭘로 나누냐 하면 마이크로 나눠요. 스피커 설치가 되어 있어 가지고. 버스는 버스 운전사랑 승객이랑, 얼마에요? 물어보면 마이크로 이렇게 나오고. 마치 뭐랑 비슷하다고 보시면 되냐 하면 교도소 면회 갔을 때 장면이랑 비슷합니다. 어쨌든 그렇게 막을 수 있거든요. 물론 운전자는 보호돼야 되요. 운전자가 만약 칼로 위협 받는다 이러면 승객이 굉장히 위험에 빠지고 운전 막 이상하게 하게 되면 정말 위험한 거잖아요. 보호돼야 하지만 어떻게 보면 CCTV로 보호하는 것 보다 그렇게 보호하는 게 훨씬 안전한. CCTV는 충동적인 범죄를 막지 못하거든요. 술 취해 가지고 들어와 가지고, 어, 하면서 칼로 위협하고 이런 건 못 막아요. 의도적인 범죄는 막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근데 그렇게 공간을 싹 분리해 놓으면 이거는 충동적이건 의도적이건 다 막을 수 있거든요. 이런 방법이 있다면 이 방법을 택해야지 왜 CCTV를 설치하느냐, 라는 거죠. 자, 이런 문제들도 사실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하다면 해야죠. 하지만 제가 볼 때는 별로 정당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 다음에 또 CCTV가 범죄예방 효과가 있다, 라고 합니다. 범죄예방 효과가 있다, 라고 하는데 사실 뭐 있는 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의문이 제기됩니다. 우리나라 인권위의 보고서에 따르면 수도권 시민은 공공기관이 아닌, 그러니까 공공기관이 설치한 게 아니라, 개인이 운영하는 CCTV에 하루 평균 83.1차례 찍힌다, 라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공공기관까지 포함하면 엄청나게 쓰겠죠. CCTV로 유명한 나라가 영국입니다, 가장 많은 CCTV가. 전 세계 CCTV의 정확한 통계가 한, 20% 정도가 영국에 설치되어 있다고 할 정도로 많이 설치가 되어 있는데요. 내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국민들이 6천만 명 정도 되는데 전국에 400만개 CCTV가 있다고 합니다. 14명당 1개가 있는 거고요, 하루 평균 영국 국민들은 300번 찍힙니다. 우리하고는 훨씬 비교도 안 되게 많이 찍히죠. 런던에만 100만개가 CCTV가 설치되어 있어 가지고 아마 런던 시민들은 더 많이 찍힐 겁니다. 지난 10년 동안 CCTV 설치에만 4000억 원이 공적으로 투자가 됐고요. 근데 놀라운 것은 CCTV를 통한 범죄 적발률은 놀라울 정도로 저조합니다. CCTV 1000개 설치하면 1년에 하나 잡습니다. 그러니까 CCTV가 정말 많이 잡는다면, 정말 범죄예방을 한다면 뭐 설치할 수도 있겠죠, 필요에 따라서. 하지만 이렇게 비효율적인 범죄예방 기능을 하는 CCTV를 왜 설치해야 하는지. 1건의 범죄 적발을 위해서 4000만원 투자한 겁니다. 만약 4000만원 들여서 경찰관 한명 고용하면은 1건은 더 잡지 않을까요, 최소한. 이런 생각이 들고요. 근데 또 이제 영국에서 조사한 여러 가지 연구에 따르면 CCTV 설치했을 때 범죄 예방 효과는 들쑥날쑥해요. 그러니까 뭐, 설치했을 때 줄어든 경우도 있었고요, 늘어난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게 효과가 없다는 얘기랑 마찬가지죠. 근데 거리등을 설치하거나 조도를 높이면요, 거의 100% 범죄가 줄어듭니다. 그럼 우리가 해야 되는 건 거리등을 설치하고 조도를 높여야지 왜 CCTV를 설치하느냐, 한정된 자원으로. 우리 CCTV 생각보다 굉장히 비싸거든요. 돈도 많이 들고요. 또 운영비용이 많이 듭니다. 특히 실시간 모니터를 하게 되면 인간이 이렇게 봐야 되잖아요. 굉장히 많은 돈이 드는 일입니다. 근데 조도 높이면 좋잖아요, 환하고. 우리도 좋고 일반 시민들도 좋고. 범죄로부터 훨씬 자유로울 수 있는 이렇게 손쉬운 방법은 왜 안하고 엉뚱한 방법을 채택하냐는 거죠. 또 인제 정기적인 순찰, 이것도 효과가 굉장히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순찰 한 번 더 하면, 이런 패트롤(patrol) 활동을 하게 되면 경찰차가 이렇게 돌아다닌다거나 일상적으로 경찰관이 돌아다니게 되면 범죄 예방 효과가 더 좋다고 이렇게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 연구가 있는데 CCTV가 예를 들면은 뭐 이렇게 계획된 범죄를 줄이는 데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라고 또 이제 알려져 있고, 반면에 의도하지 않고 충동적인 범죄를 줄이는 데는 별로 도움이 안 된다, 뭐 이렇게도 알려져 있기도 하고요. 여러 가지 그런 연구들을 보면 이렇게 광범위하게 서울시내에다가 방범용 CCTV를 깔아야 되는 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심각하게 한번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 다음에 인제 또 우리가 난감한 건 이런 겁니다. 아까 말씀드렸지만 도서관에서 절도범을 잡기 위해서 열람실 내 CCTV를 설치해 달라고 한다. 이런 건 또 어떻게 생각을, 이거 난감한 문제거든요. 근데 제가 이제 실제로 경험한 얘기인데 이게 참 난감한 일이었어요. 왜냐면 총학생회에서는 반대하고 CCTV 안된다고, 그런데 대학원생들의 대다수는 설치해 달라고 난리고. 학교 입장에서는 좀 황당한 거죠. 우리 비슷한 일 벌어집니다. 지역주민들은 CCTV 설치해 달라고 하는데 인권단체에서는 반대하고. 어떻게 보면 찍히겠다는 사람이 찍히겠다는데 그걸 제3자가 나서가지고 마치 무지몽매한 시민들을 계몽하는 것처럼 되는 이상한 이제 모양새가 나왔는데. 자, 이것도 사실은 좀 지혜롭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저는 있다, 라고 봅니다. 아까같이 범죄예방이 목적이라면 우리가 꼭 절도범을 잡는 과정에서 CCTV 설치 외에 예를 들면 외부인의 통제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어떤 그런 방식도 좀 있을 거고요, 그 다음에 개인별 사물함을 좀 설치를 해서 개인 사물함에 넣을 수 있게. 그래서 급하지 않다면 자기 물건을 좀 잠글 수 있게 하는 뭐 이런 조치들도 있을 거고. 그 다음에 뭐 간단한 조치들, 뭐 예를 들면 노트북 같은 경우엔 다 채워 놓잖아요. 그런 것들을 이제 다 될 수 있도록 채우는 장치들을 지급한다거나 책 같은 경우도 간단하게 어떻게 이렇게 보안장치를 둘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는 게 어렵지 않을 것 같거든요. 이게 뭐 비용도 들고 생각을 좀 해야 될 문제지만 아무리 비싸도 CCTV 운영하는 비용 보다는 싸요, 사실은. 그런 걸 고민하는 게.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 같거든요. 제가 지금 막 생각한 건데 책상을 갖다 이렇게 열 수 있게, 밑에 좀 해 가지고, 여러 가지로 이렇게 넣었다가 닫아서 잠그고 갈 수 있게 이렇게 한다거나, 얼마든지 아이디어를 낼 수 있습니다. 위에다 설치하는 방법도 있을 거고. 왜 꼭 CCTV를 설치해야 되냐는 거죠, 그런 상황에서. 또 저는 인제 어떤 생각도 했냐 하면 굳이 CCTV를 설치해야 된다면은 이게 범죄예방이 목적이라면, 범죄자 적발이 목적이라면 CCTV를 설치하되 모니터가 되지 않게 한다든가, 실시간 모니터가 되지 않게 하고 그 녹음되는 거를 블랙박스에 넣고, 블랙박스에 넣고 하루가 지나면 무조건 삭제되도록 하는 어떤 시스템을 두는 건 어떨까. 그리고 혹시 범죄사실이 적발이 되어서 CCTV를 봐야 될 일이 있을 때는 총학생회장과 경찰서장과 총장 입회 하에 세 사람이 완전히 동의했을 때 피해자와 함께 열어볼 수 있게, 아주 제한적으로. 그것도 범죄가 일어난 시점에서 30분 전과 30분 후에 한정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은 절대 볼 수 없게. 이렇게 해서 제한적으로 어떤 열어보는 방식은 또 없을까. 이런 것들을 좀 고민하면서 우리가 설치하더라도 설치해야 되는데 이건 뭐 그냥 설치하고 보자, 이런 식으로 됐을 때는 정말, 정말 온 시내에 CCTV 깔리는 날이 정말 멀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을 해야 되고요. 그래서 우리가 뭐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해를 무조건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좀 필요한 만큼 적절한 수준에서 이게 컨트롤 되는 것이 너무 중요하고 우리가 그런 것들을 꼼꼼하게 따져 묻는 것이 필요하다. 또 지금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가 이메일과 컴퓨터 압수수색입니다, 사실은. 범죄수사를 위해서 프라이버시 침해되는 것, 뭐 어쩔 수 없는 거죠. 그쵸? 예를 들어 압수수색을 통해서 개인수첩을 가져간다거나 이건 뭐 불가피합니다. 가계부를 가져간다거나 회사에 있는 뭐 기밀 서류들을 가져가는 것. 이건 뭐 필요성이 있다면 정부기관에서 검사가 구속영장이나 압수수색영장 신청해서 얼마든지 가져갈 수 있을 겁니다. 근데 지금은 좀 심각한 상황이 뭐냐 면요, 이메일 계정을 통째로 압수수색을 합니다. 또는 컴퓨터의 경우에는 하드디스크 전체를 가져가 버립니다. 여러분들 다 아시겠지만 하드디스크에 얼마나 많은, 개인수첩 가져가는 거랑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정보가 들어 있죠. 그리고 개인수첩은 지우거나 불로 태우면 웬만하면 다 지워져 버리는데 하드디스크는 어설프게 지워 가지고는 다 남죠. 딜리트(delete) 누르고 포맷(format)하고 이런 거는 정보기관이 가져가면 사실 다 살리는 것 아닙니까. 굉장히 위험한 것을 사실은 하고 있는, 압수수색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근데, 그러니까 과거에 실물을 제공하는 것과 하드디스크를 제공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죠. 이메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메일을 통째로 계정을 가져가게 되면 별의별 정보를 사실 다 볼 수 있게 됩니다. 그쵸? 갖가지 개인적인 어떤 사사로운 편지라든가 이런 거 다 볼 수 있게 이렇게 되게 되죠. 근데 이게 지금 압수수색영장 발부될 때요, 그 집안에 있는 물건 일체 이렇게 쓰면 영장 발부 안 되거든요, 사실은. 특정을 해야 됩니다. 예를 들면 가계부 일체, 재무 관련 서류 일체, 뭐 이런 정도로는 최소한 특정을 해야지 법원이 영장을 내줍니다. 집안 통째로 이렇게 쓰면은 압수수색영장 안 나와요. 우리가 그렇게 되기까지 정말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해왔습니까? 인권단체에서 그렇게 압수수색하면 안 된다, 그건 인권침해가 심각하다, 그래가지고 사실은 발전, 발전하고 해서 지금 인제 그런 식으로 영장 발부 받을 생각도 못해요, 지금. 근데 이메일을 압수수색하거나 컴퓨터 들어가는 거는 우리가 실물의 상황에서 이렇게 생각을 해 보면 이건 집안 통째로 가져가는 것과 별로 다를 바가 없는 거예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거 전부, 이런 식으로 압수수색 영장이 나오는 거거든요. 그런 영장이 버젓이 발부가 되고 있고. 뭐 이것도 방법이 있습니다. 물론 인제 쉽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이메일 같은 경우에는 전략적으로 그럴 수 있죠. 만약 제목으로 관련된 것만 압수한다, 이러면은 제목을 다르게 달아 넘기죠. 순이야 안녕, 안에는 은밀한 내용들이 다 있는데 사실은 그게 범죄 수사에 꼭 필요한 내용일 수도 있을 거고요. 그 다음에 뭐 하드디스크 관리도 제목을 갖다 적지 않고 일련번호로 해 놓는다거나 이렇게 해 놓으면 사실은 선별해 가지고 그걸 뽑는다는 게 쉽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통째로 들고 가고 이메일도 다 가져가는 거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이메일 같은 경우에는 최소한 기간을 특정해야죠. 언제 범죄 사실이 발각될 가능성이 있는, 중요한 수사정보를 줄 수 있는 그런 부분이 있다면 그 기간을 최소한 특정 한다거나 이런 식으로는 되어야지 사실은 영장이 제대로 나오는 거지 지금처럼 이메일 계정을 통째로 압수한다, 이런 건 굉장히 곤란하고요. 더 황당한 건 뭐냐 하면 여러분들 압수수색 영장 집행될 때 들으셨죠? 대부분 영장 딱 들고 가가지고, 일단 묻잖아요? 영장 좀 봅시다. 그러면 이제 영장 이제 보여주고. 심지어는 어떤 경우에는 출발하기 전에 알려주는 경우도 뭐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경우는 변호사 와 있는 경우도 있거든요. 변호사 입회 하에 사실은 압수수색 영장이 집행이 됩니다. 또는 뭐 개인 같은 경우에는 변호사까지는 안 부르겠지만 본인이 보는 앞에서 가져가죠. 그러면서 이제 항의도 해요, 이건 아닌데요. 예를 들면 재무서류 관련 일체, 이렇게 되어 있으면, 이건 재무서류 아니니까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럼 그 자리에서 다툼도 일어나고 이러면서 밀고 당기고 하면서 사실 가져가는 건데. 이메일은 지금 통지도 잘 안 되고 있어요, 사후통지도. 내 이메일이 가져갔다는 것조차 모르는 거예요. 압수수색이 일어나면 자기가 모를 수가 없죠. 내 게 없어졌으니까. 그렇죠? 자기가 없는 가운데서 하는 경우도 물론 급할 때 있지만 원칙적으로는 자기가 있는 앞에서 하는 거거든요. 압수수색영장 집행이란 건. 근데 이메일은 본인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고요, 실제로. 그 다음에 최소한 사후 통지는 이뤄져야 되는데 사후 통지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영장 없이도 개인정보를 수집합니다. 영장 없이도. 어떤 거냐 하면 예를 들면 트위터에 내가 글을 올렸다, 근데 트위터 회사가 아닌 이상은 그 국가기관에서는 이 트위터 이름이 누구의 것인지는 모르죠? 아이디로 되어 있으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 영장 없이 자료협조 요청을 하면 알려 줍니다. 그게 인제 우리 법에도 정확하게 규정이 되어 있습니다. 근데 이거는 진짜, 온라인이니까 가능하지 이게 영장 없이 열람이 가능하다, 라는 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우리 시민들이요, 근대 시민혁명 과정에서 국가가 허락 없이 개인 물건 가져갈 수 없게 하려고 엄청 싸워 온 겁니다, 사실은. 그 어떤 피를 흘린 역사 속에서 간신히 국가가 마음대로 자기 물건 가져갈 수 없게 우리가 해 놓은 건데 이게 정보화 사회 되면서 다 깨져 버린 거죠. 막 끌고 가는 거예요, 지금 상황에서. 협조요구서 한 장이면 인터넷 업체에서 이 아이디가 누구의 것, 주인이고, 주민등록번호 뭐고 주소는 뭔지 다 가르쳐주거든요. 이런 상황이 전개된다는 것 자체가 사실은 굉장히 어이가 없는 일이고 정보화 사회가 어떤 면에서는 시계를 거꾸로 돌린 거죠. 제가 수사 필요성을 위해서 개인정보 전혀 수집될 수 없다고 얘기하지는 않았죠. 뭔가가 필요할 때는 해야 됩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집행이 되는 것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거죠. 이런 걸 끝까지 따져 묻고 항의하고 하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할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 이 마지막 문제, 보편적 복지 문제하고 좀 관련시켜서 얘기를 드려 보고 싶은데요, 이것도 재미있는 것 같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복지를 위해서는 프라이버시 제한이 불가피합니다. 어느 정도는 공개가 될 수밖에 없어요. 국가가 알지 못하면 복지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최근 논의되고 있는 이른바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의 대립구도 속에서 보면 저는 보편적 복지가 프라이버시라는 측면에서는 훨씬 유리하다, 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선별적 복지를 위해서는 선별을 해야 하거든요. 누가 가난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누가 힘든지 모르면 국가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이게 선별적 복지의 특징이에요. 예를 들면 학교에서 누가 무상급식을 받는지, 물론 이제, 안 알려지게 선생님들이 굉장히 주의한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런 사실이 본인에게도 약간 좀, 뭐라고 해야 되나, 컴플렉스가 될 수가 있는 거고. 또 장학금을 받으려고 자기 집안의 개인 사정을 저 같은 교육자한테 이렇게 알려줘야 된다는 게 학생 입장에서는 고통스러울 수 있는 거죠. 그게 뭐, 그게 옳지 않건 뭐, 그렇게 생각하면 안 돼, 이런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싫다면 안 하게 해줘야 되는 거거든요, 사실은. 그런데 그렇지 않고는 장학금을 받을 수 없게 되어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사실은 이 문제와 관련해서 더 좋은 일은 등록금이 아예 싸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등록금이 없다거나. 아니면은 무상급식을 선별적으로 제공할 게 아니라 누구에게 제공된다면 지금 말하는 논점이 아예 일어나지가 않습니다. 국가가 개인정보를 수집할 일이 훨씬 줄어들게 되는 거죠. 뭐 기본소득제 같이, 요즘 또 논의되고 있는, 기본소득제가 실시된다면 개인의 정보를 수집해야 할 일이 정말 현격하게 줄어드는 일들이 벌어질 겁니다. 그래서 뭐, 우리가 보편적 복지를 해야 되는 게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서 하는 것만은 아니겠지만, 물론, 우리가 보편적 복지라는 시스템이 프라이버시 보호라는 측면에서 굉장히 유리하다는 것은 굉장히 좀 흥미로운 점이 아닐까 해서 소개를 해봤고요.

마지막 문제는 첫 번째, 두 번째와 관련이 있습니다만, 철저하게 감시하는, 다시 얘기하면 국가의 감시를 감시해야 된다는 것. 예를 들면 이제 국가에 대한 역감시가 이제 있어야 된다는 것이고요. 예를 들면 정보 수집, 기록, 저장 절차에 대해서 철저하게 감시하고 불분명한 부분이 있으면 정보공개를 또 요구해야 됩니다. 정보공개 청구하는 것 그렇게 어렵지 않거든요. 정보공개청구해서 내 정보가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어떻게 통제되고 있는지를 요구하고 감시하는 역할들이 굉장히 중요하고요. 이건 뭐 언론도 그런 역할을 해야 되고, 시민사회도 그런 역할을 해야 되고 엔지오(NGO)에서도 그런 역할을 해야 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시민들이 정말 자기 정보를 헛되이 넘겨주지 않을 때, 그리고 하나하나 따져 묻고 또 그 감시를 또 감시하고, 이럴 때 우리의 개인정보와 어떤 프라이버시가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이고요. 이 프라이버시의 내용은 뭐 사사로운 어떤 사생활만 꼭 의미하는 게 아니라 개인의 정보이고 어떻게 보면 우리 권리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라이버시가 무너지게 되면 다른 모든 권리가 침해받게 되고, 어떤 누군가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받게 되면 연쇄작용이 일어나서 다른 사람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되게 되고 결국에는 내 프라이버시가 침해되게 되고 내 모든 권리가 위협받게 된다는 사실을 우리가 모두 좀 깨닫고 또 거기에 맞는 실천들을 하나하나 해 나가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강의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박수)

 

장여경

선생님, 물 한 잔 드시죠. 너무 열강하신 것 같아요. 열이 많으실 것 같아요. 재밌었죠? 역시 홍성수 선생님 강의 너무 재미있습니다. 선생님 강의록 준비하실 때, 나름 재밌게 쓸려고 했는데 재밌을까요, 막 이렇게. 자신 없어 하셨는데 상당히 재밌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마지막 단락 말씀하신 부분 들으면서 생각나는 게 있는데요, 국가에 대해서 우리가 철저하게 역감시를 하자, 그것이 인제 프라이버시권을 우리가 찾는 길이다, 라고 얘기하시고 정보공개청구 얘기하셨어요. 재밌는 게 뭐냐면, 정보공개청구에서, 에 대해서 국가가 비공개하는 사유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첫 번째가 정보가 부존재한다는 거고요, 두 번째가, 정보가 없다, 그런 정보 없으니까 줄 수 없다, 이런 게 첫 번째 사유로 제일 많고요. 두 번째 사유가 그건 비밀이라거나 개인정보라는. 그게 2007년, 2009년 2008년 통계들이 다 똑같습니다. 비공개사유가 그렇게 많거든요. 우리는 국가를 역감시하기 위해서 정보공개청구를 하는데 국가는 거기, 그 요청을 거부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로 대는 것이 프라이버시다, 비밀이다, 개인정보다, 이런 이유를 드는 거죠. 참 역설이 아니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궁금한 게 굉장히 많으실 텐데요, 자유롭게 질문을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청중

교수님 강의 정말 재미있게 잘 들었고요. 저희가 저희의 편리함을 위해서 정보를 마구 마구 줬었는데 그게 정말 우리한테 부메랑이 돼서 돌아온다는 것을 제가 생활 속에서 많이 느끼고 있는데요. 예를 들면 굉장히 수시로 오는 전화가, 집에 있거나 이랬을 때 카드 회사나 은행이나 여러 가지 금융정보회사라고 하면서 좋은 정보를 알려주겠다고 전화를 굉장히 많이 해요. 그런데 저는 정말 혼자 있고 싶고 제 시간을 갖고 싶은데 그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고 통화를. 텔레마케팅으로 수시로 막 공개가 되고 제 이름까지 알고, 누구시죠, 하면서 전화가 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가 카드를 만들거나 은행계좌를 개설했을 때 그 정보를 마구 마구 줬던 것들이 돌아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희가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갔던 일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정보화 사회에 대해서 우리의 권리를 되찾기 위해서 어떤 점을 되짚어 가야 되는 가를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됐고요.

제가 좀 지금 궁금한 것 중에 하나가 저는 사실은 교사고, 전교조 교사인데 작년에 저희가 조전혁 의원에 의해서 저희 정보가 인터넷에 공개가 됐었어요. 어떤, 무슨 과목의 그리고 어떤 학교에 근무하고 있고 내가 전교조 교사라는 게. 그런데 올해 저희가 다 무슨 편지를 받았냐 하면 최근에 무슨 학부모연대라고 하면서 거기에서 전교조가 친북단체고 이런 단체인데 너무나 위험한 단체다, 빨리 거기서 나와라, 라는 편지를 다 받았어요. 근데 너무 저희가 황당했고요. 그 처음에는 그 전교조 교사 정보가 공개됐을 때 언론에서 뭐라고 그랬냐 하면 국민들이 알 권리가 있다, 너희 정보에 대해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단체인지 국민은 알 권리가 있으니까 공개한다, 라고 했지만 조전혁 의원이 거기에 대해서 법원에서는 판결을 받고 한 걸로 알고 있거든요. 저희는 올해 그런 편지를 받을 줄은 몰랐어요. 그래서 너무나 황당하고 그런데 이걸 법적으로 어떻게 대응이 가능할지 법대 교수님이니까. (웃음)

 

장여경

알권리와 프라이버시의 관계에 대해서 종합적으로 말씀해 주시죠.

 

홍성수

여기서 제일 쟁점이 되는 것은 알권리의 문제와 어떤 개인의 사생활 같은 경우는 자신이 가입한 단체라고 하는 건 전형적인 문제입니다. 법적으로 인권적으로 봤을 때 당연히 인제 개인정보입니다. 어느 정당에 가입했는가 어떤 조직에 내가 소속되어 있는지가 민감한 개인정보라는 건 이견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고요. 근데 아무리 그런 민감한 개인정보라고 할지라도 어떤 공익적인 필요나 알 권리를 위해서 제한될 수 있는 가능성은 물론 열려 있습니다. 근데 그게 알 권리라는 게 어떤 식으로 작용했을 때 정당화될 수 있느냐 하면, 예를 들면은 내가 무슨 부동산을 소유했는지는 개인정보입니다, 사실은. 민감한 개인정보입니다. 그 사람이 장관이 되려고 해요. 장관이 되려고 했을 때는 사실 재산의 유무라든가 재산 축적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공직자로서의 처신은 적당했는지. 심지어는 재산을 공개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어떤 부당한 권력을 이용해 가지고 부당한 돈을, 뭐, 압력을 넣었다거나 부당한 부를 축적하지 않았나 하는 가를 우리가 감시해야 하기 때문에. 공직자니까. 불가피하게 그때는 국민의 알 권리와 공익적인 목적이 그 개인의 사생활 보다는 우위에 있는 거가 되겠죠. 또 일전에 얘기했듯이, 아까 모두에 얘기했듯이, 종교, 내가 어떤 교회를 다니고 어떤 기금을 얼마를 냈는지는 굉장히 민감한 정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가 대통령하고 연관이 되어 있다거나 그 기부액이 뭔가 수상하다는 단서가 잡힌다면은 그것도 공개될 수밖에 없는 것이 불가피한 겁니다. 이런 수준이 됐을 때 우리가 개인의 어떤 사생활보다 알 권리가 우선한다, 공익적 필요성이 있다, 라고 하는 건데. 우리가 이제 뭐 교사의 소속단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공익이 무엇일지, 또는 알 권리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불분명하거든요. 그걸 알아 가지고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 다 퇴출시키겠다는 거냐, 다 징계하겠다는 거냐, 아니면 그런 교사들이 가르친다면은, 뭐 이 학교 반 담임선생님 바꿔 달라고 요구를 할 거 같냐. 이런 목적 자체가 불분명한 채 그냥 궁금하다는 거예요, 사실은. 그냥 궁금하다. 나는 우리 선생님이 무슨 조직에 가입했는지가 단순히 궁금하다, 이런 정도만 가지고는 사실은 그걸 알 권리라고 치장하든 공익적 필요라고 치장하든 정당화될 수는 없는 거죠. 우리가 따져 물어야 될 것은, 알아서 뭐할 건데, 라는 거죠. 근데 이 조전혁 의원이 여러 가지 인터뷰 하는 거나 저도 유심히 봤는데 그 부분에 대한 해명이 없어요. 알아서 도대체 뭐할 건지. 어떻게 보면 그냥 자꾸 알권리라는 거예요. 알권리라는 공허한 말로 포장이 되고 그 다음에 궁금하다, 모든 국민들이 알고 싶어 한다. 알고 싶어 할 수 있죠, 물론. 근데 알고 싶어 한다고 다 공개되면은 이건 공개 안 될 게 없습니다, 사실은. 그렇죠? CCTV 설치하고 싶다, 설치하고 싶을 수 있죠. 근데 왜 이걸 설치해야 되는가, 그 다음에 그 이유가 뭔지를 특정하고 그 목적에 따라서 쓰일 건지를 얘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거를 공개할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는 거예요. 예를 들면 교장선생님은 알게 되나요, 혹시. 어느 조직에 가입했는지. 그건 이유가 있으니까 알게 되는. 그것도 따져 물어야 됩니다. 교장선생님은 왜 알아야 되냐, 이유가 있다면 알아야죠. 교장선생님이 만약 우리 소속교사가 어느 단체에 있는지가 알아야 되는 이유가 있다면 알아야 되는데 그것도 이유가 없으면 알려줄 이유가 사실 없는 겁니다. 그렇게 하나 하나 분명한 이유와 목적을 갖다가 명시하지 않는다면은 개인정보를 절대 줄 수 없는 거죠.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저는 소속단체를 얘기해달라고, 전부 공개되어야 된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무리 봐도 정당성을 갖기 어렵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청중

법적 대응을 할 수 있나요?

 

홍성수

어떤 부분에서?

 

청중

그 단체가 편지를 다 보냈어요.

 

홍성수

아, 단체가.

 

청중

네. 어떤 학부모 단체가 그냥 편지를 다 보냈어요. 전교조가 위험하고 그러니까 빨리 나와라. 그런데 이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홍성수

일단은 뭐 이제 이메일 같은 경우는 전파성이 있다고 보니까 명예훼손은 사실 될 수 있겠고요. 그 단체에 대해서. 명예를 훼손하는 이메일을 집단적으로 뿌렸을 때는 당연히 이제 조합원 개인 명의로 명예훼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같은 것도 충분히 가능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기타 이제 일종의 그거를 본인이 동의하지 않는 스팸메일의 일종으로 본다면.

 

청중

우편으로도 왔어요.

 

홍성수

우편으로요? 우편도 사실 컨트롤하기 쉽지 않은 문제인데 일단 제가 더 검토해봐야겠습니다만 일단 생각나는 거는 명예훼손 충분히 가능할 수 있겠죠. 근데 이제 뭐 조직을 가입하지 못한다는 것을 강제하거나 물리력을 행사한다거나 어떤 뭐 실질적인 위협이 되지 않는 한은 그 자체로 뭐 처벌한다는 것은 좀 어려울 것 같고요. 명예훼손 같은 경우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부분일 것 같습니다. 이제 그런 경우는 법적인 대처도 중요하겠지만 그런 문제가 있을 때 공론화 시키고 사실은 힘을 조직하는 게 더 중요하겠죠. 개인의 어떤 사적 영역이잖아요, 사실은. 어디에 가입할 건지 탈퇴할 건지 이런 것들을 나름대로 공적 단체가, 이름 있는 공적 단체가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고 그 단체가 어떤 단체니까 탈퇴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얼마나 이제 허황된 일이고 문제가 많은 행동인지를 또 인제 우리가 그런 정치적 행동을 조직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생각을 합니다.


* 비마이너 제공 http://www.beminor.com

장여경

굉장히 재밌는 것 중에 하나가 올해 9월 30일부터 개인정보보호법이 발효가 됩니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처음 만들어지는 거예요. 공공기관 영역에서만 일군의 영역에서만 이렇게 존재하다가 처음으로 이제 공공과 민간을 아울러서 통합적인 개인정보보호법이 만들어졌는데 거기 보면 민감정보의 수집 제한이라는 조항이 있고 그 민감정보가 무엇이냐의 부분에서 사상, 신념뿐만 아니라 노동조합, 정당가입 여부 이런 것도 민감정보라고 딱 박혀 있어요. 그 법을 정부가 발의를 한 게 2008년이었고 정부의 법안이 여러 가지 수정이 되었지만 민감정보의 수집 제한 조항은 그대로 온 거거든요. 그러니까 한국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노동조합 가입이나 정당 가입 이런 거는 민감한 정보로 간주해왔다는 거예요. 법이 통과한 것은 올해였지만. 올해였고 올해 법이 통과되었지만. 근데 이제 조전혁 의원도 아마 교과부에서 준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러면은 교과부도 분명히 한 정부의 일원으로서 그런 민감한 정보를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줄 생각을 했으며 또 조전혁 의원은 그게 민감한 정보라는 걸 알면서도 무슨 생각으로 그걸 공개했는지. 그게 사실은 개인정보의 아주 상식에 걸맞지 않은 행동이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른 질문 혹시 있으세요? 제가 하나 또 여쭤볼게요. 우리가 이런 감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서 역감시도 좀 하고 그리고 또 선생님, 유혹에서 벗어나고 끝까지 따져 묻고 우리가 오히려 역감시하고, 이런 이제 얘기를 해 주신 게 되게 인상적이었는데요. 사실 이렇게 해야 되는데 하기가 참 어려운 조건도 있거든요. 예컨대 제가 개인정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죽 대응을 해왔는데 되게 부끄러운 기억이 있어요. 뭐냐면 은행 대출을 받으러 갔거든요. 대출을 받으러 갔는데 죽 쌓여 있는 대출서류 맨 마지막에 신원정보 제공 동의서, 이렇게 되어 있는 거예요. 제목이 동의서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신용정보 제공하지 않겠습니다, 라고 약간 버텨봤어요. 그랬더니 은행에서 그러시면 대출이 곤란하다고. 말로는 동의서라고 되어 있는데 사실은 동의서가 아닌 거죠. 그러니까 분명히 개인정보 보호 원칙에는 내가 동의하지 않으면 내가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지만 사실 우리 일상생활에서 그렇게 하기가 되게 어렵고, 어렵게 되는 배경에는 권력관계의 차이가 있는 거죠. 제가 은행에서는 대출을 받는 입장이기 땜에 약한 입장인 것처럼 국가권력과 시민 간의 관계에서도 권력차가 존재하고 기업과 소비자 입장에서도 권력차가 존재하고. 그런 권력차 문제, 이런 것에 우리가 어떻게 저항을 해나갈까, 이런 생각이 들거든요.

 

홍성수

예,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웃음) 부당한 일이고. 그래서 인제 그런 부분에서 우리가 뭐 권력차가 났을 때 당연히 권력을 가진 쪽에서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하게 되고 권력을 가지지 않은 쪽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 개인정보를 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우린 항상 직면해 있습니다, 사실은. 근데 이제 특히 그게 위험한 것은 사적 권력이 저는 개인을 감시하는 게 훨씬 위험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엄기호 선생님 전 시간에 그런 취지로 말씀을 해주셨을 것 같은데, 평소에 하시는 말씀으로 봐서는. 사적권력의 욕망이란 건 정말 상상을 초월하거든요. 국가는 좀 그래도 좀, 통제할 수 있잖아요. 대통령도 뽑고 국회의원도도 얼굴 어떻게 생겼는지 다 알고 있고. 자본이란 건 얼굴 없는 권력이고 어떻게 보면 가장 은밀하고 국가의 욕망에 비해서는 비교할 수 없는 이윤창출에 대한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말 위험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특히 인제 감시가 많아야 되고 더 많은 저항을 해야 되는데요. 이건 이제 두 가지 맥락에서 진행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사적 권력이 개인의 정보를 갖다가 침해하려고 하고 수집하려고 할 때는 일단 개인적인 노력이 있을 수 있겠죠. 그런 동의서에 보면은 진짜 필요한 게 있고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 있거든요. 불필요한 게 사실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그런 거에 대한 저항이 이제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을 거고요, 또 실천할 수도 있을 거고 그런 행동을 조직할 수도 있을 거고요. 그건 인제 근본적으로 개인들의 저항도 물론 필요하지만 사실은 공적 권력을 갖다가 우리가 민주적으로 통제하고 공적 권력이 다시 그런 사적 권력을 통제하는 게 맞겠죠. 왜냐하면 그런 어떤 약관이나 이런 것들은 국가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들이고 불필요한 그런 정보가 수집되고 있는 부분들은 사실 국가가 컨트롤해야 되는 부분들이기 때문에 그런 어떤 개별적인 저항도 중요하겠지만 우리가 국가에 대해서, 국가권력을 향해서 그런 국가 못지않게 위험한 권력이, 사적권력이 정보수집의 범위를 넓혀가지고 무한정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마음대로 유통시키는, 아까 인제 이메일 곳곳에서 이상한 메일 많이 오는데 수상하잖아요, 사실은. 이메일이야 뭐 어떻게 떠돌아다니는 것 수집했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제 어떤 전화번호라든가 이런 것 알고 전화 오는 것 사실 굉장히. 그래서 물어보거든요, 항상. 어디서 아셨어요? (웃음) 교육이 안 되어 있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마케터하시는 분들이. 그래가지고 굉장히 당황을 합니다, 사실은. 제가 몇 번 더 하면은 이제 알려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그런 노력을 할 수 있겠죠. 많은 분들이, 어떻게 아셨는데요, 부터 물어보면, 저 어디어디어딘데 이러면, 아 근데 그거 설명하시기 전에 전화번호 어떻게 아셨는지부터 알려주세요, 이런 말들을 만약 개개인이 묻는다면은 대응하는 논리가 만들어질 것 아닙니까? 논리가 만들어지다보면 처음에는 어거지로 갖다 붙이고 어떻게 하다보면 결국에는 정당성 그걸 만들어 내게 되고 일부러 어떤 곳에서는 결국 포기하는 데도 있을 거고 어떤 데는 이러이러한 절차를 위해서, 통해서 샀고, 알고 보면 네가 거기다 서명을 한 적 있다, 이런 거를 얘기해야 되는 것을,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 상황이 전개되면 어쨌든 많이 통제가 될 겁니다. 통제가 될 거고. 우리가 그런 부분을 이겨낼 수 있겠죠, 어느 정도까지는. 근데 인제 더 중요한 건 그런 개인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이 국가권력을 어떻게 하면 잘 컨트롤해서 국가권력으로 하여금 전반적으로 사적권력의 남용들을. CCTV 문제도 그렇지 않습니까? 방범용 CCTV도 문제지만 개인이 설치한 건 어찌 보면 범죄예요. 범죄 일어나면 개인이 설치한 것도 다 가져가거든요, 정부기관에서. 마찬가지예요. 정부기관에서 설치한 거랑 별로 다를 게 없어요. 국가기관이 설치한 거랑. 근데 국가기관은 사적으로 설치되는 CCTV를 그렇게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지 않거든요. 정말 우후죽순 늘어나는데 민간 CCTV에 대해서는 별다른 통제장치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것들을 보면은 국가로 하여금 그런 민간 권력의 팽창을 철저하게 통제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또 과제가 아닌가,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장여경

예, 오늘 마지막 질문 하나 받았으면 하는데요. 정말 오늘 선생님 오셨으니까 가시기 전에 질문하실 것.

 

청중

선생님 말씀 중에 학교에서 학생 상담, 교육적인 필요에 의해서 학생의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것의 문제점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네이스(NEIS)라고 하는 그 시스템이 정보를 알고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정보를 모아서 한꺼번에 모아서 갖고 있다는 것 때문에 한동안 교육계에서 이것 때문에 굉장히 시끄러웠고 지금은 어쨌든 간에 정착이 되어서 지금 그런 시스템으로 학교가 운영되고 있는데. 요즘 또 학교에서 문제가 되는 게, 저는 교사인데요, 학생 정보를 공개하게 되어 있습니다. 학교에서 가지고 있는 정보의 많은 부분을 학부모에게 공개하게 되어 있거든요, 일반 사람들한테는 안 하지만. 그래서 나타난 여러 가지 문제 중에 하나가 학부모, 아니 교사가 작성한 학생 기록에 대해서 학부모가 그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거든요. 입학사정관제니 뭐 이런 것 때문에 그런지 생활기록부 자체에 대해서 대단히 민감해져 있는 그런 상황이라. 예를 들어서 제가 알기로는 생활기록부라는 것이 교육의 목적에 의해서 교사가 알고 있으면 전 된다고 여태까지 생각을 했는데 이게 이제 이런 식으로 관리가 되다보니까 이게 어느 순간에 공개를 해야 되고 공개가 되다 보니까 교사의 권한까지 침범하는 사례가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어요. 어떤 학생에 대해서, 많이 매스컴에 나왔기 때문에 알고 계시겠지만, 내가 그 학생의 발달 과정이나 그런 걸 관찰하고 뭐라고 썼을 때 그거를 학부모들이 볼 수 있어서 우리 아이가 그렇지 않다, 당신이 잘못 봤다, 그래서 이런 표현은 굉장히 부정적인 표현이니까 이것을 고쳐 달라, 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있고. 그런 요구를 수용하는 교사들도 있는 걸로 알고 있고. 또 학생이 진학하는 것 때문에 교사가 1학년 때 기록한 것을 3학년 입시에 임박해서 고쳐 주는 사례도 있는 것 같아서 어떤 게 맞는 건지 진짜 헷갈리는 그런 상황이거든요. 그런 네이스나 이런 정보가 가는 것에 대해서 선생님 좀 생각해 보신 게 있다면.

 

홍성수

사실은 그런 개별적인 문제들은 섣불리 얘기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교육목적이라는 것이 분명히 인정될 수 있는 공익적인 목적이기 때문에. 저도 뭐 현장에서 자세하게 보지 않아서 섣불리 말씀드리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데요. 근데 생활기록부가 대학입시에 쓰이지 않지요, 사실은?

 

청중

쓰여요.

 

홍성수

그, 저는 못 본 것 같은데, 대학입시에 여러 차례 관련했습니다만.

 

청중

생활기록부 전체를 통째로 보네요.

 

홍성수

근데 그 발달상황이나 이런 것도 적혀 있나요?

 

청중

네. 입학사정관제가 되면서 선생님들의 평가가, 아시겠지만 행동종합발달이라든가 상황에 대한 선생님들이 평가를 한 두 마디 적어주시거든요. 그걸 참고자료로 삼아요.

 

홍성수

근데 그 예전에 우리가 종이에 쓰던 생활기록부처럼 그 내용이 다 들어가나요?

 

청중

네. 그걸 학부모한테 지금 다 공개가 되고 있고 입학사정관제가 되면서 그게 중요한 요소로 작용되고 있어요.

