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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5/02
    [4월 21일] 한국 현대사와 감시 : 사찰과 정보정치 (한홍구) _영상
  2. 2011/04/27
    [4월 21일] 한국 현대사와 감시 : 사찰과 정보정치 (한홍구) _녹취록
  3. 2011/04/19
    [4월 21일] 한국 현대사와 감시 : 사찰과 정보정치 (한홍구) _강연요지문

[4월 21일] 한국 현대사와 감시 : 사찰과 정보정치 (한홍구) _영상

감시사회 대강연회 제1강(한홍구) 강연영상

□ 일시 : 2011년 4월 21일(목) 저녁 7시
□ 장소 : 여의도 이룸센터 교육실
□ 사회 : 박래군
□ 강사 : 한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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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 한국 현대사와 감시 : 사찰과 정보정치 (한홍구) _녹취록

감시사회 대강연회 제1강(한홍구) 녹취록

 

□ 일시 : 2011년 4월 21일(목) 저녁 7시

□ 장소 : 여의도 이룸센터 교육실

□ 사회 : 박래군

□ 강사 : 한홍구

 

박래군

오늘 감시사회 대강연회, 첫째 날 강연입니다. ‘올드 빅브라더에서 뉴 빅브라더로’라고 하는 전체 주제를 가지고 하는데, 오늘은 그 중에서 사찰과 정보정치를 주제로 한홍구 교수님 강연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강연 듣기 전에 몇 가지 안내말씀을 드릴게요. 오늘 행사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진보네트워크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함께하는시민행동과 같은 인권시민사회단체들이 공동주최하구요, 인권재단 사람에서 후원하고 있습니다.

연속강연회는 감시사회 담론을 한국사회에 제기하기 위해서 기획되었고요, 강연했던 내용들은 이후에 단행본으로 출판이 될 예정입니다. 그리고 매회 강연은 실시간 영상중계, 녹취를 하고 있는데요, 이제 오셨네요. 오늘은 녹화만 한다고 합니다. 중계나 녹화에 노출되고 싶지 않으신 분이 있으시면 주최 쪽에 말씀해 주십시오. 그런 분들 계시면 여기 영상 찍고 있는 분께 말씀을 전해 주시면 노출이 안 되도록 찍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감시사회 대강연회 홈페이지가 자료집을 보면 있어요. 자료집 앞을 보면 있는데, 홈페이지 주소가 bigbrother.jinbo.net에 가서 보시면 매 강연 사후 녹취록과 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열심히 타자치고 있잖아요, 그걸 녹취를 풀어서 곧바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늦어도 내일 모레까지는 올릴 수 있겠지요.

그리고 트위터를 이용해서 현장 중계를 비롯해서 강연회 내용을 널리 알려 주시는 것을 굉장히 환영 드리고요, 주변에 많이많이 알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시 문제가 중요한데 굉장히 첨예하고 기술적으로 심각한데 사실 우리사회에서 감시 문제에 대해서 어렵게만 생각하고 접근을 안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라고요.

오늘 자료집 나눠주는데 여러 가지 끼워서 드립니다. 사람 인권센터 주춧돌 모으는 홍보물, 아직 인권센터 주춧돌 가입하지 않으신 분, 취지에 동의하시는 분은 약정서 써 주시고요, 오늘 주시고 가시면 제일 좋고요. 진보넷이 우리 사회 정보감시 운동을 하는데 재정이 어렵다고 합니다. 후원회원 가입해 주시면 좋겠고요, 강사로 오신 한홍구 교수님도 평화박물관 운영하고 있는데 거기도 어려운가 봐요. 이따가 교수님께서 나눠주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강연은 1시간 30분 동안 하구요, 질의응답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질의응답은 직접 질의하셔도 좋고 쪽지를 나눠 드릴 텐데 쪽지에 적어주시면 저희가 모아서 한꺼번에 질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한 2시간 정도로 예정하는데 중간에 휴식시간 없이 그냥 죽 달려갈 겁니다. 괜찮겠죠? 예, 2시간 동안. 한홍구 교수님이 강의가 재미있나요? 본인 생각하시기에 어떠세요? 본인 생각하시기에.