 

홍성수

작년에 입학사정관 했는데. (웃음) 못 본 것 같은데.

 

청중

외국에 있다가 예를 들어서 조기 유학 갔다 돌아오는 애들이, 그런 애들이 생활기록부 갖고 오는데 수기로 된 걸 갖고 오거든요. 근데 저희 나라만, 우리나라만 이런 시스템을 만들어 갖고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 시키고 있는 거라고 생각 돼서. 그런 건 또 어떻게 만들어가야 될지.

 

홍성수

지금 이제 그렇게 쓰인다는 건 우리 원래 예전에 수첩에 적었던 생활기록부 용지에 적었던 시대를 한번 생각해 보면, 그때 생활기록부의 용도라는 건 그런 거였잖아요? 그 학생의 발달의 기록들을 갖다가 죽 적어주고 또 학부모에게 통지문 같은 것 보낼 때 썼던 것 같고. 그리고 그 다음 연도 선생님이 인제 그 전년도에 어떻게 했는지를 관찰하기 위한 그 목적이 사실 전부였고. 그리고 현행법이, 생활기록부에 대한 규정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그렇게 되어 있다면 그것이 그렇게 공개되는 건 맞지 않는 것 같고요. 그 다음에 학부모에 관련된 문제도 만약에 그 학생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라고 한다면 사실 생활기록부 없애는 게 맞는 거죠. 그런 목적을 다 달성한 이후에는. 그런 어떤 교육적인 지도의 목적이고 상급학교 진학 시에 이전에 어떻게 있는지를 평가하는 게 목적이라면 사실은 뭐 초등학교 졸업을 하면 5년 내 삭제되는 것이 사실 맞는 것이 될 거고요. 만약 그 용도를 갖다가 대학입시에 활용하고 그것이 어떤 교사의 학생에 대한 평가이고 그 평가가 상급학교 진학 시에 활용되고 대학입시에 활용되고 그런 공적 목적으로 활용이 되는 거라면 지금 생활기록부를 쓰는 방식 자체가 달라져야 되지 않을까요? 그게 내밀한 기록이 아니라 교사의 공식적인 어떤 평가, 외부에 공개될 수 있는 공식적인 평가. 근데 이제 선생님이 혼란스러우실 수 있으신 게 과거의 생활기록부를 쓰는 목적과 지금 다르게 활용이 되니까 그 부분이 혼란스러워지는 게 아닌가 싶거든요. 그래서 인제 그것도 굉장히 부주의한 것 같아요. 결국은 관리 기관에서, 국가에서 교육부나 이런 기관에서 그런 부분에 대한 민감한 어떤 예민한 어떤 또 아주 치밀한 검토 없이 그런 부분들이 마구 이제 집행이 되다 보니까. 예를 들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다음 연도 선생님이 참고할 만한 목적이라고 한다면 학부모가 꼭 봐야 될 이유가 없을 수도 있는 거죠. 만약 그런 목적에 한정된다면. 선생님도 쓰실 때, 아, 그런 용도로 쓰이는 거야, 나중에 대통령되면 혹시 알려지지 않을까, 이런 걱정을 안 하게 된다면 정말 자유롭게 쓸 수 있을 거고 정말 다음 연도 선생님이 도움이 되는 말들을 적어주실 수 있을 거 같거든요. 근데 지금 뭐, 이거 나중에 인사청문회 할 때 공개되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을 하게 되면 사실은 생활기록부 상에 솔직한 얘기를 쓸 수 없게 되는 거죠. 저는 그래서 규정을 좀 더 찾아봐야 되고, 뭐 이렇게, 목적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좀 봐야지 알겠지만 지금 생활기록부의 작성 목적 자체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정보가 무분별하게 유통되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장여경

개인정보 침해 이유 중에 하나가 다목적으로 쓰이는 것 같아요. 한번 디지털화해 놓으면 훨씬 편하고 방대하고 이러니까 두루두루 쓰면 좋다, 이렇게 가는 경향이 또 우려스러운 게 있습니다. 전자주민증도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저희 다음 주에 마지막 강연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다음 주는 법학자이시지만 굉장히 재미있는 법학자이신, 아시는 분은 아시는, 한상희 선생님을 모시고 말씀을 들어볼 텐데요. 일단 특화된 주제로는 이런 신분등록제도에 대해서 살펴보겠지만 신분등록제도 뿐 아니라 1강부터 5강까지 우리가 전반적으로 살펴봤던 얘기들을 정리를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되도록 꾸며볼 생각입니다. 그리고 다음 주는 마지막이고 하니까 시간이 되시는 분들은 우리 끝까지 참석을 좀 해주시고 강의가 끝나면 또 우리 간단한 뒷풀이도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주에도 오실 거죠? 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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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9일]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감시 : 사회철학적 논의를 중심으로 (엄기호) _녹취록

 

감시사회 대강연회 제4강(엄기호) 녹취록

 

□ 일시 : 2011년 5월 19일(목) 저녁 7시

□ 장소 : 여의도 이룸센터 교육실

□ 사회 : 장여경

□ 강사 : 엄기호

장여경

(앞부분 누락) 아마 인권영화제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인권영화제로 많이 가신 것 같고요. 밖에서 식사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들어오시겠죠? 우리가 첫 강의에서는 사찰 문제, 사찰 문제, 두 번째 강의에서는 이명박 정부의 문제,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주변에 특히 이제 국가의 감시 문제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강의, 지난주 강의가 많은 분들이 흥미로워 하셨던 주제였는데 구글이나 페이스북이나 요즘에 인기 있는 상업적인 서비스들의 감시 문제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졌고요.

오늘부터는 조금 이론적이고 어떻게 보면 좀 어렵다고 할 수 있는 저희가 봤을 때는 준비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봤을 때 좀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게 됩니다. 특히 이제 감시 문제를 사회철학적 관점에서는 어떻게 설명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지난 강의 기억하시는 분들 있으시겠지만, 마지막 질문하신 분들이 그런 질문 하셨거든요. 왜 사람들이 감시를 환영하는 것처럼 보이는가? 우리가 감시를 이렇게 우리 사회에 불러들이는 우리의 욕망도 있지 않을까? 그런 얘기를 질문하셨어요. 질문하신 분 안 오셨는데. 그래서 오늘은 그런 문제에 대해서도 좀 살펴보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오늘 사람들이 많진 않지만 우리 엄기호 선생님 박수로 모시겠습니다. (박수)

 

엄기호

예. 다 들리시죠? 꼭 마이크로 해야 할 이유 없죠? 제가 마이크 뭐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가지고. 안녕하세요? 저는 엄기호라고 하고요. 제 전공이 철학이 아니라 가지고 사회철학 전공이라고 되어 있는데 저는 뭐 사회철학적인 것 보다는 약간 사회학이랑 문화인류학 쪽에서 얘기된 것들 중심으로 해가지고 좀 말씀을 드리려고 해요. 다음 시간에 홍성수 선생님이 법적인 관점에서 프라이버시와 이런 문제들을 다루실 거라서 그것의 인문학적인 배경으로서 프라이버시라는 게 왜 중요하게 대두가 되었는지, 그리고 그 중요하게 대두된 프라이버시라는 게 지금에 와 가지고 왜 갑자기 모두가 나의 프라이버시는 별로 안 중요하다, 대신에 나를 좀 안전하게 해 달라, 하는 논의로 이렇게 확 바뀌어버렸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좀 말씀을 드리려고 해요.

우리가 인권이라는 말을 많이 쓰잖아요, 그죠? 그런데 사실 한나 아렌트라고 하는 유대계 독일 출신의, 미국에서 주로 활동을 했었던 한나 아렌트라는 철학자가 있는데, 사회철학자가 있는데 정치철학을 하신 분이에요. 이 양반이 인권이라는 말에 대해서 가장 신랄한 냉소를 날렸던 정치철학자 중에 한 사람이시거든요. 이 사람이 뭐라 그랬냐 하면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세상에 인권 따위라는 건 없다는 거예요. 왜 인권이 없냐면 이 인권이라는 것에서 사람을 의미하는데 사람이 타이틀이 없이 순수한 인간이 되었을 때 그 인간은 아무런 권리를 누릴 수가 없다, 라는 게 그 사람이 발견한 통찰이었어요. 예를 들면은 제가 남자고 대한민국 국민이고 무슨 무슨 대학을 졸업했고 무슨 무슨 학교에서 강의를 하고 있고 이런 타이틀이 제가 죽 있잖아요, 그죠? 이런 타이틀이 있을 때에만 우리는 그 타이틀에 걸맞는 어떤 권리를 가질 수가 있다는 거예요. 만약에 저한테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국적을 박탈하고 학교 강사라는 신분도 박탈하고 남자라는 것도 박탈하고 다 박탈해 버리고 그냥 순수한 인간, 이것을 발가벗은 인간, 벌거벗은 인간이라고 표현하거든요. 영어로 이제 베어 라이프(bare life)라고 그러는데. bare life, 완전히 헐벗은 인간이 되었었을 때 그 인간에게 무슨 권리가 있느냐, 라는 게 한나 아렌트가 발견한 거죠.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이 벌거벗은 인간의 전형이 바로 난민인 거죠. 사실 여러분들 난민촌 가보시면 알겠지만은 난민촌에 무슨 권리가 있어요? 그 사람들 뭐, 유엔 인권선언이라든가 이런 데서 이런 권리 저런 권리 막 다 있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그 사람들 뭐 거주 이전의 자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정치 결사의 자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거의 아무런 권리가 없거든요. 다만 이 사람들은 우리가 인권의 주체다, 뭐 이런 막 미사여구와 수사와 이런 걸 얘기를 하지만 사실 이 사람들을 주로 돌보고 있는 데는 유엔에서도 인권이 아니라 인도주의 유엔 난민위원회, 에이치씨알(HCR)이라든가, HCR 맞나, 맨날 헷갈려서, 어쨌든 난민위원회에서 다루고 있거든요. 거기에서는 인권을 중심으로 해서 다루는 게 아니라 인도주의, 휴머니테리언 어시스턴트(humanitarian assistant)라고 하는 인도주의적 도움을 주로 주는 거죠. 인도주의적 도움이란 게 뭐, 아주 기초적인 생활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잖아요, 그죠? 그런 기초적인 생활이라고 하는 걸로 보면 난민들이 가지고 있는 겨우 목숨만 부지할 수 있는 요 정도 수준의 삶을 유지하는. 근데 이건 사실 아주 신랄하게 얘기하더라도 이게 무슨 인권이냐 이게 동물들의 권리지, 라고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인권이라고 그랬을 때 인간의 고상함, 우아함, 존엄함 이거 하고는 아무 상관없고 다만 동물로서의 권리만, 생명만 유지하는 이런 권리를 가지고 있다, 라고 하는 게 한나 아렌트가 발견했던 통찰 중의 하나였어요. 그러면서 인권이라는 것은 결국은 시민권이다, 시민권이 아닌 인권이라는 게 어디 있냐, 라고 하는. 즉 시민이 되는 경우에만 권리를 가질 수가 있다는 거죠. 사실은 참 맞는 얘기죠. 한국 국민이기 때문에 대한민국 국민이고 대한민국 시민이기 때문에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헌법이 보장하는 테두리 안에서 권리를 가질 수가 있는 거고.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이 국체가, 국가정체, 정치체, 이 국체가 다른 나라들하고 맺은 협약으로서의 국제법, 그 국제법의 보호를 받을 수가 있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인권이란 말은 사기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런 식으로까지 좀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말씀드릴 수가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시민으로서의 권리라고 봐야 되는데 그럼 이 시민으로서의 권리가 뭐냐? 해서 제일 중요한 게 누가 시민이냐는 거거든요. 이게 아주 핵심적인 얘기가 될 수밖에 없는. 오늘 우리가 얘기하는 감시사회라고 하는 것과 관련해 가지고 그냥 직결해 가지고 바로 얘기하면 시민권의 출발이 어떻게 보면은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라고 얘기를 할 수가 있는 거예요.

우리가 뭐 시민권이라고 하면 정치에 참여할 권리, 무슨 권리, 무슨 권리 이렇게 얘기하지만 애초에 출발 자체를 좀 확대해 가지고. 제 얘기가 아니라 프라이버시의 권리라고 하는 책을 쓰신 이진우 선생님이라든가 이런 분들의 주장에 따르면, 애초에 이게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였다는 거예요. 이게 왜 그렇게 되는 거냐 하면 시민이 무엇인가, 했었을 때 이 시민의 핵심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사람이라는 거예요.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개인이죠.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인, 자기의 생각을 가지고 판단을 하고 그 판단을 가지고 어떤 정치에 참여하거나 아니면 나한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결정하거나 어떤 사람들하고 협상을 하거나 할 수 있는 사람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 이런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라고 하는 게 시민의 전제가 되어져 있어요. 만약에,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투표하러 가 가지고 누가 돈 줘 가지고 돈 받아 가지고 가서 투표하면 안 되잖아요, 그죠? 왜 안 되냐 하면 내가 돈 받아 가지고 투표한다는 건 타율적인 거잖아요? 썩은 거잖아요? 썩었다라고 표현을 하잖아요. 전혀 자율적이지도 않고 독립적이지도 않다는 거예요. 대전제가, 우리가 말하는 인권, 시민권이라고 하는 것에서 대전제가 뭐냐 하면 바로 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라는 것. 이게 전제가 돼야 되는. 이게 전제가 되기 위해서는 다른 이 신분제도가 철폐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신분제도 하에서는 모두가 다 시민이 아니라 신민이었죠, 그죠? 왕국의 신민이었다, 라고 얘기를 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 신민들 모두가 시민이 되는 조건 하에서만 사실은 인권이든 시민권이든 이런 개념이 성립할 수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러면 이 시민들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 된다는 건 무슨 말이냐 하면, 이것과 관련해 가지고 굉장히 재미있는 미시사를 전공했던 인드부르크(Carlo Ginzburg)라든가 이런 사람들이 쓴 재미있는 책들이 있어요. 영화로도 있는데 <마틴 기어의 귀향>(Le Retour De Martin Guerre)이라는 영화가 있거든요. 그게 그 프랑스의 미시사 전공하는 사람이 쓴 책 제목이에요, <마르탱 게르의 귀향>(The Return of Martin Guerre)이라고. 그거라든가 아니면 <구더기와 치즈> 이런 책들을 보면 비로소 그 이전까지는 세상이 어떤가, 이런 거에 대해서 내가 마음대로 생각할 자유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 <치즈와 구더기>를 보면은 되게 재밌는 게 그 방앗간인가 그 주인이 마녀재판에 회부되어 가지고 마녀재판을 당하거든요. 나중에 결국은 죽는데. 그 사람이 뭐라고 주장을 하냐 하면은 우주는 치즈 안에서 치즈가 부글부글 끓어 가지고 구더기가 생기는 것처럼 그런 식으로 우주가 탄생했다, 라는 것을 이 종교재판관들 앞에서 계속 주장을 해요. 근데 이건 이제 그리스도교 율법이라든가 교리라든가 정면으로 어긋나는 일이잖아요, 그죠? 그런 식으로 이전에는 교회가 이렇다, 이렇다, 라고 애기하면은 맹목적으로 전혀 자율적이지도 독립적이지도 않게 무조건 받아들여야 됐던 거죠. 근데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 된다고 하는 거는 내 인생에 대해서 또는 우리 사회에 대해서 크게는 이 우주에 대해서 자기 나름의 판단을 가진다는 뜻이 되는 거예요. 근데 이 마녀재판을 당하면서도 이 사람이 전혀 교회가 가르쳐주지 않았던 그런 뭐 치즈 안에서 구더기가 끓어가지고 끊는 것처럼 우주가 만들어진다, 라는 자기 나름의 독창적인 우주관, 이걸 주장할 수가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이제 그 재판관이 너는 도대체 어디로부터 그런 생각을 했냐, 이러면서 끊임없이 배후가 누군가를 캐물어요. 우리 왜 끌려가면 도대체 배후가 누구냐, 이런 식으로 캐묻는 것처럼. 대부분 그렇게 끊임없이 캐묻는데 이 사람이 뭐라 그러냐면, 아니 나는 그냥 이 책 보고 저 책 보고 하다보니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 당시 이제 출판물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그런 것들을 보고 자기 나름대로 우주에 대한 관을 가지게 된 거죠. 마찬가지로 이 <마르탱 게르의 귀향>도 보면 별로 이렇게 친하지 않은 남편인데 남편이 실종이 돼요. 군대를 갔나 어쩌고 실종이 됐는데. 딴 놈이 나타나 가지고 내가 네 남편이다, 라고 주장을 해요. 알고 보니, 나중에 추측하기로는 부인이 이 사람이 자기 남편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아는데 같이 살아요. 같이 살다가 나중에 진짜 남편이 돌아오거든요. 그래가지고 재판이 벌어져요. 그런데 이 여자가 난 몰랐다, 난 사기 당했다, 이렇게 주장을 해요. 근데 이게 근대 사회에서 되게 중요한 자료로 쳐 지는 게 뭐냐 하면 여자가 처음으로 자기의 인생을 선택한 걸로 나온다는 거죠. 그 이전에는 여자가 자기 삶을 기획한다는 게 불가능하잖아요, 그죠? 그런데 저 놈이 내 남편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 그쪽 남편도 이 남편이라고 주장하는 사기꾼이 굉장히 능글능글하면서, 뭐 기록에 보면은 되게 잘해줬대요. 그러니까 진짜 남편이 아니면 어떠냐, 나한테 잘해주는데. 이래가지고 같이 산 것처럼 되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냐 하면 삶이라고 하는 것을 비로소, 이전에는 운명이라고 받아들였었는데 사람들이, 이건 운명이잖아요, 지금. 내가 방앗간집 딸로 태어났으면 옆집 방앗간집 아들과 결혼해야 되는 것, 이게 운명인데 그런 운명으로 삶을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내가 기획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인생이라고 하는 게 드디어 기획의 대상이 되어 버린 거잖아요. 그 기획의 주체가 누구냐 하면 개인, 나인 거죠. 그런데 이 나가 인생을 이렇게 기획을 하려면 반드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야지만 내 인생을 기획할 수가 있는 거잖아요, 그죠? 자기 인생을, 이걸 우리가 이제 생애사라고 그러는데, 생애사적 기획을 인간들이 하기 시작을 하는 거예요. 자, 이렇게 생애사적 기획을 하려면 어때요? 나의 판단이 있어야 되겠죠, 그죠? 내 판단 없이 남이 시키는 대로 했었을 때 그거를 우리가 자기 기획이라고 얘기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라고 하는 존재는 어떤 처지에 있냐 하면, 이게 세계 내지는 외부라고 합시다. 외부가 있고 나, 이 개인이죠?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라고 하는 나가 있으면은. 이전에는 교회가 이거 뭐 교회라고 치면은 교회가 시키는 대로 다 받아들여 가지고 생각을 해야 되잖아요, 이건. 그런데 자율적이고 독립적이라는 건 뭐예요? 얘가 시키는 대로 안하는 거잖아요, 그죠? 그렇게 되면 나는 이 세계와 항상 어떤 상태에 빠져야 되냐면 불화 상태에 빠져 있어야 돼요. 내가 이 세상이 시키는 대로 막 따라하는 건 중세 때에는, 중세 때의 교양이라고 하는 건 교양 있는 사람, 우아한 사람, 고상한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사회가 시키는 대로 사회의 윤리, 사회의 에티켓, 그걸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 있잖아요? 이런 사람을 고상한 사람이라고 했는데. 헤겔도 그런 얘기를 하지만은. 오히려 근대에 넘어와 가지고 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주체가 되려면 끊임없이 의심을 해야 되는 거예요. 저것들이 나한테 무슨 지금 사기를 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쟤가 지금 뭐 인간은 이렇다, 라고 얘기 하는데 그게 정말 인간이 그런 건가, 저 새끼가 지금 나한테 사기를 치고 있는 건 아닌가, 이런 식으로 끊임없이 의심하고 불화해야 되는. 이 의심이 그 유명한 데카르트가 말한 의심하는 주체,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있잖아요? 거기에서 방법적 회의니 뭐니 하는 이 의심이라는 게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거죠. 의심하지 않는 사람은 주체가 아니에요.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주체가 아닌 거죠. 시키면 네, 하고 쫓아가고. 우리 왜 그 또 중고등학교 때 선생님 시키는 대로 다 하는 애들 제일 재수 없어 하잖아요. (웃음) 저 새끼 저거는 선생님 시키는 대로 다하고 앉아 있고. 똘마니, 꼬붕이라고 불렀던 것 중에 하나가 주체가 아니라는 거죠. 오히려 반항하는 애들, 이런 애들 약간 좀 멋있어 하고 <말죽거리 잔혹사>에 나오는 그런 애들 보면 되게 멋있어 하는 이유도 우리가 그걸 굉장히 중요한 미덕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가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항상 이렇게 불화상태에 빠져 있어야 돼요. 이렇게 내가 불화상태에 빠져 있을 때 비로소 내가 뭐가 되냐면 진정한 인간이 되는 거예요. 우리 되게 좋아하는 진정성 있다, 이번에 학생들하고 <나는 가수다>를 가지고 이제 토론을 쭉 하고 있는데 왜 <나는 가수다>에 열광을 하냐, 했더니 애들 학생들 중에 그렇게 얘기하는 애들 있어요. 자기 막 <나가수> 볼 때 몰랐는데 다 보고 났더니 옆에 휴지가 이만큼 쌓여 있더래요. 감동 받아 가지고 너무 울면서 계속 이렇게 휴지로 눈물을 닦았는데 몰랐대요, 완전히 몰입을 해 가지고. 그래서 나중에 보니까 휴지가 이만큼 쌓여 있더라면서 어쩌구저쩌구 하는데. 걔네들이 이 <나가수>에 나오는 임재범이라든가 이런 사람들의 노래 있잖아요? 그걸 보고 정말 이제까지 내가 듣던 건 노래가 아니었다, 아이돌 노래가 그것도 노래냐, 쓰레기다, 막 이런 식으로 글을 쓰면서 임재범이야말로 진짜 진정한 노래다, 라고 말 할 때 진정한 노래라고 하는 그 진정성 있잖아요. 이게 어떻게 만들어지는 거냐, 이 진정성이라는 게. 오로지 세상과 불화할 때만. 세상에 너무 이렇게 딱 달라붙어 사는 사람을 우리가 진정한 존재라고 안 부르죠? 그런 존재를 속물이라고 하잖아요, 속물. 속물이라고 한단 말이에요. 세상에 너무 막 그대로 하는 사람들을. 속물이 아니라 진정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끊임없이 불화 상태에 빠져 있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근데 약간 여담이기는 한데 정말로 진정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진정성이라고 하는 걸 극단까지 밀어붙이는. 자살할 수밖에 없어요. 세상과 끝끝내 불화하게 된다면 숨 쉬는 것도 사실은 일종의 타협이잖아요. 저도 뭐 지금 여기 지갑 있잖아요? 자본주의랑 타협하고 있는 증거잖아요? 그지 않아요? 제가 지금 아이폰 쓰고 있는데 이거 우리 스티브 잡스의 감시 네트워크에 제가 제 발로 종속되어 가지고 그냥 살아간다는 증거. 제가 나중에 죽어 가지고 심판 날에 가서 너는 어떻게 살았느냐 하면, 보니까 너는 뭐 다 항복하고 살았네. 잡스한테 항복하고 자본주의에 항복하고 감시사회에 항복하고. 항복하고 살았다는 증거물 밖에 안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진정한 존재가 된다, 라고 하면 이건 죽을 수밖에 없어요. 죽는 것도 맞아 죽는 게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우리가 비로소 진정한 존재가 되는 거예요. 사실 여러분들이, 이 진정한 존재의 대표 어떤 사람들이 있어요? 7~80년대의 열사들. 그 다음에 그 누구냐, 가수 중에 요절한 애. 김현식. 그런 사람들 볼 때 인생이 어떻고 삶에 대해서 새롭게, 어떤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비장함, 이런 것들이 있잖아요. 그 누구지? 집 떠나와, 노래 부른 사람. 김광석. 이런 요절한 사람을 볼 때 우리가 갑자기 옷깃이 여미어지고, 이런 것 중에 하나가 우리가 그 안에서 뭘 보느냐 하면 진정성이란 걸 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런데 이 진정성은 다시 말하지만 어디로부터 나오느냐 하면 이 세상과의 불화라고 하는 걸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는 거죠.

근데 그러면 이것이 왜 프라이버시 문제와 연결이 되는가, 하면 이 진정성의 공간은 세상 안에 있을 때는 도저히 찾아질 수가 없는 거예요. 아까 말씀드린 것, 세상 안에 있는 동안에 저 주민등록증, 국가와 타협했죠. 신용카드, 자본과 타협, 금융자본 그냥 자본도 아니라 금융자본과 타협했죠. 오만 것들이랑 타협했다는 증거물들만 여기 다 가지고 있는 거잖아요, 그죠? 그렇기 때문에 세상 안에 들어가 가지고는 우리는 끊임없이 타협하고 협상하는 존재가 될 수밖에 없어요. 숨 쉬고 살아가려면. 그런데 그게 아니라 정말로 진정한 존재, 내가 불화하기 위해 가지고 우리는 세상으로부터 물러나야 되는, 그죠? 완전히 물러나야 되는 거죠. 진짜 완전히 물러나면 가시는 거고, 그 정도까지 가는 게 아니라 물러나야 되는데. 물러나서 내가 정말 누구인가, 그리고 나는 정말 무엇을 내 인생에서 어떻게 살아가고자 하는 것인가, 하는 걸 생각하는 그 공간, 그 공간을 내면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속물들, 내면이 없는 인간들을 우리가 제일 경멸하잖아요, 그죠? 이 사람 만나면, 아 이것도 맞는 예기네, 저 사람 만나면 그것도 맞는 얘기네, 저 사람 만나면 또 그것도 맞는 얘기네. 이건 둘 중에 하나죠. 속물 아니면 진짜 득도한 사람. 별로 이게 진짜 득도한 사람일 가능성은 별로 없는 관계로 속물에 가깝겠죠, 그죠? 그렇게 우리가 내면이라고 하는 것을 대단히 중요시 여기는 거고 시민이 된다는 것의 핵심,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 된다는 것의 핵심이 뭐냐면 내면을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 내면이 다른 말로 하면 프라이버시에요. 이게 왜 프라이버시냐 하면 내가 막 대단히 도를 닦고 영성이 충만하고 고도의 인내력을 가지고 이러면 예를 들면 제가 국민학교 3학년 때까지 단칸 셋방에 살았는데, 단칸 셋방에 살면서도 ‘옴’ 하면서 앉아 있으면 제 내면의 세계를 찾을 수가 있겠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그냥 내가 애초부터 그런 데서 태어났다 하면, 한 방에 요만한 방에 다섯 명 여섯 명 살면서 거기서 내면의 세계를 찾기가 과히 쉽지는 않잖아요, 그죠? 그렇기 때문에 이 내면의 세계를 가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뭐가 필요하냐 하면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해요. 그리고 이 자기만의 공간은 나의 왕국이에요. 거기선 내가 왕이죠, 그죠? 여러분들 이제 집에 가 가지고 각자 방들이 만약에 있으시다면 그 방에 들어가는 순간 여기는 제 방이죠, kingdom of 기호, 기호의 왕국인거죠. 아무도 아무도 간섭을 할 수 없고 간섭을 해서도 안 되고. 거기에 뭐 이명박 아니라 이명박 할아버지가 온다고 그러더라도 니 뭔데 남의 집에 이렇게 함부로 기어 들어오느냐, 라고 내가 버럭 화를 낼 수가 있는 거잖아요, 그죠? 그건 왜 그러냐 하면 이 자기만의 공간이라고 하는 즉 내면이 있기 위해서는 이거의 물질화된 형태가 이 자기만의 공간이거든요. 자기만의 공간은 나의 왕국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사실 우리가 공화제 국가를 살아간다고 하지만 공화제 국가라고 하는 건 아주 잘게 쪼개 보면 개인들의 왕국의 연합체에요, 일종의. 시민이라고 하는 각각의 왕국, 자기 방 안에 있는 왕국들이 나의 왕국을 지키기 위해 가지고 그래 너도 왕이구나, 나도 왕이다. 너도 집에 가면 네가 왕, 나도 집에 가면 내가 왕. 그러니까 이 왕국들을 지키기 위해서 서로 서로가 왕국을 간섭하고 개입하지 못하는 룰로 하려고 하다보니까 우리를 막 다 간섭하는 왕, 걔는 없어져야 되겠거든요. 확 죽여 버리고 공화제라고 하는 걸 만들어 놓은 거죠.

자, 그런 것처럼 자기만의 공간이 있을 때만이 우리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 될 수 있고 그럴 경우만 시민이 될 수가 있는 거고 이 시민이 아까 이 시민이란 게 인권의 기본적인 정체가 되는 거예요. 이렇기 때문에 근대 초창기에는 소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투표권을 안줬어요. 너무 당연한 귀결이었어요. 왜냐하면 소유가 없다는 건, 그 소유는 특히 부동산이거든요, 집. 다른 말로 인두세 내고 이런 것 있잖아요. 소유가 없으면 자기만의 공간도 없는 사람이고 자기만의 공간이 없는 사람은 내면이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누가 돈 주고 투표하라 그러면, 감사합니다, 고무신 두 켤레, 막걸리 몇 개 이런 걸로 부정투표 있잖아요, 하는 것처럼 타락하기 쉬운 인간들이라고 생각한 거죠. 오로지 자기 소유가 있는 사람만이 그 소유를 지키기 위해서 정치를 할 자격이 있다, 이렇게 바라본 것이거든요. 이런 식으로 본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인권이라고 하는 것, 시민권의 핵심은 결국은 뭐냐 하면 내 내면을 지키기 위해서 그 누구도 나의 프라이버시라고 하는 것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 이런 걸로 귀결이 되는 거예요. 이것은 진보적인 사람이건, 진보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권리의 문제를 다 소유의 문제로 돌리고 하는 것에 대해서 반감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근대인권의 대전제로 설정이 되어져 있는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자율적이고 개인적인 독립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 이게 프라이버시인 거고. 프라이버시라고 하는 건 가장 핵심적인 것은 영역의 문제가 있는 거예요. 우리 방, 내 집, 또는 또 하나가 뭐예요? 정보. 내 고등학교 때 성적, 뭐 내가 어저께 어디를 갔는가 하는 거 있잖아요. 가장 중요한 건 이 영역과 정보라는 것이 내 허락 없이 아무나 함부로 액세스하거나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 라는 게 가장 기본적인 겁니다. 이게 우리가 뭐 인권 되게 고상하게 어쩌고저쩌고 얘기하지만 이거를 떠나 가지고는 설명을 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땜에 약간 좌파적인 분들은 기분 나쁘겠지만. 인권의 핵심은 소유권이에요. 프라이버시 권리의 핵심도 소유권이에요. 이게 내 소유이기 때문에 내 모든 내 소유인 거고, 내 기록들은 나의 소유이기 때문에 내 소유를 딴 놈들이 딴 사람들이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가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사실 좀 급진적인 인권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소유권 바깥에서 인권이라고 하는 것, 권리라고 하는 것,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가, 하는 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로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자, 그런데 이 프라이버시라고 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해가지고 죽 전개해져 왔죠, 왔는데. 여기에 대대적인 변화를 가하는 사건들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자, 그게 뭐냐 하면 사람들이 갑자기 내가 프라이버시가 되게 중요하다, 라고 생각을 하죠, 그죠? 프라이버시가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이 프라이버시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내 프라이버시가 무너질지도 모른다, 라고 하는 공포감에 시달리게 되는 거예요. 그 전에 잠깐 말씀 더 드리면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국가권력이란 게 두 종류의 국가권력이 있을 수 있어요. 하나는 조지오웰의 <1984>나 <동물농장> 이런 데서 나오는 것처럼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전체주의. 즉 프라이버시 자체를 말살해 버리는 거죠. 아예 프라이버시 자체를 완전히 말살. 게슈타포라든가 아니면 뭐 비밀경찰 이런 사람들이 아무데나 막 들어가지고 마구 마구 내 권리를 침해하게 되는 거 있잖아요. 이런 게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전체주의 정권이에요. 그런데 대부분 이 전체주의 정권의 이런 그 프라이버시 말살 정책은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요. 왜 실패 하냐 하면 사람들이, 이게 되게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는 건데, 이렇게 전체주의적으로 침해하게 되면 사람들이 아, 예, 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 거예요. 대표적으로는 이런 식으로 볼 수가 있어요. 우리 집이, 이거 되게 유명한 얘긴데, 독일에서 우리 집이 식료품점을 한다고 생각해봐요. 우리 집의 벽을 동독의 구호로 도배해 버리는 거예요. 사회주의는 위대하다 자본주의는 물러가라, 이런 것 있잖아요. 막 도배를 해 놓으면 사람들이 참 충실한 공산주의자시군요, 이러면서 간섭을 안 한다는 거예요. 그 안에 들어가서 그 사람을 보고 사회주의가 뭐예요, 라고 이렇게 물어보면, 사회주의가 뭐냐 물어보면 저, 관심 없는데요, 라고 얘기하는 거죠. 그럼 왜 이렇게 붙여 놨느냐, 물어보잖아요. 물어보면 뭐라 그러냐 하면 아, 이러면 안전하기 때문에 붙여 놓는 거다, 라고 얘기를 해요. 이러면서 전체주의적으로 프라이버시를 공격했을 경우에 아주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게 뭐냐 하면 공적영역과 사적영역이 완전히 이원화해버리는 현상이 벌어지는 거죠.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공적영역에서 뭘 하느냐 하면 연극을 하기 시작해요. 거기서 완전히 충실한 이 사회주의자인 것처럼 내지는 충실한 나치인 것처럼 막 하고. 이것도 예를 들면 이슬람 무슬림 같은 경우도 어떻겠어요? 이란 같은 경우가 되게 심각한 문제가 있거든요, 이런 문제. 밖에 가서 알라 알라 하면서 이렇게 살아요. 그래서 얼마 전에 제가 인류학회에서 발표하는 데를 갔는데 너무 재미있었는데. 밖에서 알라 알라 알라 이러다가 집에만 오면 홀딱 벗고, 그 젊은 애들이 뭐냐 이, 파티를 하는데 거의 헐벗어서 파티를 하고 있더라고요. 빤스만 입고 다 막, 술 먹고 난장판이에요. 그리고 근데 그 난장판을 벌이다가 떴다 이러면, 온 몸을 그냥 차도르로 휙휙 감아 가지고 다니는 거죠. 자, 이런 식으로 사실 동독에서도 그러고 소련에서도 그러고 지금 이란에서도 그러고 이런 식으로 공과 사라는 것이 이분화 되어 버리면 이 사적영역을 공적영역이 침해하기가 굉장히 힘들어요. 왜냐면 이 사람들이 알거든요. 공적영역에서는 어떻게 움직여야 되는가. 그러다 보니 초창기에 요번에 2년 전에 이란에서 대통령선거 있었잖아요 대통령선거 때 그 반대파들, 개혁파들이 데모할 때 외쳤던 구호가 신은 위대하다예요. 그 어떻게 잡아가겠어요, 알라는 위대하다는데. 그게 신정국가의 모토잖아요. 신정국가에서 사람들이 데모하면서 외치는 구호가 신은 위대하다. 그리고 너네 모여서 데모하지 마, 그러면 집에 다 흩어져 가지고 집 안에 앉아 가지고 한 집에서 알라는 위대하다, 그러면 옆집에서 받아서 알라는 위대하다, 그러고 계속 알라는 위대하다, 알라는 위대하다, 그런 식으로 데모를 했다고 그러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잡아가려고 하면 알라가 위대하다고 그러는데 왜 나를 잡아 가냐, 라고 얘기하는데. 그 알라는 위대하다는 그 말속에 담겨 있는 함의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이게 전체주의적인 방식.

두 번째 방식이 뭐냐 하면 완전한 투명사회를 만드는 거예요. 이 투명사회라고 하는 게 민주주의에요. 권력을, 권력이 움직이는 것을 완전하게 투명하게 만들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국가권력이나 이런 걸 감시를 철저히 하고 어쩌구저쩌구 하면은 이게 국가가 우리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못할 거다,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은 지난 시간에 최철웅 씨가 판옵티콘이랑 이런 저런 얘기를 아마 했을 거예요. 이 투명한 사회, 민주주의의 결과가 뭐로 귀결이 되는가 하면 판옵티콘으로 귀결이 되는 거죠. 왜냐하면 걔네들이 안 보이면서 국민의 자발적인 동의를 받아 가지고. 우리도 왜 씨씨티비(CCTV) 엄청나게 깔려 있잖아요, 그죠? 이런 식으로 CCTV를 깔기 시작하면 이거는 전체주의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이야기가 전개가 되기 시작하는 것이거든요. 이거는 싸워가지고 없애기가 되게 쉬워요. 그런데 얘는 굉장히 힘든데. 왜냐면 우리 스스로가 자발적으로 헌납해 버린 것이거든요. 왜 이런 식으로 이런 역설, 투명한 사회를 만들고 민주주의를 만들고 이러면은 당연히 우리 프라이버시가 더 보호될 줄 알았는데 이게 더 투명해지면서 문제가 만들어지는 이런 역설이 벌어졌는가, 하는 것을 아주 잘 보여주는 게, 제가 사실 이 단어를 되게 싫어하는, 쓰기 싫어하는데 어쩔 수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어요. 왜냐하면 이런 정치제도를 설명하는 거기 때문에. 그냥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이 체제의 등장과 함께 이게 아주 가속화되기 시작을 하거든요.

자, 이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걸 이해하기 위해서 신자유주의 이전을 아셔야 하는데 신자유주의 이전의 자본주의를 케인즈주의, 대부분은 이제 복지국가, 내지는 케인즈주의라고 얘기를 할 수가 있어요. 케인즈주의와 신자유주의 이후에 국가의 역할이라고 하는 게 180도로 달라지거든요. 저의 얘기가 아니라 지그문트 바우만이라고 영국의 사회학자가 하는 말인데요. 케인즈주의 때에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일자리를 만드는 거였어요. 그리고 일자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 일자리로부터 탈락한 사람들 있잖아요? 그 사람들을 위해 가지고는 복지제도를 제공하는 게 가장 중요한 국가의 기능, 그리고 역할이었거든요. 이거를 다른 말로는 어떻게 표현하느냐 하면 국가의 가장 큰 역할은 시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었어요. 시장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규제가 되지 않으면 일자리를 더 만들려고 하지도 않고 복지를 더 하려고 하지도 않고 그러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국민들을 보호하고 국민들을 무엇으로부터 보호하려고 하는가 하면 시장으로부터 보호해야겠다. 그래서 시장을 규제하고 시장에 여러 가지 제약을 걸고 이러 이러한 역할들을 하는 게 그 케인즈주의의 역할이었다고 볼 수가 있어요. 그런데 이건 뭐 역사시간이나 이런 게 아니니까요, 중간과정 생략. 여차여차여차 해 가지고 케인즈주의가 위기를 겪게 되거든요. 케인즈주의가 위기를 겪게 되면서 신자유주의로 넘어오는데 신자유주의는 다른 말로 하면 우리 지금 이명박정권이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정권이라고 보실 수, 전형적이지도 않아요, 아주 천박한 진짜 그 신자유주의 정권인데. 신자유주의라는 말이 민망할 정도로 무식한 정권이에요. 꼭 이런 토를 달아야 돼요. 안 그러면 사람들이 진짜 그 신자유주의인줄 착각을 하기 때문에. 이건 다른 말로 하면 시장 근본주의에요. 뭐든지 시장의 자유에 맡겨야 된다, 라고 주장을 하거든요. 시장근본주의라는 건, 여기에서 제일 중요한 게 뭐겠어요? 여기는 시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거잖아요. 여기는 시장을 보호하는 게 가장 중요한 과제가 돼요. 시장 자체를 보호하는 게 중요한 것이지 시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는 게 중요한 과제가 아니게 되는 거죠. 자, 그러면 이렇게 시장을 보호하는 체제가 되다 보니까 원래 국가와 시민이라는 둘 사이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해야 될 것인가, 이게 되게 애매하잖아요, 그죠? 그죠? 그러다보니까 국가가 왜 필요하냐, 도대체 이 국가가 왜 필요하냐, 해가지고 국가를 축소해야 된다, 시장주의자들 중심으로 해가지고 이제 이러저러한 얘기들을 되게 많이 하게 되는 거죠.

이때쯤 되어 가지고 국가가 자기 밥그릇을 새로 찾기 시작해. 이전에는 국가의 밥그릇이 뭐였어요? 일자리와 복지 만드는 거, 이게 국가의 밥그릇이었잖아요, 그죠? 이제 이 상태로 넘어가니까 국가가 새로운 밥그릇을 찾아야 되는데, 그 밥그릇의 이름이 뭐냐 하면 안보에요. 우리 사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 그리고 여러분 각자 각자의 삶이 지금 위험과 위기에 처해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적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해야 된다, 그죠? 이러한 이데올로기와 이러한 생각이 유포되기 시작하죠. 자, 여러분들도 한번 생각해 보세요. 여러분들 불안하지 않으세요, 사는 것. 이게 아예 그 바닥에 내려가면 불안하지도 않아요. 어차피 세상 그렇지 뭐, 이러고 사는데. 지금 대학생들은, 대학생들 취직이 안 되잖아요. 대학생들은 대학생들대로, 제가 농담처럼 이런 얘기를 하는데. 유치원 다닐 때는 초등학교 좋은 초등학교로 가기 위해 가지고 유치원 다니는 애들도 위염 걸리고. 국민학교 가면은 국제중학교 가야 되기 때문에 경쟁하다가 위염 걸리고. 국제중학교 가고 나면은 특목고를 가야 되기 때문에 위염 걸리고. 특목고 가면 서울대를 가야 되니까 위염 걸리고. 서울대 가면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위염 걸리고. 정규직이 되면 어떻게든 명예퇴직을 안 당해야 되기 때문에 위염 걸리고. 이런 식으로 우리는 생애사 전체가 위험과 이런 것에 노출되어져 있잖아요, 그죠? 너무 재밌는 게 과학기술이라는 게 우리 시대만큼 발달한 때가 없었겠죠? 인류의 역사에서. 그런데 이 횡행하고 있는 이 재난 영화들. 자연재해. 이걸 보면서 엄청 삶이라는 게 불안하다고 생각을 하고 있잖아요? 아시는 것처럼 이번에 일본에 왔던 쓰나미, 지진이 얼마였죠? 지진강도가? 9.2인가 그랬잖아요? 작년에 일본에서 영화가 지진과 관련된 영화가 하나 만들어졌는데 그 영화가 8.0이 오는 걸 전제로 해가지고 영화를 하나 만들었어요. 그래서 그 영화 개봉되고 나서 일본에서 어떤 평가를 받았느냐면 이보다 더 리얼할 수는 없다, 진정한 재난영화의 상륙, 뭐 이제 이런 식으로 광고를 했대요. 1년 만에 9.2가 진짜 이렇게 찾아와 가지고 사람들이 뭐라고 평가를 하느냐 하면 언제나 현실은 사람들의 상상력보다 더 상상력을 가져다 준다, 라는 얘기를 하거든요. 자, 그런 것처럼 자연재해, 아니면 자연재해건 아니면 또 묻지마 살인, 이런 것 불안하잖아요? 여기 여성분들 같은 경우에는 밤에 한 12시나 이런 때 집에 들어가기 굉장히 불안하죠? 학교는 또 어때요? 제가 볼 때는 여자아이를 자녀로 가지고 있는 분들 같은 경우는 온 세상이 흉기라고 생각하기 딱 좋잖아요, 그죠? 그런 식으로 우리 삶 전체가 이전에는 뭐였었냐 하면, 제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의 최고 목표가 뭐였어요, 생애라고 하는 걸 기획하는 거였잖아요? 자, 삶을 기획하기 위해서, 이게 아주 핵심적인 건데, 삶을 기획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삶이 계획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기획이 되려면 계획이 되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 삶을 계획하려면 가장 필요한 게 뭐냐 하면 삶이 예측 가능해야 돼요. 인간의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존재가 되는 근거는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게 우리의 미래라고 하는 게 예측 가능할 때만 그 예측되는 거에 따라 가지고 내가 내 삶을 기획할 수가 있겠죠? 이렇게 예측 가능할 때 우리 삶, 내 삶이라고 하는 건 지속가능한 상태가 되는 거예요. 요게 한 묶음이에요. 기획 가능한 것, 계획 가능한 것, 예측되어야 되는 것, 지속가능한 것, 이게 한 묶음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인간이 나라는 걸 제외하고 나머지 바깥을 무조건 어떻게 하려고 하냐 하면 바깥, 자연이든 사회든 누구든 권력이든 통제하려고 하는 거예요. 우리가 인공위성 띄워 가지고 자연 흐름 이런 것 보고 하는 것들도 다 뭘 하기 위한 거예요? 예측하기 위한 거잖아요, 그죠? 예측을 해가지고 뭘 하려고 하는가? 통제를 하겠다는 거예요. 그렇게 통제가 되어야지만 우리 인간의 삶이라고 하는 게 지속성을 가질 수 있다, 라고 생각을. 바로 이 통제, 내 삶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띄워 놓은 이 통제라고 하는 것이 신자유주의에 들어와 가지고 급속도로 확산이 되는 거죠. 다른 한편에서는 왜 그러냐 하면 신자유주의 이후가 되면 이제 더 이상 시장으로부터 국가가 나를 보호해주는 게 아니라 국가가 시장을 보호하기 시작하잖아요? 그렇다 보니 정규직 없어지고 비정규직 되고 어쩌구저쩌구. 이런 일들이 벌어지다 보니까 우리 삶이 어때요, 예측 가능하지가 않죠, 그죠? 이렇게 되니까 우리는 전반적으로 이 불안이라고 하는 거에 빠져들 수밖에. 우리 한국사람들 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의 정서를 한 마디로 정리하라고 하면 다 불안상태에 있잖아요. 오죽하면 <불안증폭사회>라는 책이 나왔겠습니까? 그리고 불안이라고 하는 주제로 책이 엄청나게 나오거든요. 재밌는 건 이 불안에 대한 감정이 증폭되면 증폭될수록 반대편에서 불안해하지 말고 살아야 된다는 산업이 급속도로 발달을 할 수 밖에 없어요. 불안해 하니까 네가 지금 성공하지 못하는 거다, 불안해 하니까 네 삶이 지금 비참한 거다, 그러니까 불안해하지 말고 긍정적으로 사고해라. 이거를 위기를 기회로 삼아라, 이런 얘기를 끊임없이 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나왔던 아주 훌륭한 책이 <긍정의 배신>이라고. 그렇게 긍정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어떻게 너를 지금 배신하고 우리의 삶을 배신하고 있는가 하는 게 나오거든요. 아시는 것처럼 이렇게 이 상황이 되니까 긍정적으로 살아라, 해가지고 나오는 게 뭐에요? 유명한 책. 그 많던 치즈는 누가 다 옮겼을까, 아니 내 치즈는 누가 옮겼는가 거기도 보면은 생쥐 한 마리는 치즈 옮겨지고 난 다음에 뭐야, 어느 놈이 훔쳐갔어, 하고 불평불만만 하고 있고 다른 놈은 새로운 치즈를 발견하기 위해 떠난다, 이런 거고. <시크릿> 그 책 뭐, 전 세계적으로 천만부인가 몇만부인가 팔렸다는 책인데, <시크릿> 같은 경우도 긍정적으로 사고하라고 하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사고하라는 얘기가 많은 것의 이면이 뭐냐 하면 우리가 그만큼 불안하다는 얘기에요. 불안하니까 더 이상 예측이 안 되고 계획이 안 되고 삶이 지속적이 안 되고. 이러니까 어떤 상태로 우리가 가게 되냐 하면 이거를 인간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든가, 이 불안한 것 있잖아요, 이걸 인간의 운명으로 받아들이든가, 아니면 이 불안을 없애야 되잖아요. 불안을 없애기 위해서는 더 많은 통제가 필요하다고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이 더 많은 통제를 불러들이기 시작한 것, 이게 신자유주의에서 이전에는 이 불안의 근원, 케인즈주의나 이쪽에서는 그 불안의 근원이 무엇 때문에 그랬냐 하면 기본적으로 시장이 가지고 있었던 불안정성, 거기로부터 우리 삶의 불안이 온다, 이렇게 생각을 했다면 지금은 시장은 보호해야 되기 때문에 다른 데서 우리 불안의 근거를 찾아야 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더 많은 통제를 불러야만 하는 거죠. 우리 삶에 더 많은 통제가 있으면 우리 삶이 혹시 안전해질지도 모른다, 이렇게 생각을 하게 되는.

그러면 누구를 통제할 것이냐, 무엇을 통제할 것이냐, 이것에 있어서 좌파들이 1970년대부터 케인즈주의가 붕괴하기 시작하면서 좌파들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됐느냐 하면 좌파들은 저때 완전히 무능력했어요. 아무런 대응을 하지를 못하고 우왕좌왕하기만 하던 상황에서 저 부분을 확실하게 치고 들어갔던 게 바로 신자유주의자들이 되었던 거거든요. 그들이 주장했던 게 우리 사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구호였어요. 우리 사회는 그럼 누구에 의해 가지고 어떻게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가, 하는 걸 이들이 뭐라고 처음에 주장하게 되었냐면 이주노동자들 때문이다, 노동조합 때문이다, 학생들 때문이다, 학교가 학생들을 방치하기 시작했다, 이제 이렇게 얘기를 하면서 사회 안에서 더 이상 시장을 통제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위기에 처하게 만든 세력들 있잖아요? 이들을 색출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영국 같은 경우에서는 아주 대표적으로 타겟팅이 되었던 게 청소년. 우리 사회가 지금 돌아가는 거랑 아주 비슷해요. 우리도 왜 작년 재작년 재재작년 해가지고 애들 졸업식 뒷풀이하는 거 갖고 우째 이런 일이, 막 이런 식으로 해가지고 엄청 난리들 쳤잖아요, 그죠? 청소년들이 조금만 잘못하면 우째 이런 일이, 하면서 <조선일보>, <동아일보> 막 대서특필하면서 말세가 온 것처럼 이렇게 하는데. 정확하게 30년 전에 영국에서 똑 같은 일이 벌어졌었어요. 영국에서도. 양상은 더 심각했죠. 영국에서는 제일 많이 걸고 넘어졌던 게 마약 문제였었거든요. 청소년들이 마약을 많이 한다. 이런 식으로 되면 어때요? 우리 머릿속에 우리 관념 속에 청소년 하면 뭐 미래의 주인공, 우리 사회의 주역, 이런 생각들을 한참 할 수 밖에 없잖아요. 근데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느냐 하면 우리의 미래가 위기에 빠져 있다, 라고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죠. 지금 현재만 위기에 빠져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미래가 위기에 빠져있다, 그러니까 학교에서 아이들을 더 쪼아야 된다, 더 강제해야 된다, 규율을 더 강하게 불러들여야 된다, 이제 이런 식으로 생각을 하게 되는 거고. 또 60년대부터 해가지고 60년대, 70년대 되게 많이 활발하게 됐던 게 여성운동, 성소수자들의 운동, 이런 것이었잖아요? 그런 운동들에 의해 가지고 가족이라는 가치, 이게 위기에 처해 있다. 가족이 붕괴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붕괴하고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런 가족이라든가 이전에 우리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훌륭한 덕목들 있잖아요, 가치들, 이런 게 붕괴하고 있다, 이렇게 또 주장을 하기 시작하고. 이주노동자들이 유입이 되어서 들어오니까 이주노동자들이 일자리만 앗아간다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이주노동자들이 우리 사회의 가치, 영국다움, 영국인의 가치, 이런 것들을 무너뜨리고 있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게 되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제가 여러분들에게 나눠드린 글에서 보면은 요렇게 제가 써놨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이 통제를 통해 가지고 사회의 붕괴를 막아야 되겠다고 했었을 때 이거는 사법적인 차원만 얘기하는 게 전혀 아니라는 거예요. 이때 우리가 더 많은 통제 있잖아요. 이걸 불러들일 때 항상 그 적들, 우리 사회를 붕괴하려고 하는 청소년부터 시작해서 기타 등등들 있잖아요. 이 적들을 무엇의 적으로 어떠한 적으로 가정을 하느냐 하면은 그냥 법률적인 면에서의 적이 아니라 도덕적 적이라고 규탄을 하게 되는 거예요. 여성운동가들은 우리나라에서 여성운동가, 꼴페미들, 이대 나온 꼴페미들, 이런 식으로 얘기를. 꼴페미들이 가족의 가치를 붕괴시킨다, 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동성애자들, 성소수자들의 운동, 군대를 말아먹으려고 앉아 있다, 요번에 헌법재판소 판결난 것처럼. 그리고 가족의 가치를 붕괴시킨다. 이런 것 있고. 요번에 한겨레신문에 이틀 전에 <나는 무슬림이다>, 해가지고는 연재하고 있잖아요. 거기에 보면 굉장히 파격적인 사례가 하나 나와요. 한국 사람인데 미국에 유학을 가 가지고 무슬림이 되어서 한국에 돌아와 가지고 파키스탄인이랑 결혼했는데 둘째 부인이에요. 첫째 부인은 따로 있고, 둘째 부인으로 결혼했는데. 한국에서는 일부일처제이기 때문에 허용이 안 되잖아요, 그죠? 그런 사건일수록 밑에 보면 사건 자체 보다는 저는 주로 문화학을 하니까 댓글을 열심히 읽는데 댓글을 보면 대단한 댓글들이 많이 달려 있어요. 한국년이 처첩이 되다니. 하나는 처고 하나는 첩이잖아요? 처첩이 되다니 말세다, 이런 식으로 비판을 하는 거죠. 그래서 우리의 어떤 가치와 세계관과 언어와 이런 것들 있잖아요? 이런 거를 파괴하려고 온 적이기 때문에 사회의 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동시에 도덕의 적이 되는 거예요. 근데 이렇게 무엇이 도덕의, 여러분들이 청소년에 대한 <조선일보>나 <중앙일보>나 <동아일보>나 이런 데서 청소년 사건 터질 때마다 적어놓은 걸 보시면 사회 얘기보다 도덕 얘기 되게 많아요. 이래 가지고 도덕이 무너지고 있다, 우리 사회 기본적인 질서 있잖아요? 이게 무너지고 있다, 라는 식으로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얘기를 하는 것에 의해 가지고 집권을 한 게 대처와 레이건이에요. 그렇게 대처와 레이건이 집권을 해가지고 신자유주의적으로 많이 바꿨단 말이에요. 근데 이렇게 되고 나서 완전히 종지부를 찍어버렸던 사건, 우리 내부에 적이 있구나, 우리 사회가 붕괴될지도 모르겠다는 이 공포 있잖아요? 이 공포에 종지부를 찍었던 사건이 무엇이죠? 지금 얘기했던 도덕의 적, 사회의 적, 이랬던 것 있잖아요? 이게 진짜다. 이게 9.11이에요. 9.11이 터짐과 동시에 이렇게 얘기했었던 게 사실은 소소한 인간들이었고 언제 내가 테러당해서 죽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 테러리스트는 어디에서 활동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테러리스트들이 활동하는 것에서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적이 바깥에 있지 않잖아요, 그죠? 적이 안에 있단 말이에요. 이전에도 마약하는 애들 어쩌고저쩌고, 꼴페미들 어쩌고저쩌고, 다 우리 사회 안에 있다고 생각을 했었는데. 그 안에 있었다고 생각하는 애들의 그 전체의 전형적인 얼굴, 대표자의 얼굴, 그게 오사마 빈 라덴입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가 뭘로 보이기 시작하냐 하면 테러리스트로 보이는 거죠. 아시는 것처럼 이 9.11 이후에 그렇기 때문에 사회운동이라든가 뭘 하든가 뭐 하기만 하면 다 테러리스트로 분류가 되잖아요, 그죠? 그래가지고 용산에서 싸우던 분들도 도심 테러리스트라고 불렀죠, 그죠? 그리고 그 이후에 보면 세계사적으로 보면 굉장히 재미있었던 것 중에 하나가 그 이전에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던 국가들끼리 그렇게 협력을 잘할 수가 없어요.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중국과 미국이 짝짜꿍이 되고 미국과 소련이 짝짜꿍이 되고 파키스탄과 인도, 뭐라 그래야 되나요,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이거든요. 이 인도랑 파키스탄 같은 경우에는. 파키스탄이랑 인도가 테러와의 전쟁 하면 똑같은 얘기를 해요. 그러면서 어떤 얘기를 하게 되냐 하면 우리 사회에 뭐가 더 필요하냐 하면 통제가 더 필요하다는 거예요. 저 테러리스트들과 맞서 싸우기 위해 가지고는 우리가 통제를 해야 된다, 라고 그렇게 주장을 하는 거죠. 그런데 이 통제를, 그리고 우리 모두가 거기에 대해서 수긍을 하는 거죠. 통제를 해야, 그래, 안전해지고, 안전이라고 하는 게 담보가 되고, 이 안전이 담보가 돼야 그 다음에 뭐가 돼요. 나의 프라이버시라고 하는 것이 지켜질 수 있다, 이게 그래야 비로소 내가 내면이라는 것을 처음에 말씀드렸던 것처럼 내면이라는 것을 지킬 수 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근데 문제는 뭐냐 하면 이 통제를 해야 된다, 라고 하는 것에서 우리가 다 자발적으로 해서 뭐 애국법이니 뭐니 해서 다 반납을 했죠. 반납을 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근대사회, 근대국가의 터전이 뭐였냐 하면 이거였거든요. 그러니까 이거를 영원히 파괴한다, 라고는 얘기할 수가 없는 거예요, 국가 같은 경우에도. 그러다 보니까 어떤 식으로 처리를 하게 되느냐 하면 이 통제, 이 프라이버시를 제한하고 통제하는 이것, 이것을 규범화할 수는 없었던 거예요, 그죠? 그러니까 예를 들면 이 통제를 완전히 규범화해버리면 어떻게 되겠어요? 헌법 없애버리는 것과 똑같은 효과인거죠. 헌법이라는 것 자체가 국민을 보호하는 법이잖아요, 그죠? 이거는 규범화할 수는 없어요. 대신에 끊임없이 뭐라고 주장하냐 하면 이것이 예외라고 주장을 하는 거죠. 반테러법안도 그렇고 그 법안들 소개할 때마다 항상 그런 거 같아요. G20을 성공적으로 해야 하니까 소개한다, 뭘 해야 하니까 소개한다, 그래서 항상 예외적이거나 또는 한시적 법률의 형태로 소개가 되는 거예요. 절대적 규범화해가지고 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규범화하는 중간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자유민주주의라고 하는, 미국도 마찬가지이고 한국도 마찬가지이고 영국도 마찬가지이고, 그 토대 자체가 붕괴해 버리기 때문에 절대 이거를 그 자체로 규범화하지는 않고 예외화하고 한시적인 걸로 만들어요. 그런데 아주 간교한 방법이 하나 있어요. 예외는 예외죠, 그죠? 한시는 한시인거잖아요. 저거를 규범처럼 가져가려고 하면 어떤 방식을 쓰면 될까요? 끝나고도 계속 활용할 수 있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게 법률로 만드는 건데 아주 정상적인 법률로 만드는 건 아니거든요. 계속 하는 거겠죠, 그죠? 그래서 이걸 두 가지로. 예외를 일상화하는 거예요. 그리고 예외를 영구화하는 거예요.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어떤 사회라고 볼 수 있냐 하면 예외가 영구화된 사회. 이게 말로는 한시적인데 언제까지 한시적인 건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죠. 그 법이 철폐가 되고 나면 다른 법이 또 소개가 되는 거고. 그러면 이렇게 예외가 계속 항구화되기 위해 가지고는 끊임없이 무엇이 항구화됐을 때만 이 예외가 항구화될 수 있겠어요? 뭐가 항구화가 되어야지 이 예외적인 입법조치들, 한시적인 입법조치들이 항구화가 될 수 있겠어요? 이게 바로 위기의 항구화인 거예요. 우리는 끊임없는 이 위기 상황인 거예요. 그래서 위기가 항구화될 때마다 예외가 항구화가 될 수 있는 거죠.

이 때 등장하는 개념이 법과 질서 중심의 사회에요. 이명박이 그렇게 좋아하는 법치주의, 노무현이 그렇게 좋아하는 법치주의, 그 이전에 김대중 대통령이 그렇게 좋아하던 법치주의 있잖아요? 이 법치주의라고 하는 게 사실은 우리나라에서도 법치주의라고 얘기를 하지만은 영국의 대처가 집권하면서 썼던 개념이 법과 질서 중심의 사회였었고, 그 다음에 레이건이랑 레이건 전에 닉슨인가가 또 썼던 개념이 법과 질서 중심의 사회인 거예요. 법과 질서 중심의 사회라고 하면서 우리 사회에 이제 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냐 하면 질서가 필요한 거겠죠, 그죠? 이 사회로 가고 여기에서 나오는 게 바로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 무관용 원칙입니다. 근데 이 무관용 원칙이라고 부르는 게 굉장히 재미있는 표현이거든요. 왜 그러냐 하면 그 이전에는 그러면 그게 시민의 정당한 정치적 활동이었다고 본 게 아니라 봐 준거에요. 그 전에는 봐 주다가 이제는 너네가 이렇게 움직이는 것 때문에 사회가 위험해졌기 때문에 더 이상 안 봐주겠다는 거거든요. 이렇게 무관용원칙이라고 언어를 딱 붙여버리니까 원칙은 누구한테 있는 거예요? 우리한테 원칙이 있는 게 아니라 걔네들한테 원칙이 있는 거고, 이제까지는 걔네들이 원칙을 유보하면서까지 우리를 봐준 것인 것처럼 얘기가 되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무관용원칙이라는 게 법과 질서, 엄정한 법질서를 수립해서 살겠다고 하는 게, 이때 도대체 이 법이 뭐냐라는 것 있잖아요? 이 법이 뭐냐라는 걸 보면은 이게 바로 한시적이고 예외적인 것이 영구화되어져 있는, 항구화되어져 있는 바로 그게 되는 거죠. 만약에 예외가 이렇게 항구화되어 버리면 그 다음부터 우리는 어떤 상황에 빠지게 되느냐 하면요, 우리가 이제까지 소위 정상이라고 배웠던 것 있잖아요? 규범이라고 배웠던 것 있잖아요? 이것과 우리가 이제까지 예외라고 배웠던 것 있잖아요? 이 두 개가 정확하게 반대편 포지션으로 가게 되는 거예요. 정상이 예외화가 되고 예외가 정상화가 되는 거예요. 이것의 최종적인 도달점이 바로 예외의 정상화예요.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예외라고 하는 걸, 곧 끝나겠지, 예외적이지,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예외 자체를 우리가 정상적인 걸로 규범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고 규범적인 것을, 당연히 시민이라면 이러 이러한 게 있지 않느냐, 라고 생각하는 것들 있잖아요? 이걸 예외적인 것으로 사고하게 되는 거죠. 이게 신자유주의에 의한 또는 법과 질서 중심에 의한 것의 최종 도착 지점이 되는 거예요. 바로 이렇게 되기 때문에 이 통제, 이게 지금 우리가 다루던 주제인 감시사회 있잖아요? 저게 감시, 통제라는 말이 감시라는 말과 같은 걸로 받아들일 수가 있겠죠, 그죠? 감시를 우리 삶 속에 우리 스스로 불러들이고 인정하고 허용하고 하게 되는 기본적인 과정 내지는 메커니즘이 될 수 있는 것이거든요. 이런 식으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가 구성되어져 있는 거예요.

자, 그럼 이런 상황이 되니까 많은 사람들이 또 패닉(panic)에 빠져요. 그지 않겠어요? 도대체, 제가 <개인의 죽음>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그 책에 나오는 예를 들어보면 이런 거예요. 에이(A)라는 여성이 늘 자기는 도로나 이런 데 CCTV 깔리고 이래 가지고 되게 좋다, 안전해졌다, 라고 생각해서 룰루랄라 룰루랄라 하면서 되게 좋아하는 것. 되게 좋아하다가 어느 날 집에 들어와서 샤워를 하고 이제까지 안 보던, 무심코 안 보던 데를 한번 딱 봤더니 앞집 아파트 꼭대기에 뭐가 하나 달려 있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해가지고 교통통제국에 알아봤더니 교통상황 통제하려고 달아 놓은 카메라인 거예요. 그 카메라가 교통을 통제하겠죠. 근데 대부분 그런 카메라들에는 줌이 달려 있고 그리고 리모트 콘트롤이 되기 때문에 만약에 경관이나 이런 애들이 심심하면 그 여자 이제 볼 수도 있는, 맨날 발가벗고 샤워도 하고 이랬겠죠, 그죠? 그걸 보려고 한다면 얼마든지 볼 수도 있는 거고 그건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닌 거잖아요, 그죠? 그러면서 이 여성이 개인의 죽음에 대해서 너무 소름끼친다, 나에게 프라이버시라는 게 있느냐, 라는 얘기를 하거든요. 근데 그런 것처럼 이 통제 내지는 감시라고 하는 것을 우리가 안전을 위해서 불러들이고 난 다음에 이것이 편재한다, 라고 얘기하는데 곳곳에 번져 있겠죠. 이런 것이 나를 안전하게만 하는 게 아니라 나의 프라이버시도 완전히 침해하는 이런 걸로 작동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우리 모두가 또 다 패닉에 빠져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해 가지고. 시간이 돼 가지고 요 반대편 이야기, 이게 반이 있고 나머지 절반이 대중소비사회가 만들어 놓은 게 있거든요. 어쨌든 제가 초스피드로 간단하게 말씀을 드리면은 그렇게 되다보니까 이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권리라고 하는 게 과거에는,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이 내면과 이것 있잖아요? 프라이버시를 지킬 권리라고 하는 건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어요. 안 보일 권리에요. 내가 숨을 권리거든요. 내가 철저히 나를 안 드러낼 권리를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로서, 완전히 물러날 권리에요. 사회로부터 내가 물러날 권리인 거거든요. 그래서 내 내면의 세계에 침잠할 수 있는, 그래서 내 생각을 할 수 있고 내 판단을 할 수 있는 어떤 시공간으로 내가 완전히 물러날 수 있는 권리 있잖아요? 이게 프라이버시 권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데 지금은 프라이버시의 권리를 어떤 식으로만 해석을 하고 있냐 하면 나의 사생활을 돈벌이가 되기 위해서 누가 사용할 것인가, 에서 나는 사용할 수 있다, 그걸 너가 사용하고 싶다면은 너는 나한테 허락을 받아야 된다, 즉 소유권의 문제로 완전히 전환이 되어버린 거죠. 이 반대편에 있었던 얘기가 바로 대중소비사회에 대한 얘기. 한편에서는 프라이버시가 언제든 침해될 수 있는 것에 대한 공포가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스스로가 뭐 트위터니 페이스북이니 뭐니 뭐니 여러 가지가 좍 발달했잖아요? 발달하다보니까 어떤 공포가 있느냐 하면 내가 끊임없이 누구한테 인정을 받아야 되고 누구랑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되는 거죠. 이건 뭐 복잡한 얘기니까 뺄게요, 시간이 없으니까. 빼고 말씀 드리면은 그러니까 요새는 아주 노골적으로 얘기하면 밥 먹으러 가 가지고도 맛있는 걸 먹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거 사진 찍어 가지고 올려야 되잖아요. 블로그든 뭐든 어디든 계속 어디다가 올려놔야 되잖아요. 우리 스스로가 우리 삶을 중계방송하고 있어요. 우리 스스로가 우리 삶을 중계방송하고 내 사람을 다 딴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있는 거죠. 더 이상 우리가 어딘가로 물러나고 은폐하고 숨고 사라지고 이런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끊임없이 나를 드러내야 되는 건데, 일거수일투족이라고 하는 것을. 이것과 이 둘 사이에 엄청난 충돌이 벌어지는 거죠. 한편에서는 내가 인정받기를,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나를 계속 드러내야 하는데 다른 한편에서는 드러내면 드러낼수록 나의 프라이버시는 침해가 되는 거잖아요, 그죠?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가지 충돌 속에서 우리 현대인들, 한국사람들이 선택한 게 뭐냐 하면 나를 숨기고 사라지는 권리 있잖아요? 그것으로서의 프라이버시를 내가 공개해 놓은 나의 자료들과 나의 정보들과 나의 이야기를, 사실은 다 보고 있거든요, 다 보고 있는데 그걸 상업적으로 이용할 때는 무조건 내 허락을 받아야 된다, 라고 하는 걸로. 저는 이게 틀렸다는 말이 아니에요. 이건 맞는 얘긴데. 이게 이런 소유권에 대한 문제 있잖아요? 소유권에 대한 문제가 이것을 완전히 대치해 버린 게 지금 우리의 상황인거죠. 더 이상 우리가 프라이버시라는 것을 숨을 권리, 사라질 권리로 인식을 하는 게 아니라 내 꺼를 내가 사용할 권리 있잖아요? 이걸로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이게 뭐겠어요? 내가 만들어놓은 내 영역, 제가 제 트위터에다가 한마디 무슨 멋있는 말을 했어. 그런데 다음날 신문을 봤더니 한겨레신문에서 허락도 안 맡고 그걸 인용을 했다. 그랬을 때 제가 인제 발끈하잖아요? 왜 나한테 허락 안 맡고 남의 글을 함부로 쓰느냐. 이런 식의 문제로 프라이버시에 대한 얘기가 전환이 돼 버린 거예요. 그걸 안 써도 되고 내가 아는 사람들하고만 공유할 수 있는 권리로서 그 프라이버시라는 거 있잖아요. 이걸 인식하는 게 아니라. 그걸 누가 쓰는가, 안 쓰는가. 그러다 보니까 우리 스스로도 국가가 우리를 감시하는 게 아니라 국가나 사회가 우리를 감시하는 게 아니라 어느 놈이 내 꺼를 함부로 퍼 나르고 있는가, 막 쓰고 있는가, 이걸 감시하는 걸로 우리 스스로도 바뀌게, 바뀌어지고 지금 있는 상황. 저는 이게 훨씬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이렇게 되면 될수록 우리 삶 속에서 사회적인 것은 사라지게 돼 있거든요. 더 이상 말하는 것, 글 쓰는 것, 이게 사회적 행위라고 우리가 인정을 하는 게 아니라 다 재산이라고 바라보는 거죠. 남이 침범해서는 안 되는 어떤 재산이라고 이렇게 바라보기 시작하는 거거든요. 이 재산이라고 하는 걸 기가 막히게 자본주의, 요걸로 제 말은 끝내도록 할게요, 이게 재산이다, 라는 걸 가지고 기가 막히게 자본주의가 하나의 다른 권리로 이름을 확 만들어버린 게 있어요. 그게 지적재산권이에요. 우리가 지적재산권이라고 하는 걸 모든 것을 우리가 지적 재산의 문제로 바라보기 시작하는 거죠. 예를 들어 장여경 선생이 자기 블로그에다가, 제주도 가가지고 놀러갔다 왔는데 뭐 어떻게 되게 좋은 사진을 하나 찍었어요. 그랬는데 제가 마침 제주도에 관한 책을 내는 데 예를 들면 제주도에 관한 책 하나를 내는데 이전에 장여경 선생이 찍은 걸 보고 나 혼자 개인적으로 쓸 생각으로 일단 다운을 받아 놨어요, 내 컴퓨터에다가. 사진이 너무 좋아. 그 다음에 그걸 쓰겠다고 생각을 한 거예요. 책을 낼 때쯤 되니까 이게 시간이 오래 흘렀으니까 알 수가 없잖아요, 이게 누가 찍은 사진일까 하는 걸. 알 수가 없어 가지고 막 찾다가 도저히 모르겠는 거예요. 모르겠어서 에이 모르겠다, 그냥 출판하자, 그래가지고 그 사진을 실었어요. 나중에 장여경 선생이 바르르 떨면서 내 사진을 왜 허락도 안 맡고 쓰냐. 저는 이렇게 항의하는 게 틀렸다는 얘기를, 틀렸다는, 되게 지금 오해하시면 안 되는데. 틀렸다라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해하는 프라이버시는 딱 거기에 고착되어져 있다는 거죠. 다른 것으로서의 프라이버시 있잖아요? 아주 원론적인 의미에서, 근원적인 의미에서의 프라이버시 이건 우리가 더 이상 사유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굉장히 재미있는 현상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데. 제가 전공이, 어떤 인류학자는 전혀 인정을 해주지 않고 있지만. 제 지도교수가 인류학을 전공한 사람이라 가지고 인류학을 하고 있는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이제 인류학이라는 학문은 불가능해져요. 왜냐하면 내가 이제 장여경씨를 인터뷰하잖아요? 인터뷰한 것 가지고 분석해 가지고 쓰는 게 인류학 논문이에요. 그런데 그렇게 막 하는데 장여경 씨가 와가지고 아니 내 얘기를 당신이 왜 마음대로 인용해 가지고 논문 쓰냐? 이러면 끝나 버리거든요. 그러니까 이제 그것도 우리가 일일이 허락을 맡아야 되는 거예요. 제가 지난번에 경험했던 걸로 보면 제 박사 논문을 재판을 가지고 쓸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요. 재판 자료들을 이렇게 죽 봐야 되는데, 한국의 법에 의하면 재판 자료를 가지고 논문을 쓰려면 재판 당사자 전원의 동의를 받아야지만 재판 자료를 쓸 수가 있어요. 그런데 보통 학문윤리규정 이런 게 있어가지고 재판자료를 쓸 때는 실명으로 안하고 못 알아보게끔 해야 되는, 스크리닝 작업을 해야 되거든요. 그렇게 하더라도 못하는 거죠. 그래서 지금 어떤 일군의 사람들은 더 이상 이런 식으로 간다면 모든 문제를, 프라이버시의 문제를 지적재산의 문제 있잖아요? 재산권의 문제로 돌려버린다면 학문은 불가능하고 아마 예술은 불가능해질 거다, 이런 얘기를 하는 거죠.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표적인 게 사진예술 같은 건데. 여러분들 아시는 되게 유명한 사진들 있잖아요? 그거 다 허락 안 맡고 찍은 거거든요. 허락 맡고 찍은 게 연출사진 말고 어디 몇 개 있겠어요? 전쟁터 가 가지고 찍은 사진, 그거 허락 맡고 찍겠어요? 아니면 여러분이 잘 아시는 베트남전에 네이팜탄 떨어질 때 여자애 하나가 벌거벗고 절규하며 뛰어오는 사진 있잖아요? 그거 잠깐, 한 다음에 가가지고 내가 너 사진 찍어도 되겠니, 라고 허락 맡은 다음에 찍어 가지고는 그게 안 나오는 거죠. 이게 실제로 문제가 돼 가지고 캐나다에서 소송이 한번 걸렸어요. 그래 가지고 그 사진작가가 길거리 돌아다니면서 시위를 퍼포먼스로 했었는데. 돌아다니면서 제가 당신의 사진을 찍어도 될까요, 이렇게 허락 맡고 하는. 이게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굉장히 고유한 어려움이에요.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를 강조하는 것은 좋은데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가 프라이버시를 주장할 것인가? 이 프라이버시를 주장하는 것을 지금의 방식대로 계속 이렇게 재산권의 문제, 특히나 지적재산권의 방식 있잖아요? 이러한 방식으로 강조하는 것이 과연 사회적인 것을 옹호하고 사회적인 것을 강화하는 방식이냐, 아니면 이것이 마치 감시와 통제에 맞서는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른 한편에서는 이 자본주의의 새로운 돌파구로 지금 만들어져 있는 지적재산권의 문제 있잖아요, 이것을 더 강화하는 형태가 될 것이냐. 이거에 대해서 우리가 굉장한 큰 어려움이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제가 처음 시작을 프라이버시라는 게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 원래의 그 취지가 뭐였는가, 라고 하는 것, 이거로부터 출발을 한 거였던 거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근본적으로 프라이버시라는 게 무엇인가? 나는 프라이버시를 무엇이라고 생각을 하고 어떻게 지키고 싶은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했을 경우에만 우리가 이 자본의 논리와 감시와 통제라고 하는 국가의 논리 있잖아요. 이 두 가지를 다 벗어나서 돌파할 수 있는 어떤 길을 모색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저는 그런 의미에서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근본적으로 프라이버시라는 것을 내 소유와 재산의 문제가 아니라 사라질 권리 있잖아요, 보이지 않을 권리, 약간 죽은 권리 같은 식이기도 해요. 그런 사라질 권리로서의 프라이버시라고 하는 걸 우리가 새롭게 사유해 봐야 되는 게 아닌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얘기는 이걸로 마치고. 감사합니다.

 

장여경

박수 한번 주세요. (박수) 되게 재밌지 않았어요? 저는 되게 재밌었어요. 되게 충격적인 얘기도 많았던 것 같아요. 일단 뭐 질문, 예, 질문 먼저 해주시죠.

 

청중

만약에 예를 들어서 기차표를 샀어요. 샀는데 기차표에 뭐라고 표시가 돼요. 장애인이면 장애이라고 표시가 돼요. 그거를 내가 보여주지 않을 권리도 있잖아요. 기차표 샀는데 거기에 승무원이 확인을 할 거란 말이죠. 지네만 알 수 있는 걸로도 확인이 가능할 거란 말이죠. 뭐 기호나 사인이나 그렇게 해도 확인이 가능한데. 그걸 도구화된 글자로 글자 표시를 하면은 그게 프라이버시권 침해일까요, 아닐까요? 정말 이런 거는 묻고 싶어요. 예전에 한번 물어서 장애인을 ‘장’자로 바꾼 적이 있는데. 숨을 권리가 있는 거잖아요.

 

엄기호

그거는 제가 권리라는 걸, 법적인 관점에서 접근을 하는 게 아니어서요.

 

청중

아니 아니 법적인 관점이 아니라요. 정말 프라이버시권이 인권이라면 프라이버시권이 인권이라면 나는 그게 나타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거거든요. 바코드에서 지네가 알아서 확인할 수 있으면 되는 거잖아요. 근데 그걸 굳이 표시를 해줄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요.

 

엄기호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청중

국가인권위원회에서는 그걸 ‘장’자로만 표시해도 프라이버시권 침해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인권의 가치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

 

엄기호

글쎄요. 그거는 좀. 국가인권위원회가 왜 그렇게 이야기하는 지는. 뭐.

 

청중

이전에 이 정부 탄생하기 전에 진정 넣은 건데. 그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엄기호

국가인권위가 뭔가 좀 잘못 생각하는 거 같은데요.

 

장여경

일단 선생님 강의 내용으로 돌아와서. 강의 내용 중에 거론하셨던 내용이랑 관련해서 질문 있으신 것 좀 받을까 합니다. 일단 뭐 처음에 얘기 시작하셨던 것부터 복기를 해보면 저는 되게 역설을 느꼈는데요. 사실은 나의 영역에 대한 어떻게 보면 근대주의적인 소유권의 개념, 나의 영역에 대한 안전, 나의 영역에 대한 프라이버시 주장, 이게 인제 결론적으로 보면은 오늘날 우리가 더 많은 통제를 불러들이면서 우리의 프라이버시가 오히려 축소되는 경향으로 이어진다는 거죠. 되게 역설적인 상황인 것 같아요. 특히 인제 CCTV 같은 경우도 그런 것 같아요. CCTV 같은 경우도 예를 들어 자기 주거에 대한 안전이라든지 내가 일상적으로 왔다 갔다하는 공간에 대한 안전, 이런 것을 보호받기 위해서 오히려 자기 프라이버시를 포기하거나 양도하면서 감시 시스템을 불러들이는 거잖아요? 그런 의미에서는 고민이 있는 거죠. 프라이버시에 관심 있는 인권활동가로서 이게 더 이상 프라이버시권이 은닉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만으로는 사실 근본적인 역설구조가 지금 생겨버린 상황에서 내가 혼자 있고 싶다고 주장을 한다 그래서 혼자 있는 걸로 멈출 수 없는 상황, 그런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엄기호

우리가 프라이버시 문제와 관련해 가지고, 사실은 여러분들의 프라이버시를 감시하고 있는 내지는 제한하고 있는, 있잖아요, 대다수의 매체들 내지는 방법들은 전쟁 시기에 만들어진 게 되게 많아요. 그러니까 첩보위성, 사실 CCTV 이 정도는 아주 약과인 거고 우리 전체를 감시하고 있는 건 첩보위성들이랑 이러저러한 매체들이잖아요. 이게 대부분 전쟁 때 적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가지고 이렇게 만들어 놓은 거고. 이걸 규제하기가 힘들어지는 이유 중의 하나가 국가권력의 바깥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CCTV나 이런 건 국가권력에서 하는 거잖아요. 다른 한편에서 보면 인공위성은 영공 위에 있거든요. 영공 보다 더 위에 있잖아요, 그죠? 구글이나 이런 걸 보고 우리가 되게 황당할 수 밖에, 그걸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우리 하늘에서 찍지 마라, 라고 얘기하면 너네 하늘이 아니라 우주인데. 이런 식의 것을 가지고 하는 거죠. 한편에서는 CCTV나 이런 것처럼 국가권력이 우리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있잖아요, 이렇게 하는 거고. 다른 한편에서는 국가도 아닌 초국가적인 어떤 것들이 연합이 되어 가지고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거거든요. 자, 근데 여기에서 그렇게 되면 이 두 가지를 저는 나누어서 생각해 봐야 된다고 생각을 해요. 하나는 국가가 하는 것은 그럼 우리가 어떻게 개입을 할 것인가. 그게 아니라 초국가적인 데서 첩보위성처럼 있잖아요, 이렇게 하고 있는 건 우리가 어떻게 그거를 대처를 해야 될 것이냐, 이 두 개는 얘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국가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아주 냉정하게 생각해 봐야 하는 게 바로 이 위험의 문제예요. 아까 제가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리가 감시라고 하는 걸 우리 일상으로 불러들인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위험이라고 하는 게, 위기라고 하는 게 일상화되어져 있고 항상적인 것이고 또 그 위험은 엄청나게 큰 것이다, 라고 우리가 지금 생각하고 있잖아요? 다른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이건 좀 약간 위험한 얘기일 수 있어요, 제가 지금 드리는 말씀이. 그리고 이건 아주 조심스럽게 말씀을 드리는 건데 우리가 이렇게 위험이라고 하는 걸 극대화하고 극대화할수록 우리 사회는 내 삶이 마치 괴물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는 것 같은 사고를 우리가 하게 되는 거죠. 그러다보니까 모든 성폭력범들은 다 조두순이라거나, 아니면 이런 인간들 있잖아요? 인간들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러다보니 오히려 우리가 정말 찾아내야 되고 민감하게 받아들여야 되는 어떤 성폭력들, 성희롱들 있잖아요? 이거는 지금 거의 다 빠져나가고 있다고, 성폭력상담소나 이런 사람들이 얘기를 하거든요. 국가권력은 신나는 거예요. 제가 1년 전인가 2년 전에 성폭력상담소 가 가지고 토론회를 하는데 그 토론회에서도 나오는 얘기가, 제일 신나는 게 검사에요. 왜냐하면 아까 제가 국가가 할 일이 없는데 할 일이 잔뜩 생겼다고 했었잖아요. 그러니까 오히려 성폭력상담소 소장님이 그 검사한테 뭐라고 얘기하냐 하면, 제가 여기서 상담을 오래 했는데 저는 그런 괴물을 만나본 적이 없는데요, 라고 얘기를 하시는 거죠. 지금 어떤 맥락인지 아시겠죠? 이런 식으로 우리가 위험이라고 하는 것, 위험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괴물화하고 있는 것, 이것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것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면 솔직히 우리 동네 길거리에 CCTV 만들어지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 안방에 CCTV가 들어와도 사람들 다 찬성하는 형태로 될 거고, 실제로 그렇게 하잖아요. 되게 유명한 게 미국에서나 이런 데서 왜 그 내니(nanny)들, 애기 봐주는 사람들 감시한다고 해 가지고 눈알에다가 초소형 카메라 달아 가지고 감시하고 하는 것들 있잖아요? 그렇게 돼버리는 거죠. 그러니까 어느 정도까지 우리가 이 위험이라고 하는 걸 정말 위험이라고 생각할 것인가에 대한 걸 우리가 생각하지 않으면서. 제가 가끔 가다가는, 재난이라든가 위험이라든가 이걸 우리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마치 지금. 영화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마치 종말의 세계를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얘기를 하는 경우가 되게 많이 있잖아요, 그죠? 이 괴물화. 히트 친 것도 <괴물>이라는 영화였었고. 저는 이거는 정말 좀 다르게 생각을 해봐야 되는 것 같아요.