 

한홍구

많이 졸리죠. (웃음)

 

박래군

한홍구 교수님이 이 분야에서는 굉장히 많은 실천적인 경험까지 가지고 계신 분이어서 아무 데서나 들을 수 없는 얘기를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알맹이들은 꼭꼭 챙겨서 들어서 오늘 여기 여의도 먼 데까지 오셔서 공부하시는데. 한홍구 교수님 소개해 드릴게요. (박수)

 

한홍구

자본주의니까 광고로 먼저 시작합니다. (평화박물관 리플렛 배포) 대강연회라고 해서 많이 갖고 왔는데요, 많이 남았습니다. 주변에 알려주셨으면 하구요.

방금 소개받은 한홍구입니다. 앉아서 해도 되겠죠? 박래군 선생님이 사회를 맡아 주셨는데, 박래군 선생이 어디 가서 요새 이렇게 소개를 하죠, 자기를. 로또보다 인권을. 인권활동가가 돌리니 저도 끼워서 돌리겠습니다. (웃음)

오늘 주제가 감시사회 대강연회인데, 옛날에는 중앙정보부, 안기부 그런데서 와서 감시하는 게 뭐랄까 힘들었다고 할까요, 몰래 해야 하니까. 지금은 어때요? 공공연하게 기록하지, 카메라 돌아가지, 녹음기 있지, 그걸 홈페이지에 올려준대요.

안기부는 지금 국정원은 와보지 않고도 알 수 있지요. 게다가 실시간 트위터 중계까지 하니까 현장 진행 상황이 어떤지 다 알고 있지요. 옛날에는 굉장히 힘들게 감시했는데 요새는 올드빅브라더에서 뉴빅브라더 보다는 자폭 시대로 가는 게 아닐까요? 자기 스스로 노출을 해 버리죠. 옛날하고는 많이 달라지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런 강의가 만들어진 게 이명박 정권 하에서 민간인 사찰 같은 것이 행해지고 거기에 대해서 뭐랄까요, 불쾌감, 불안감, 그리고 이게 다시 옛날로 돌아가느냐 그런 생각이 컸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사찰이 예전에는 추억이었는데 지금은 추억만이 아닌, 이게 다시 돌아옵니다. 엊그제 SBS에서 방송사고 났다 그러죠? 방송사고가 왕왕 나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 최대의 방송사고가 뭐였는지 기억나시는 분 계세요? 내 귀에 캔디가 아니고, MBC 뉴스데스크를 진행하고 있는데 누군가 주조종실로 뛰어 들어가서 앵커의 마이크에 다 대고 내 귀에 도청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내 귀에 도청장치가 되어 있습니다. 이게 한국의 감시사회를 상징하는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인권단체에 많이 그런 제보가 들어올 겁니다. 저는 국정원 과거사위에 있을 때 그런 메일을 몇 통 받았었는데요. 국정원이 나를 감시하고 있다, 도청하고 있다, 위협하고 있다, 나를 죽이려고 하고 있다, 심지어는 독극물을 음식에 주입하고 있다, 나는 이렇게 죽어가고 있다, 이런 메일이나 호소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죠. 인터넷에서 마음먹고 뒤져보면 상당히 많이 글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이 감시사회라는 게, 보면 어떤가요? 누가 누구를 감시해야 하죠? 원래. 원래 감시는 저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가 누구를 감시합니까? 시민이 정부를 감시해야죠. 시민이 권력을 감시해야죠. 왜? 권력은 속성이 무엇입니까? 가만히 놔두면 건방져져요. 가만 놔두면 방자해집니다. 그래서 원리 자체가 견제와 균형과 감시를 하게 되어 있죠. 누가 누구를 감시합니까? 국민이 권력을 감시합니다. 그런데 거꾸로 되어 있어요. 권력이 국민을 감시하죠. 우리나라 법 어디를 들여다봐도 권력이 일반 국민을 감시하게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일반 국민이 권력을 감시하게는 많이 되어 있죠. 그리고 그 권한을 위임을 해서 가령 실제 감사원이나 뭐 혹은 국회나 또는 감시와 견제 기능이라는 것이 국민의 위임을 받아서 하는 것이라고 봐야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현실사회에서는 걔네들이 우리를 감시하죠.