두 번째로 이 초국적 위성이라든가 이런 것에 의한 감시 같은 경우에는 초국적 기업 제재해야 되는 거랑 똑같은 논리와 똑같은 방법이 필요한 거죠. 완전히 지네 마음대로 하고 있잖아요. 구글 같은 경우에도. 아주 대표적인 게 구글인 거고, 또 얘도 마찬가지잖아요. 되게 문제 됐었잖아요. 자발적으로. 그런데 이걸 통제할 수 있는 법, 글쎄 저는 이게 법으로 통제가 될까라는 생각이 들죠.

 

청중

제가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제가 이번 강연을 들으면서 가장 공감했던 부분이 인제 어떻게 보면 프라이버시의 지적재산권화 문제인데요. 공히 우리가 이제 헌법에서 프라이버시권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개인정보자기결정권으로 얘기하잖아요. 자기가 자기 것을 통제할 권리가 자기한테 있다. 동의의 문제 아까 말씀하셨는데요. 그러면 이제 그렇게 동의의 관점으로 지금 모든 게 이루어지잖아요? 프라이버시, 동의 받으면 되는 것 아니냐로 모든 것이 다 이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그것을 정말 프라이버시냐의 문제를 제기하셨잖아요? 그럼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엄기호

저도 참 그게 난감하기 짝이 없는 현상 중에 하나인 건데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게 그, 잠깐만 조금 제가 길게 설명을 드리면, 그게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데.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사회적 동물이란 말이에요. 아리스토텔레스가 얘기한 것처럼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란 말이에요. 사회적 동물로서 인간에게 반드시 필요한 게 타자에요. 다른 사람. 나 혼자 살 때 그걸 우리가 인간이라고 얘기하지 않거든요. 인간은 다른 사람이 있을 때만 인간이 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쓴 책에도 있었는데 영어에 말할 권리라는 게 right to speak이라고도 하지만 right to be heard라고 해서 들릴 권리라는 표현을 하거든요. 이게 진짜 인권인 거예요. 내가 산에 가 가지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라고 외치는 것 있잖아요? 이건 표현의 자유가 아닌 거거든요. 표현의 자유는 딴 사람한테 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라고 얘기하고 제 이 말을 누군가가 들었을 때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이렇게 표현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타자가 반드시 필요해요. 이런 것 때문에 인간이 기본적으로, 헤겔이나 이런 애들이 주장하는 게, 우리는 기본적으로 인정투쟁을 하고 살아간다는 거예요. 다른 사람한테, 아주 무식하게 얘기하면, 다른 사람한테 인정을 받는 게 되게 중요한 거죠. 그리고 그 사람에게 인정받은 내 모습이 내가 되는 거거든요.

자, 근데 이 인정투쟁이라는 게 지금 제가 우리 사회에 이게 완전 전면화되어져 있어요. 왜 그러냐 하면 사실 이 인정투쟁의 영역이 사회의 영역이고 한다면 프라이버시라고 하는 건 여기에서 물러나는 거거든요. 아까 얘기한 것처럼 이건 내면의 세계가 되는 거잖아요, 그죠? 이렇게 물러나야 되는데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는 여기에서 여기로 물러나는 순간에 나란 존재는 사라져버려요. 그러다보니까 내가 이 사회 안에서 생존하기 위해 가지고는 이 사회 안에서 인정받으면서 살아가려면 지금은 이 내면마저도 완전히 다 까발려가지고 여기에서 보여줘야, 그잖아요? 여기에서 보여줘야 비로소 내가 상품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거예요. 왜냐하면 지그문트 바우만이나 이런 사람들이 했던 표현대로 한다면 더 이상 인간이 생산의 주체가 아닌 시대로 우리가 넘어왔잖아요. 사람마다 판단은 좀 다르지만. 청년실업 문제니 이런 것들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 중의 하나가 인간이, 바우만이 쓴 전문용어로 얘기하면, 쓰레기가 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거예요. 이걸 요새 애들이 쓰는 걸로 잉여죠 잉여. 잉여로 이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사회에서 내가 사회적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 가지고는 뭐까지 해야 되냐 하면 절대 이전에는 내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었던, 인간의 자존의 근거였고 인간의 존엄의 근거였던, 있잖아요, 이 내면, 아까 다른 말로 프라이버시인 거잖아요. 이것도 다 상품으로, 상품, 다른 말로 구경거리로 가공을 해가지고. 이걸 구경거리 사회라고 그러거든요. 구경거리 사회로 가공을 해서 이쪽에 내 놔서 인정을 받아야지만 겨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된 거예요. 그러다보니까 예를 들면 꿀벅지 사건 같은 것 있잖아요. 그 꿀벅지 같은 경우는 이거는 인간의 가장 내밀한 내 몸뚱이에 대한 얘긴데 딴 인간들이 내 몸뚱이를 보고 훔쳐본 거고, 그 몸뚱이에 대해 이름을 붙인 거잖아요, 그죠? 이건 정말 프라이버시 침해인 거거든요. 꿀벅지다, 맛있어 보인다, 이런 표현을 했었을 때 더 이상 우리는 그거를 내 자존에 대한 모욕, 내 프라이버시에 대한 침해 있잖아요? 이렇게 얘기할 수가 없는 거예요. 오히려, 유이였죠, 아마 걔가? 유이도 그렇고 다른 친구들도 뭐라 그랬냐면 오히려 그렇게 불러준다는 것이 나의 상품가치를 인정해주는 거거든요. 구경거리로서의 나의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인정이 되었을 때 비로소 내가 인정투쟁에서 성공한 거고, 나한테 비로소 타자가 나타난 거고 내가 사회적 존재로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거거든요. 그 일 있고 난 다음에 얼마 있다가 송중국인가, 주몽으로 나온 애 있잖아요? 주몽으로 나온 애가, 제가 본 건 아니고 어디서 본 건데 들은 얘긴데, 걔가 무슨 예능티비에 나와서 그렇게 얘기했대요. 제 허벅지는 말벅지인데 못 보여 드려서 죄송하다고. 그러니까 다 보여줘야 되는 거죠. 걔가 꿀벅지면 나는 말벅지고. 그래서 이게 막 상품가치가 있고 구경거리로서의 가치가 있다, 있잖아요? 이렇게 보여줘야 되는. 이게 지금 우리를 가장 안타깝고 난처하게 만드는 게 내면, 그딴 게 어딨냐? 내면은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의미가 있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이랬을 때만이 우리가 얘기하는 프라이버시 있잖아요? 이게 성립할 수 있는 건데 이 내면조차도 구경거리로 내놔야지만 생존할 수 있는, 살아남을 수 있는, 있잖아요? 이런 세상이 되다보니까 프라이버시라고 하는 것은,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건 이걸 가지고 돈 버는 놈이 다른 놈이면 안 되고 나여야 된다는 것.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놈이 이걸 상업적으로 이용할려고 한다면 내가 동의를 해줘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동의만 되면 다 된다, 있잖아요? 이런 식으로 얘기가 될 수밖에 없는 거죠.

이걸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까? 저도 잘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이거는 우리 존재양식이 지금 바뀌어버린 거라 가지고. 그러니까 저는 정말 어떤 의미에서는 제가 아까 말씀드린 이 내면의 탄생이라고 하는 거는 소위 말하는 근대가 출발하면서부터 만들어진 거거든요. 소위 근대사회라고 하는 게 만들어지면서 이게 출발을 하는 것인데. 만약에 이게 고착이 된다면 우리가 다시 이 시대로 있잖아요?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걸 뭐 탈근대라고 부를지 후기근대라고 부를지 새로운 중세라고 부를지 말세라고 부를지 그건 제가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부르더라도 더 이상 이건 가능하지 않은 프로젝트가 되는 거죠. 저는 이게 가능하지 않은 프로젝트가 되면서 사람들이 선택하는 게 귀농한다거나 아니면 내 삶을 디디지털라이즈(dedigitalize) 있잖아요? 해버리는, 그리고 아무에게도 동의하지 않는, 내 꺼 가지고 쓰는 거 절대 나는 동의 안 한다, 라는 삶의 형태 있잖아요? 이걸로 돌아가는 이유 중에 하나가 이것에 대한 대응이라는 것이 그렇게 개인적으로 결단 내리는 것 있잖아요? 이거 말고는 가능하지 않는 시대가 되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참고로 말씀드리면 그래서 인터넷 사이트 중에서 디지털 수어사이드(suicide) 사이트도 있어요. 사이버 자살이라고 해가지고. 네덜란드랑 일본인가? 맞죠? 거기에 만들어진 사이트가 있는데 그 사이트에 가입해 가지고 자살하시겠습니까, 이래가지고 예, 저는 자살하겠습니다, 해 가지고 이제 사이버 수어사이드를 딱 하잖아요? 그러면 제가 알기로는 그동안 내가 쓴 구글처럼 쓴 글 막 검색을 해가지고 내가 여기저기에 써 놓은 글 있잖아요? 그거를 찾아가지고 다 없애버리는 거예요. 그게 어떻게 보면 프라이버시적인거죠. 그렇게 하는데 구글이 그 사이트 막아버렸어요. 검색이 안 되게. 사실 구글이 막아버리면 뭐 자살해봤자 자살이 안 되는 거, 자살해봤자 자살이 안 되는 거죠. 지금 상황이라고 하는 게. 이게 어느 정도 심각하느냐 하면요, 제가 이틀 전에 끔찍한 일을 당했는데. 제가 인제 수업하는 친구들이랑, 연대에서 강의를 하나 하고 덕성여대에서 강의를 하거든요. 연대는 자기네들 사이트가 좀 잘 만들어져 있어요. 사이버 사이트가. 거기서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덕성여대 사이트가 좀 후져가지고. 그게 저의 실수였죠. 네이버에다 카페를 만들어가지고, 수업 카페를 만들어가지고 거기에다 글을 쓰는데. 그게 저는 당연히 내가 동의를 해야지만 다른 사람이 검색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저는 인제 뭐 제가 쓴 글이 아니라 한 학생이 글을 올리면서, 동의가 어떤 식으로 되어 있느냐 하면 검색을 하는 것을 거부하시겠습니까, 예, 해야 되는 거예요. 그냥 올리면 검색이 되는 시스템이더라고요. 저도 몰랐는데,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하필이면 그게 <나는 가수다> 있잖아요? 그거에 대한 애들이 리포트를 올리는 거였는데 걔가 <나는 가수다>에 대해서 되게 비판적인 글을 써가지고 올렸는데. 네이버에서 ‘나는 가수다’ 치면 카페에서 제일 먼저 뜨는 글이 된 거예요, 그게. 왜냐하면 가장 최근에 쓴 글. 이게 완전히 노출이 되어 버렸는데. 얘가 또 습관적으로 그 리포트를 쓰면서 거기에 이름이랑 학번, 전화번호까지 다 써져가지고. 이게 그대로 노출이 되어 버린 거예요. 얘도 몰랐죠. 나는 검색할 일 없으니까 카페로 바로 들어가니까 몰랐는데 걔가 쪽지를 받았대요. 다행히 좋은 사람이 보내가지고 당신 알고 있냐, 당신 글 다 검색되고, 이것 저것 학번이나 이런 것 저런 것 다 된다, 그러면서 나는 당신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제가 <나가수>에 대해서 되게 비판적으로 썼다고 그랬잖아요. 자기가 쓴 리포트에 대해서 그 사람 교수도 아닌데 강사도 아닌데 코멘트 이만큼 달아가지고. 오늘 수업 갔던 애가 선생님 그렇게 해 놓으시면 어떡해요, 라고 저한테 얘기를. 내가 한 거 아니라고 했더니 다른 한 학생이 그렇게 얘기를 해주더라고요. 지금 이 자본이 움직이는 방식 있잖아요? 그게 그 동의라고 하는 게 내가 동의를 했을 때에만 공개를 한다, 이게 아니라 우린 당연히 내가 그냥 글 올릴 대 그거 네가 물어봐야 된다, 라고 생각을 하잖아요. 근데 지네가 물어보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가 알아가지고 해야 되는 방식 있잖아요? 이런 식으로 굉장히 교묘하게 만들어 놨어요. 그래서 당장 그 카페를 폐쇄를 해야 되느냐. 왜냐하면 우리 학생들이 굉장히 좀 비판적인 친구들이 많이 들어가지고. <나가수> 이런 건 잘못했다간 진짜 이거 테러당할, 신상 털리고 막 인제 이러면 골치 아파지는 거죠.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동의라고 하는 게 굉장히 악용되는 경우들이 있는 것.

 

청중

어떤 책에서 읽어봤는데 기준을 잘못 만들어 놓은 거네요. 한 마디로 얘기해서. 한 마디로 얘기해서 기준을 잘못 만들어서 교묘하게 지네 이득 방식으로.

 

청중

프라이버시 얘기한 것, 오늘 말씀하신 게 굉장히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데. 감시와 억압, 불안을 통해서 설명할 수 있고. 제가 이해하기로는 선생님 오늘 큰 담론을 얘기하시기 때문에 프라이버시에 대해서도 하나의 개념, 하나의 데피니션(definition)이 나올 수 있는 것에서 이야기를 전개하시다보니까 이것을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관해서도 고민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이 되는 것이, 프라이버시를 얘기할 때 항상 문제가 되는 게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프라이버시를 맥락이나 문맥상으로 결정지으면서 접근이 되는 학파가 있잖아요. 선생님 얘기하시는 것에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드는데요. 예를 들면 페이스북에 뭔가를 올린다고 할 때 그것에 대해 자기 자신의 내면이나 이런 게 다 드러나게끔 올려지고 올리지 않으면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없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사실 우린 상품화로 설명할 수 있는데. 작년쯤엔가 미국에 <뉴욕타임즈>에 그런 글이 올라오기 시작했었고 그것이 편집처럼 이것을 이용하고 또 다른 자신의 어떤 디지털 자아를 보여주고자 하는 그러한 욕망과 연결이 되는. 특히 젊은 애들이. 어떤 일상적으로 하지 않는 행동, 사실은 가까이 안 가면서, 평상시에는. 자주 가는 것처럼 사진을 찍고 글을 올리고. 이런 식으로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터뜨려서 또 다른 자아를 만들고 보여주면서 또 다른 식의 인정을 얻어내는 그런 기제로 사용할 수도 있는 그런 면들도 있고. 아까 말씀하실 때 유이 같은 경우도 사실은 거기 나와서 그런 얘기를 했을 때는 팔려야 사는 아이돌 가수로서의 그런 아이덴티티(identity)를 가지고 그런 말을 한 거지, 한 명의 여자로서 그런 말을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제가 생각할 때는 프라이버시라고 하는 것도, 인간은 어차피 다중적인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고, 맥락과 상황에 따라서 뭐 하나씩 꺼내 쓰는 사람이고, 그때마다 프라이버시가 나타나는 규정이나 내용도, 그리고 사실 보호받고자 하는 프라이버시의 내용도 달라질 수가 있어요. 선생님 얘기하시는 것보다 조금 탄력적으로 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거든요.

엄기호

그렇죠. 왜냐하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아이덴티티라는 게 지금 이게 점점 더 복잡해지는 문제 중에 하나가 제가 아까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개인이라고 했잖아요. 그 개인이라고 하는 게 하나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여러 가지의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도 동시적으로 여러 가지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있다면, 그 아이덴티티 중에서 무엇이 프라이버시에 문제가 되는 것이고 무엇이 연극에 문제가 되는 것인가가 되는 거거든요. 예를 들면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사이버공간 가 가지고 갑자기 내가 막 여자인척 하면서 이상한 짓을 한다, 이런다면 그건 제가 연극을 하는 거잖아요? 그에게 프라이버시라고 하는 게 있는가? 이 문제랑 내가 이 현실세계 속에서 내가 갖고 있는 프라이버시 있잖아요? 그것의 복제로서 이 사이버공간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아이덴티티. 이거는 내 현실하고 맞닿아져 있는 것 있잖아요. 이것이 연루되어 있고, 프라이버시에. 이게 되게 달라서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얘기를 할 수 밖에 없죠. 근데 문제는 저는 이런 건 거 같아요. 약간 좀 저는 개인적으로 제가 어떤 해답을 주거나 뭐 정책을 만들거나 이런 것과는 아주 거리가 먼 인간이고 저는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이렇게 되었을 때는 어떤 것이 문제가 되는가, 어떤 걸 우리가 더 생각해 봐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제 포지션이지 저는 문제 해결하고는 아무 상관없는 인간이에요, 사실은. 그래서 저보고 해답이나 이런 걸 물으시면 저는 할 말이 없는데요, 라는 말 말고는 말씀을 못 드리는데. 문제가 뭐냐 하면 하나가 바로 우리가 아이덴티티를 가진다고 했었을 때 이 장소와 공간의 문제가 있는 거예요. 예를 들면 내가 어디 맛있는 데 가 가지고 먹고 와 가지고. 그게 뭐 사이버 공간이든 내 주변 사람들 만나 가지고 그 집 되게 맛있더라, 먹어봐라, 라고 제가 충분히 얘기할 수 있잖아요, 그죠? 이게 디지털라이즈(digitalize) 되기 전에는 내 주변 사람들한테 내가 얘기하는 것이란 말이에요. 이거는 충분히 내 바운더리 안에서 내가 통제 가능한 사람들 안에서 얘기가 되는 것이잖아요, 그죠? 누군가가 딴 데 가 가지고 뭐라 그러면 너 어떻게 그럴 수 있냐, 이딴 식으로 시킬 수가 있단 말이에요. 즉 이게 뭐냐면 이걸 장소라고 보는 거예요. 장소라고 하는 건 되게 물리적인 개념이에요. 우리 인간이라고 하는 게 장소에 속해져 있는 거죠. 근데 공간이라고 하는 건 이건 훨씬 더 장소가 가지고 있던 물리적인 이런 개념 보다는 훨씬 더 사회학적인 개념이거든요. 이게 사이버 이후에 세계화 이후에 이 장소와 공간을 다루고 있는 많은 사회학자들이 뭐라고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고 얘기를 하냐 하면 비장소적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표현을 하고 있는 거예요. 이게 뭐냐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요번에 미국이랑 영국인가에서 애들 사이버에 글 올리는 것 관련해서 다른 걸 뭐 하나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만드는 이유 중에 하나가 우리가 비장소적 공간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특히 이 사이버 공간이 이런 공간이잖아요, 페이스북이나 뭐나. 제가 얼마 전에 봤던 되게 재미있는 예를 하나 들면 트위터 있잖아요? 트위터에 보면은 내가 끌 수도 있는데 안 끄면은 처음 세팅이 아마 자동으로 거의 자동으로, 예, 예, 예, 예, 예, 하고 누르다보면 내가 트위터 하는 장소 표시가 되잖아요, 그죠? 밤에 집에 들어와 가지고 심심해 가지고 우리 아파트에도 누가 트위터 하나 해가지고. 저는 제 꺼 꺼놓고, 제 프라이버시를 중요시 여기기 때문에. 주변에 트위터 이렇게 딱 하면 좌좌좌좌작 뜨잖아요? 딱 뜨는데 옆 동 아파트에 한 명이 있더라고요. 걔 트위터를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어요. 왜냐하면 걔 트위터를 들어갔더니 얘가 여자를 꼬시고 있는 중이었는데, 섹스하자고. 여자를 꼬시고 있는 중이었는데. 지금 이게 많은 사람들이 트위터 이거를 거의 문자 대용으로 쓰고 있잖아요, 그죠? 문자인 것처럼. 걔는 잘 몰랐던 것 같아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뭐, 섹스는 해보셨나요, 이런 대화가 있잖아요, 자기 트위터에 줄줄줄줄 올라가 있는 거예요. 그게 지금 얘기하는 비장소적 공간으로서의, 걔는 우리 옆 동에 살지만 비장소적 공간으로서의 사이버에 올라갔었을 때 이거는 무한대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범위 바깥의 문제가 되는 거죠.

이게 첫 번째고. 두 번째가, 이런 식으로 정리가 되는 게 첫 번째고 두 번째가 또 우리 그 디시인사이드 이런 데서 훌륭하게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 한번 마음 작정하고 털기 시작하시면 모든 신상을 다 털어 주시잖아요, 그죠? 신상털기범들. 중국에서는 인육사냥이라고 얘기하는데 그분들이 한번 출동하셔서 털면 제 것도 다 털리는 거죠. 이게 뭐 장소에 있건 어디에 있건.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질문하신 것처럼 여러 가지 다른 아이덴티티를 가지고 내가 활동을 하는데 이 신상털기범들한테 잘못 걸리면 죽 엮여 가지고 한 번에 바닥에 있는 물리적인 나 있잖아요? 이까지 다 털리잖아요? 그러다보니까 몇몇 사이버 연구하는 사람들이나 이런 사람들이 하는 얘기가 도대체 다중적인 아이덴티티를 가진다고 한다는 게 이게 얼마나 프로자일한가, 깨지기 쉬운 것인가, 있잖아요? 털리기 쉽고 깨지기 쉬운 것인가, 이런 얘기도 나오는 거죠. 특히 어린이, 중고등학생들 같은 경우에는 이게 재밌거든요. 문제의 핵심은 이게 되게 재밌으니까. 질문하신 것과 조금 다른 맥락인데 하나 말씀을 드리면 제가 학교폭력 문제 이걸 가지고 고민을 좀 많이 해요. 책도 보고 뭐 조사도 하고 하는데. 학교 폭력 문제를 보면 지금 거의 말세라고 지금 되죠, 우리나라 중고등학교가 말세가 된 것처럼 얘기를 하는데. 제가 이렇게 얘기를 듣거나 이렇게 보면 사실상 옛날이나 지금이나 별로 다르진 않아요. 근데 결정적으로 뭐가 다른가 하면은, 제가 그래서 아까 프라이버시 문제를 대중 인정투쟁 있잖아요, 그거랑 결합을 시켜서. 옛날에는 중계방송을 안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걸 다 중계방송을 하고 있는 거예요. 여기에서 바뀌어버린 감수성이 뭐냐 하면 옛날에는 얘가 제가 마음에 안 들잖아요. 야, 너 따라와, 이래 가지고 어디서 패냐 하면 화장실 뒤편에서 패요. 즉 안 보이는 데서.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 때린다는 것, 이거는 어지간한 경우가 아니면 교실에서 보다는 안 보이는 데 가 가지고 하는 거죠. 지금은 때리는 것도 그렇고 죽이는 것도 그렇고 어떤 것도 그렇고 어지간하면 동영상 찍어 가지고 올리죠. 저는 그게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장여경

선생님 얘기하는 걸 듣다 보면 넋을 놓게 되는데. 지금 우리가 이 공간을 9시까지 비워드려야 해서요, 사실은 듣고 싶은 게 굉장히 많은데 마무리해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께 너무 질문 드리고 싶은 것들 중에 하나가 누구로부터의 불안이냐, 누구로부터의 안전이냐. 거기서 바우만이 올드 빅브라더와 뉴 빅브라더의 가장 다른 점은 올드 빅브라더는 시민을 감시하는 빅브라더지만 뉴 빅브라더는 시민들이 스스로 호출한, 자신이 아닌 다른 타자들에 대한 감시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런 얘기를 했거든요. 선생님 중간에 문제 학생 얘기라든지 범죄자 얘기라든지 하실 때 그런 말씀 하시고자 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엄기호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거에요. 우리는 우리 스스로 지금 정권, 정권이라고 얘기, 권력에 속아가지고, 이걸 이렇게 표현하거든요, 타자의 악마화 현상에 우리 스스로가 완전히 지금 매몰되어져 있죠. 등장하는 모든 타자들을 악마로 만들고 있거든요. 언론노조들이나 이런 걸 보시면 더 잘 아시겠지만 모든 타자는 다 악마의 얼굴로 나타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 프라이버시 문제라든가 이걸 역설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 하나의 전략을 말씀드리고 끝을 맺을게요. 예를 들면 성폭력 문제를 가지고 얘기해봅시다. 옛날에 우리가 서울대 우조교 사건이라고 안 하고 신정휴 사건이라고 불렀어요, 그죠? 처음에 사람들이 우조교 사건이라고 불렀었을 때 우조교 사건이라고 부르면 안된다, 라고 얘기했던 맥락이 피해자를 왜 폭로하냐, 이 프라이버시의 문제가 되는 거죠, 그죠? 우조교라고 했을 때 우조교라고 하면 사람만 나타내지 어느 새끼가 이 짓을 했는가, 라는 가해자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가해자를 폭로하는 방식으로 우리가 얘기를 해야 되고 그렇게 폭로했을 때 프라이버시가 지켜진다, 이런 식으로 얘기를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이때와는 다르게 바로 이 타자의 악마화라는 현상이 대두가 되기 시작하면서, 이건 뭐 공식적인 건 아니에요. 저라든가 몇몇 페미니스트들 중에서 급진적으로, 급진적 페미니스트라고 불리는 친구들이 요즘 어떤 주장을 하고 있냐 하면, 이번에 조두순 사건 있잖아요? 이것도 우리가 조두순 사건이라고 기억하지, 나영이였나 이름이? 가명인데, 나영이 사건이라고 안 불렀는데, 이거 아주 자동빵으로 생각을 했거든요. 그랬는데 이거에 대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심각한 문제의식이 뭐냐 하면 오히려 이거는 이제부터는 조두순 사건이라고 불러선 안 된다, 나영이 사건이라고 불러야 된다, 라는 얘기를 해요. 이걸 조두순 사건이라고 부르는 순간부터 이 모든 범죄는 누가 저지르는 게 되냐 하면 괴물들이 저지르는 걸로, 대단히 예외적인 사건으로. 근데 그 예외적인 괴물들이 우리 주변에 넘쳐나고 있다, 라면서 위험을 증폭시키고 불안을 증폭시키는 거 있잖아요? 이런 매체에 우리 스스로가 농락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지금 보도가 되고 있는 이 프라이버시든 뭐든 있잖아요? 여기에서 제일 크게 우리가 문제 삼고 있는 건 이게 괴물화 되는 현상과 동시에 뭐가 사라져 버리냐, 하면 피해자의 고통은 아무도 지금 얘기하지 않아요. 피해자가 어떤 맥락에서 어떤 고통을 겪었고 그 다음에 그 고통 속에서 그는 어떻게 그걸 극복하고 있느냐는, 피해자의 서사, 피해자의 이야기 있잖아요? 이건 굉장히 낮은 수준에서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해줘야 된다, 라는 이름 속에서 이거는 사라져버리고 있는 거죠. 이게 우리가 지금 굉장히 황당해 하고 있는 거예요. 점점 가면 갈수록 우리의 진보진영 내지는 인권의 담론 속에서 피해자의 이야기는 가려져 벼리고, 그죠? 피해자의 눈물, 피해자의 뭐 이런 것들, 이거는 가려져 버리고 괴물들만 전면에 등장하는 이런 식이 되는 거죠. 아시다시피 나영이는 실명도 아니고 가명이었거든요. 그러니까 이런 부분에서 오히려 몇몇 래디컬한 페미니스트들이나 저 같은 인간들이나 이런 인간들이 네이밍하는 방식에서부터 우리가 다시 뭔가를 생각해봐야 된다, 그때 그러면 그 프라이버시라고 하는 건 뭐냐? 이런 질문들을 우리가 던져야 된다고 생각을 하는 겁니다.

 

장여경

선생님이 오늘 저희한테 굉장히 많은 질문을 던져 주신 것 같아요. 선생님이 뭐, 본인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라고 이렇게 얘기하셨는데 다음 시간에 우리가 모실 선생님은 홍성수 선생님이에요. 이 선생님은 법과 인권의 관점에서 이제 프라이버시 문제를 접근을 하실 예정이고. 저희 기대로는 오늘 선생님이 던지신 질문에 일부를 그 분이 해답을 주시겠지요. 그런 의도로 의논을 했는데 과연 그렇게 될지. 개인정보에 대한 자기결정권이 소유권 아니냐고 묻기 시작하면 참 쉽지 않은 답이 되겠죠? 어쨌든 다음 시간에도 오늘 오신 분들 꼭 다시 뵙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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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 상업적 감시 : 구글, 페이스북 등 온라인 사이트를 중심으로 (최철웅) _녹취록

 

감시사회 대강연회 제3강(최철웅) 녹취록

 

□ 일시 : 2011년 5월 12일(목) 저녁 7시

□ 장소 : 여의도 이룸센터 교육실

□ 사회 : 장여경

□ 강사 : 최철웅

 

장여경

안녕하세요? 예, 저는 진보네트워크센터의 장여경이라고 합니다. 지난번까지 강의는 인권재단 사람의 박래군 이사님이 보셨는데요, 5월 달 강좌 사회는 제가 세 번 볼 예정입니다. 반갑습니다. 이 강좌는 여러 차례 공지가 나갔으니까 잘 아시겠지만 녹취하고 녹음이 됩니다. bigbrother.jinbo.net 이라는 홈페이지에 매주 강의 내용과 녹취록을 올리고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라고요. 혹시 뭐 강연하는 중에 녹취나 녹음되는 게 싫으신 분은 저한테 말씀해 주시면 나중에 혹시 촬영되는 일이 없도록 배려를 해 드리겠습니다.

저희가 총 6개의 강좌로 되어 있는데요, 그동안 2개 강좌가 끝났습니다. 첫 번째 강좌는 한홍구 선생님께서 한국현대사, 한국현대사에서 감시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고 특히 인제 정보기관의 역사, 그리고 주민등록제도의 역사, 이런 내용에 대해서 강의를 해주셨고요. 그 다음에 두 번째 강좌는 진중권 선생님께서 이명박 정부 하에서의 감시의 문제, 이런 문제에 대해서 또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그동안의 강좌가 국가기관의 감시, 이런 부분 특히 권위적인 국가기관의 감시에 집중이 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오늘 강의는 조금 다른 결로 이루어질 예정입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사용하고 계시는 구글이나 페이스북이나 여러 가지 온라인 상업서비스들이 있습니다. 그 상업서비스들의 감시 문제, 최근에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계신데요, 그 문제에 대해서 오늘 중앙대에 계신 최철웅 선생님께 말씀을 듣고 토론하는 시간을 갖고자 합니다. 강의는 8시 한 15분 정도까지 진행될 예정이고 그 이후에 질의 응답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최철웅 선생님께 강의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수로 맞아 주시기 바랍니다. (박수)

최철웅

네, 안녕하세요. 저는 소개 받은 중앙대 문화연구학과 박사과정 재학 중이고요, 최철웅이라고 합니다. 학생인데 지금 강연을 하게 됐어요. 뭐 시민단체나 또는 이렇게 시간강의 같은 걸 하긴 하지만. 제가 하필이면 한홍구 교수님, 진중권 선생님에 이어서 강연을 맡게 되어 가지고 굉장히 부담스러웠구요, 저는. (웃음) 한홍구 교수님 강연 올라온 것 봤는데 굉장히 재밌게 역시나 재밌는 야사를 많이 얘기해주시면서 강의를 굉장히 잘 하셨더라고요. 굉장히 부담이 되고. 특히나 저는 처음에 이렇게 대강연회인줄 몰랐어요. 녹취도 하고, 실시간 중계도 하고, 나중에 동영상도 올라가고, 이런 사실 모르고 했다가 오늘 강의 준비하면서 굉장히 부담이 됐고요. 잠을 좀 설쳐가지고. 제가 이번에 상업적 감시에 대해서 강연을 맡게 됐는데 제가 뭐 상업적 감시 특히 이제 여기서 처음 기획하신 거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온라인 데이터베이스를 통한 감시들, 최근의 에스엔에스(SNS),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고 하죠, 그런 것들을 활용한 새로운 감시의 문제들, 이런 것들에 대해서 좀 얘기를 해달라고 제가 요청을 받았는데. 제가 뭐 이쪽 전문가는 아니고요, 특히나 제가 기술적인 측면에 대해서는 잘 알지를 못해요. 그래도 제가 학부를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기는 했거든요. 일반인보다는 많이 알 수는 있겠죠. 그렇다고 제가 뭐 이렇게 모범적인 학부생이 아니었기 때문에 원리 정도는 알고 있어요. 자동차 어떻게 뭐 이렇게 굴러가는가 잘 몰라도 원리는 다 알 수 있잖아요? 그 정도인 거고요. 그래서 저는 주로 이제 기술적인 측면 보다는 문화적인 함의들, 최근의 민간 감시나 상업적 감시가 가지고 있는 또는 새로운 데이터베이스 감시, 소위 전자감시라고 부르는데 그런 감시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함의, 정치적 함의 이런 것들 중심으로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보면은 감시 문제 자체가, 제가 감시 관련해서 글을 몇 번 쓴 것이 결국에 오늘 강연의 인연으로까지 이어진 것 같은데, 감시라고 하면은 조금 국가기관에 의한 감시처럼 굉장히 디스토피아적인, 오웰식의 전체주의적인 그런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측면도 있는데. 또 한편 우리가 감시라고 하면은 조금 이렇게 다른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그렇죠? 보면은 감시라는 게 그렇잖아요? 테크놀로지라고 하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한다고 하는 테크놀로지적인 측면이랑 또 하나는 시각성의 측면이 결합되어 있어요, 보면은. 그래서 항상 보면은 영화나 특히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데 보면은 전형적인 이미지가 있죠. 상황실에서 1000개의 모니터가 각종 여기저기 어떤 육안으로 볼 수 없는 그런 부분들을 이렇게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해 주는 그런 어떤 천 개의 눈에 대한 어떤 욕망, 이런 것들이 결부되어 있고. 감시라고 하면 우리가 사실 보면 되게 잘 일상적으로 많이 경험하는데도 불구하고 뭔가 잘 모르겠다, 뭔가 모호한 부분이 있다, 라고 얘기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부분이 감시 자체가 가지고 있는 어떤 시각성, 테크놀로지 측면이 결합되어 있는 그런 차원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싶고. 테크놀로지 발전에 따라서 새로운 시각성이, 새로운 시각적 경험, 예컨대 씨씨티비(CCTV) 같은 경우가 그런 거죠? 예전에는 영화에서나 볼 법한 그런 장면들을 우리가 뉴스 화면을 통해서도 CCTV 범죄 장면 같은 것을 보곤 하잖아요? 굉장히 이질적인 느낌이 들지 않으신가요? 저는 굉장히 처음에 그런 장면 볼 때 이질적이었거든요. 왜냐면 보통 티비(TV) 뉴스 같은, 사실보도를 하는 그런 데서는 볼 수 없는 새로운 영상 이미지잖아요. CCTV 뭐 지지직대고 보면은 이렇게 형체에 검은 그림자가 뭔가를 하고 있고. 또 보면은 마치 영화를 보는 건지 내가, 현실에서 TV 뉴스를 보고 있는 건지 굉장히 좀 모호해지는 측면이 생긴다는 거죠. 그런 것들이 테크놀로지의 발전이나 새로운 시각 문화의 어떤 전개에 따라서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고 그런 것 때문에 계속해서 감시에 대한 관심이 대중적인 차원에서도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고요. 기본적으로 어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소위 우리가 관음증이라고 얘기하는 독특한 시각적 쾌락에 대한 무의식적인 욕망, 이런 것과 좀 관련된 측면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이제 감시를 이렇게 시각의 문제로만 보다 보면 구글이나 페이스북처럼 소위 데이터를 가지고 하는 감시, 이런 측면에 대해서 간과하게 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그래서 자료를 활용한 감시의 경우에는 조금 더 다른 메커니즘이 작동할 수 있거든요. 목적은 동일하다 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주체에게 경험이 되거나 또는 감시의 목적 자체가 다를 수 있는 측면이 있는 거죠. 저는 이제 뒤에 가서 통제라는 개념을 통해서 좀 얘기를 해보려고 하는데요.