여러분은 어떠세요? 여러분 감시당하고 있죠. 오늘 CCTV에 몇 번 찍혔을까요?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인데, CCTV 카메라에 몇 번 비쳤을까요? 여기까지 오시는 동안. 모르죠. 몇 번이나 비쳤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범죄에 휘말렸다든가 뭐 그래서 경찰이 본격적으로 추적해 들어오면, 잘 모르겠어요, 몇 번이나 찍혔을지. 뭐 자가용을 타고 다니는 그것도 마찬가지죠. 길거리에서 차가 찍혔을 테니까. 지하철 타고 다니시는 분, 골목골목 다니시는 분, 많을 겁니다.

사실 이런 카메라 같은 게 들이 대면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긴장하고 경계하죠. 그런데 조금 지나면 다 잊어버려요. 다 잊어버리고. 가령 방송국에서 다큐 찍을 때 보면 일반인들 찍잖아요. 일반인들이 찍는데 배우처럼 연기하잖아요. 배우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그건 뭐에요? 그 사람들이 처음에는 카메라 돌리고 하면 어색해 했다가 조금 지나면 카메라가 있는 것 다 잊어버리고 행동을 하는 거지요.

자, 우리가 감시에 노출되어 있고, 우리도 어려서부터 감시체제의 일부분으로 들어가지 않았나 싶어요. 여러분 다 그 뭐 왕년에 반장 부반장 해보셨죠? 하다못해 분단장 했을 거고, 분단장 안했으면 주번은 했을 거고. 완장을 차본 경험이 있을 거예요. 우리가 어렸을 때 주번의 임무 중에 하나가 떠든 애, 떠든 사람 박래군, 이렇게 칠판에다가 쓰는, 숙제 안 해온 사람 박래군, 그렇게 쓰는, 그것도 일종의 감시라면 감시, 보고라면 보고, 적발이라면 적발, 통제라면 통제죠. 가장 낮은 수준의 그런 체제 속에 우리가 끼어서 일상화 되어 있었을 겁니다.

우리가 그런 속에서 감시에 대해 굉장히 내면화 되었다고 할까, 어려서부터 그 체제 속에 편입이 되어 있죠. 그리고 그 감시를 하는 사람들도, 당연히 감시를 하고 앉아 있어요. 우리가 감시를 잘 하기 위해서 또 사람들을 묶어 놓죠. 예컨대 연대 책임을 지게도 하고. 연대책임을 왜 집니까? 일일이 통제를, 한명 한명을 통제하기 어려울 때, 연대책임을 묻는 거죠. 예컨대 오가작통법. 조선시대에 아마 역사교과서에서 그런 것 배워 보셨죠? 인징, 족징. 세금을 매길 때 어떻게 해요. 동네에다 매겨 가지고 한 사람이 튀어버리면 이웃 사람들이 부담하게. 또는 친척들이 부담하게. 가족이나 친척이 부담하는 게 족징이고 이웃사람이 부담하는 게 인징이죠. 그럼 어떡해요? 저 놈이 도망갈 것 같으면 사람들이 지켜야죠. 왜냐하면 저 사람이 도망을 가버리면 그 부담이 나한테 떨어지죠. 국가는 어떻게? 그 부담을 공동체나 가족이나 지역공동체의 장이나 그 시스템에다가 맡겨 두고 그쪽을 쪼는 거죠.

지금은 어떻게 되죠? 역사가 많이, 발전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다 보니까 개개인으로 통제 단위가 바뀌어 나가는데. 그러면서 우리는 신고체제를 강하게 둡니다. 이상한 놈이 있으면 신고해요. 그게 국가가 늘 개인에게 요구하는 것이죠. 우리 교과서에는 그게 안 들어 있었죠. 우리가 어렸을 때 동화책이나 그런 데는 더러 나오기도 했죠. 논어에도 나오는 얘깁니다. 자식이 부모를 고발하는. 부모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 자식이 고발하고. 이거 우리도 사실은 교육을 받았어요. 부모가 간첩이면 고발, 신고해야 한다. 소련의 교과서에 그게 실려 있었다, 거기가 비인간적인 사회다 했지만, 우리도 현실에서 보면 불고지죄라는 게 있었죠. 국가보안법에 불고지죄라는 게 있었죠. 내가 우리 가족이나 친척, 아는 사람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범죄를 저질렀을 때 그걸 내가 신고를 안 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게 범죄가 됩니다. 북에서 옛날에 간첩을 많이 내려 보냈습니다. 60년대, 70년대. 진짜로 많이 내려 보냈어요. 많이 내려 보냈고, 또 내려오면 누굴 찾아 갔겠어요? 연고자를 많이 찾아갔겠지요. 실제 연고자를 찾아가는 일이 많이 있기는 했었습니다. 가족을 숨겨줬다고 해서 걸리죠.

불고지죄를 딱 만들고 난 다음에, 재미있다고 표현하면 안 되죠, 기가 막힌 게 뭐냐 하면, 4월 혁명이 만들어진 다음에 불고지죄가 만들어집니다. 민주당 정권 하에서. 자유당 때 만들어진 게 아니고 민주당 정권 하에서. 만들자마자 내려온 사람들이 참 얄궂다고나 할까, 누가 내려왔나 하면 당시 법무차관 동생이 내려왔습니다. 법무부 차관 동생이 간첩으로 내려왔어요. 형을 찾아갔더니 형이 신고했죠, 도망간 다음에. 또 하나는 한옥신이라고 유명한 공안검사가 있었습니다. 거기 같이 자란 이종사촌이 간첩으로 내려왔어요. 부산지검 정보부장을 했던. 그 때는 공안부장이란 말 대신 정보부장이라 그랬죠. 하룻밤 재워줬어요. 이 양반은 신고를 안했어요. 그런데 이종사촌이 딴 데서 잡혔습니다. 그리고 또 한 예는 오화섭 교수라고 연세대학의 원로 영문학자가 있어요. 그 아드님이 누군가 하면, 오세철 교수님 혹시 아시죠? 진보적인 활동 많이 하시고. 그 따님이 오혜령씨, 극작가로 60년대 70년대 아주 유명했던 분인데. 처남 매부 지간에 간첩으로 내려왔습니다. 내려와서 들어오는 것을, 아마 오세철 선생한테 고모부가 될 거에요, 들어오는데 호통을 쳐서 쫓아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건이 우리나라에서 불고지죄 1호가 된 거지요. 그러니까 이제 신고를 해야만 하는 그런 체제를 강요했었습니다.

80년대 대표적인 고문사건이었던 부천서 성고문 사건 아시죠? 그것도 발단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것도 신고에 의한 거예요. 누가? 통장인지 반장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그 사람들에게 국가가 계속 강요를 했어요. 수상한 사람이 나타나면 신고해라. 공단에서 수상한 사람이 누굽니까? 위장취업자. 위장취업자는 누구냐. 얼굴이 좀 하얗고 그리고 집에 안 붙어 있고, 몇 가지 특징들, 사람들이 자주 모이고, 그 다음에 뭔가 밤에 늦게까지. 노동자들은 와서 홱 쓰러져서 자요, 자는 게 일반적인데 밤에 늦게까지 책을 본다든가 뭐 이상한 짓을 한다든지. 그런 사람이 나타나면 신고해라, 그래서 신고했죠. 신고해서 잡아보니까 학생이더라 이거에요. 그걸 취조하는 과정에서 그 몹쓸 짓을 한 거죠. 신고체제에 의해서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사실 누구나가 들여다보고 있는데, 그런데, 여러분 어떠세요? 감시체제 중에서 어떤 감시가 제일 효과가 있을까요? 1번, 몰래하는 감시. 2번, 공개적으로 하는 감시. 3번, 그러려니 처음에는 의식하다가 이제 의식되지 못하는 감시. 이렇게 카메라가 돌아가는 걸 잊어버리고 계속 얘기하듯이. 자, 결국은 제일 중요한 게 내면화시키는 거죠. 감시당하는 사람이 위축되게. MB에 대해 욕하려고 하다가도 카메라 하고 눈이 딱 마주치면 MB라고 얘기하려다가 MB씨, MB님 하고 얘기하게 되는.