그래서 이 테크놀로지라는 걸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라는 게 사실은 감시 문제에서 핵심적인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게 테크놀로지라고 하면은 그냥 잘 모르는 것, 그 다음에는 어떤 하나의 도구나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뒤에 가서 얘기하겠지만. 그래서 소위 요즘에 감시 자체가 민주화됐다고 얘기하는 그런 입장이 있잖아요? 예전에는 국가권력이나 뭐 국정원이나 이런 첩보기관에서만 감시를 수행했다고 한다면은 최근에는 대중들도 뭐 스마트폰을 이용한다든지 컴퓨터를 할용한다든지 활용해 가지고 얼마든지 국가기관을 감시한다든지 또는 친구를 감시한다든지 연예인을 감시한다든지 한다는 거죠. 그래서 뭐 이런 것들을 소위 신상털기라고 하는데. 나름대로 민주화됐다고 얘기를 하는데. 땡땡 치고 민주화라고 얘기를 해야겠죠. 대중화되고 그런 측면이 있지만 정치적 민주주의랑 크게 상관이 있는지는 의문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 테크놀로지 자체가 중립적인 수단이라는 관점이 한편에서는 있는데, 또 한편으로는 제가 좀 오늘 강조하고 싶은 부분은 그런 측면도 있지만 또 한편으로는 테크놀로지 자체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단순히 감시 기술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서도 안 되고 또 막연히 사회적인 맥락만 얘기를 해도 감시, 최근의 어떤 상업적 감시나 데이터베이스 감시, 이런 것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메커니즘을 놓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일단 감시 개념 자체를 우리가 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데요, 감시라는 건 굉장히 막연한 거죠. 그러니까 크게 3가지 정도 개념화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일반적으로 국가기관에 의해 행해지는 좁은 의미의 첩보라는 개념의 감시가 있을 수 있고요. 주로 이제 1회 때 강연회에서 한홍구 선생님께서 주로 강의해 주셨던, 한국사회에서도 역사가 굉장히 풍부한, 국가기관 또는 각종 안보기구 그런 데에 의한 정치적 목적을 통한 개인의 감시, 사찰, 이런 행위. 산업스파이 같은 경우도 비슷하겠죠. 그런 첩보행위가 있고. 또 하나는 우리가 좀 더 이제 감시라고 했을 때 직접적으로 떠올리는 모니터링이라는 게 있는데 실제 보면서 감시하는 거죠, 그냥 눈앞에서. 이건 제가 보기엔 감독이라고 개념을 하는 게 좀 더 이해를 하는데 좋지 않을까 싶은데. 직접적으로 제한된 장소 내에서 대면한 상태에서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로 감독을 하는 거죠. 이런 것들은 이제 뭐 작업장에서 노동자를 감시한다든가 하는 부분에서 나올 수 있겠고. 주로 고전적인 감시 형태가 되겠죠. 감옥에서 간수가 수인들을 감시한다 할 때 이런 것들이 감독행위가 될 테고. 또 하나 이제 감시를, 서베일런스(surveillance)라고 우리가 보통 서베일런스를 감시라고 표현을 하는데, 단순히 모니터링뿐만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의미의, 지금까지 얘기했던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한 데이터 감시까지도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으로 사용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요즘 문제가 되는 게 그런 거잖아요. 기업에서 하는 감시 같은 경우 우리가 얼마든지 자발적으로 개인정보를 제공했는데 이게 뭔 감시냐? 그리고 그 개인정보를 어떻게 활용하고 감시하는지 뻔히 아는데 그것도 감시냐, 이런 얘기가 나올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제 그런 것들도 정보를 통제하고 정보의 통제를 통해서 어떤 특정한 행위를 산출해 낸다거나 어떤 특정한 통제 행위를 가한다거나 하면은 그것도 넓은 의미에서는 감시라고 우리가 부를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이제 감시라고 하면은, 우리가 좀 감시 문제를 좀 더 개념적으로 접근했을 때 사실 아마 많은 분들이 들어 보셨을 텐데, 어떤 근대적인 권력의 메커니즘으로서 감시를 보는 개념으로 푸코에 의해서 널리 알려진 판옵티콘과 관련된 논의가 있죠? 원래 제레미 벤담이 고안했던 판옵티콘이라는 구상을 푸코가 어떤 근대적인 권력의 형태, 소위 규율권력이라는, 권력의 형태로 해석을 하면서 대중들에게도 널리 알려진 그런 논의가 있는데요. 아마 대부분 들어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간단히 설명을 하면 판옵티콘은 그렇죠, 일망감시체제라고 하는데. 아까 얘기했던 천 개의 스크린과 같이. 벤담 같은 경우는 그거를 19세기에 작업장에서 고안을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가운데 감시탑이 있고 가운데 감시탑을 뺑 둘러서 각 방들이 있는 거죠. 감옥을 연상하시면 되는데. 이 모델을 따라서 실제로 구축한 감옥들이 실제로 존재하는데. 가운데 감시탑이 있고 감시탑을 중심으로 뺑 둘러서 원형으로 각 방들이 있고. 그래서 감시탑에 있는 간수는 각 방을 다 360도 회전해서 볼 수가 있는데 안에 방에 있는 수인 같은 경우는 간수를 볼 수 없는, 왜냐하면 감시탑에는 베일이 처져 있어 가지고. 그러다보니까 가시성이 이제 어떤 불균등한 위계적 배치가 구성이 되는 거죠. 그래서 간수는 자기는 보면서 보이지 않는 자고, 수인 같은 경우는 자기는 볼 수 없으면서 보임을 당하는 그런 자가 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은 벤담이 이 판옵티콘 계획을 적극적으로 주창했던 건 이게 굉장히 경제적인 방식이라는 거예요. 간수 1명이 굉장히 많은 수인을 동시에 감독할 수가 있는 거죠. 그리고 사실은 더 나아가면은 처음에 몇 번은 간수가 이렇게 감시를 하다가 나중에는 간수가 감시탑에 없어도 크게 상관이 없어요. 왜냐하면 수인 입장에서는 간수가 있는지 없는지 어차피 보이지 않으니까. 그러다 보면은 자연스럽게 간수의 눈 또는 권력의 시선을 내면화하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소위 알아서 기게 되는 그런 상황이 발생한다는 건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감시의 시선을 내면화한 유순한 신체, 또는 규율 잡힌 신체를 생산해 내는 것이고. 푸코는 이것이 단순히 감옥모델이 아니라 원래 작업장에 도입하려고 했던 것처럼 작업장, 학교, 감옥, 이런 소위 근대적인 권력의 장치들에서 활용할 수 있는 굉장히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어떤 메커니즘이라고 보았던 거죠. 그래서 생각하면은 감옥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우리가 경험했던 학교가 사실은 이 판옵티콘 구조, 그 메커니즘을 따르고 있잖아요. 왜냐면 대부분의 학교 자체가 일제시대 때부터, 일제시대의 소위 감옥, 감옥시설 같은 걸 그대로 사용해서 그런 경우도 있지만. 보면은 그 공간의 배치, 학교 같은 경우에도 교실 안에서 공간의 배치나 그 공간의 배치를 통한 가시성의 배치나 구조를 보면 감옥의 원리 또는 판옵티콘의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죠. 딱 지금 이런 구조라고 할 수 있는데 선생은 앞에 혼자 이렇게 서 있고 나머지 교사를 향해서 모든 학생들이 한쪽 방향으로 쳐다보고 있고. 그리고 보면은 책걸상 구조가 굉장히 단순하잖아요, 학교는. 왜 그럴까? 왜냐면 이제 밑에서 손을 꼼짝댄다든지 하는 그런 행위까지도 가시화시키는 거죠. 그리고 교실 내에서의 배치뿐만 아니라 복도도 보면은 복도가 일렬로 있고 복도를 면해서 계속해서 교실들이 배치되어 있고 교실과 복도 사이에는 큰 통창이 있어 가지고 복도만 지나가도 모든 교실을 한 번에 바라볼 수 있는 구조. 그래서 가끔 교장선생님 한분이 쓱 지나가면서 야자, 보충수업 제대로 하고 있는지 본다든지. 그런 구조 같은 경우가 학교에도 도입이 되어있는 거고. 그래서 굉장히 어떻게 보면 근대적인 권력 메커니즘이 공간을 어떻게 구획되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최근 들어서 판옵티콘 모델이 조금씩 변형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뭐 판옵티콘 모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모델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 이제 최근에 나타난 특징적인 현상 중 하나가 소위 이제 신옵티콘이라고 불리는 구조인데,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떠올리시면 돼요. 리얼리티 프로그램, 소위 요즘에 모든 예능의 주요 포맷이잖아요. 몇 년 되지 않았는데, 제 기억으로도. 언젠가부터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성행하기 시작했죠?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효시 자체가 아마 1990년대 후반 나왔던 네덜란드 회사에서 만든 빅브라더라는 프로그램인데, 아시는 분 아시겠지만. 젊은이들 모아 놓고 공간에 모아 놓고 뭐하는지 계속 찍으면서 소위 관찰 카메라처럼 방영하는 그런 프로그램이었는데. 제목도 빅브라더였고. 빅브라더 프로그램의 기본적인 포맷이 계속해서 사실은 반복이 되는. 최근 뭐 각종 케이블TV 보면 다 그런 거잖아요? 관찰카메라라고 해가지고 카메라 곳곳에 설치해 놓고. 그런데 본인도 알고 있죠,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는 걸. 이게 좀 다른 건데 예전의 빅브라더라고 하면은, <트루먼쇼>라는 영화 혹시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트루먼쇼와 같은 상황이 빅브라더라고 할 수 있죠. 왜냐하면 <트루먼쇼>에 나오는 트루먼은 완전히 가공된 인공적인 환경에서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사실은 방영되고 있는데, 어릴 때부터 계속 자기 커온 내내. 그런데 자기는 모르고 있잖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은 전부 다 알고 있죠, 그것이 가짜라는 걸. 리얼리티 프로그램 같은 경우는 참여자들이 자기가 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보면서 보이는 거죠, 사실은. 그래서 이제 어떤 가시성의 위계적 배치라는 판옵티콘 구조가 아니라 어떤 평면적인 수준에서 보면서 보이고. 또는 웹캠 같은 경우도 그렇죠. 인터넷을 보면 웹캠(webcam)들 있잖아요? 그냥 개인이 자기 웹캠, 노트북에 있는 웹캠이나 이런 거 가지고 자기 방에다 달아 놓고 하루 종일 인터넷으로 영상을 보내고 있어요. 사실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저는. 노출증도 아니고. 웹캠 같은 경우도 자기 스스로 자기 일거수일투족을 그냥 공개하는 거죠. 이때에도 사실은 보이는 사람이 어떤 자기만 모르는 그런 상황은 아닌 거죠. 이런 평면적인 수준에서 행해지는 그런 감시의 상황, 이걸 감시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일단은. 자발적으로 굉장히 피감시자 자체가 그 상황을 즐기고 있는데, 라고 생각할 수가 있을 텐데요. 그런데 사실 이것도 제가 보기엔 감시의 일종인데, 좀 메커니즘 자체가 다르고 목적 자체가 다른 거고. 그래서 더 이상 타자의 응시가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응시가 문제가 아니라 그래서 권력의 응시로부터 혼자 있고 싶다는 그런 어떤 고전적인 프라이버시의 문제가 아니라 여기에 작동하고 있는 어떤 욕망 같은 경우는 오히려 타자의 응시에 내가 노출되지 않으면 어쩌나, 누가 날 봐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굉장히 역설적인 욕망이 작동을 하고 있다는 거죠. 그래서 뭐 이제 문화연구자 지젝 같은 경우는 오히려 이런 사람들을 타자의 응시에 노출되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존재적인 부담감의 표현이다, 이런 식으로 표현을 하기도 하는데요.

그런데 이때도 그렇다면은 아무런 어떤 피감시자인 주체를 통제하거나 훈육하는 효과가 없느냐? 제가 보기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훈육의 효과가 있죠. 그게 뭐냐면 카메라 자체가 가지는 훈육의 효과인데. 지금 제가 카메라 앞에 있는데 (웃음) 굉장히 훈육적인 효과를 주고 있잖아요. 카메라 한번 이렇게 반대로 돌리면 (웃음) 어떤 느낌인지 아실 텐데. 더 이상 간수의 어떤 시선, 또는 국가권력의 시선이 문제가 아니라 카메라의 저 빨간 불빛 자체가 주는 어떤 훈육의 효과가 있어요. 근데 이건 뭐냐면 국가권력의 의도, 그걸 내가 먼저 알아 채 가지고 내면화 해야 되는 이런 문제가 아니라, 소위 이때 문제가 되는 건 카메라를 통해서 나를 바라보는 불특정 다수의 대중의 평판이 문제가 되는 거죠. 그래서 일반인이 출연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보면은 좀 의아한 생각이 들지 않으시나요? 저는 케이블 각종 케이블TV에 나오는, 정말 저렇게 선정적일 수가 있구나, 하는 케이블TV 프로그램들 보면 깜짝깜짝 놀라고 하는데. 나와서 굉장히 노골적으로 사생활을 드러내고 연인들이 나와서 막 되도 안하는 욕설을 하면서 싸우기도 하고, 뭐, 그러잖아요. 보면은 재밌는데 그런 선정성이 재밌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그런 어떤 일탈적인 상황, 연출되지 않는 상황, 그런 어떤 일상성을 보여주려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파국적인 상황은 벌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스튜디오 안에서. 아무리 미친 척을 하고 화성인이 나오고 해도 보면 굉장히 얌전하잖아요, 사실. 카메라를 부순다든지 정말 파국적인 상황 자체는 벌어지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카메라가 작동하는 순간 우리는 알게 모르게 카메라의 시선에 맞춰 스스로를 사실은 연출하게 된다는 거죠, 자기도 모르게. 그리고 그 연출할 때 권력의 시선이란 대중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 굉장히 복잡한 메커니즘이 작동하는 거 같거든요. 일반인들 같은 경우엔 제가 보기엔 그런 데 출연하면 굉장히 난감할 것 같아요. 연예인이 아니라 일반인이기 때문에 뭔가 좀 아마추어적인 아마추어 같은 모습을 보여줘야 되는데, 그래야 뭔가 진정성 있게 보일 텐데, 그 진정성 자체도 연출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이거 연예인도 마찬가지죠. 가끔 리얼리티 프로그램 보면은 연예인들이 나와서 캐릭터 잡는 게 어렵다고 이렇게 얘기를 하잖아요. 캐릭터라는 게 그렇잖아요? 우리가 사실 그 캐릭터의 모습이 정말 그 연예인이 가지고 있는 실제 모습이랑 일치할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데, 또 한편으로는 그럴 거라고 믿기도 하기 때문에 그 사이에서 굉장히 줄타기를 해야 돼요. 캐릭터를 일단 대중이 좋아하는, 좋아할 법한 그리고 기존의 다른 연예인이 선취하지 않았던 캐릭터를 내가 잡아야 되고 또 그 캐릭터를 내가 굉장히 진정성 있게 연기를 해야 되고 또 그게 지나치게 연기인 것처럼 보이면 또 욕을 먹고, 뭐 이런 악순환이 벌어지는 거죠. 그래서 그 최근의 어떤 각종 미디어의 보급이나 인터넷의 보급에 따른 신옵티콘적인 메커니즘의 전면적인 확대, 그리고 특정한 어떤 범죄자랄지 뭐 수인이랄지 그런 특정 대상이 아니라 불특정 다수, 대중 누구나가 그런 감시의 객체가 될 수 있는 상황, 언제든지 우리가, 요즘에 그렇잖아요, 언제든지 내가 무슨 짓을 지하철에서 무슨 일을 저질렀는데 누가 스마트폰으로 나를 찍고 있을지 모른다는 그런 염려를 항상 하고 살아가야 되잖아요. 그래서 누구나가 사실은 어느 정도 연출을 하면서 살아 갈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으로 이렇게 전개되고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고요. 그래서 이제 현실 자체가 하나의 무대가 되고 현실과 어떤 외양이 서로 교차하는, 그래서 무엇이 현실인지 무엇이 허구의 삶인지 알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고요.

그 다음에 이제 오늘 강연의 중심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디지털 감시 문제로 넘어가면은. 디지털 감시 같은 경우에 많은 분들이 잘 아시리라 생각을 하는데, 일단은 소위 이제 전자감시가 가능해지면서 감시의 각종 물리적 제안이 극복이 되죠. 예전처럼 학교랄지 감옥이랄지 뭐 작업장이랄지 그런 어떤 폐쇄된 고정적인 물리적 공간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고 CCTV를 설치한다든지 해 가지고 얼마든지 시간적인 공간적인 한계를 극복하면서 감시를 할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이 기술 테크놀로지 발전에 의해서 형성이 된 거고요. 그 다음 정보의 축적이나 검색이나 결합, 또는 그것을 서로 매칭해 가지고 뒤에 가서 얘기할 데이터 마이닝이라고 해가지고 여기 있는 정보와 저기 있는 정보를 조합해 가지고 어떤 특정한, 내가 필요로 하는 특정한 정보를 산출해낼 수 있는 능력이 굉장히 높아졌어요. 그건 아마 첫 회 강연에서도 어느 정도 설명이 됐을 텐데. 우리가 지금 굉장히 자연스럽게 생각하지만 각종 개인 정보가 디지털화되지 않고 전부 수기 상태로 그냥 문서로 보관되었을 때랑 지금처럼 액셀 파일 하나로 모든 국민의 개인정보를 CD로 한 장, USB 한 장에 담을 수 있는 상황이랑 그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는 거죠. 특히 이제 행정시스템에서는 복사기가 도입된 건 굉장히 혁명적인 거거든요. 원본만 존재할 때랑 그리고 원본을 막 수기로 옮긴다든지 일일이 대조하고 검증해야 할 때랑 간단히 복사할 수 있는 상황이랑은 굉장히 행정의 효율성이나 관료적 통제의 가능성, 정보의 중앙 어떤 통제 가능성 이런 것들에서 질적인 차이가 있겠죠. 그런 것들이 어떤 디지털화에 의해서 극대화된 상황이라고 할 수가 있고요. 그 다음에는 디지털화가 되면서 소위 이제 데이터베이스화 되면서 정보가 되게 수평적으로 확산되는 그런 경향이 발생을 합니다. 예전 같은 경우에는 과거에는 각종 개인정보가 국가에 사실 집중되어 있었죠. 국가 또는 관료기구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한다면 이제는 금융권, 보험회사, 주유소, 인터넷 쇼핑몰, 개인들도 가지고 있고. 다 가지고 있죠. 다 가질 수 있고 얼마든지 쉽게 유통을 할 수가 있고 또 요즘 개인정보 이제 사고 팔 듯이 개인정보 자체를 상업화할 수가 있죠, 국가가 이제 통제할 때와 달리. 그래서 개인정보가 상업화되는 데 있어서 디지털 기술의 발전 같은 경우 굉장히 큰 역할을 했고요.

그 다음에 또 이제 상업적인 감시에서 문제가 되는, 개인정보를 더 이상 국가가 강제로 수집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자발적으로 제공한다는 것. 경품 응모하고 무슨 보험 뭐 가입시켜주고 한다는 이유로. 또는 모르고 그냥 개인정보를 제공하죠. 왜냐하면 사이트 제공하는데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하지 않으면 가입 자체가 안 되니까. 사실 동의가 아닌 거죠, 그게. 아무튼 어쩔 수 없는 동의라고 할 수가 있는데. 그런 식으로 자발적으로 제공하는 정보의 양이 또 굉장히 많아졌다는 것.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게 과거 같은 경우는 감시가 굉장히 노동 집약적인 방식이었다면, 왜냐하면 직접적인 어떤 모니터링, 아까 얘기했던 감독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감시가 행해졌기 때문에. 디지털 감시 같은 경우는 굉장히 자본집약적인 특징을 띠어요. 그래서 자본을 투여하면 투여할수록 감시의 가능성,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가능성, 통제가능성이 굉장히 높아진다는 거죠. 제가 보기에는 상업적 감시 문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자본에 대한 권력이 비대해진다는 이 점에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래서 기본적으로 개인에 대한 어떤 정보를 수집한다는 것은 원래 국가의 고유한, 어떤 근대적인 국가권력의 핵심적인 메커니즘 중에 하나였죠. 한홍구 선생님이 아마 강연 때 잘 설명을 해주셨을 텐데. 국가 자체가 어떤 근대의 산물이라고 했을 때 국가가 모든 개인의 삶을 책임지는 그런 어떤 국가가 될려면 각 개인에 대한 각종 정보를 일단 수집을 해야 돼요. 각 개인의 출생일, 사망일부터 재산 상황, 그 다음에 호적 상황 이런 것들을 다 수집을 해야 조세랄지 각종 병역이랄지 또는 복지 제공이랄지 이런 데 있어서 활용할 수가 있는 거죠. 그래서 사실 국가기관에 의한 개인정보의 수집이라는 건 단순히 그냥 부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그런 측면이 있는 건데.

그런데 문제는 이게 최근 같은 경우에는 민간 기업이나 개인에게 이 개인정보가 수집이 되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하느냐, 그 문제가 이제 주로 핵심적인 관건이 될 것 같고요. 일단은 우리가 가장 일상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개인정보의 악용 가능성, 우리가 모르는 어떤 나쁜 용도로 우리 개인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 사기 당할 가능성, 보이스피싱이랄지, 그런 것들이 많이 이제 소개가 되는데 소위 이제 사이버 범죄라고 불리는. 그런 것들은 제가 보기엔 어떤 예외적인 현상들이고,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것들일 텐데. 일단은 민간 감시나 상업적 감시 같은 경우에는 감시의 목적 자체가 다르다는 점을 우리가 염두에 둬야 될 것 같아요. 더 이상 예전에 국가기관이 행하던 것처럼 개개인 또는 주민들의 전체 인구에 대한 개인정보를 수집해 가지고 그 특정한 국가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특정한 지식을 생산해 내고 그것을 통해서 국민 개개인의 삶과 일상을 관장하는 그런 목적이 아니라, 또는 범죄자랄지 반정치적 세력이랄지, 테러리스트랄지 그런 어떤 내부의 적들을 걸러내기 위해서 신원을 확인해야 하는 그런 문제가 아니라. 기업이 신원을 확인할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 기업 같은 경우에는 철저하게 이윤을 추구하는 게 목적이란 거죠. 그래서 보면은 기업이 주로 우리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방식이 제일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맞춤형 마케팅이라고 불리는 거죠. 그래서 아마 책 많이 사시는 분들은 아마존이나 알라딘 들어가면, 아마존 같은 경우 처음에 쇼킹했는데, 들어가면 책을 추천해 주잖아요. 그런데 보면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책이에요. 어떻게 알았지? 그리고 보면 걔 중에는 이미 산 책도 있고. 지금 보면 알라딘도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요. 그래서 보면 추천을 해 주기도 하고. 예전에 싸이월드도 그런 게 있었어요. 싸이월드도 음악을 추천해 주는데 굉장히 내가 좋아할 법한 음악들을 추천을 해줘요. 그런 것들이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가지고 기존의 정보를 가지고 소위 데이터 마이닝 기법이라고 해 가지고 데이터들을 조합해 가지고 예측을 한 거죠. 그런 것들이 예전에는 개개인들이 이렇게 자료를 보면서 하나하나 해야 됐을 텐데 이제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자동적으로 자동 메커니즘으로 구현해 놓고, 그런 것들이 있고. 최근에 또 이제 스마트폰 쓰시는 분들은 스마트폰 활용하면서 요즘 많이 쓰는 카카오톡, 전국민의 메신저조, 카카오톡 보면 처음에 친구추천 되잖아요. 보면 되게 단순한 기술인데. 서로 가지고 있는 연락처를 검색해가지고 둘 다 가지고 있으면 친구추천이 되고 나는 가지고 있지 않은데 상대방만 가지고 있다. 그러면 친구 추천이 뜨고. 그래서 보면 알 수가 있잖아요. 나는 이미 지웠는데 그 사람은 내 번호를 계속 가지고 있었구나. (웃음) 그 반대의 경우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좀 아찔하기도 하고. 트위터 같은 경우에는 후투팔로우(who to follow)라고 해가지고 내 팔로우 성향을 조합해가지고 추천해 주잖아요. 누구 팔로우 해라. 보면 내가 좋아할 법한 사람이고. 페이스북 같은 경우는 친구 추천 기능이 사실 굉장히 뛰어나죠. 다 걸리잖아요, 보면은. 페이스북 같은 경우 메커니즘은 아주 단순한 거죠. 우리가 제공한 이메일 가지고 이메일 비밀번호랑 제공하면은 메일함 열어보는 거예요, 페이스북이. 메일함에 각자 주소록들 저장해놓고 쓰시잖아요. 또는 최근에 보낸 리스트, 주소 리스트 같은 거 있으면 그걸 싹 검색해 가지고. 그런데 이제 그런 것들이 조합이 가능해지면 무한한 새로운 정보를 산출해 낼 수 있는 건데. 내 것만 가지고 있으면 사실 별 게 아닌데 내 꺼랑 내 친구 것 가지고 그 중에서 중복되는 주소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 연관관계를 검색하다 보면 굉장히 친구를 추천해 줬을 때 내가 알 수 있는 가능성이 굉장히 높은 거죠. 추천해 주는 친구들 보면은 개인적인 일면식은 없어도 아는 사람들이에요, 보면 대부분이. 한 다리 건너면 알 만한 사람들. 그런 경우 사실 기술적으로 어떻게 보면 단순한 메커니즘인데. 그 자료들을 활용할 수 있었을 때 그 자료가 어느 정도 규모의 경제가 작동했을 때에는, 그리고 검색 기술이나 자료들을 매칭하는 기술이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엄청난 효과를 낼 수 있는 거죠. 그런 것들이 마케팅에 활용되면 구글의 애드센스 같은 경우, 문맥광고라고 해가지고, 요즘엔 문맥광고 많이 쓰는데, 예전에는 검색을 하면 광고들이 떠도 광고비 제일 많이 쓴 업체가 상위에 떴는데, 구글 같은 경우에는 바꿨죠. 키워드 연관성을 통해서 가장 유력한 광고들을 보여주는 방식을 통해서 사실 광고 업계에 약간 혁명을 일으켰죠. 구글의 SNS방식을 최근에 네이버나 다음도 활용을 하고 있고. 그래서 이런 데 있어서 중요한 건 결국 기업은 행동패턴을 예측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에요. 신원이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은 거죠. 저 사람이 다음에 무슨 책을 살지가 중요한 거지, 그 사람이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은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사실 기업 같은 경우는 그 개인정보를 실명이랑 매치만 시키지 않으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얘기를 하거든요. 카카오톡 같은 경우도 우리는 실명은 모른다,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고 그냥 그 연락처 매칭해 가지고 친구 리스트를 전해줄 뿐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거든요. 그리고 그 개인정보를 다른 데 제공하지도 않고. 그 사람 누군진 모른다. 아이폰마다 기계에 고유한 번호가 있잖아요. 고유한 주소가. 우린 그 아이폰 주소만 가지고 매치시킬 뿐이다, 라고 얘기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런 행동패턴을 예측한다는 것, 이게 사실은 모든 권력의 꿈이었잖아요. 영화 같은데 보면 결국에는 지금까지 뭘 했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라, 얘가 앞으로 어디로 갈지 그걸 알고 싶은 거잖아요. 얘가 어디로 이동할지. 그래서 그런 시스템들 영화에 나왔었잖아요. <본 아이덴터티>나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 보면은 각종 CCTV를 활용해가지고 CCTV 한번 찍히면 그 영상을 인식해 가지고 그걸 네트워크로 보낸 다음에 여기저기에 있는 CCTV가 이렇게 보다가 그 사람이 찍히면 바로바로 추적을 해가지고 얘가 어디에 있는지 실시간으로 전송하는 그런 시스템을 구현하려는 게 소위 어떤 국가권력의 꿈처럼 제시가 되는데. 그런 것들이 요즘엔 마음만 먹으면 굉장히 간단하죠. 신용카드랄지 신용카드 정보, 교통카드 내역, 통화내역 몇 개만 조합하면 사실 그 사람 하루 종일 뭐했는지, 앞으로 뭐할지 쉽게 알 수가 있는 거죠. 그런데 이제 어떻게 보면 최근에는 스마트폰 때문에 신용카드나 각종 정보를 얻을 필요도 없이 아이폰 같은 경우, 애플 같은 경우 이미 다 알고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아이폰 위치 추적이 논란이 된 것 혹시 아시나요? 아이폰 쓰시는 분들. 아이폰 별로 안 쓰시나요? (웃음) 아이폰 최근에 많이 쓰는데 최근에 아이폰이 버전업을 하면서 위치추적, 각종 아이폰이 계속 위치정보를 아이폰 자체에 저장을 하는데 그걸 굉장히 오랜 기간 동안 저장을 하고 있었고, 그런데 문제는 아이폰에 저장한 그 정보가 컴퓨터와 동기화를 하면 컴퓨터에도 저장이 됐었어요, 똑같이. 문제는 그게 어떤 파일로 남겨져 있는데 로그파일이 남아 있는 거죠. 이 사람이 몇 시, 몇 분에 어디 위치에 있었는지 죽 시계열 자료가 엄청난 자료가 아이폰에 저장이 되어 있었는데, 그 파일이 사실 암호화도 되어 있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몇몇 엔지니어가 그 파일 분석해 봤더니 그 정보를 전부 알 수가 있었던 거예요. 프로그램을 만들었어요, 그 엔지니어들이. 그 정보를 아무 거나 하나 가져다가 지도에다가 쫙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바로 그냥 지도 상에 그 사람의 시간과 위치가 점으로 죽 찍혀 가지고 나왔거든요. CCTV로 추적하고 할 것 없이. 사실 그건 아직은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아이폰에 저장된 파일 하나만 분석하면 그 사람의 행적을 모두 알 수 있었다는 거죠. 이게 굉장히 논란이 되어가지고 이번에 애플이 다시 버전업을 하면서 그 파일을 보관하는, 저장하는 기간도 단축시키고 암호화하고 하는 방식으로 이렇게 넘어갔는데. 최근에는 특히 스마트폰 같은 경우에는, 스마트하려면 정보를 제공해줘야 해요, 일단은. 그렇잖아요? 정보를 뭔가 제공하지 않으면 스마트한 서비스를 받을 수가 없거든요. 스마트하지 않은 서비스를 받겠죠. 그래서 스마트한 서비스를 활용하려면 우리가 많은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 개인정보부터 우리 위치정보. 사실 우리가 아이폰 쓰는 순간 제공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전부 애플은 수집을 하고 있어요. 애플이 다른 기관에, 국가기관 이런 데 제공하느냐 마느냐는 별개의 문제가 되겠죠. 일단 애플은 가지고 있고 구글도 마찬가지고. 전부 가지고 있고 이걸 나중에 주로 마케팅을 위해서 활용하겠죠. 얼마든지 예측할 수 있잖아요. 우리가 저 사람 위치 패턴 분석한 것 가지고 어느 위치에 가면은 스마트폰의 푸쉬를 통해 가지고 어떤 광고를 띄운다든지. 뭐 굉장히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죠. 그런 아이디어를 위해서 일단 정보를 축적하고 보는 거겠죠. 그렇게 쓰일 수가 있고. 나중에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는 거죠.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고 있는 게 있는데 신용카드 쓰시는 분 알겠지만 가끔 신용카드 쓰다보면 카드사에서 전화 오잖아요? 지금 어디서 얼마 긁으신 것 맞냐고. 그런 전화 못 받아 보셨나요? (웃음) 굉장히 뜨악하잖아요. 어떻게 알고 있었지? 새벽에도 전화 오거든요. 갑자기 그 사람들이 몇백 만 되는 고객들을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 테고. 자동적으로 컴퓨터를 통해가지고 하고 있었을 텐데. 패턴을 보는 거죠. 이 사람이 평소의 소비패턴이 있는데, 사실 생각해보면은 우리 개개인의 행동이 굉장히 랜덤할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각종 숫자를 다루는 사람들의 분석에 따르면 개개인의 행위는 굉장히 예측가능하다고 얘기를 해요. 확률적으로. 통계적으로 7~80% 이상 예측 가능하고. 왜냐하면 우리는 사실 착각을 하는데 우리가 굉장히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임의적으로 활동한다고 생각하는데 따져보면 굉장히 제한된 동선으로 이동하고 굉장히 제한된 그리고 반복적인 패턴으로 일상생활을 하거든요. 그래서 통계적으로 보면 그렇잖아요. 우리가 1년 동안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보면 의도적으로 쓴 건 아닌데 평균적으로 비슷해요, 그 소비 지출 패턴이. 그리고 통화 내역 같은 경우도, 핸드폰 통화료 같은 경우도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은, 갑자기 연애를 하게 됐다든지 하지 않는 이상은, 평균적인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수준에서 요금이 나오죠. 되게 반복적이라는 거예요. 아까 얘기했듯이 신용카드 같은 경우도 그 패턴들을 기억하고 있다가 갑자기 특이한 패턴이 등장하는 경우, 갑자기 여성고객인데 평소에 한 달에 한 30만 원 정도 평균적으로 신용카드를 긁었는데 갑자기 야간에 어딘가에서 일시불로 한 100만 원 짜리 뭘 긁었다, 하면은 이제 패턴이 확 튀는 거죠. 그러면 바로 그런 것들이 요원에게 모니터링 요원에게 전달될 테고 바로 전화해서 확인을 하는 거겠죠. 실제로 사용한 거냐?

이런 걸 생각하면은 사실 우리가 기업들이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앞으로 우리의 정보를 어떻게 활용해가지고 사용할 수 있을지는 우리의 상상을 좀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얘기인 거죠. 그리고 이제 이런 것들이 사실 정부기관으로 넘어갔을 때, 국가기관으로 넘어갔을 때에는 더 큰 문제가 되는 거죠. 기업 같은 경우는 그나마 마케팅 이용해서 활용한다고 하니까 우리가 크게 일탈적인 정말 예외적인 상황만 염두에 두지 않는다면은 그런대로 그냥 믿고는 일단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건데, 그게 국가기관에 넘어가서 첩보기관에 넘어가가지고 어떤 정치적 불이익이나 정치적 통제로 작동하는 경우 이런 것들은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되는 거죠. 이게 최근에 사실은 최근에 이제 아랍혁명을 보면은, 아랍혁명은 트위터 혁명이다, 페이스북 혁명이다, 라고 얘기를 하는데 왜냐하면 이제 언론통제가 심한 상황에서 트위터나 페이스북이나 그런 것마저 통제가 될 때에는 무선라디오랄지 각종 풀뿌리 SNS 기술, 이런 것들을 활용해 가지고 시위 소식을 알리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하면서 소셜네트워크 혁명이다, 이런 얘기를 언론들이 많이 하기도 했는데. 물론 그런 측면이 있죠. 우리가 실제로도 이명박 정권처럼 주류 미디어가 통제되고 있을 때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한, 페이스북이 어떤 대안적인 미디어 역할을 하는 측면이 있잖아요. 또 하나는 이게 얼마든지 국가기관으로 넘어갈 수 있다는 거예요. 국가기관이 요구했을 때 기업들이 내주지 않을 보장이 없는 거고. 한국 같은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이 미비해가지고 국가안보와 같은 예외조항이 있기 때문에 국가기관이 요구했을 때 얼마든지 제공하게 되어 있고. 그래서 얼마 전에 애플 아이폰 위치추적 됐을 때 구글이랑 아이폰 같은 경우에는 경찰이 압수수색을 했죠. 아직도 국가기관이 얼마든지 기업에 대해서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악용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거죠. 그래서 사실은 아랍혁명 과정에서도 페이스북이나 이런 것들을, SNS를 시위자들만 사용한 게 아니라 경찰도 적극 활용을 했어요. 페이스북을 통해서 활동가들을 색출해 낸 거죠. 그게 제가 최근에 기사를 봤는데 이란에서도 2009년에 반정부시위가 벌어졌는데 그 이후에 경찰이 시위자 색출하는 과정에서 각종 유튜브(youtube)랄지 요즘에 우리가 촛불집회 할 때도 그랬지만 개인들이 막 찍어서 올리잖아요, 인터넷 상에. 그런 것들을 경찰이 수집해서 분석을 한 거예요. 사진, 동영상 모아가지고. 그래서 식별을 해가지고 그 사람들을 색출해 낸 거죠. 이런 것들, 정말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했겠지만, 올렸겠지만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다는 거고. 튀니지에서도 경찰이 이제 페이스북을 소위 이제 보이스피싱을 한 거예요. 페이스북을 하도 시위자들이 활용을 하니까 가짜 페이스북 화면을 만들어가지고 사람들이 로그인하게 만들어 가지고 계정을 턴 거죠. 얼마든지 가능하잖아요? 우리도 얼마든지 낚일 수 있죠.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포털이랄지 페이스북 로그인하면은 일반 사기꾼들도 보이스피싱을 하는 판에 경찰이 작정하고 보이스피싱을 하려고 하면 나중에 문제가 되겠지만 정말 아랍혁명과 같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상황, 파국적인 상황에서는 그런 뒷일까지 국가권력이 생각을 하겠어요? 일단은 활용하고 보겠죠. 그런 가능성의 여부. 이게 근데 단순히 악용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다는 거예요. 페이스북을 통해 가지고 페이스북이 가지고 있는 개인정보를 국가권력에 제공했거나 또는 국가권력이 활용했을 때 우리가 그 책임을 페이스북에 물을 수 있는가, 또는 아이폰이나 구글에 물을 수 있는가, 네이버에 물을 수 있는가, 라고 했을 때 모호해지는 측면이 있다는 거죠. 예전 같은 경우 국가기관에서 첩보나 사찰행위를 했다 하면은 시민단체를 통해서건 우리가 얼마든지 공공성의 잣대를 가지고 또는 국민의 어떤 헌법이 보장하는 국민의 기본권이랄지 프라이버시권이랄지 이런 것들을 통해서 거기에 대해 대항할 수가 있는데 기업을 통해서 우리가 자발적으로 제공한 개인정보를 활용하거나 개인정보가 유출되어 가지고 내가 나중에 정치적인 불이익을 받았을 때 그 책임소재를 묻기가 굉장히 모호할뿐더러, 특히 기업이 또 특정한 목적으로 활용을 했을 때 우리가 기업의 이윤추구 행위에 대해서 현대사회에서 공공성의 잣대를 가지고 문제제기하지 않잖아요? 사실은 기업의 그런 영리추구 행위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든지 사회적으로 제지를 하고 공공성을 위반했을 때에는 문제제기할 수 있어야 되는데 사실 요즘 그렇지 않잖아요. 시대적인 상황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과거 국가권력에 의한 감시보다 더 위험할 수 있는 측면이 있지 않은가, 하고 생각을 하고요.

우리가 이런 감시의 가능성, 민간 권력에 의한, 얘기를 했을 때 그럼 여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정치적으로 제기될 수밖에 없는데. 저도 사실은 별로 이렇게 정답을 모르겠어요, 이 부분이 워낙에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데 제가 보기엔 감시에 대한 관점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는데. 일단 우리가 수세적인 위치에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아요. 개인정보가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개인정보에 대한 결정권, 통제권, 기술적인 코드에 대해서 전혀 알지를 못하기 때문에 그 어떤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고. 문제는 이제 제가 보기엔 감시라고 했을 때 우리가 주로 인권의 측면에서 접근을 하잖아요. 프라이버시의 침해 또는 인권이 침해당한다, 특히 시민단체 경우에는 주로 이제 인권침해의 가능성을 가지고 각종 최근의 CCTV 문제랄지 또는 노동자 감시의 문제. 노동자 감시 같은 경우는 특히 버스 같은 경우 CCTV가 4대씩 달려 있잖아요? 90년대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작업장에서 노동자들을 직접적으로 통제하는 작업장 감시의 문제. 또는 기업들이 그 데이터를 활용해서 특정한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또는 우리가 그 범위를 알 수 없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문제, 그것이 국가권력으로 넘어가는 문제, 굉장히 다양한 문제들이 있는데, 우리가 여기에 대해 주로 이제 반대하는 저항의 근거로 삼는 게 인권 또는 시민권의 문제 설정인데, 이게 어떻게 보면은 한계가 있는 담론일 수가 있는 것이 일단 프라이버시라고 했을 때 프라이버시가 기본적으로 혼자 있을 수 있는 권리인데 과연 고전적인 의미에서 프라이버시권이란 게 현대사회에서 유효한가, 현실적으로. 우리가 과연 혼자 있을 수 있는가, 오늘같이 모두가 모두를 감시할 수 있고 사생활이 기본적으로 노출되어 있고 노출된 개인정보를 통해서 각종 어떤 혜택이나 이런 걸 얻는 상황에서.

그리고 또 하나는 프라이버시권이라는 게 굉장히 자유주의적인 함의를 가지고 있는데, 혼자 있을 수 있는 권리라는 게 어떻게 보면은 가진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권리라고도 할 수 있잖아요, 현대사회에서는. 우리는 혼자 살아간다기 보다는 같이 어울려 사는 걸 좋아할 수도 있잖아요, 공동체를 이루어서. 과연 혼자 있을 수 있는 권리라는 게 절체절명의, 우리가 절대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인가, 라는 문제도 있고. 그런데 이런 걸 떠나서 제가 보기엔 인권이라는 담론의 한계랄까, 어떤 감시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인 측면에 대해서 포괄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기 좀 어렵다는 문제가 있는데요. 예컨대 CCTV 같은 경우를 예를 들면, CCTV 같은 경우 문제가 되는 게 초상권 침해, 그 다음 범죄자가 아닌데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개인정보를 수집한다는 문제, 이런 것들이 주로 문제가 돼요. 주로 이제 헌법상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위배한다든지 이런 것들이 문제가 되는데. 사실 제가 보기에 CCTV가 가지고 있는 문제가 그것만이 있는 게 아니라 더 구조적인 맥락에서 어떤 정치적인 문제, 그리고 경제적인 맥락을 떼놓고 얘기할 수가 없는데. 단순히 CCTV가 모니터링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냐, 정말 범죄자나 그 어떤 특정 이방인 불순 세력을 감시해서 사전에 예방하고 그 범죄자의 신원을 확인하는 그런 목적으로만 사용이 되는가, 라고 얘기했을 때 실제로 그렇게 활용이 되지 않는 측면이 있고요. 실제로 CCTV의 범죄 예방 효과에 대해서는 입증된 바, 경험적으로 입증되지가 않았어요. 어떻게 얘기하면. 영국 같은 경우가 CCTV가 범죄 예방 목적으로 적극적으로 도입을 했는데 나중에 CCTV 영향평가라는 걸 해봤을 때 유의미한 어떤 상관관계가 크게 도출되지 않았거든요. 그러니까 주차장이나 이런 데처럼 정말 제한된 공간에서 효과적으로 설치된 경우에는 범죄 예방 효과가 있을 수 있는데. 그렇지 않고, CCTV도 단순히 그런 것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강남구 길거리에 설치되어 있는 300여대의 방범 CCTV들, 또는 각종 민간이 설치한 CCTV들, 그리고 공공기관이 설치한 교통 단속 CCTV, 그 다음에 쓰레기 감시하는 CCTV, 굉장히 많은데. 그런 것들을 활용했을 때에도, 활용해서 과연 범죄를 사전에 예방한 객관적인 자료가 나오느냐, 통계적 연관이 나오느냐 하면은 밝혀진 바가 없고요. 생각해 보면 그렇잖아요? CCTV 있는지 뻔히 아는데 거기서 범죄를 저지르진 않을 것 아니에요? 또 하나는 CCTV가 기본적으로 색출해낼 수 있는 범죄 자체가 한정되어 있는 거죠. 뭐 길거리에서 행해지는 범죄만 CCTV를 통해서 감시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범죄라는 게 전부 길거리에서만 행해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CCTV는 구조적인 문제,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영향, 효과를 발휘할 수 없는 거죠. 그런 구조적 범죄, 어떤 정치적 범죄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그런 측면이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보면은 CCTV가 마치 범죄 예방의 최우선의 가장 효율적인 어떤 테크놀로지인양 무슨 동네에서는 CCTV를 몇 대 설치했다 해가지고 기사가 경쟁적으로 나오잖아요. 그거 보면 마치 CCTV 대수가 범죄예방 효과와 일치하는 것처럼. 사실 CCTV 생산업체 배만 불려주는 거죠. CCTV 대부분의 생산은 대기업에서 하고 있고 국내 CCTV 국내뿐만이 아니라 세계 CCTV의 40% 정도를 한국 기업들이 생산하고 있어요. 삼성에서 하고 있어요, 삼성에서. 삼성 아마 계열사일거예요.

한국의 민간 경비 시장이 성장한 계기 자체가 1980년대 초반 삼성이 민간 경비 시장에 진입하면서부터예요. 지금의 에스원이 삼성계열이잖아요. 그때 삼성이, 세콤이었던가요, 인수하면서 국내 민간 경비시장을 독점적으로 이제 거의 장악을 했고. 그래서 이렇게 보안 자체가 치안이라는 공공재 자체가 상품화되는 문제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CCTV가 범죄 예방을 목표로 한다면 가장 범죄율이 높은 도시에 설치되어야 될 텐데 그렇지 않죠. 가장 부자동네부터 설치가 되잖아요. 강남구 설치가 됐듯이. CCTV를 통해서 범죄를 예방하고 한다는 것은 인권의 문제를 떠나서 보안의 상품화, 공공재로서 우리가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사회적 안전, 이런 것들이 상품화되고 자연스럽게 어떤 계급적 불평등이 거기서 발생한다는 거죠. 그래서 이제 돈 없는 사람은 범죄가 많은 동네에서 살게 되는 거죠. 범죄라는 게 풍선효과라는 것도 있기 때문에 강남구에 CCTV가 많으면 그 옆 동네로 이제 진출하게 되겠죠, 범죄 같은 경우에는. 그런 효과랄지. 이런 어떤 경제적 측면을 우리가 봐야 된다고 생각을 하고요. 특히 최근의 각종 감시 도구의 활용 같은 경우도 이렇게 계급적 불평등이나 어떤 사회적 차별과 배제의 메커니즘을 따라서 작동하는 측면이 굉장히 많아요. 그 중에서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유비쿼터스(Ubiquitous) 도시라고 하는, 유시티(U-city) 플랜 있잖아요. 동탄 신도시부터 해가지고 송도도 그렇고 상암DMC도 그렇고, 2006년부터 유코리아(u-KOREA) 계획이라고 해가지고 더 이상 아이티가 아니라 유비쿼터스다, 라고 해가지고 한국정부가 전력을 다하고 있는 게 유비쿼터스 코리아, 유코리아라는 계획인데. 요즘에 유비쿼터스라는 말 이제 많이 쓰고 있잖아요. 그게 이제 뭐 집에서는 각종 홈 시스템, 전화만 하면 보일러가 켜진다든지 냉장고가 말을 한다든지 이런 것 해가지고 도시에서 각종 CCTV 정보나 중앙 관제센터에서 취합을 해가지고 도시의 모든 안전의 문제, 교통 흐름이랄지 범죄 문제랄지 이런 모든 것들을 통제하는 거거든요. 쾌적한 환경을 제공한다는 명목 하에. 도시 전역에 와이파이 깔고 각종 사물, 시설, 이런 데다가 센서 부착해가지고 상호작용하고 이런 지능형 건물들, 자동으로 범죄 징후가 발견되면 자동으로 방법 시스템이 가동되는 지능형 빌딩, 이런 것부터 해가지고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하겠다고 하는데. 그리고 최근에 신도시 같은 경우에는 그런 것들을 적극 활용해서 건설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집약된 것들이 기존에는 타워팰리스 같은 데서 보면은, 타워팰리스 안에 각종 CCTV 통해서 전부 다 이렇게 감시하고 입출입 자체를 통제하고. 소위 게이티브 커뮤니티((gated community)라고 하는데 이게 사실 미국 같은데서 90년대 등장했던 방식인데, 부유층이 다른 어떤 사회적 하층민들과 공간적으로 격리되어 살겠다는 거예요. 새로운 어떤 봉건사회의 출현이죠. 예전에 봉건사회의 영주들이 자기 성에서 자급자족하며 살듯이 이제는 최근의 부르주아들은 더 이상 같이 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천명하고 있죠. 그래서 미국 LA나 이런 데 게이티드 커뮤니티 같은 경우에는 아예 다운타운에 흑인들이나 빈민이 살고 주로 교외지역에 자기들만의 대저택을 가지고 있는데 다운타운과 아예 연결이 되지 않아요. 도로 자체가 다운타운으로 연결되지 않고 교외 자기들 주거지역만 순환하는 순환도로를 만든다든지 해가지고 안에 사는 게토에 사는 하층민은 부유층을 볼래야 볼 수 없고 부유층이랑 싸울래야 싸울 수 없는 이런 상황이죠. 아예 자기가 사는 세상이랑 그 사람들 사는 세상은 다른 거죠.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사는 거죠. 완벽한 물리적인 공간적 배제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것들이 최근의 감시시스템을 활용해 가지고 점점 도입되고 있는 게 아닌가. 유비쿼터스 도시 같은 경우 사실은 그런 측면으로 볼 수 있는. 왜냐하면 유비쿼터스, 유시티라는 것들도 돈 많은 사람들이 가서 사는 곳이지 하층민들이 사는 동네가 아닌 거잖아요? 신도시 아파트 주거단지가 들고. 그래서 물리적 배제. 그리고 또 하나는 물리적 배제뿐만 아니라 새로운 감시기술을 통한 온라인상에서의 배제도 있죠. 필터링 같은 경우인데. 아예 특정 검색어는 검색을 하려고 하면 뜨지 않는, 나타나지 않게 하는 필터링 기술. 성인 컨텐츠를 차단한다, 유해 사이트를 차단한다, 라고 얘기를 하지만 그게 그런 유해한 컨텐츠만 차단할 수 있는 게 아니라. 해 보지는 않았지만 북한 관련 검색어 입력하면 다 차단되지 않을까 싶고 차단되지 않더라도 벌써 연락이 오지 않을까 싶고요. 특히 이제 뭐 북한이랄지 중국이랄지 인터넷 자체가 통제된 경우도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마치 굉장히 개방적인 인터넷의 바다라고 하지만 필터링을 통해서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방식으로 어떤 기술적인 코드들에 의해서 사전에 제거되는 정보나 사전에 제거되는 현실이 있다는 거죠. 이런 것들이 나쁜 게 성인물 같은 것도 마찬가지고 그런 것들이 사전에 제거되면은 우리는 그런 것들이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지만 나쁜 것이다, 라고 인식할 수 있는 그런 기회 자체가 박탈된다는 거죠. 그런 것들이 사회적으로 좋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라는 가능성 자체를 박탈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굉장히 기술적인 코드를 가지고 대하는 문제인데. 성인용 판타지 같은 경우에도 등급제가 있잖아요. 등급제 같은 경우는 일단 그 정보 자체, 컨텐츠 자체를 사전에 차단하지는 않아요. 그 대신 거기에다 등급을 매겨 가지고 보는 사람이 선택을 하게 만드는 거죠. 필터링 같은 경우에는 그 정보가 유해한지 유해하지 않은 지 판단하는 권력을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이미 국가에다, 그 권력이 가지고 있다는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거죠. 사전검열이 되는 거죠. 그래서 이런 온라인 상에서의 배제의 문제, 이런 것들이 기술적인 코드들에 의해서 가능해졌고 또는 이런 것들이 어떤 CCTV랄지 각종 알에프아이디(RFID)라는 고유한, 고유번호를 가지고 있는 인식 태그를 사물에 심어 놓고 그것들을 추척 하잖아요? 사물에 센서를 달아가지고 상호 소통하게 만들고. 이런 것들을 통한 어떤 환경 자체를 특정한 목적으로 조성하는 문제. 이런 감시 같은 경우는 어떤 특정한 주체의 의도가 개입되지 않더라도 그런 공간적 배치나 그런 어떤 기술적 코드의 작동만으로 특정한 방식으로 우리가 활동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를 통제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사고할 수 있게끔 하는 그런 통제의 효과가 있다는 거죠. 감시라는 게 단순히 의도해가지고 이 의도를 얘한테 주입시키겠다, 이런 것만 있는 게 아니라 그런 의도가 없이도 또는 의도와 무관하게 발생하는 훈육의 효과, 규율의 효과, 통제의 효과가 있을 수 있다. 이런 것들이 특히 이제 각종 민간감시 기술을 활용해서 굉장히 우리가 그 위험성을 인식하기도 전에 우리 일상생활에 너무나 편리함이나 이런 것들을 또는 안전이란 미명 하에 도입되고 있다는 거죠.

그리고 또 하나 여기서 중요한 건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불안을 조성함으로써 국가권력이 통치를 하는 측면이 있거든요. 불안을 계속 조성하면 국민들이 불안해지고 그것이 굉장히 지배계급에게는 통치하는데 있어서 편리한 측면이 있죠. 왜냐하면 더 이상 그렇게 삶 자체가 불안해졌을 때 국민들이 어떤 삶의 질이나 어떤 공공성을 요구하는 대신 당장의 어떤 절박한 어떤 생존의 문제, 범죄의 어떤 피해를 입지 않을 정도의 그 정도의 동물적인 수준의 권리만을 요구하게 되고. 또 그런 것들이 신자유주의 국면에서는 전부 개인의 책임으로 환원되고 있고. 그래서 개인이 자기가 CCTV 설치하고 자기가 스스로 에스원에 가입하고 하면서 자기 자신을 지켜야 하는 그런 방식으로 작동하는 건데. 사회적 문제에 대한 개인적 해결, 이런 문제가 있는데 이런 문제는 다음 강연 때 집중적으로 소개될 것 같으니 이 정도로 소개를 하고요.

감시 문제의 해법에 대해서 제가 많은 질문을 받곤 하는데, 국가는 기본적으로 프라이버시권 자체를 확대해서 개인정보 자체를 내가 결정하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권리, 내가 어떤 정보를 제공할지 내가 선택하고 그 정보가 어떻게 활용이 될 것인지, 그리고 어느 범위까지 활용될 것인지를 내가 통제할 수 있어야 되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아요. 그것만 알 수 있더라도 우리 개인정보를 얼마든지 통제할 수 있을 텐데 지금 그걸 모르는 거잖아요. 내가 제공하는 정보가 이 사이트에서만 쓰이는지, 얘네가 다른 보험회사에 넘기는지 아닌지, 국가기관에 넘기는지 그런 것들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대처가 어려운 측면이 있고요.

그리고 앞서 얘기했듯이 이런 감시, 각종 민간감시의 발전이란 게 제가 보기에는 신자유주의 체제가 되면서 소위 보안이라는 것 자체, 사회적인 공공재로서 치안 자체를 상품화하는 역사적 단계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소위 사회적 안전, 범죄 예방, 또는 개인의 편리, 맞춤형 마케팅 이런 미명 하에 널리 퍼지고 있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감시의 정치적 측면, 경제적 측면 그리고 항상 국가나 국가권력이나 자본권력에 대한 통제를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문제를 염두에 둬야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얼추 처음에 이렇게 정했던 시간도 있기 때문에 이 정도로 하고. 두서없이 얘기를 해서 미흡한 부분이 있으면 질문을 통해서 추가적으로 얘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박수)

 

장여경

예. 잘 모른다고 처음에 서두를 시작을 하셔서 굉장히 사실 많은 애기를 포괄을 잘 해주신 것 같아요. 저는 굉장히 재밌었습니다. 재밌으셨나요? 예, 질문을 이제부터 받으려고 합니다. 선생님 강연 중간 중간에 더 궁금하셨던 점이나 아니면 더 여쭤보고 싶으신 점이 있으시면 질문해 주시면 될 것 같아요. 질문 지금부터 받겠습니다. 질문 없으신가요? 저는 질문이 되게 많은데요. (웃음)

 

청중

감시사회 이야기 많이 듣고 하는데 실질적인 위협이 무엇일까 하는 점을 잘 모르겠거든요. CCTV나 그 다음에 우리가 그 피싱이나 이런 일이 발생했을 때. 지금 우리가 듣는 것에 비해서는 되게 뭐 그 정도 수준이면 문제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실질적인 위협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될지?

 

최철웅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실질적인 위협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국가기관에 의한 과거와 같은 첩보의 문제, 또는 개인의 신원 확인, 정치적 통제, 이런 것들은 사실 민간감시나 상업적 감시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이미 항상 있어왔고 그런 것들이 없이도 얼마든지 활용될 수 있는,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는 위험인 것 같고요. 특별히 민간 감시가 어떤 위험이 있느냐, 얘기했을 때는 아까 얘기했듯이 지금 당장의 문제라기보다는 가능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정보를 통제하는 사람이 권력을 가지게 되잖아요. 과거에 국가였다가 지금은 이제 기업 또는 자본이 되고 있는 거고. 그럴 때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게 감시라고 생각하면 자꾸 우리가 너무 그 어떤 아까 얘기했던 모호해지게 오웰식의 <1984>에 나오는 전체주의적인 감시, 굉장히 권위적인 이런 것만 생각을 하는데 꼭 그런 측면만 있지 않다는 거예요. 감시라는 게 감시라는 어떤 특정한 행위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굉장히 사회적인 공간 속에서 사회적인 맥락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기업이나 정부도 마찬가지고 그렇게 상상할 수 있는 그런 어떤 방식으로 악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순수한 기술적인 가능성이지 지금 시민사회가 정부를 감시하고 있고 견제하고 있고 또는 시민 또는 시민 기본권을 통해서 국가권력이나 또는 기업의 개인정보 활용에 대해서 대응을 하고 하는 이런 상황에서는 일방적으로 어떤 거기에 대해 정말 피해가 되는 방식으로 감시가 이뤄지는 것은 하기 힘든 거죠. 감시라는 것 자체가 사회적 맥락 속에서 발생을 하고 어떤 사회적 권력관계, 사회적인 어떤 헤게모니 권력의 수준, 어떤 헤게모니 측면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이러이러한 감시기술 때문에 이러이러한 위험이 발생한다, 이렇게 단선적으로 얘기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청중

저는 위협 얘기하셔서 지금 제가 트위터만 주로 하고 있는데 트위터에 그런 얘기 많이 나오는데. 뭐냐 하면 저희가 막 트위터에 얘기했는데 회사 사람들이 자꾸 보고 하니까 뭔가 얘기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오늘 야근을 했어야 했는데 친구와 영화 보고 영화평을 올렸는데 그 다음날 회사 갔더니 다 알고 있는 거예요. 남들한테 노출시키고 싶은 욕망이 있는데 다시 그렇게 돼서 저 같은 경우에도 트위터에 올릴 때도 자기 검열을 이제 하게 되는 거예요. 이걸 올려도 될까 말까, 그런 것도 위협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최철웅

사생활 노출의 위험 같은 경우에는 많이 느끼면서도 사실 하고 있죠. 보면 SNS 트위터나 페이스북이나 사용자들의 60% 정도는 기본 설정을 바꾸지 않는데요. 기본 설정은 공개거든요. 대부분이 공개된 형태로. 기본설정만 비공개로 바꿔도 얼마든지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는 가능성은 막을 수 있는데 기본 설정을 그대로 해놓고 쓴다는 거죠. 저도 사실 잘 몰랐어요. 페이스북 그냥 공유되어 있는 것. 그런데 이제, 그렇죠, 사생활 노출 위험이 있죠. 사실 우리가 어느 수준까지 퍼질지 막연히 예상하지만 알 수 없잖아요. 그런 것들 가지고 나중에 얘기하는 사람도 웃긴 건데. 내가 볼 때 공개라고 해 가지고 썼다고 해 가지고 아는 척 하고 얘기하는 것도 웃긴 건데. 어떻게 보면 위협은 위협인데 사실은 우리가 소통하는 방식 자체가 바뀐 거죠. 예전처럼 제한된 공동체 내에서 서로 페이스 투 페이스로, 만나서 모여서 서로, 대학 같은 경우에는 동아리방, 학회에 모여 가지고 수업 때 만나서 얘기하는 그런 상황에서 점차 갈수록 대면 관계보다 온라인상에서의 소통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잖아요. 각자 자기들 방 안에 있고 그런 SNS랄지 미니홈피가 됐건 그런 것들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기술에 의해 매개된 소통을 하다보니까 발생하는 측면들이 있는데. 그런 것들은 공공성이나 공적영역, 사적영역이 굉장히 모호해지는 측면이 있거든요. 그러니까 트위터가 공적영역이냐, 사적영역이냐 항상 문제가 되잖아요. 트위터에다가 누구 욕을 했더니 그거 명예훼손이다, 이렇게 하면은 개인적으로 내 공간에 일기 쓰듯이 쓴 건데, 그게 보면은 나만 보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볼 수 있고, 나는 굳이 그걸 전국민에게 공개하려고 쓴 것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그런 미묘한. 어떤 새로운 예전과 같은 여기는 공적영역 여기는 사적영역 이런 구분이 모호해지는 새로운 어떤 공론장 또는 공적 영역이 출현하고 있는 거고 그게 사이버스페이스를 통해서. 그런 사이버스페이스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게 그런 위험을 안고 있는 거죠. 그런 측면인 것 같습니다.

장여경

제가 지난해 신문기사를 하나 봤는데요. 독일에서 이런 유럽 같은 데서는 SNS 트위터 페이스북에 올라 온 정보를 토대로 해서 회사생활에 지장을 받는 일이 굉장히 많았나 봐요. 독일에서 개인정보보호법을 개정을 하려고 하는데 그 내용이 구직자의 페이스북이나 SNS 정보를 미리 구직을 결정하는 요소로 삼아서는 안 된다, 이런 법률 개정이 얘기가 나올 정도로 그런 문제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것 같고. 그리고 뉴스에서 보니까 미국인가요, 영국인가요? 트위터에 휴가 갔을 때 사진을 공개한, 술 한 잔하고 이렇게 얼굴이 좀 불콰하고. 그런 사진을 공개한 교사가 해고되어 갔고 그런 뉴스도 나오지 않았습니까? 선생님이 오늘 죽 얘기하신 내용은 그 얘기였던 것 같아요. 감시의 새로운 국면, 특히 자발적으로 공개한 정보들이 감시의 요인이 되잖아요. 그리고 그 자발적으로 이용한, 자발적으로 공개한 정보가 상업적으로 이용이 되고. 이런 상황에 대한 말씀을 해주신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궁금한데요. 그 전에 감시의 측면 측면을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요. 예를 들어서, 신상털기 어떻게 보세요? (웃음) 저도 질문을 되게 많이 받아요. 신상털기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

 

최철웅

신상털기 또는 단순히 우리가 블로그 하고 미니홈피 쓰고 해서 신상이 털리는 건지, 페이스북 우리만 쓰는 것 아니고, 트위터 한국 사람만 쓰는 게 아니잖아요? 외국에서는 신상털기 문제가 별로 이슈가 되지 않잖아요? 이건 어떻게 보면 시민의식이랄지 문화의 문제가 될 수 있다, 라고 생각을 해요. 기술적으로는 누구나 가능한데 터는 사람이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신상을 털고 그걸 가지고 서로 공유하면서 그런 악취미 같은 게 있는 건데 그런 것들이 사회적 의식 수준에서 당연히 자연적인 규범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고 하더라도 그거는 정말 소수의 부도덕성의 문제, 이런 식으로 취급이 되면은 지금처럼 만연하지는 않겠죠. 그런데 지금은 신상털기 자체를 문화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규범적으로 이건 더 이상 도덕적인 문제도 아니고 나중에 나오면 염려를 하지만 사건이 한번 터지면 한번 찾아보고, 찾아본다든지, 나중에 검색 한번 해본다든지. 이런 식의 문화가 있는 상태에서는 그리고 그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하고 하면은 계속해서 그런 상황이 나오겠죠. 외국에서는 거의 해외토픽으로 소개되는 희한한 문화인 건데 제가 보기엔 기술적인 문제를 떠나서 문화적인 측면이 강한 것 같아요.

 

장여경

예. 또 질문 없으세요?

 

청중

질문이라기 보다 약간 의견인데요. 짧게. 방금 말씀하시는 거는 제가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미국에서도 2003년인가 2004년에 하여튼 뭐 비슷한 형태의 이슈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게 단순히 우리나라 문화에서 특정적인 걸로 그런 식으로 접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고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이게 아니고요. 오늘 강연 들으면서 딱 떠오른 말이 하나였어요. 모르는 게 약이다. 다 알고 있으면 피곤하잖아요, 삶이. 그리고 페이스북 활동하기도 힘들고 트위터 하기도 힘들고. 모르면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알게 되니까 못하는 그런 상황인데. 제가 이 자료집에서 되게 마음에 들었던 표현이, 새로운 원형감옥은 개인에게 주는 벌이 아니라 보상을 준다는. 그런 게 이 보상인지 아닌지를 일차적으로 아느냐, 딱 봤을 때 우리가 어떤 게임이 주어지잖아요. 예를 들어서 뭐 쿠폰 긁으면 경품을 줄 건데 작은 글씨로 어디에 정보가 제공된다, 딱 보면 아, 보험회사에서 전화 오겠구나, 알기 때문에 보상으로 안 받아들이고 나한테 귀찮은 전화가 오면 벌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걸 안하죠. 그런데 지금 현재 모르지만은 나중에 어떻게 될지가 상상이 안 되는 부분들이 진짜 무서운 거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제가 처음에 강연에 오고 싶어 했던 게 구글과 페이스북 얘기를 중점적으로 할 거라고 포스터에 되어 있어서 왔는데. 페이스북 같은 경우에 작년에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이런 방향으로 나가겠다, 그런 발표인데 그 내용이 상당히 무섭거든요. 한마디로 표현을 그대로 한 말을 옮기면 사람의 아이덴티티를 지네들이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나의 선호와 친구들이 추천하고 이런 걸 통해서 어떤 아이덴티티를 쭉 하겠다는 건데 그 목적은 항상 나오는 것, 세상을 좋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데. 기업이 지네들 돈 벌려고 하는 거지 결국은 어떤 단계로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최종적으로는 돈 벌기 위해서 뭔가를 하고 있을 거라는 의심이 당연히 들죠. 최근에도 몇 주 됐는데 페이스북이 인수한 작은 기업이 있어요, 데이텀(Daytum)이라고. 그 회사가 작은 회사인데 서비스 내용이 이런 거예요. 아이폰 앱을 가지고 하루 왠종일 자기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기 쓰듯이. 일기는 다 지난 다음에 필요한 것만 중요한 것만 쓰는데 이 앱은 아침에 밥 먹고 버스타고 점심 먹고 차 한잔 마시고 모든 소중한 걸 다 기록하거든요. 어쨌거나 그거를 페이스북이 어떻게 활용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이 결국은 페이스북의 통제 아래 들어갔다는 게 정말 더 무서운 부분이라는. 그러니까 그것이 보상으로 작용할 거라는 기대가 안 간다는 거죠. 그런 부분이 인제 중점적으로 봐야 될 부분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좀 했습니다.

 

최철웅

보상이란 표현이 약간 이제 역설적인 반어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시각도 있어요, 상업적 감시 같은 경우는 사실 전면적으로 없앨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개인정보를 제공해 가지고 개인들이 혜택을 보겠다, 라고 자발적으로 제공하는데 어쩌겠어요? 페이스북 가입해 가지고 내가 친구들이랑 소통하며 살겠다, 하면 어쩔 수 없잖아요? 그런 측면에 대해서 단순히 공공성의 관점만 가지고 접근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고 했을 때, 이제 한편에서는 학자들 같은 경우에는 그래서 개인정보 자체가 시장화 상품화 되고 시장에서 전면적으로 유통되는 상황이고 이것을 지금 각 기업들은 나중에 이제 차후의 마케팅이나 차후의 이윤창출을 위해서 굉장히 많이 수집하고 있고 수집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는 각자 개인정보의 주체인 제공자인 그리고 공급자인 개인들이 거기에 대해서 자기가 제공한 개인정보에 대해서 계약을 맺어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계약을 맺어 가지고 파는 거죠, 기업에. 제공하는 게 아니라. 분명히 기업이 이윤 창출 행위를 하잖아요? 페이스북이 뭐 한해 매출이 몇 천 억이 되고 가치가 54조가 되고 하는데. 페이스북이 물건을 생산하는 것도 아니고 처음에 시스템 한번 만들어 놓고 또 엄청난 이윤을 얻고 있는데 그게 어디서 왔느냐 하면은 개인들이 제공한 개인정보를 가지고 그걸 활용해서 지금 쌓은 이윤인거잖아요. 개인들이 그렇기 때문에, 경품도 마찬가지고, 요구하는 기업에 개인정보를 제공할 때 지금처럼 제공하는 게 아니라 판매를 한다는 거죠. 그리고 판매할 때에는 계약사항을 계약을 분명히 명시해 가지고 이게 이 서비스 제공하는 데까지는 얼마, 그 이후에 또 다른 사업을 위해 이 개인정보를 활용한다 하면은 거기에서 추가적으로 나에게 돈을 얼마를 제공해야 한다는 이런 계약을 만들자, 그런 계약 관계를 기업과 개인이 맺는 방향으로 나가자는 움직임이 있어요. 그런 관점을 제시하는 학자들이 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어떻게 보면 개인정보의 상품화를 부추길 수도 있지만 또 한편에서는 지금처럼 개인정보를 제공하기만 하고 모든 이윤은 기업이 소위 점유하는 체제에는 나름의 대안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청중

사회자분께서 지금 이 시점쯤 해서 지적을 하실 내용 같기도 해서 제가 얘기를 하는 게 어떨지 잘 모르겠지만은. 그래서 과연 사회운동가로서 또는 이런 점에 대해 문제점을 인식하는 사람으로서 무엇을 할까 하는 점이 문제가 되는데. 2가지 정도가 문제가 되는데. 첫 번째는 감시가 위협이라는 것에 대해서 대응 개념으로 지금까지 말씀을 하셨고, 사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 위협이라고 하는 것이 대단히 주관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라서 미국에서 있었던 페이스북 살인이라든지 아니면 어떤 개인의 주민번호나 이런 게 없지만 미국에는. 그 사람의 자동차면허증 사이트에 들어가서 그 사람의 주소를 찾아내서 스토커가 유명배우를 찾아서 살해를 했던 것처럼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도 있고, 그런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 때문에 기분 나쁠 수도 있는데. 이렇게 위협의 지평, 인식적 지평이 굉장히 넓은데 어떻게 프레임을 짜서 어디가 위협이다, 라고 얘기해 줄 수 있는 사회적인 접근이 있을 수 있겠고. 동시에 생각을 해보면 이와 같은 기술적인 문제는 결국은 기술 커뮤니티와 어떻게 연관을 맺고 실질적으로 제공을 해줄 수 있는지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지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의 일생이라든지 일상 같은 것을 패턴화시켜서 나가는 것이 굉장히 뭐 상업적인 접근이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 회선 자체에서도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정보이고 그것을 또 암호학적으로 굉장히 매우 발달한 암호학적인 보호체계를 갖추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에 그 2가지를 어떻게 이러한 정보 혹은 감시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풀어나가는 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보면은 두 번째 문제라고 할 수 있는 기술 커뮤니티와의 관계, 이건 어떻게 활용을 하고 그것을 좋게 활용을 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잘 얘기가 안 되는 것 같아 가지고, 한국에서는 특히 그런 게 좀 아쉽고요. 그래서 그런 게 어떻게 생각을 하시는지. 왜냐하면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고 다양하게, 어떤 분들은 사회학 혹은 철학을 공부하셨지만 그 디자인을 어떻게 짤 것인가 그쪽으로 접근을 하시는 분도 계시고 아예 자기가 본인이 기술을 공부해서 암호학으로 접근하는 분들도 계시고 한데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와 같은 이슈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회운동가들이 대충 분류를 해보면 현재 어떻게 되고 어떻게 나갈 것이라고 생각을 하시는지? 그러니까 2가지 이슈를 놓고 봤을 때 사회적인 접근과 기술적인 접근 2가지를 놓고 봤을 때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보나 감시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는 운동가들이 현재 현 상황이 어떠하다고 생각을 하시고 그 문제점이나 혹은 나아갈 방향에 대해서 의견이 어떠신지 해서요.

 

최철웅

일단 감시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공성 문제가 나타날 것 같고요. 기본적으로 우리가 뭐 주민등록제도 같은 경우가 그런 거잖아요? 있을 수 없는 전 세계 유일무이한 그런 제도인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제도인데. 이런 것에 대해서 시민사회 차원의 대응, 사회적 접근 이런 것에 대한 관심이 당연히 환기되어야 될 테고 그것이 정보에 대한, 정보의 통제나 집중에 대해서 시민사회 차원에서 그 정보에 대한 그 투명성을 요구한다든지, 통제권을 요구한다든지 이런 것들에 대해서 당연히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제 나아가야 할 것 같고요. 어떻게 보면 각종 사회운동단체에서도 인권의 측면과 더불어서 그런 측면에서 접근하는 것 같고. 또 하나 기술적 코드의 문제가 있는데 실제로 많은 부분들이 오늘 아까 얘기했듯이 기술적 코드에 의해서 발생하는 특별한 통제나 여러 문제가 있는데 그런 것들은 기술적 코드를 변경함으로써 가능한 측면들이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아까 얘기했듯이 필터링 대신에 등급제를 사용한다든지 또는 CCTV 같은 경우에도 개인이 누구인지 신원을 확인할 수 없게끔 화면을 처리한다든지, 화면 자체를. CCTV는 원래가 신원을 확인하는 목적이 아니에요.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거죠, 사전에. 그런데 지금 한국 같은 경우에는 현실적으로는 범죄 예방 보다는 나중에 신원을 확인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어요. 이게 굉장히 문제가 되는 거거든요. 그러면은 나중에 범죄자를 잡는 게 무조건 최고 목적이고 그게 최우선의 가치라면 전부 다 CCTV 설치해야죠, 전국적으로. 다 제공해야 돼요. 이건 말이 안 되는 거고. 기본적으로 모든 국민을 잠재적으로 범죄자 취급을 하는 거죠. 또 지금 CCTV 같은 경우도 기본이 폐쇄회로이기 때문에 데이터가 저장이 되지 않아야 되는 거거든요. 한 달이나 뭐 정해진 기간 동안에는 보관을 하더라도, 사후적인 관리 문제 때문에. 도대체 그런 것들이 잘 지켜지지 않아요. 왜냐하면 민간이 설치한, 민간이 설치한 게 80~90% 되는데 실질적으로. 그런 개인이 설치한 민간이 설치한 CCTV에 대해서는 개인정보보호법에 의해서 규제할 수 있는 가능성이 지금 없다는 거죠. 공공기관이나 경찰이 설치한 것은 통제를 하는데. 그래서 수집한 정보에 대해서 주기적으로 삭제를 해라랄지 정보에 대해서 타인이 외부에서 열람할 수 없게 관리를 한다든지 하는데. 그냥 뭐 어디 가게 편의점에 설치되어 있는 거라든지 기업 빌딩에 설치되어 있는 거라든지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거고. 거기에 그런 CCTV들이 나중에 자료를 보관하면 이제 문제가 되는 거예요. 신원확인을 예상을 하는 거거든요, 실제로. 왜냐하면 CCTV는 모니터링 용도잖아요? 보고 있다가 어 무슨 일이 생기면 가 바로 가지고 조치를 취하거나 하는 게 목적인 건데, 또은 사전에 예방을 한다든지. 지금은 사실 CCTV를 설치해 놓고 모니터링을 하지도 않아요, 실제로 보면은. 나중에 그냥 범죄 발생하고 나면 경찰 설치한 것뿐만 아니라 편의점, 에이티엠(ATM) 다 뒤져가지고 그 자료 달라고 한 다음에 그 자료 가지고 나중에 사후적으로 신원을 확인하는 용도로 쓰는 거죠. 이런 것들은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거죠. 저장이 안 되게 한다든지 저장이 되더라도 순전히 모니터링 용도라면 신원을 명확하게 알아볼 수 없게 처리를 한다든지. 그런 것들이 공항 검색대 같은 경우에 그런 식으로 활용을 그런 기술을 도입하고 있기는 하거든요. 그런 식의 기술적 코드를 바꾸는 문제, 그게 가능하겠죠. 암호화도 마찬가지고. 개인정보가 암호화 되어서 유통이 되고 접근을 굉장히 외부에서의 접근 가능성을 통제한다든지 하는 그런 식의 기술적인 규범을 제정하고 그것을 요구하는 어떤 사회적 운동이 병행이 되어야 하겠고요.

 

장여경

상업적 감시 얘기 오늘 죽 나왔는데, 그 중에서 제일 제가 느끼기에 제일 무서웠던 게 보면 문맥광고인 것 같아요. 구글의 지메일하고 또 페이스북하고 문맥광고 하잖아요? 그게 뭐냐 하면 여러분이 메일 쓰시다가 페이스북 글 올리면서 오늘 하숙집을 알아 보러 다녔어, 라고 딱 치는 순간 옆에 부동산 광고가 딱 뜨는 거죠. 제가 메일을 쓰는 동안 실시간으로 구글이랑 페이스북의 기계가 메일을 읽고 광고를 띄우는 거예요. 이 기법 자체가 이제 그 요즘에 패킷감청이라고 불리는 기법과 같은 기술이거든요. 패킷 리셉션이라 그래 갖고 패킷에 오가는 정보를 실시간으로 가로 채갖고 복원을 해갖고. 기계가 있는 건데. 이것에 대해서 여러 가지 논의가 있어요. 그걸 하지 말아야 된다, 그러면은 저쪽에서 나오는 반박, 상업적인 반박이 뭐냐 하면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기계가 하는 거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감시와 다르다, 사람이 감시하는 건 아니다. 그것보다 더 결정적인 상업계의 반격은 뭐냐 하면 네가 동의했다는 거거든요. 지메일 쓰려고 약관에 동의했고 페이스북 쓸려고 동의를 했다는 거예요. 동의를 네가 했는데 그 동의를 받은 상태에서 우리가 광고 내 보내는 게 뭐 큰 문제 되느냐는 거고. 사실 동의에 기반한 감시라는 게 제가 봤을 때는 새로운 감시의 패턴 중에 가장 우리가 저항하기 힘들게 하고 가장 어려운 대응하기 어려운 그런 지점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 나올 수 있는 한 가지 힘은, 아까 저분이 말씀하신대로 기술자 집단이 사실은 그런 진실에 대해서 알려지고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이것이 어떤 식으로 사용되고 있는지. 예를 들어서 저는 프라이버시 영역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생각하는 스스로인데도 불구하고 구글하고 다음이 압수수색 되기까지는 다음의 광고 자회사가 뭘 하는 덴지 거기서 위치정보를 수집해서, 구글의 애드몹(AdMob)인가요, 광고를 크게 하는데, 수집을 해서 뭘 하겠다는 건지 전혀 알지를 못했거든요, 이용자의 한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사실 그런 정보를 제공한다는 거죠. 그 정보들이 더 많이 공개가 되고 그렇게 하면 우리가 감시를 당하는 게 아니라 역감시하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해지지 않을까. 그렇게 정보관계, 권력관계를 치환하면서 내가 역감시를 하고 내가 문제제기를 하면서 해결의 실마리를 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청중

지금 사회자 분이 말씀하시는 경우는 논의는 있는 게 자발적 동의를 통한 감시에서 한국의 예를 들자면 욕망의 문제를 우리가 자발적 동의라는 건 다 본인이 가지고 있는 욕망에 대한 보상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전제가 되어 있고 그것들을 누리기 위해서 하는 건데. 그렇다면 시민운동 단체라든지 환경운동처럼 우리가 사실 자동차를 처음 탈 때 이렇게 환경에 영향이 되고 원자력을 쓸 때 이렇게 재앙이 올 수 있고, 라는 것들을 처음부터 그것이 느껴지지는 않으니까 사실 했던 건데. 그러니까 감시 가해자에 대한 문제뿐만이 아니라 그것들을 수용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우리가 수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라든지 이런 부분에 대해서 혹시 되고 있는 게, 어떤 논의라든지 되고 있는 게 있는지? 그러니까 감시 체제라든지 가해자뿐만 아니라 일반 수용자들에 대해서는 또 다른 정신적인 운동이라든지 이런 것들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 물론 그것들이 상당히 뭐 되어있기는 하지만 그런 부분에 대한 흐름은 없나요?