가령 이런 일도 있죠. 법관들 중에 조금 안기부가 좋아하지 않을만한 판결을 내립니다. 그럴 수 있죠. 가령 말도 안 되는 사건을 갖고 즉심에다 회부를 시켰어요. 데모하다가 걸렸는데, 그럼 즉심 회부되면 판사 재량으로 석방시킬 수도 있고 최대 29일까지 가둘 수 있죠. 뭐 별일도 아닌 걸로 데려왔으니까 판사가 보기에는 그저 하루 이틀 재우고 내보내면 충분할 것 같은데 안기부에서는 구류 29일을 요구하고. 그럴 때 판사가 그냥 석방을 훈방을 하든지, 너 그러지마 하면서 훈방을 하든지, 하루 이틀 재우고 풀어줬다가 안기부가 몹시 기분이 나쁘죠. 그럴 때 안기부가 어떻게 해요? 법원 수위한테 가서 아무개 선생님 댁이 어디시죠 하고 묻는 거야. 그러면 어떻게 해요. 수위가 서슬 퍼런 안기부에서 물으니까 어쩌고저쩌고 얘기해주고, 나중에 판사 지나갈 때, 아이고 판사님 하고 얘기해 준다 말이에요. 그게 어떤 메커니즘일까요? 천하의 안기부가 판사의 출신지나 집을 몰라서 그걸 수위한테 물었겠습니까? 그건 뭐냐 하면 우리가 기분 나쁘다 하는 것을 그렇게 표시한 거예요. 당신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알아서 해.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리고 실제로 안기부가 옛날에 판사를 함부로 못 건드렸습니다. 판사가 무지 센 거거든요. 실제로는 함부로 못 건드렸어요. 정말 사법부 얘기가 되겠습니다만, 사법부 우리가 생각할 때 판사가 판결 제대로 못하면 정말 나쁜 짓이죠. 박정희 전두환 시절 통 털어서 현직 법관이 안기부에 잡혀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안기부에 끌려간 적은. 안기부가 굉장히 불쾌했을 때 사표를 내자마자 잡아간 경우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직 법관을 잡아간 적은 없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감시체제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북은 공산국가이고 이북은 공산국가 중에서도 가장 악랄하게 주민들을 감시하고 있죠.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배웠죠. 굉장히 철저하게 감시할 겁니다. 왜? 불안하니까. 자신감 있는 사회는 감시를 잘 안하죠. 그런데 이북은 어때요? 굉장히 체제 유지가 불안할 거 아니에요? 게다가 소련 무너졌지, 동구 무너졌지, 중국은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는 자본주의 국가가 되어 버렸죠. 아주 불안하죠. 탈북자 늘어나지, 대북전단 날아가지, 감시 많이 할 겁니다. 그런데 어떠세요? 남쪽과 북쪽이 누가 더 감시를 잘할까요? 감시에도 국력의 차이가 있습니다. 비교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더 잘할까요, 라고 묻는 순간 여러분은 아셨을 거예요. 남쪽이 더 잘하는구나. 우리가 어렸을 때부터 시험에 단련되어 있죠.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얼마나 잘할까요? 남쪽이 얼마나 더 국민들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을까요? 가령 이산가족 찾기 할 때 보면 남북이 얼마나 자기 국민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가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한 200명 정도 명단을 교환하죠. 정말 깜짝 놀랐어요. 200명 정도 명단을 교환했는데 한국은 오전 10시나 11시에 명단을 받았다 하면, 그게 그날 저녁 뉴스에, 8시 뉴스, 9시 뉴스쯤 되면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 명단이 뜹니다. 북에서 누굴 찾는데 어디 사는 누구누구. 하루가 안 걸리죠. 하루가 안 걸리는데 90% 이상을 찾습니다. 95%. 이북은 우리가 명단을 넘기면 언제 오느냐? 한 석 달 걸려요. 석 달 걸려서 60 내지 70퍼센트쯤 찾아서 와요. 반쯤. 이북 관료들은 그걸 열심히 안 찾았겠어요? 국가가 개인을 파악하고 있는 그 능력이 비교가 안 되는 겁니다. 감시사회가 갖고 있는, 즉 우리가 갖고 있는 전산화, 정보화 그리고 이번 강연회의 큰 주제인 주민등록. 그걸로 볼 때 우리는 완벽하게 일련번호를 부여 받았죠, 국가로부터. 우리가 국가로부터 받은 가장 큰 선물일 거예요. 평생 가도 바뀌지 않는 것, 이거 주민등록번호입니다. 이름은 바꿀 수 있어요. 법원에 개명허가 받으면. 근데 주민등록번호는 안 바뀌어요. 가령 예컨대 우리 감시사회에서 인터넷 쓸 때, 저도 게을러서 잘 안 바꿉니다만, 비밀번호 바꾸세요. 이번에 농협, 7년 동안 번호 안 바꾸고 1 네 개, 0000으로 했다가 엊그제 신문에 났지요. 주민등록번호는 어때요? 태어나는 순간부터 언제까지 가요? 평생 갑니다. 절대로 안 바뀌죠. 그걸로 국가가 개인을 파악하고 있죠.