 

최철웅

지금 수용자들의 소위 욕망의 문제가 개입되니까 사실 어려운 거죠. 자발적 동의도 마찬가지고. SNS를 통한 사생활 노출의 위협, 이런 것들도 그렇잖아요. 사실 거기에는 다양한 주체가 가진 다양한 욕망이 개입되어 있는데 우리가 단순히 노출증이 아니잖아요. SNS 쓰고 블로그에 일기 쓴다고 그거 노출증 때문에 쓰는 게 아니잖아요. 어떻게 보면 소통에 대한 욕망이 있는 거거든요. 데이터 감시의 문제 같은 경우도 우리가 단순히 개인정보 제공하고 함으로써 어느 정도 혜택을 우리가 필요해서 하는 것도 있는 거잖아요. 정보가 필요해서 사이트 가입해서 정보를 얻는다든지 또는 회원이 되어서 좀 더 내가 원하는 그런 혜택을 받는다든지 하는 측면들이 있는데. 그런 욕망을 항상 자본이나 국가는 자기들 목적으로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는 거고, 우리는 사실 그런 욕망까지는 아니었는데 계속해서 이용당하고 있는 거고.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금욕주의로 돌아가 가지고 우리의 모든 소통에 대한 욕망이나 네트워크에 대한 욕망이나 또는 다양한 어떤 한국에 존재하는 전 세계에 존재하는 인터넷상에 존재하는 정보의 바다에서 헤엄치고 싶은 욕망도 있을 수 있는 건데 그런 욕망을 모두 억압하고 완전히 절연하고 살 것인지. 현실적으로 그렇긴 어렵고 그럴 순 없는 거죠. 그거는 사실 뭐 굉장히 여러 수준의 구조적인 문제가 중첩되어 있는 것 같아요. 욕망 자체도 신상털기 같은 이런 조금 사회적으로 그릇된 욕망 같은 경우는 스스로 좀 우리 스스로가 자제할 필요가 있겠고, 또는 사회적인 또는 집단적인 어떤 시민성 또는 공공적인 접근을 통해서 우리 개인정보나 감시 시스템에 대해서 저항하고 견제하는 그런 측면도 필요하겠고 또는 이런 어떤 개별 행위자의 의도를 떠나서 아까 또 제가 말씀드렸지만 의도와 무관하게 발생한 표출되고 있는 어떤 사건이랄지 계급화 문제랄지 사회적 차별과 배제의 문제 이런 것들까지 항상 염두에 두는 그런 관점 말고는 딱히 뭐 어떤 대안이 있을까, 지금. (웃음)

 

장여경

예. 사실 제가 지금 되게 기쁜데요. 우리가 휴일을 거치고 다시 강좌가 시작했잖아요. 그런데 이탈자가 많지 않고 (웃음) 참석자 수가 비슷하게 유지되는 것이 굉장히 고무적입니다. 지금 질문하신 내용과 다음 주 강연 주제랑 관계가 있습니다. 사실 감시가 억압적인 국가나 자본의 도구로만 시작을 할까? 혹시 우리 마음속에는 어떤 욕망이 없을까? 감시를 지탱하고 있는 대중사회의 욕망이 무엇일까? 그런 사회철학적인 논의를 요즘에 좀 잘 나가시는 엄기호 선생님 모시고 들을 예정입니다. 거기에는 지그문트 바우만과 같이 한때 액체근대화, 이런 책도 한국에 많이 나와 있는데 그 분이 우리 감시사회 강연회 전체 주제인 올드 빅브라더, 뉴 빅브라더라는 또 이 말씀을 한 철학자이기도 해요. 바우만 얘기와 스튜어트 홀이라든지 여러 가지, 우리 사회를 좀 거시적인 통시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다음 주에도 빠지지 말고 꼭 오셔서 사회자를 기쁘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웃음) 감사합니다. 오늘 수고하셨습니다. (박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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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이명박 정부와 감시 : 시민 감시를 중심으로 (진중권) _영상

 

감시사회 대강연회 제2강(진중권) 강연영상

□ 일시 : 2011년 4월 28일(목) 저녁 7시

□ 장소 : 여의도 이룸센터 교육실

□ 사회 : 박래군

□ 강사 :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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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이명박 정부와 감시 : 시민 감시를 중심으로 (진중권) _녹취록

박래군
오늘 감시사회 대강연회 두 번째 순서입니다. 올드 빅브라더에서 뉴 빅브라더로. 오늘 강사님으로 나오신 분은 진중권 선생님. 특별히 소개가 필요 없죠? 다 아시죠? 예. 굉장히 오늘 원고 쓰고 그러시느라고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대요. 엄청 피곤해 하시는데, 아마 이번 강연회는 재미있게 하실 것 같습니다. (웃음)
잠시 후에 진중권 선생님 강연 시작을 하구요. 우리가 6월 초까지 강연회를 진행하는데 다음번 다음 주 목요일 날은 5월 5일이라서 쉬고 5월 12일 날 이 자리에서 다시 세 번째 강연회를 합니다. 세 번째 강연회 주제는 상업적 감시 부분이라든지 페이스북이라든지 인터넷 사이트를 중심으로 해서 상업적 감시의 문제점을 최초로 전문적으로 연구하신 분이 있는데 그 분을 모시고 듣도록 하겠습니다. 최근에 뭐 구글이나 아이폰 이런 데서 위치추적하고 집적해 놓은 것 다 나오고 있잖아요? 이런 것들이 상업적 감시 부분이 문제가 있는데, 우리나라와 미국에 보도된 것이 있잖아요. 들어볼 수 있을 것 같고요.
매번 열리는 이 강연회는 나중에 단행본으로 묶어서 출판을 할 예정이구요, 매 실시하는 이런 내용들은 영상 중계도 하고 녹취, 녹화도 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중계나 녹화에 노출되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카메라 다루시는 분한테 말씀해 주시면 그 분 피해서 중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시사회 대강연회 홈페이지가 있는데요, bigbrother.jinbo.net 이쪽에 보시면 매 강연 녹취록과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지난번 강연 녹취록이 올라가 있고요, 영상은 안 올라갔는데 곧 올라갈 겁니다. 그리고 트위터를 비롯한 현장중계를 비롯해서 강연회 내용을 알려주시는 것을 환영합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까 진중권 선생님 강연회가 있는데 너 이 근처에 있으면 와라, 빨리 좀 와라, 이렇게 연락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이 강연회는 여기가 무조건 9시 이전까지 끝내야 해요. 근무하시는 분이 퇴근하셔야 해서 빨리 끝내야 해서 저희가 진중권 선생님 강연을 1시간 정도 듣고 질의 응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하구요, 그리고 참, 나눠드린 저기가 있는데요, 달력, 4월이지만 달력이 있고, 굉장히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서명 안하신 분들은 서명해서 여기 풀 붙여 가지고 우체통에 넣으면 되거든요. 우표 안 붙여도 돼요. 그렇게 해서 보내주시고, 혹시 내가 했다고 하면 다른 분들, 주변에 있는 서울시 사람들한테 권유를 해서 함께할 수 있도록, 앞으로 2주 안에 이게 학생인권조례 발의가 되냐 안 되냐, 주민발의가 되냐 안 되냐 이게 결정이 되거든요. 이 점에 대해서 많이 좀 알려주셨으면, 그리고 또 많은 주변에 공유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러면 감시사회 대강연회 두 번째 순서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중권 선생님을 박수로 맞이하겠습니다. (박수)

진중권
안녕하세요? 저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고요, 이 주제에 대해서 연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어요. 왜 저를 불렀을까, 반드시 전문 연구자로서 경험적 연구의 주제를, 결과를 발표해라 이런 의도였던 것 같지는 않고요. 그래서 가볍게. 사실은 처음에는 하지 말아 달라고, 기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다만 뜻 깊은 행사에 참여한다,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다는 이런 생각으로 제가 여기 왔습니다.
저한테 주어진 제목이 이명박 정권과 감시사회인데요, 사실은 재미없는 주제죠. 이런 류의, 이런 방식의 감시는 사실 과거에 속하거든요. 최근의 감시 형태는 그게 아니죠. 좀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뭐 페이스북이라든지, 뭐 구글 어스라든지 등등등, 민간 감시, 상업적 감시 이런 것들이 주요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가 빅 브라더의 시대는 끝났다, 빅브라더 이즈 워칭 유(Big brother is watching you) 하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리틀 브라더스 워치 모아 어더스(Little brothers watch more others), 조그만 브라더들이 서로 감시하는. 최근에 신상공개라든지 뭐, 무섭잖습니까? 오히려 네티즌들이나 정권의 정치인들의 사소한 부위까지 다 찾아내는 이런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완전히 빅브라더가 컴인(come in)해 버리면서 감시나 감시라는 주제로 하는 연구가 굉장히 촌스러워졌습니다. 사실 굉장히 전통으로 돌아갔다든가 고전으로 돌아갔다든가. 이명박 정권과 감시사회라는 제목을 받았는데요, 이명박 정권이 감시를 하는 방식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명박 씨의 생각과 이 사람의 멘탈리티(mentality), 뭐죠, 어떤 멘탈리티를 갖고 있는가, 그 다음에 그런 멘탈리티 하에서 어떻게 정권을 운영하고 있는지, 이 정권의 성격을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잠깐 과거로 돌아가 보고 싶어요.
그 전에 정권이 국민의 정부가 있었고, 참여 정부가 있었죠. 아마 여러분 아실 겁니다. 참여정부는 인터넷을 통한 네티즌들의 참여를 통해서 정권을 창출했고, 또 그 후로도 네티즌들의 참여를 통해서 정권을 유지하겠다, 그걸 표방했던 정권입니다. 물론 그 참여정부 된 후에 여러분 분노했을 겁니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라든지, 이라크 파병, 이런 것은 상당히 비판적인 여론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굉장히 노무현 대통령의,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것이 우리 사회에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인터넷을 통해 최초로 대통령이 된 분이었기 때문이죠. 아주 전 세계에 없었던 현상이 발생했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 당시에 노회찬 씨인가요, 민주노동당이었죠, 그때는. 노회찬 의원이 시니컬하게 상당히 비꼬는 투로 얘기한 게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대의 업적은 당선된 데 있다. 저는 그 말이 약간 뭐랄까 비꼬는 투였지만 상당히 중요한 얘기다, 바로 그거다, 어떻게 보면 세계사적 의의이다, 대통령의 업적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만든 업적이라고 할 수가 있겠죠.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예를 들어서 이번에 오바마가 인터넷인가 트위터 이런 걸로 조금 덕을 봤죠. 그 전에는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분이 아직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앞선 분이었죠. 제가 볼 때는 두 정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때 우리사회 성격이 상당히 변했다고 봐요.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산업사회 모델에서 이 두 정권을 거치면서 정보사회로 완전하게 진입을 마쳤다고 생각 합니다. 여러분 생각날 거예요, 슬로건이 뭐냐 하면 지식기반사회였습니다. 그것은 뭘 말하느냐 하면,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생산이 물질적이었습니다. 즉 상품생산이었죠. 직접 상품을 생산했다고 하면 정보사회에 들어오면 뭘 생산하느냐 하면 정보를 생산해요. 그러니까 물질성이 있는 게 아니라, 물질성이 있는 걸 생산하더라도 물질성보다는 거기에 첨가되는 비물질적 측면, 정보의 측면, 패션의 측면, 디자인의 측면, 이런 것들이 훨씬 더 평가되는 그런 사회가 올 거라고, 그래서 지식기반 사회다, 지식기반 경제다, 라고 얘기를 했죠. 그건 생산이 물질적 생산에서 산업사회의 생산에서 비물질적 생산, 정보사회로 넘어갔다는 것을 나름대로 간파한 슬로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뭐 참여정부야 자타가 공인하는 인터넷 정부였고요.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프로그래밍까지 했고, 청와대 이지원 시스템 같은 것, 자기가 스스로 프로그래밍 해서 이유(EU) 국가들에 수출까지 하는 그런 분이었죠. 그러다보니까 이 두 정권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이 아이티(IT)의 선도국으로, 전세계에서 아이티를 선도하는 나라로 떠올랐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이 두 정권을 거치면서 거꾸로 벌어진 상황이, 역전현상이 벌어진. 얼마 전에 씨엔엔(CNN)보니까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브로드밴드인가, 퀴즈가 나오더라고요, 한국이 미국보다 몇 배나 빠른가? 정답이 200배인가? 씨엔엔에서 나옵니다. 이 시기에 산업사회가 정보사회로 진입을 확 마쳤습니다. 그건 뭘 말하느냐 하면 다른 말로 하면 경제의 성격이 변했다는 거죠. 그럼 노동의 성격도 변하고, 그러면 노동에 요구되는 인간형도 달라지는 겁니다. 초기 산업사회는 그저 시키는 대로 일만 열심히 하면 됐지만은, 이제부터는 창의적, 남이 시켜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문제를 던지고 자기 스스로 디자인을 하는 그런 창의적인 인간형들, 즉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경제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경제가 되니까 문제가 되는 게 뭐냐 하면, 경제에 필요한 인간상도 달라지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뭐냐 하면, 그 창의력을 위해서는 사회분위기가 상당히 리버럴하고 자유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그래야만 했죠. 아마도 참여정부 때가 제가 볼 때 대한민국 사상 가장 리버럴한 시기였던 것 같아요. 가장 활발하게 비판도 하고 아무런 걱정 없이 비판을 할 수도 있었고요. 그때 유시민 씨의 말에 따르면, 대통령 씹는 게 국민스포츠가 됐다, 아무 걱정 없이 정말 그런 자유로운 마음으로. 사실은 뭐 노무현 대통령이 억울한 부분도 있겠지만, 자기가 뭐랄까요, 검처럼 씹히는 것 자체가 그분의 업적이에요, 그래도 된다는 것을 보여준 거죠. 그게 아마 마지막으로 발현된 게 제가 볼 때 촛불집회인거 같아요. 촛불집회는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집회의 형태였죠. 지도하는 사람 없이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네트워크로 서로 소통하면서 누가 명령하지도 않았지만 자기들 스스로 알아서 새로운 시위문화를 만들어낸 것, 이것은 아직도 세계 역사상 없습니다.
이 촛불집회가 왜 일어났느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사실은 광우병 공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광우병 공포를 느낀 분들이 있을 거예요. 여중생들이라든지 아니면 애를 먹여야 하는 엄마는 굉장히 큰 공포를 느꼈을 거예요. 그런데 보통 남자는 그렇잖아요? 담배 피우는 게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피우거든요. (웃음) 갑자기 이 사람들이 왜 이러지? 식품 위생에 왜 이렇게 민감해졌을까? 사실은 그것은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광우병은 하나의 계기에 불과했고, 더 중요한 건 뭐냐 하면, 불안감을 느꼈던 겁니다. 하나의 패러다임이 있었는데 그 패러다임이 사라지고 낡은 패러다임이 도래하는데, 이걸 보니까 장난이 아니거든요. 거기서 느꼈던, 정권이 시작되면서 느꼈던 막연한 불안감이라는 것이 촛불집회로 터져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그 모든 사람들의 불만을 묶어 줄 수 있는 유일한 공통분모는 광우병 밖에 없었다는 거죠. 그래서 그랬던 거죠. 그래서 그 낡은 패러다임으로 복귀하는 것, 우리가 누렸던 자유로운 패러다임이 사라지는 막연한 불안감이 폭발적인 반응으로 나타났던 게 아닌가. 사실 지금 촛불집회하고 촛불집회 직전의 상황하고 지금의 분위기를 한번 비교해 보세요. 엄청나게 사회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알겁니다. 그때 굉장히 자유로웠잖아요. 촛불집회의 핵심이죠, 해방구잖아요. 국가권력이 침범할 수 없는 어떤 자유로운 영역이 길바닥에서 이루어졌던 거죠. 무정부주의적인 리버럴함까지도 경험을 했었는데 지금 보면 완전히 뭐 다시 70년대로 돌아가고 있다, 그런 분위기죠. 사실 모든 게 죽어있다는 느낌입니다.
왜 이렇게 됐느냐? 그게 이명박 정권의 상상력의 한계입니다. 이명박 정부, 이명박 대통령은 자기가 씨이오(CEO)라고 하지만 사실 그분이 사장할 때 씨이오라는 말은 없었거든요. 정확하게 말하면 현장감독 했던 건데 씨이오라고 붙여 놓고. 그러니까 머릿속에 든 건 딱 하나입니다. 자기가 경제 하면 이 분이 이해하는 건 딱 하나 70년대 경제입니다. 자기가 모래판에서 일할 때 그 생각 하나 나오는 거거든요. 그 다음에 우리나라 봤을 때 부동산 투기하고 토목과 투기, 이 경제였잖아요. 토목을 통한 성장제일주의 이게 유일한 경제 모델입니다, 머릿속에 든. 그분이 아는 유일한 경제에요. 저는 이게 그, 내 머릿속에 삽 한자루라고. (웃음) 그렇기 때문에 4대강 사업이라는 것도 이게 사실 경제적 의미가 있는 사업이 아니거든요. 제가 볼 때는 그 분의 개인적 신앙을 위한 일종의 종교적인 사업입니다, 이게. 쉽게 말하면 저는 이게 종교행사라고 해요, 4대강 공사를. (웃음) 그래서 아무리 이성적으로 비판해도 안 들어요. 왜냐? 이건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손익계산에서 나오는 이런 게 아니라는 거죠. 그분의 신앙을 위한 종교적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합리적 문제제기도 먹히지가 않는다는 얘기죠.
결국은 이 정권 들어와 가지고 우리 사회 경제의 패러다임이라는 게 정보사회에서 다시 초기 산업사회 모델로 퇴행을 해버린 겁니다.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뭐냐 하면, 이 정부 들어 와서 제일 먼저 한 게 뭐냐 하면, 뭐죠? 과기부를 없애버리는 거예요. 과학기술부를 없애버리는 걸 딱 보고, 와 대단하다, 정말 저는 감탄을 했습니다. 상상을 초월한다. 저들은 항상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웃음) 그리고 그 다음에 국가 주도 경제, 3공 시절로 회귀해버리는 거죠.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분이 뭐 경제에 대해 아는 게 그것밖에 없는데 경제를 살리겠다는 모토로 당선이 됐거든요. 그러면 자기가 아는 방식으로 살릴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지금 세계경제가 그렇게 돌아가는 건 아니거든요. 어떤 식으로든 토목공사를 통해서 해보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중국이라든지 이런 나라들 같은 경우에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자체가 경제에 선순환이 됩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인프라가 다 되어 있어요. 경부고속도로 있지 고속철도 있지 항공 공항 다 깔려 있는. 여기다 투자한다고 해도 경제적 효과로 귀결되지는 않는 이런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건 뭐냐? 그분 나름대로 지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그 점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웃음)
사실 뭐, 칼 맑스가 그런 말을 하죠. 토대와 상부구조는 서로 조응한다는 거잖아요. 쉽게 말하면 어떤 경제시스템이 있느냐, 경제시스템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그 나라의 정치시스템이라는 게 결정되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가 아직 산업사회 초기에 있을 때 즉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갔을 때 어떻든 박정희적 리더십(leadership)은 경제적 의미에서는 타당성은 있었습니다. 정치적 정당성은 없었을지 몰라도, 도덕성은 없었을지 몰라도, 경제적 타당성은 있었다는 거죠. 왜냐 하면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갈 때 그나마 당시에 대한민국에서, 이게 기계화거든요 기계화인데, 신체가 기계에 접속되어 있는 유일한 직업집단이 군인들이었어요. 그들은 한국전을 현대전을 치러본 경험이 있거든요. 그리고 나름대로 엘리트였다는 거죠. 전체 국민이 아직 농민이었을 때 인구의 90%가 농민이었을 때는 군인집단이 사회 속에서 엘리트 역할을 할 수가 있었던 겁니다. 그런 측면이 있었죠.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과는 상관없이. 사실 그 당시에 어떤 정권이 들어섰다 하더라도 상당히 권위주의적이었을 거라는 생각은 한다는 겁니다. 군부독재까지는 아니고, 그렇게 극악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상당히 권위주의적인 정부고. 정부가 이른바 국민을 계몽하는, 쉽게 말하면 국민들의 신체를 농경적 신체에서 산업적 신체로 뜯어 고쳐야 되거든요. 재밌게도 아마도 북한하고 남한에서 두 지도자가, 박정희라는 지도자, 김일성이라는 지도자가 당시에 동일한 어휘를 썼습니다. 그게 뭐였냐 하면, 인간개조에요. (웃음) 살벌한 어휘지만, 나름대로, 우리가 지금 보면 살벌하게 느껴지지만, 나름대로 필연성이 있었던 겁니다. 왜냐? 산업화의 과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경제에 대한 관념, 또는 경제 시스템 자체가 또 거기에 적합한 정치 시스템을 갖게 된다는 거죠. 그러다가 어느 정도 경제가 발달하고, 국가주도 경제가 발달하고 민간 주도로 경제가 넘어가게 되면서부터는 정부의 역할이 역기능으로 발휘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때쯤 되면 뭐가 날아가는가? 정권이 날아가 버리는 거죠.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고. 우리가 전두환 정권이 굉장히 폭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전두환 정권이 시장에 대해서는 하나도 안 폭압적이었어요. 상당히 리버럴했어요. 왜냐하면 전두환 씨가 무식하잖아요. (웃음) 그러니까 경제는 네가 해, 맡겨 버리면. 덕분에 상당히 리버럴해진 것은 사실이라는 거죠.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어쨌든 항상 이런 식으로 정치적 리더십이라는 건 당시 경제 시스템, 또는 경제에 대한 관념을 반영하기 마련이라는 거죠. 사실 우리나라 정치 시스템은, 토대에 깔린 경제의 수준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거든요. 문제는 뭐냐 하면 통치하는 사람의 관념이 문제입니다. 이명박 식 관념 자체가 3공식으로 돌아가 있다 보니까. 쉽게 말하면 정치시스템 자체가, 경제에 대한 낡은 관념이, 자기가 경제관념이 낡았기 때문에, 경제에 필요한 리더십을 짤 거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까 정치적 리더십에 대해 아주 낡은 생각으로 나타나는 거죠. 그래서 3공식 리더십입니다. 말하자면, 내가 명령하면 국민은 따라서 하면 된다, 우리는 엘리트 집단이니 국민은 농민들이고 무식하니까 너희들은 일단 우리를 따라서 해라, 조국 근대화를 하자, 이거죠,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겁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국민은 다 앞에 가 있는데 지 혼자 뒤에서 지금 이러는 겁니다.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하니 굉장히 큰 불행이죠. 내가 명령하면 너네는 한다. 이번에 사람을 쓰는 것도 알겁니다. 쉽게 말해 인재를 쓴다기 보다 자기 말 잘 듣는 돌쇠들을 내세웁니다. 한번 임명하면 끝까지 뭔 짓을 해도 끝까지, 국회에서 욕설을 해도 끝까지, 뒤를 봐줍니다. 쉽게 말하면 조폭의 부하들 부리는 식으로 하거든요. 왜냐하면 생각은 자기가 하면 되는 거죠. 자기 외에 사람들은 몸만 움직이면 된다, 이런 리더십이라는 거죠. 국민에 대해서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러다보니까 소통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소통이라는 말을 저들이 할 때 내용을 들어보면 3가지에요. 계몽, 또 하나는 홍보, 또 하나는 심지어는 문화부 자료에서 나오는 그 말 있죠? 세뇌라는 말이 어떻게 정부 교육 문건에서 국민을 세뇌한다는 말이 나옵니까? 버젓이. 이런 말까지 나오는.


 

푸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죠, 판옵티콘 얘기 했던. 이 사람이 말하는 게 시선 권력이에요. 쉽게 말하면 시선에 포착되면 그건 지배를 당한다는 걸 말합니다. 폴 비릴리오(Paul Virilio)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죠. 미국의 국방장관이 그랬다 그러더라고요. 레이더시스템, 추적시스템이라고 있잖아요? 우리가 그것을 탐지하면 파괴를 100% 보장하겠다, 우리 눈에 보이기만 하면 파괴는 100% 보장하는 거죠. 그와 마찬가지로 눈에 뜨게 되면 권력은 항상 지배, 100% 지배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의 눈에 띈다는 건 꼭 권력에 의해 지배당한다는 뜻이고, 그래서 권력은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는 것을 참지를 못해요. 쉽게 말하면 자기가 사회를 바꿀 때 그 사회는 푸코가 말한 판옵티콘이 되어야 됩니다. 구석구석까지 내 눈에 다 보여야지 돼요. 그렇지 않고 뭔가 어두운 부분이 남아 있다고 한다면 불안해합니다.
사실은 주민등록증이라든지 이런 것들, 옛날에 원래 68년도에 생겼죠? 69년에. 사실은 아마 여러분 익숙해졌을 겁니다. 주민등록증 없는 삶이 생각이, 상상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69년 이전에 우리나라에 주민등록증이 없었어요. 모든 국민한테 번호를 매겨서 관리하는 시스템이 왜 나왔냐 하면은 간첩 적발, 김신조 내려왔을 때 간첩을 적발한다는 이런 발상이라는 것인데, 실제로 국민을 완벽하게 다 통제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거죠. 어쨌든 모든 국민들한테 넘버링이 된다는 것, 그건 다른 말로 하면 시간문제라는 겁니다.
반면에 권력은 또 자기가 눈에 띄는 것은, 왜 눈에 띄는 것은 일단은 뭡니까? 지배당하는 걸 말하는 거죠. 자기가 하는 일은 국민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해요. 사실 지금 정권도 그렇잖아요? 정권에 투명한 이런 건 하나도 없습니다. 뭐든 뭔가 결정되긴 결정돼요. 갑자기 뭐 운하나 갑자기 4대강이 뚝딱 결정되니 추진이 돼 버립니다. 그런데 여야 합의 통과된 법률이 있는 세종시 같은 건 갑자기 안 하겠대요. 그리고 이번에 또 뭘 하나, 갑자기 뜬금없는 이야기가 툭툭툭툭 튀어나오거든요. 그런데 도대체 어떤 절차를 통해서 어떻게 결정되는지 우리는 하나도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사실 재밌는 건 뭐냐 하면, 그러니까 보수언론에서도 뭐라 그러더라고요. 조선일보에서 비판을 해요. 뭐라 그러는가 하면 역대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에 어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기자회견을 하거든요, 설명을 하잖아요. 이명박 정권에 들어와서는 두 번인가 세 번 했대요. 그 전 정권은 수십 번을 했는데. 그나마 두세 번도 천안함, 천안함이 아니라 아덴만 여명 해서 자기를 홍보할 때. 쉽게 말하면 알리지 않겠다는 거죠. 너희들은 관심 갖지 말라는 겁니다. 반면에 국민들은 완벽하게 투명하게 잡아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처음에 정권이 성립하자마자 이 사람들이 했던 게 바로 그 단도리질이었던 것 같아요. 일단 네티즌들이 가장 큰 문제였죠. 여러분 생각날 겁니다. 인터넷 실명제라든가. 사실은 그 제목이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사이버 스페이스 매니페스토(Cyber Space Manifesto)인가, 사이버 공간에서의 선언인가, 미국에서 나왔는데. 거기에 보면 초기 사이버공간이 처음 등장했을 때, 상당히 좌파들이죠, 좌파 이상주의자 내지 좌파 오피니스트들이 이제 해방구가 열렸다고 얘기하면서 그 선언을 합니다. 현실의 권력은 여기서 멈춘다. 여기서 현실의 권력은 무효다. 현실의 권력에게 선언하기를 여기는 내버려 둬라, 너희들은 들어오지 마라, 이런 얘기를 합니다. 물론 사이버 공간이라 하더라도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죠. 현실이 주는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공간은 말한 대로 상대적 자율성이 있고 그걸 인정해줘야 되는 거거든요. 인터넷실명제라는 것은 그걸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죠, 한 마디로. 인터넷의 특수성이라는 것, 인터넷 공간의 특수성이라는 건 절대 인정하지 않고, 현실사회는 자기들이 남김없이 지배하고 있거든요, 현실공간은. 현실공간의 지배의 논리를 그대로 사이버공간까지 연장하겠다는 의도가 인터넷 실명제로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사이버공간에서도 사이버공간마저도 현실공간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판옵티콘으로 만들겠다, 그런 의도가 있는 거죠.
그 다음에는 사이버 공간에서 말 함부로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기 위해서 뭐가 도입되느냐 하면 사이버모욕죄라는 걸 도입하려고 하죠. 그것도 상당히 우스운 게, 모욕죄라는 것 자체가 사실은 다른 나라에는 없습니다. 모욕죄라는 게 다른 나라에 있었던 건 왕정시절 때 백성들이 임금님 욕하는 걸 막기 위해서 처벌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모욕죄거든요. 그 흔적이 계속 남아 있었던 겁니다. 제가 법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제가 알고 있기로는 전 세계에서 일본이나 독일 정도에만 남아 있었던 걸로 알고 있고, 독일 같은 경우에도 마지막 판례가 1966년인가 그래요. 그 후로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모욕죄가 있습니다. 명예훼손죄 있고 이걸 가지고 형사처벌 하는, 민사가 아니라 형사에요. 이걸로도 모자라서 사이버공간에 모욕죄를 또 만들겠다는 거죠. 이 사람들이, 뭐랄까요, 철저하게 국민들의 입을 막겠다는 의도를 보여주는 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아마도 인제 네티즌들에게 직접 대하는 조치라기보다도 네티즌들이 즐겨보는 공간이 있어요. 그게 그 포털사이트. 네티즌들이 언급하는 것도 대개 포털사이트 대문에 걸린 뉴스 보고, 네티즌들이 포털사이트 토론 마당이나 포털사이트에 실린 기사에 댓글을 다는 것으로 자기들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곤 했는데 이게 무지무지 거슬렸던 모양이에요. 이 사람들이 제일 먼저 했던 게 네이버 뉴스캐스트제인가, 그랬다는 거죠. 변했을 때 사실 저는, 크게 차이는 못 느낄 겁니다, 현상적으로는. 왜냐하면 클릭하면 기사가 열리는 건 똑같으니까요. 그런데 그 전에는 아마도 이게 기사가 와서 네이버 상에서 열렸을 때는 사람들이 댓글을 달 수 있었다는 거예요. 이제는 댓글을 달려면 어디로 가야 되냐 하면 그 신문사 사이트가 열리거든요. 그러면 거기다가 로그인을 해야 하거든요. 사람들이 원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이 제도가 도입되고 난 다음에 네티즌의 댓글이 확 다 죽어버렸어요. 그 다음에 다음 같은 경우에는 아고라 같은 경우. 다음 아고라가 그들의 골칫거리였죠. 왜냐 하면 아고라 자체가 광장이라는 뜻이잖아요, 민주주의의 광장이라는 것. 그래서 이들이 눈엣가시였죠. 그래서 그때 배치가 예전에는 다음 딱 열자마자 아고라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걸 이걸 숨겨놨습니다. 아고라에 올라온 글 계속 명예훼손 걸고, 계속 경찰이 내사하고 해서 그 활동을 아예 죽어버렸죠. 네이트는 아예 실명을 썼던 것 같아요, 실명 아니면 글을 못 달게. 이러다보니까 사실 인터넷 공간의 익명성과 평등성과, 이런 것들을 완전히 죽여 버리면서 쌍방향 소통을 완전히 죽여 버림으로써 일방적 소통을 강화했죠. 아마 포털사이트에 뉴스라든지 통제하는 것도 유명한 일이 있죠. 진성호 의원이 신정아로 바쁘기 전에는 그보다 더 유명한 사건이 있었죠. 네이버는 평정됐다는 그 유명한 말. 실제로 그렇습니다. 저도 포털사이트에 가 가지고 출연한 적 있었는데 그때 사회자가 그런 말을 합니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이 나오는 데도 그것도 청와대에서 전화가 온대요. 왜 불렀냐, 그런 식으로 통제를 하는 거예요. 다 모니터링을 하는 거예요. 할 일도 되게 없어요. (웃음) 청와대가 이것저것 다 모니터링을 해서 전화질을 해 가지고 이렇게 한다는 거죠. 황당한 건 뭐냐 하면 지금은 정보화 사회인데 현 정권이 인터넷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불구대천의 원수를 대하는 것 같아요. (웃음) 정보화 사회인데 인터넷 공간을 이렇게 적대하는 정권이 어디 있냐는 거죠. 이게 이 사람들의 패러다임 자체가 옛날 패러다임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인터넷은 온갖 만악의 근원이에요. (웃음) 그런 식의 묘사를 많이 하죠. 그 밖에도 뭐 이제 원칙적인 관계에 있는 건 아니지만 방송 장악하는 것들, 예컨대 김미화라든지, 김제동 씨라든지, 뭐 손석희 씨라든지 이런 사람들, 잘라 내잖아요.
자, 이러다보니까 사실은 권력이 국민을 불신해요.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모델이 계몽주의 모델이거든요. 일제시대, 박정희 모델입니다. 즉 국민들이 아직도 뭐랄까 무지몽매한 상태에 있다고, 그 생각을 지금 이명박 씨는 그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정보화 사회가 아니라 산업화 사회에 있거든요. 후진적인 것은 자기 자신인데 그게 아니라 국민을 자기가 이끌어야 된다고 믿어버리는 거예요. 국민을 믿지 않고 국민들이 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국민들이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권력이 국민을 불신하는 겁니다. 국민의 자발성, 참여, 이런 걸 오히려 적대시하고 위험시해요. 그러다 보니 당연히 국민들도 권력을 불신할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이게 민주적 통치가 국민의 신뢰 위에서 국민의 자발적 참여라는 그런 식의 통치가 되어야 하는데, 신뢰 위에서 통치하는 게 아니라 불신 위에서 명령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강제성을 띨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 다음에 이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국민을 두려워하는 겁니다. 국민들이 뭔가 말만 하려고 하면, 달려들어서 초기진압을 하느라 여념이 없죠. 국민들이 뭘 하는지 늘 알아야 한다, 다 모니터링 하고 해서 걸고넘어지잖아요.
과거에는 인제 국민들을 탄압하는 데 언론을 탄압하고 국민들의 의견을 탄압하는 데 초법적인 수단들이 동원됐을 겁니다. 체포, 납치, 고문, 구금 뭐 등등. 아마 이명박 씨도 그거 하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사실 그렇게 못하죠. 우리 사회가 20년에 걸쳐서 쌓아온 게 있거든요. 민주화라는 것. 그 패러다임 자체를 이 사람들이 전적으로 엎어버릴 수는 없는 겁니다. 또 그걸 엎어버리려 했다가는 어떤 사태가 올지 자기들도 잘 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뭐냐 하면 탄압의 방식이 상당히 합법적인 수단을 써요. 초법적이거나 불법적이거나 이런 게 아니라 합법적이지만 굉장히 부도덕한 수단을 씁니다. 그러니까 법과 윤리가 같이 가는 게 아니라 법과 윤리가 어긋나는 상황, 엇박자 식의 전략을 쓴다는 거죠. 보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분명히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방식이에요.
첫 번째가 뭐냐 하면, 감사하는 방식. 감사를 하는데 이번에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모든 감사 털어서 다 무죄가 나왔죠? 문광부에서 했던 감사라든지, 케이비에스(KBS)에서 했던 감사라든지 털어서 나오는 게 없거든요. 심지어 정연주 사장 같은 경우 기소까지 했지만 결국 뭐예요? 무죄가 됐죠. 그 밖에도 제가 듣기로는 야당 국회의원에게 후원한 사람들, 10만원 이상 후원한 사람들 세무조사하고. 뭡니까? 자기들은 늘 하던 세무조사를 했다 하고 얘기해요. 합법적인 겁니다. 문제는 이걸 당하게 되면 사람들은 뭐에요? 어떤 생각을 하느냐? 아, 내가 뭘 하든지 저들은 내 옆에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겁니다. 당한 사람이 다음에는 야당의원에게 정치후원 할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못합니다. 심지어는 전 대통령이 가던 삼계탕 집은 세무조사를 받아 가지고 10억이 발견됐다, 등등등. 사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털면 안 나오는 데가 없잖아요? 어떤 식으로든. 문제는 뭐냐 하면 웬만한 걸 털어야 하는데, 사실 감사도 그런 말 있잖아요? 100만원 이하는 털지 않는다. 왜냐? 100만원 이하 발견하는 데 노동력이 더 많이, 경제적이지 않기 때문에. 위만 봐야 되는데 완전히 그 아래까지 털어버린다는 건 분명히 경제적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에요. 정치적 탄압의 목적이라는 거죠. 전방위적으로 행해지는 거예요. 모든 영역에서 다 행해지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서 사람들이 뭐냐? 분명히 합법적인데, 뭔가 윤리적이지 못하다는 느낌,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왜냐하면 감사의 목적 자체가, 감사라는 제도 자체가 생긴 원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방식으로 사용이 되고 있거든요. 정치적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효과가 굉장히 큽니다. 한번 털려 봐요. 옛날에 잡혀가면 그냥 민주투사라도 됩니다. 김영삼 씨처럼. 닭장차에 실리면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대이, 이러면서 폼도 잡을 수 있었지만, (웃음) 이런 거 걸리게 되면 파렴치범이 돼버려요. 횡령 이런 식, 조세포탈. 단돈 몇 천 원 몇 만 원 때문에. 이런 식으로 사람을 부도덕하게 만들어버리는 이런 방식을 지금 사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결국은 인제 뭐죠? 기소된 다음에 뭐로 나와요? 다 무죄로 나와 버려요. 하지만 문제는 뭐냐 하면 그 동안에 이미 언론에서 다 완전히 매장을 당하는 거죠. 보수언론에서 때려 대고 이렇게 되면. 사회적으로 매장 당해버리거든요. 나중에 무죄 되도 신문에 거의 실리지도 않아요. 사실상의 탄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기소에요. 사실 기소라는 게 참 웃긴 게, 사실은 기소한다는 것, 구속하는 것 있잖아요. 검찰에서 물론 법원의 영장을 받기는 하지만 재판 전에 구속한다는 건 재판 전에 행사하는 처벌권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미네르바 같은 사람은 한 달 동안 구속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재판받아 보니까 무죄였거든요. 사실상 이 사람은 한 달 동안 구속당한 겁니다, 처벌을 받은 거예요. 무죄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검찰이 행사하는 처벌권이거든요. 이걸 광범위하게 행사하는 겁니다. 이것도 합법적이에요. 그래서 대부분 다 이렇게 이른바 뭡니까? 무리한 기소잖아요. 그러니 대부분 무죄가 나와 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게도 대한민국 검사들은 승소율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 기소율로 평가 받아요. 자기가 봐서 말이 안 되는 건 기소하면 안 되거든요. 그런데 일단은 기소하는 게 정권에 충성하는 길이거든요. 이런 상태라는 거죠. 그러니까 사실은 합법적으로 부여된 권한인데 상당히 부도덕적하고 뭐랄까 비윤리적으로 지금 활용함으로써 일종의 탄압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쥐 그림 같은 것. (웃음) 아니 포스터에 쥐 좀 그렸다고 기소를 할 일입니까? 징역 10년을 살아야 할 일이에요? 낙서 좀 한 것. 검찰의 기소 요지를 보세요. 뭐라 그러는지 아세요? 그 자가 청사초롱과 번영의 꿈을 강탈했대요. 이게 무슨 문학입니까? 애들 초중고등학교 백일장 하는 것 같잖아요. 검사의 수준이 이렇습니다. 알고 있어요, 말도 안 된다는 것, 자기들 스스로. 이걸 하는 겁니다. 왜? 억압하는 거예요.
세 번째가 사찰입니다. 아마 여러분 총리실에서 민간인 사찰 한 것 아실 겁니다. 대운하 반대 교수들 다 사찰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 뭐 사찰한다고 뭐가 잘못 되는 건 아닙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항상 네들 옆에 우리가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거죠. 사람들 스스로 위축시켜 버리는 거죠. 여기다 더해지는 것은 아주 구조적 방식, 옛날부터 있었던 이념, 반공 이념, 빨갱이. 천안함 사건 같은 경우, 저는 천안함 누가 침몰시켰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판단하기 힘들다고 봐요. 북한이 아마 침몰했을 가능성이 크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뭐냐 하면 정부의 발표가 엉터리잖아요. 정부에서 발표하는 것도 굉장히 일방적이라는 거예요. 믿어라 이런 식이잖아요. 문제는 일각에서 과학적인 반론이 제기가 됐거든요. 그러면 과학적인 의혹이 제기되죠, 그럼 과학적으로 해명하면 끝이에요. 그런데 그걸 안 해요. 하지 않습니다. 지금 뭐, 의혹 제기하는 분들이 물리학에서 그걸 전공하는 분들이 제기를 했거든요. 이 분들이 특별하게 정치적인 분들도 아니잖아요. 정부의 발표에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걸 해명을 하라고 하면 과학적으로 해명하면 되잖아요? 안 해요. 안하고 뭐라고 하냐 하면 믿으라고 얘기해요. 종교가 되어 버립니다. 과학이 아니라 종교죠. 그 다음에 안 믿으면 뭐가 되는 거예요? 빨갱이. (웃음) 뭐, 이런 방식이란 거죠. 어쨌든 지금 그러니까, 법의 자의적 해석이라고 하는 게 큰 문제입니다. 법을 갖다가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거예요. 법이라는 것은 윤리와 도덕의 가장 극단적인 경우만 규제하게 되어 있는 게 법이잖아요. 그런데 쥐 사건 이런 걸 보게 되면 도대체 사람이 잡혀서 유치장에 갇혀서 기소되어야 할 상황이에요? 징역 10월을 구형받아야 하는 상황인가? 재밌게도 보니까, 법 해석이 자의적이다 보니까, 시민들은 말이죠, 보통 그래요, 내가 물건을 훔쳤거나 세금을 포탈했거나 누구를 때렸거나 하면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경찰에서 전화가 와야 아, 그게 범죄라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예컨대 유모차 아주머니들, 아동학대죄래요 그게. 세상에. 이렇게 볼 줄 누가 상상했겠어요. 이현령비현령 마구 갖다 대는 겁니다. 사람들 귀찮게 하는 거예요. 법정에 가면 다 무죄죠. 말도 안 되죠. 그런데 일단 걸고 귀찮게 한다는 겁니다. 그거 걸리게 되면 경찰 조사 받아야 해요. 그 다음에 기소 당하면 법원에 법정에 서야 하는 이런 거예요. 사실상 이런 식으로 하게 되면 나중에 무죄를 받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위축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사실상 미리 처벌을 받는 거죠. 경찰서에 간다는 게 처벌 받는 겁니다. 검찰에 간다는 게 처벌 받는 거고. 또 다시 법정에 나간다는 게 귀중한 시간과 스트레스거든요. 시간을 빼앗기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때 국민들은 이제 자기 검열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요즘은 인터넷에 굉장히 흔해요. 옛날에는 막 썼는데 아무 문제없이 썼는데 요즘 뭐라고 쓰냐 하면 네티즌들이 교수님 살살 해주세요, 이러다 잡혀 가실라. 이러다 잡혀 가실라는 말을 제가 몇 십 년 만에 듣는지 모르겠어요. 적어도 노태우 때는 안 그랬어요. 노태우, 김영삼 때도 없었던 말이거든요. 이러다 잡혀가실라 이 말은 사실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은 물론이고 김영삼 정권하고 노태우 정권 때도 듣기 힘들었던 말이었거든요. 이제 20년 만에 부활한 겁니다. 뭘 말하는가 하면, 이제 자기 검열이 내재화된 겁니다. 옛날에 글들 자유자재로 퍼오고 거기다 자유자재로 코멘트를 붙였던 사람들이 이제 굉장히 조심해요, 조심스러워 해요. 굉장히 조심스럽고 심지어 나한테 와서 교수님 이거 제가 퍼가도 되겠습니까? 아니 트위터, 당연히 퍼가라는 거지 그게 무슨 대단한 저작권이라도 된다고.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누구죠, 김재철인가요? 엠비씨(MBC) 사장, 아니 케이비에스 사장 이름이 뭐죠? 김인국. 그분이 예전에 5공 때 했었잖아요? 전두환 찬양하는 발언 했었잖아요? 기자로서 전두환 찬양하는 보도를 했거든요. 그게 동영상이 딱 올라왔거든요, 인터넷에. 그런데 저작권에 걸린다는 거예요. 황당한 거죠. 이런 식으로 자꾸 거니까, 이게 무슨, 그게 뭐 대단한 저작권의 침해인가? 사실 다른 목적이 있는 거죠. 저작권 침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저작권 침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정치적 목적이 있는 거거든요. 이런 방식으로 사용되다 보니까 네티즌들은 글 하나 퍼올 때도 굉장히 조심스럽고 뭐라고 하게 되면, 뭐랄까, 글 하나 쓰게 되면서 자기가 불안하거든요. 심지어 지워요. 그 당시 많이 일어났던 것이 블로그에 블로거들이 자기 글 자진삭제하고 사라져 버리는 이런 현상들이 많이 나타났거든요. 지금은 일상화됐어요. 촛불집회 직후만 해도 굉장히 낯설게 느꼈는데 지금 아마 굉장히 일상적입니다. 낯설다는 것을 의식을 못하게 된 거죠. 그만큼 억압에 사람들이 익숙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사실 무서운 거예요. 억압이 계속되고 계속되고 계속되면 사람들이 억압이라는 사실 자체도 잊어버리게 돼요, 어느 순간에는. 그냥 익숙함 속에서. 그러니까 이걸 다시 되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거죠.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정권 하나 바뀌면 끝이냐? 그렇지 않죠. 정권 하나 바뀌면 이 기간을 또다시 밟아서. 사실은 독재정권의 폭압에서 거의 20년에 걸쳐 가지고 우리가 이 정도의 리버럴한 상태를 유지하는 거거든요. 사람들이 권력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그런데 국민들이 이제 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됐다는, 자기 스스로 검열을 하게 됐다는 거죠. 검열의 기제를 푸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겁니다. 그만큼 퇴행을 시켜 버렸다고 할 수가 있죠. 어쨌든 바로 이런 식으로 저들은 자기 목적을 달성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는. 그건 사람들이 자기 검열을 하게 되면 그들은 자기들이 검열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왜? 자기들이 아니고 그들 스스로 알아서 검열을 하니까. 그들은 목적을 달성한 겁니다.
이명박 정권이 왜 출범했는지 한번 생각해 보죠. 한동안 사람들이 자유에 싫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쉽게 말하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사람들은 일단 자기가 없었던 걸 되찾게 되면 소중한 걸 알게 되지만 누리게 되면 그 고마움을 모르게 돼요. 나중에는 지루해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걸 누리게 된 데는 당연한 이유가 있었어요. 그건 왜 그런가 하면, 사실 그 자유라는 게 굉장히 허무한 자유였거든요, 어떤 의미에서는. 왜냐하면 사실은 그 전에 참여정부와 국민의 정부 때 어떤 일이 벌어졌냐 하면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이 붕괴했어요. 그 다음에 고용안정성이 희미해졌습니다. 빈부격차가 다시 확대가 됐습니다. 사람들이 뭐냐 하면 자유는 누렸는데 이건 뭐냐는 거죠. 굉장히 자유라는 게 공허하다고 생각된다는 거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느냐 하면 이 따위 공허한 자유는 포기해도 된다, 경제만 살려 준다면. 그때 이명박이 딱 튀어나오는 겁니다. 사람들이 자유의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순간에 질서로 회귀하고 싶은 본능을 느꼈다. 그걸 잡아준 아버지, 그게 누가 되냐 하면 이명박이 되는 겁니다. 이명박은 짝퉁 박정희예요. 사실 박정희 정권 이후에 아버지, 사실은 전두환이 누리던 아버지의 지위를 누리지 못했어요. 후레자식이었죠. (웃음) 아버지 자리에 들어온 후레자식이었다는 거죠. 박정희가 죽으면서 이제 사람들이 국민들이 뭐랄까, 심리적 의존상태라고 하나요, 집단 심리적 의존상태를 벗어나서 자율적 주체로 성장해 갔던 겁니다. 가부장 권력이 상당히 무너졌던 거죠. 그런데 그 가부장 권력을 다시 불러낸 겁니다. 돌아가셨던 아버지가 무덤에서 돌아오신 셈인데. 결국 아버지에 대한 향수예요. 왜냐하면 박정희 때 자유는 없었지만 뭐가 있었어요? 경제성장은 있었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그게 향수인데, 문제는 뭐냐 하면 아버지에 대한 향수는 좋지만 시체는 냄새가 나기 마련이죠. (웃음) 향수가 냄새를. 이번 재보선에서 드러난 게 바로 그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3년이면 환상이 깨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던 겁니다. 저야 처음부터 알았지만. (웃음) 저거 딱 보니까 뭐, 처음부터 딱 보니까. 얼굴 딱 보면 알잖아요. (웃음) 사람들이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이러는데 3년쯤 딱 지나니까 이제 경제대통령 허상 완전하게. 재밌게도 이번에 분당 사람들이 지적한 게 뭐냐 하면 경제적 실패를 지적했다고 나오는. 사실은 분당우파의 문제, 경제적 문제도 있겠지만, 사실 그 분당 사람들이 경제가 어렵다고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는 계층은 아니거든요. 그 사람들은 받아도 제일 나중에 받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왜 반발했는가? 제가 보기에는 일반 민주주의, 일반 민주주의가 후퇴되는 데 대한 반발이 굉장히 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뭐냐 하면 엠비(MB)가 통치하는 방식이, 그래도 중산층 엘리트들이거든요, 나름대로 수준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엠비의 통치 방식이 중산층 엘리트들의 세련된 수준에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기에는 저질이라는 느낌이 드는 거거든요. 저런 것들이 다 있나. 내가 우파지만 그래도 저런 수준은 아니다, 저런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이런 게 있다는 겁니다. 자기들이 보기에도 저건 아니라는 거죠. 우파라 하더라도 세련된 우파들이 있잖아요. 딱 보니까 단순 무식 그 자체잖아요. 저건 좀 아닌 것 같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이명박 정권에서 내세웠던 게 뭐냐 하면 정치적 자유를 희생해서라도 경제를 성장시키면 오케이다, 묵인하겠다, 국민들이 거기에다 표를 던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경제는 별 볼일 없어요. 경제는 별 볼일 없는데 정치적 자유는 확실히 축소됐거든요,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국민들이 반란할, 심판할 기회를 찾았는데 그동안 심판할 기회가 없었죠. 왜냐하면 대선 한번 있고 총선이 중간에 끼면 좋은데, 총선과 대선이 이게 2개가 항상 붙어 있었잖아요. 한번 심판하려면 4년. 이럴 때 재보선이 딱 있었던 거죠. 재보선이 큰 의미를 가졌던 것이 바로 그거죠. 중간평가 할 기회가 없었어요. 중간평가 할 기회가 있으니까 바로 이제 국민들은 이때 법으로 보장된 반란과 심판의 기회를 쓰는 거거든요. 권리를 행사했던 거지요. 저희가 볼 때는 사실은, 모르겠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정권장악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은 바뀌면 그만이고, 제가 볼 때 저렇게 무식한 정권이 다시 나올 것 같지는 않아요. 아주 극단적인 정권이고 아마 인류 역사상 대한민국 역사 정치 사상 기억될 겁니다, 황당한 대통령으로 정말. 이 시기가 어두운 시기로 기억될 텐데. 생각해 보세요. 다른 대통령들은 다 업적이 있어요. 나름대로 업적들이 있습니다. 전두환만 해도 국가 주도형 경제를 시장 주도형 경제로 바꿨습니다, 리버럴하게. 또 뭐가 있습니까? 노태우만 해도 북방정책이니 뭐니 이래 가지고. 그 다음에 자기를 대통령을 코미디 소재로 써도 좋다는, 이 정도의 리버럴한. 김영삼 각하. 무시하지 마십시오. 제가 보기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긴 분 중에 한 분인데, 금융실명제 했어요. 하나회 척결했습니다. 한국이 군부독재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을, 아니 민주주의를 비가역적으로 만든 것이 김영삼 대통령이란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뭡니까? 금융실명제. 이것 때문에 지금 비리들이 드러나는 거예요, 그나마. 비리를 잡을 수 있는 거라는 거죠. 그 다음에 김대중 대통령. 남북 간에 화해했잖아요. 우리가 북한 왔다 갔다 하는 것 상상을 할 수 있었냐는 거죠, 그 전에. 그 다음에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것 했죠. 그 다음에 보복이 없었죠, 정치보복이. 그 다음에 노무현 대통령 누가 뭐라 하더라도 인터넷, 한국 사회에서 인터넷 문화가 가장 리버럴한 문화를 만든. 그런데 각하는 뭘 하셨는지 모르겠어요. 삽질한 것 밖에, 4대강. 얼마나 한심하냐는 거예요. 그리고 민주주의 후퇴시켰죠. 그 다음에 지금은 4대강, 4대강도 좀 웃기잖아요. 맨날 우리가 얘기했잖아요. 홍수피해는 지천에서 난다. 수질을 개선하려면 지천에서 정화시설을 해야 된다, 얘기했잖아요. 4대강 막 끝날 때쯤 되니까 아, 지천이 있지, 20조를 더 들여야 한다. 똘아이 아닙니까? (웃음) 한 마디로 말하면 4대강 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자기들도 인정한 겁니다. 모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얘들이 왜 그랬느냐? 아까도 얘기했죠? 4대강 사업은 경제적 사업이 아니라, 뭐예요? 종교적 행사니까. 종교적 행사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굉장히 비영리적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거 하나라는 겁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그 사이에 3년 4년 사이에 우리 국민들이 상당부분 감시, 억압을 내면화. 사람들이 자기가 자기를 감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검열, 내면화해요. 자기가 자기를 검열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 습속을 벗어나는 게 어렵다는 겁니다. 굉장히 오래 걸릴 거라는 거죠. 다음 정권이 들어서도 이번 이명박 정권의 교훈이 있으니까 보수정권이 들어서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는 뭐냐 하면 우리가 한때 이뤘던 자유분방함, 쉽게 말하면 정보화 사회에 요구되던 경쟁력이거든요, 이제는 창의력, 상상력이 이른바 경쟁력이거든요. 지금처럼 영어실력 이런 걸로 경쟁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수학 잘 하는 걸로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거든요. 예컨대 실리콘밸리 같은 곳에서는 프로그램 안 해요. 하청 줘요. 중국, 한국, 인도에 하청 주죠. 자기들은 상상합니다. 디자인만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청경쟁이다. 카이스트에서 학점경쟁 이런 것들이 상당히 뒤처진 모델입니다. 미래는 상상력의 경쟁이거든요. 상상력이 창의력이 나오려면 공포에 사로잡혀서는 안 되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은 남들과 다 똑같이 행동하려고 해요.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들판에 사람들이 갑자기 이유도 모르는데 일군의 사람들이 한쪽 방향으로 계속 뛰어가고 있잖아요. 그럼 일단 같이 뛰세요. 뭔 진 모르지만. 그건 본능적인 겁니다. 남들과 똑같이 한다는. 거기서 창의력은 나올 수 없다는 겁니다. 공포감이 없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정치적인 공포감, 내가 어떤 말을 하면 처벌을 받는, 내가 어떤 일을 하면 누구한테 감시당하는 이런 공포감이 없어야지 거기서 창의력이 나오는 거고 그래야 경제도 발전하고 문화도 발전하는. 앞으로 21세기는 그런 시대라는 거죠. 그래서 다음 정권, 이 정권 끝난 다음에도 남는 것은 이 후유증들, 이 후유증들 어떻게 극복하고 우리가 함께 자유의 수준을 확장해야 할까 그걸 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박래군
굉장히 피곤한 중인데도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진짜 그렇죠? 감시와 검열의 내면화, 자기검열, 이런 것 벗어나기 굉장히 힘든 건데. 그래도 참 오랫동안 벗어났는데 이명박 정권 들어서 참 씁쓸합니다. 질의 응답 시간입니다. 질의 응답 하겠습니다.

청중
아까 말씀하신 것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유에 대한 싫증, 지루함이 있다고 했는데 그런 것들이 인간 내면에 공통적인 그런 것이 있는 건가요? 아니면 우리나라의 특수성이 있는 건가요? 그러니까 자유에 대한 싫증이라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라 그럴까요, 그런 걸로 나타나는 건지?

진중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예술에서도 항상 그렇거든요. 미학에서도 그런 게 있습니다. 다다이즘이니 초현실주의가 있다가 20년대 또 다시 사실주의가 등장해요. 질서로의 회귀. 이런 게 있고. 한창 발랄하다가 발랄함 자체가 의미가 없다, 공허해지면 다시 질서로 회귀하려는 그런 움직임들이 문화적으로 나타나죠. 제가 볼 때는 우리 사회가 그랬던 것 같아요. 항상 자유라는 건 누리고 있을 때는 모르거든요, 소중함을. 그러니까 또 그 다음에 자기가 누리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죠. 그때 돌아가는 거죠. 그런 식의 역사적인 사이클이 있는 것 같아요.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독일에서도 바이마르 때 완전 자유주의잖아요. 국회에 딱 가면 1인 1당, 의원 하나에 당 하나. 그러니까 사람들이 싫증이 나잖아요. 그때 강력한 지도자, 히틀러가 나타나죠.

청중
권력의 속성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특히 근대적인 권력의 행사 과정에서 보는 것과 함께 특정인을 배제한다는 속성도 되게 많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예를 들어서 예전에 부랑자라든지 장애인이라든지 이런 경우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배제적 권력의 속성인 것 같은데, 그런 배제적인 속성은 어떻게 설명이 되는 건지?

진중권
푸코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근대 초기에는 그런 경향들이 있었을 겁니다. 근대 초기에는. 그런데 요즘은 그런 배제라는 것들이 그런 식으로 이뤄지진 않죠. 듣자하니까 평양에는 장애인들이 못 들어가는, 그런 얘기가 있더라고요. 그게 아마 전형적인 근대적인 배제겠죠. 하지만 우리 사회에도 그런 것 많을 겁니다. 아직도 우리 옆에 장애인 아파트 못 들어오게 하는 반대, 이런 것 있잖아요. 그런 식의 일상적인 그런 것 있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하는 예는 없다고 생각을 하고요. 왜냐 하면 우리가 그 수준은 넘었으니까. 그 수준은 넘었고 아마도 아직 남아 있는 게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있고. 이번에 판결도 이상하게 났잖아요. 그 다음에 여성에 대한 차별들도 있고 등등등.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도 어느 정도의 어떤 제도적 차별이 어느 부분에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 건 있죠. 배제라는 게 워낙 사회가 다원화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근대가 아니고 후기 근대이고, 탈근대 되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오히려 탈근대화 된다는 사회에서는 주요한 정치적 소재들보다도 옛날처럼 계급이니 혁명이니 보다 그런 것들이 정치적 의제로 떠오르고 있거든요, 사회가 받아들여지고. 그리고 환경, 그런 것들은 탈근대적인 정치적 의제. 국가 권력 차원에서 행사되거나 그런 차별이 행사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다만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고 아주 공고하게 변화를 거부하는 자들도 있죠, 분명히. 동성애자들이, 아마 군대에서의 동성애자 관계, 예컨대 예전에는 미국에서는 커밍아웃하면 군대를 떠났어야 하거든요. 이번에 하나 얻어냈죠. 얻어내 가지고 동성애자가 커밍아웃한 상태에서도 군인이 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판결이 이상하게 났더라고요. 바꿔야 될 게 많습니다. 일단 법원의, 흔히 영감님들이라는 사람들이, 교양이 많이 없거든요. (웃음)

청중
연관된 질문인데요. 우리 사회가 이미 후기 근대사회로 많이 갔는데, 아까 말씀하셨듯이 근대의 그런 안 좋은 것이 잔존해 있잖아요. 탈물질적 가치가 많이 추구되고 여성이니 인권이니 환경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선생님 보시기에, 대통령으로 박근혜라는 사람이 유력하잖아요. 이 대권주자는 여성이잖아요. 그렇게 봤을 때 선생님은 어떻게 보시는지?

진중권
옛날에 최고은 씨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그래도 괜찮겠다. 그건 남자한테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웃음)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예컨대 여성주의자들 입장은 그렇거든요. 사회주의든 공산주의든 남성 지배적이고 여성들이 탄압받는 건 다 똑같다. 당연히 그렇게 보는 거죠. 반면에 좌파들 입장에서는 저 여성주의자들 보면 가난한 집 프롤레타리아트 집 부인들은 여성운동 하지도 못하고 여성운동 하는 것들은 부르주아 마누라들이야, 이런 식. 그런 게 있죠. 저는 예컨대 박근혜 씨가 여성 대통령 후보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뭐냐 하면 그분이 여기까지 왔을 때 남성권력이거든요, 아버지 권력이고. 그 후광 때문에 그렇게 됐기 때문에. 그분이 무슨 여성주의의 화신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된다면 나름대로 제한적 의미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의미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같은 사회 속에서는. 여성이 대통령이 되려면 아버지 권위를 입을 수밖에 없지만, 항상 인류 역사 상에서 모든 게 한꺼번에 이뤄진 적은 없거든요, 항상. 그렇게 이뤄져 왔던 거니까. 나름대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그렇게 한쪽 틀 가지고 이건 이 틀이니까 얘는 보수니까 이렇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다양하게 평가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박래군
저도 하나 여쭤볼게요. 사회현안이나 정치현안에 대해서 계속 발언하시잖아요? 독설이라는 평가를 받으시는 데. 정부에 대한 평가, 비판 이런 것들 하는 것 때문에 혹시 개인적으로 고초를 당한 게 있나요?

진중권
글쎄요, 뭐, 공식적으로는 없죠. (웃음) 그냥 3군데에서 잘렸는데 공식적으로는 없죠. 쟤들이 그렇잖아요. 너 그것 때문에 잘랐다고 결코 얘기하겠어요? 결코 말하지 않죠, 그렇게는. 누구나 다 뻔히 아는 얘기지만은. 아까도 얘기했잖아요. 방식이란 게 매우 합법적이에요. 사찰을 한다든가 예컨대 감사를 한다든지. 감사를 해서 제 껄 다 털었잖아요. 한예종에서 제가 프로젝트를 한 게 있었는데요. 아쉽지만 저는 교수들이 그런 거 되게 싫어하거든요. 프로젝트 따가지고 그 돈 가지고 쓰고 대충 연구 결과 내서 이렇게 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프로젝트 예산을 하나도 안 땄었어요. 모든 프로젝트를 내가 사비 들여서 하자. 내가 사비 들여서 프로젝트 했다, 그랬더니 이상하다. (웃음) 책이 나오니까 회계부정을 한 게 틀림없다, 이렇게 나오더라고요. 털다 털다 털다 보니까 안 나왔던 거예요. 그러니까 걸 수가 없었던 거죠. 그런 식이에요. 그 다음에 어떤 한 학교에서는 모 장관님께서 시비를 거셨다는 얘기를 제가 들었고요. 뭐, 그렇죠. 홍대 같은 경우에는 강의를, 시간강사 강의였는데, 하라 그래서 하겠다 그랬더니, 개강하고 나서 잘랐어요. 9월 1일인가 2일엔가 개강하고 나서 잘렸더라고요. 사유가 뭡니까 그랬더니, 그게요, 말을 못해요, 사유를 말하지 못하는 거예요. (웃음) 그런 것들이 있죠. 에피소드죠. 저한테 대학 강의라는 건 경제적으로 의미가 없는, 저는 대학에 봉사하는 느낌으로 가는 건데, 그런데 자르니까 좀 황당했죠.

박래군
국가정보원이 옛날로 원대복귀했어요, 사실은. 김대중, 노무현 때 국가정보원장 독대를 안했거든요. 이명박 정권 들어서 독대를 다시 하니까 국정원에 힘이 실리고 그러다보니까 사찰이 되는데. 무슨 압력이 들어갔을 거거든요. 정부 쪽이나 국가정보원이나 압력이 들어가고, 학교는 압박을 받고 잘라 버리는 거죠, 진중권 씨를 잘라라. 이런 부분은 증거를 잡을 수 없어요.

진중권
제가 볼 때는 국정원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 같고요.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 같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이유가 있겠지만 저한테는 불쾌한 일이에요, 불쾌한 일이고. 지금도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지만 그 후로는 대학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이 됐어요. 저래도 되는가? 그 다음에 강의를 하고는 있지만 하기 싫어요, 솔직히. 앞으로 다시는 대학에서 강의할 일이 없을 거예요, 아마. 재미가 없어졌어요. 이런 일 딱 겪고 나니까 회의가 오더라고요, 대학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특히 그러지 않아도 요즘 대학이 이상해지고 있잖아요? 굳이 학문을 하는 데 대학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볼 때 학문은 다른 데서 할 수도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인문학은. 사실은 대학에서 인문학 세미나가 안돼요. 안되고 오히려 아카데미 바깥에 있는 데 있잖아요? 아카데미 이런 데는 모티베이션(motivation) 있는 애들이 오거든요, 학생들이. 자기 돈 내고 자기가 들어오니까 책도 읽어 오고. 그런 데서는 제대로 된 강의하고 제대로 된 질의 응답과 제대로 된 토론이 되는데 학교에서는 그게 안 되거든요, 대학은. 학점 이런 식으로 되다보니까. 그리고 이런 식으로, 시장까지는 오케이야, 그럴 수 있다 쳐도 정치에까지 휘둘려버리잖아요. 이걸 딱 보는 순간에, 대학이란 것은 시장과 정치권력과 협력할 때 협력하지만 항상 떨어져서 비판적 거리를 갖고 있으면서 일종의 소금의 역할을 해야 되는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한편 시다바리가 됐거든요. 저 안에서 내가 뭐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청중
이명박 대통령이 뽑힌 이유가, 그러니까 경제적인 것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지금 겪는 개인들의 고통이 계속적으로 그게 전체적으로 어떤 정신병적 증상을 겪는 것으로 보이잖아요.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경제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강하고, 솔직히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는 별로 다른 게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어떻게 국민들이 왜 집착을 계속 하고 있는지? 그게 경제적인 것에 대한 집착이 감시까지 용인하게 되는 상황이잖아요.

진중권
보수성이죠, 우리 국민들이 갖고 있는 보수성인데. 쉽게 말하면 앞을 봐야 하는데, 프로스펙트(prospect)라고 하죠, 전망. 프로(pro)가 앞이라는 뜻이고 스펙트(spect)는 보다라는 뜻이고, 프로스펙트를 해야 하는데 이게 안 되다 보니까 리트로스펙트(retrospect), 뒤를 보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앞으로 뛰쳐나갈 때 기획을 프로젝트를 못하다 보니까 옛날에 썼던 것 중에 괜찮았던 것 있잖아요? 잘 나갔던 것, 그리로 자꾸 돌아간다는 겁니다. 우리가 상상력이 막혀 버린 거예요, 우리 사회가. 여태까지 뭐냐 하면 시키는 대로 하고 우리나라 경제도 남들이 만들어 놓으면 그걸 베끼는 수준, 그런 식으로 발전해왔거든요. 그런데 어느 정도 비슷해 진겁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되나?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우리 스스로 창조하고 우리 스스로 디자인해야 되는데, 거기에 대한 상상력이 없게 되는 거예요. 그리로 나가야 되는데. 그리로 나가고는 싶어요. 나갈 방법은 없고. 나갈 방법으로 어디를 보냐 하면 옛날에 통했던 것, 경제성장, 고도성장, 당연히 이렇게 됐다는 거죠. 우리 사회에 뭐가 없나? 비저너리(visionary)가 없는 거예요, 프로스펙트를 제시하는. 이명박이 그나마 던진 것이 뒤로 던져 버린 거죠. 그런데 그 당시 민주당은 뭐냐 하면, 아예 던진 게 없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누구였죠? 정동영? 정동영의 슬로건이 뭐였죠? 기억나는 사람 있어요? 뭐였죠? 기억이 안나요. 그렇죠. 없었다는 거예요. 그나마 뭐 하겠다고 명확하게 얘기한 건 이명박 밖에 없었다는 거예요. 그건 앞으로도 반복될 겁니다. 사람들이 앞을 못 보면 뭐예요? 가능한 방법을 찾아서 지금까지 경험을 볼 수밖에 없는 거예요. 미래를 어디에 저당 잡힙니까? 과거에 저당 잡힌다는 거죠. 그게 보수성입니다. 앞으로도 아마 많이 그럴 겁니다.

박래군
이 정부의 특징이, 탄압을 하는 게 운동권이나 정적을 탄압하는 식으로는 안하잖아요. 도리어 미네르바라든지 김종익 씨라든지 어떤 시민들을 계속 추적을 하고 사찰을 하고 또 기소까지 하고 구속까지 시키고 이러고 있어요. 예전 정권의 이런 부분들하고는 상당히 다른 상황이잖아요. 이런 부분들이 인터넷의 확산, 인터넷 문화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서 강연 중에 좀 나오기는 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왜 이럴까? 전통적인 공안탄압 방식은 아니고, 운동권이 지리멸렬하지는 않지만.

진중권
전통적으로 공안탄압할 만한 상황은 아니죠. 학생운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노동운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상당 부분이 제도권화 됐잖아요. 진보세력들도 이른바 진보정당을 만들어서 의회정치 안으로 들어와 있는 상황 속에서 그걸 할 필요도 없고. 그동안 또 우리가 20년간 몇 개의 정권을 갖다가, 아마도 노태우 때부터 연성화가 되기 시작했을 건데, 노태우 정권, 김영삼 정권, 4개의 정권이 벌써 몇 년입니까? 20년이거든요. 20년 동안 싸워 온 이 성과를 완벽하게 되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시도한다면 아마 정권이 엎어질 겁니다, 그때는. 확신하고 엎어지죠. 그러니까 이제 그들이 생각한 방식은 바로 그런 거라는 거죠. 탄압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하고는 싶잖아요. 할 방식을 찾는 거죠. 그런 꼼수를 찾는 거죠. 아까 얘기했듯이 합법적이지만 부도덕하다. 쉽게 말하면 합법적이면서도 도덕적인 수단이 아니라 부도덕하면서 그 부도덕을 합법 속 내에서 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 같아요.

박래군
그렇다고 해서 없는 것까지 찾아내서.

진중권
그게 야쿠자 모델이에요. 걔들 특색이 그렇잖아요. 법적으로 걸리지 않는 건 모두 다 도덕적이다. 쉽게 말하면 야쿠자는 때리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야쿠자는 사업체에요. 온갖 못된 짓을 다 하는데 대부분 다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온갖 못된 짓을 다 하거든요.

청중
의견을 듣고 싶은데, 트위터나 페이스북 이런 소셜네트워크를 많이 사용하잖아요. 그것이 어떤 영향력 같은 게 있는 것 같고, 선생님 비롯해서 열심히 잘 활용하고 계신데. 그런 부분이 예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좀 더 가깝게는 블로그와 다른 인터넷 매체와의 차이점, 좀 더 나아가면 기존의 소통방식이나 전달방식과의 다른 점, 그런 것들이 제 개인적으로는 고민들을 갖고 있는데 선생님이 생각하고 있는 한계나 문제는 없을까? 문화평론가로서.

진중권
그거 뭐, 미디어론이거든요. 예를 들어 보자면 그런 논쟁이 있었을 거예요, 제가 기억하는 게. 고재열 씨하고 허지웅 씨가 논쟁을 했고 그때 김규항이 끼어들었고 제가 또 한마디 거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웃음) 그런 식이었어요. 트위터가 세상을 바꾼다인가? 고재열 씨가 아마 그렇게 썼던 모양이에요. 허지웅이라는 분이 시니컬하게 트위터가 뭐 세상을 바꾸냐, 세상을 바꾸는 건 매체가 아니다, 사람들의 운동이다, 이런 식으로 굉장히 진지하게 했고, 그 다음에 김규항이 한마디 거들었죠. 2가지 관점이 있어요. 하나는 뭐냐 하면 도구주의적 관점이 있습니다. 인터넷은 매체다, 매체는 매체에 불과하다, 도구에 불과하다, 수단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매체 자체가 아니라 그걸 통해서 어떤 얘기가 오가느냐.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트위터에 오가는 얘기가 뻔한 것 아니냐. 다 잡담들이고 이명박 욕이나 하고, 잘해야. 확산돼야 세상이 바뀌겠느냐고 얘기할 수 있다는 거죠. 미디어를 보는 도구주의적 관점입니다. 미디어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다, 도구에 불과하다. 소통의 창에 불과하다.
두 번째 관점은 미디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디어를 통해서 전달되는 메시지가 아니라 미디어 안에 구성되는 메시지다. 대표적으로 마셜이 얘기한 걸 겁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라는. 가장 중요한 건 트윗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 이 자체가 중요하다는 거죠, 굉장히 중요한 건. 저는 후자의 입장이 옳다고 봐요. 우리가 트위터를 사용한다는 것은 내 삶 속에 안하던 짓이 하나가 첨부되는 게 아니라 트윗이 깔아준 망 속에 편입이 된다는 거거든요. 타임라인이라는 것은 집합적인 의식이거든요. 의식의 흐름에 접속하는 것이고 완전히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고 내 삶을 다시 조직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본다는 거죠.
그 논쟁이 있고 나서 얼마 후에 터진 겁니다. 제일 먼저 튀니지에서 터졌죠. 에스엔에스(SNS) 혁명. 튀니지에서 시민혁명 터지고, 그게 바로 뭡니까? 이집트로 갔다가 리비아로 갔다가 지금 예멘까지 갔죠. 그래서 국왕 사퇴하고. 거기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게 에스엔에스거든요. 왜냐 하면 저들이 언론을 통제했기 때문에. 트위터가 세상을 바꾸네. 거긴 트위터가 아니라 페이스북. 사용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적어도 뭔가가 그걸 통해서라도 일단 정보가 유통됐다는 거예요. 재미있는 건 뭐냐 하면 아마 통치자는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트위터라는 거 뭐, 페이스북이라는 거 써. 도구에 불과하고 수단에 불과한 것, 너희들 삶에 없던 것 하나 더 들어오면 좋지 뭐.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들어와서 인간 삶의 방식 자체를 재조직화 한다는, 사고방식 자체를 재조직화 할 수 있다는 걸 못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그게 들어왔을 때 자기들의 전통적인 통치가 먹히지 않는 통용될 수 없는 어두운 지대를 만들어 버렸다는 거죠. 거기서 터져버린 거예요. 그 사람들이 그걸 알았다면 허용 안했겠죠. 북한처럼 중국처럼 검열을 하거나. 그들도 단순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단순히 도구의 하나에 불과한데 그 도구가 들어와서 그들의 통치 방식, 전통적인 통치 방식 자체를 무력화시켜버릴 정도까지 되었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요.
페이스북이 사적인 인적 망을 만드는 것으로 사용된다면 제가 보기에는 트위터는 훨씬 공적인 것 같아요. 쉽게 말하면 트위터는 친분을 맺을 수 있지만, 사실 프렌즈가 아니잖아요, 팔로어잖아요. 그게 뭘 말하느냐 하면 구독의 경험이에요. 명망가라든가 파워 트위터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알티하고, 파워 트위터들이 내 견해를 보고 그걸 알티 해주고. 이런 식의 그런 구조를 갖고 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치성을 갖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파워 불로거라는 말은 있지만 파워 트위터러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파워 페이스부커라는 말은 못 들어봤죠? 그게 아마 성격이 달라서. 오히려 사적인 용도로 페이스북은 맞는 것 같고, 트위터는 생각보다 쌍방향적 매체가 아니다, 수평화 매체가 아니다, 일종의 신문 구독하는 개념이 강하다, 개인들이 발행하는 개인 신문들을 내가 구독한다, 이런 개념이 강하다는 거죠. 트위터는 2가지 기능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종 맞팔 안해 주면 당신은 트위터를 모독하는 거다, 민주주의자가 안되는 거다고, 저는 무시해 버리거든요. 무시해버리기는 하는데. 그런 상태가 있는 거죠.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벤야민이 얘기했듯이 복제 매체라는 것은 사실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별이 있잖아요, 그 구별을 뒤섞어 버립니다. 사적인 것을 공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예컨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내가 옛날에 집에서 혼자 썼던 것이 인터넷 네트에 올라가잖아요, 몇 분 만에 공적 견해가 될 수 있어요. 이렇게 만들어 버리거든요. 그러니까 사전 견해를 공적 발언으로 추천받을 수 있는, 누구라도. 아주 진보적인 역할들이 있죠. 반면에 거꾸로 공적인 주제를 사적인 것으로 끌고 들어가 버리는 것도 있습니다. 박근혜, 중학교 때 사진 너무 예뻐, 짱이야, 그런 거 있잖아요. 사적인 측면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매체마다 좀 다를 것 같은데, 2000년대 초반인가 우리나라 활발한 문화가 인터넷이었어요, 게시판 문화였거든요. 확 죽어버린 게 뭐냐 하면 사람들이 게시판에서 어디로 들어갔느냐 하면 블로그로 갔어요. 사람들이 블로그로 들어가면서, 블로그는 공적인 공간이 아니라 사적인. 논객들이 자기 블로그로 후퇴를 해버렸어요. 가다가 다시 트위터가 등장하는 겁니다. 트위터가 아까 얘기했듯이 생각보다 사적 관계를 맺는 매체인줄 알았는데 실제로 사용해 보니 공적 매체에요. 그렇게 돼버린 거죠. 우파들이 항상 그랬잖아요. 좌파들이 떠나가 버린, 진보적인 세력들이 떠나버린 곳에서, 어디가나 인터넷 게시판들 걔네들이 다 장악했어요. (웃음) 우리가 떠난 공간에서 (웃음) 좀 있으면 걔들 트위터 시작할 거예요. (웃음) 문제가 뭐냐 하면 걔들이 왔을 대 우리는 더 진화된 어떤 것을 쓰고 있지 않을까. (웃음) 인터넷 들어가서 절망하지 마세요. 어떻게 보면 게시판 문화라는 건 다 지나간 문화잖아요. 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웃음) 재밌는 건 정치성하고 미디어의 진보성하고, 미디어 산업에서 진보성이나 정치성이 드러나요. 내가 보기엔 진보적인 사람은 미디어를 진보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고 얼리어답터적이고, 보수적인 사람들은 미디어 체험도 보수적이에요. 사용방식도 보수적이고. 그런 게 있어요. 재밌죠, 그런 건.

청중
전두환 정권 때 정부 주도의 경제가 시장주도 경제로, 그 당시에도 정부가 경제 시스템을 주도하려는 시도가 계속 있었는데 과도기였지 않나,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진중권
초기에는 무서웠죠. 깡패였거든요. 와 가지고 재벌을 해체시켜 버렸어요. 상상을 초월했죠. 지금 청와대의 누구에요, 청와대의 누가 삼성 때리잖아요. 삼성 어떻게 해보겠다고 했더니 난리가 나잖아요. 그때는 각하 말씀 한마디면. 헤쳐, 누구 줘, 없어져. 말하자면 창세기에요, 창세기. 완전히 폭압적이죠. 200명씩 죽이고 권좌에 오른 사람이 눈에 뵈는 게 있겠어요? 그렇게 했었죠, 처음에 초기에는. 실제로는 억압적이라는 건 국가주도 경제가 소위 자유주의화 되는, 신자유주의화 되는 거죠. 그런 건 전두환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과도기가 있었겠죠. 그런데 전두환은 삥 뜯는 겁니다. 돈 뜯어 가는. 그래서 5000억인가 7000억인가 챙겼잖아요. 노태우하고. 그 사람들 수준은 그거예요. 이걸 뭐 어떻게 해가지고 기업을 움직여서 기업을 국가의 뜻대로 움직여서 경제를 어떻게 발전시키는 이런 게 아니라니까요. 그러니까 조폭이에요. 말 좀 들어, 딱 그러면 5000억, 7000억 이런 식이에요. 약간 야쿠자 식이었죠. 그렇게 개입을 했지, 지금은 그게 아니잖아요. 삼성이 국가경제를 위해서 뭔가를 해주기를 원하는데 삼성의 방식이 있거든요. 우리는 연기금 갖고 너희를 한번 쳐 보겠다, 이런 식이죠. 차원이 다르다는 거죠.

청중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되게 개개인에 대한 감시가 더 용이해지는 그런 게 있잖아요. 정부가 감시를 하는 것을 떠나서 개개인 자체가 구글링을 한다든가, 어떤 사람의 신상을 턴다거나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런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진중권
나쁘게 생각하죠. (웃음) 제발 그만해라. 사실은 기술적으로 가능해요. 제가 볼 때 모든 건 기술적으로 가능합니다. 사람들이 가능한 못하게 할 방법은 없어요. 중요한 건 윤리입니다, 도덕이고. 누군가 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문제는 공개적으로 공공연히 하지는 못하게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는 건 뭐냐 하면 기술은 다 양면이 있거든요. 편의성이 있다는 말이죠. 예컨대 내가 감시를 당하고 있지만 그게 또 나름대로 그게 방범의 효과라든지. 여러분들 네비게이션 편하잖아요. 나도 지금 택시 타고 오면서 여기 주소 찍고. 내가 지금 추적당할 수 있는 가능성이잖아요. 양면이 다 있기 때문에. 저는 어느 한 면만 일방적으로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해요. 두 면이 다 있다는. 다만 한쪽만 강조해서 다른 쪽의 위험을 뭐랄까, 문제는 뭐냐 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가 우리의 삶을 사생활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 예를 들어가지고 그들이 원하는 것, 내가 했던 모든 일정을, 나도 까먹잖아요, 나보다 더 정확하게 구성할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택시 타면 찍히죠. 카드 쓰면 찍히죠. 버스 타면 씨씨티비(CCTV)가 있죠? 길바닥에 씨씨티비가 다 있더라고요. 이것만 나가면 내 삶을 완벽하게 라이브로 완벽하게 재구성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문제는 뭐냐 하면 그렇게 되면 거기에는 민주적 통제가 있어야 한다는. 그런 통제 시스템을 어떻게 만드느냐. 쉽게 말하면 우리가 어떤 필요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개인 신상의 정보는 권력에서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어프로치할 거라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막을 것인가라는 이런 부분이 있고, 공적 차원에서는. 사적 차원에서는 사실 우리가 해킹이든 온갖 방법을 써서 남의 신상정보를 캐내잖아요. 그걸 못하게 막아줘야 되거든요.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하는 짓이에요. 내가 딱 보니까 얘가 옛날에 결혼했대, 어머 정말이야, 댓글 붙여 주니까 그런 짓들을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생기잖아요. 그러니까 윤리가, 시민들 사이의 어떤 윤리가 있어야 한다는. 그러니까 두 개 다 있어야 합니다. 신상털기 이런 거 할 때 강력하게 비판하고 못하게 하고 시민사회의 윤리를 만드는 것,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까도 얘기했듯이 신상정보에 대한 권력의 접근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해야 되고. 이 토론도 그런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청중
상업감시 같은 경우에는 포스퀘어(foursquare) 같이 자기 정보를 흘리고 다니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 정보를 내놓고 다른 가치를 얻는 트레이드가 있으니까 가능해지는 것 같고, 점점 더 뭐라고 하기 어렵게 되는 것 같은데. 정권에 의한 권력에 의한 것 같은 경우는 말씀하셨듯이 이번 정권은 감시의 내재화와 자기 검열, 정권의 성격 때문에 그런 부분인데. 만약에 다음 정권에서 정보사회 특성에 맞게 권력에 대한 감시가 얘기되는데, 역감시에 대한 얘기가 되게 많은데 그런 것이 되려면 그냥 될 것 같지는 않고요 국민들의 어떤 집단적인 경험이 필요하다는, 어떤 게 있으면 그게 될까, 정권이 직접 자기가 투명성이 중요하다 이래서 하지 않는 한, 방법이 뭐가 있을까?

진중권
항상 위험이 있으면, 그렇잖아요, 비행기와 더불어서 추락도 함께 발명된 거라는 말이 있듯이. 위험이 있으면 그것은 터지거든요. 그런 자연스러운 계기가 있겠죠. 그 전에 암만 얘기해봤자 사람들이 뭘 알겠습니까? 어떤 면에서 원전이 지금 터져 놓으니까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지, 그렇지 않으면 와 닿지가 않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 사건을 인위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고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계기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런 계기가 있을 때 정권에서는 묻어버리려 할 텐데 묻어버리지 않고 살려내서 그 사회에서 이슈화하는데 성공하는, 그게 중요하죠. 사실 원전도 많이 가버렸잖아요. 좀 더 밀어붙여 가지고 원자력 정책에 대한 제고까지, 국민들 사이에서. 지금 강원도 도민들만 제고하고 있잖아요. (웃음)

박래군
감시와 억압의 내면화, 자기 검열 이런 부분들을 극복하는 게 아주 어려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인터넷에 대한 것을 기소하고, 벌금 내고 이러니까 굉장히 위축되어 있는데 이걸 극복해가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저항하자, 그런 부분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이 고민해야 할 텐데, 풀어야 할 과제일 것 같아요. 그런데 자꾸 잡혀가니까 뭐 말을 하면 할수록 표현의 자유는 위축되는 그런 효과를 노리는 건데 그걸 어떻게 극복해가야 할 것인지? 과연 좋은 정권이 들어서 좋은 정부가 들어서 정치세력화 해서 해결을 할 건가? 주어진 식의 어떤 것이라고 하면 또 다른 상황에서 또 다시 위축되고 그럴 텐데, 시민사회의 어떤 표현의 자유 이런 것들이 참 걱정스럽습니다.

진중권
프랑스혁명 당시에 당통이 했던 말이 있어요. 담대함을, 좀 더 담대함을, 항상 더 담대함을. 그래야 될 것 같아요.

박래군
자, 마지막 질문? 없나요? 예, 오늘 굉장히 일찍 끝났어요. 진중권 선생님 어제 잠을 못 주무시고 또 원고 쓰시고 굉장히 피곤하실 텐데 질의 응답까지 굉장히 재미있게 얘기해 주셨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박수)
다음 주 한주 건너뛰고요, 5월 12일 7시에 세 번째 강연회를 시작합니다. 상업적 감시의 문제점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연구하시는 최철웅 선생님 모시고 강연을 듣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 학생인권조례 서명 하신 것 있잖아요? 나가시면서 그것 앞에 놔 주시고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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