빅브라더? 옛날에 빅브라더 바빴어요. 도청하려면 어떻게 했어요? 귀를 대요. 진짜로 옆방에서. 그러다가 녹음기가 나와서 얼마나 좋았어요? 녹음기가 나오고 통신기가 나오니까. 세상 편해지는구나. 도청을 누가 했습니까? 왜 요정정치 했어요? 요정에서 하는 거죠. 거기 아가씨들이 듣고 마담이 듣고 그거 옮겨 주고. 그러던 시절에서부터 지금은 어떻게 됐어요? 이제 전기장치에 의해서, 도청기 없이도 도청하는 기술이 있다잖아요. 유리창에다가 전파 쏴가지고. 별의별 기술들이 발전해서. 또 그런 것 아니어도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파악이 가능해지죠. 가령 예컨대 우리 핸드폰, 카드, 그리고 가령 ‘알라딘’이나 ‘예스24’에서 책 많이 사보시죠? 서평까지 올리시죠? 옛날에 중앙정보부, 안기부에서 제일 궁금했던 게 뭡니까? 저 자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런데 이건 뭐예요? 무슨 책을 샀는지 쫙 뽑아보면 그 사람의 성향을 알 수 있죠. 예컨대 미국에서 중동 문제 관심 있는 놈들, 중동에 우호적으로 그런 책만 사보는 사람들 쭉 뽑아보면 잠재적 테러리스트죠. 지금 우리의 성향을 국가가 마음만 먹으면 들여다 볼 수 있죠. 그리고 우리가 서평 블로그까지 쓰잖아요. 이메일도 쓰고, 이메일이 남아 있죠. 옛날에는 어땠어요? 내가 박래군 씨를 만나서 소곤소곤 밀담을 나누고. 증거로 안 남죠. 지금은 세상이 많이 달라졌어요. 핸드폰 통화기록을 뽑고 위치정보까지 하면 어떻게 돼요? 활동반경이 다 나오죠. 신용카드 분석해보면 어때요? 이놈은 사흘에 한번은 고기를 먹어야 하는 놈이구나. 이놈은 저녁때 술을 먹을 때는, 지가 돈 낼 때는 횟집만 가는구나. 그리고 메뉴까지 보이는 그런 데로 들어가면 취향까지 알 수 있죠. 영화 본 것도 다 나오죠. 이 사람은 의류는 중저가 의류를 사 입는구나. 이 친구는 옷을 죽어라 하고 안 사는구나. 카드 보면 다 나오죠. 페이스북 같은 것은 정보가 어디로 가요? 국가만이 아니라 개인기업이 그걸 파악할 수 있죠. 정보환경 같은 게 어마어마하게 달라지죠. 그걸 누가 해요? 자발적으로 제공해요. 상당히, 전에는 감시해야 알 수 있던 것들을 개인이 차곡차곡 모아놓고 정리하고 있는 그런 세상으로 바뀌어 가고 있어요.

오늘 주제인 주민등록증 얘기를 조금 해보죠. 옛날에는 국가가, 중앙권력이 약했습니다. 중앙권력이 약해서 지방을 통제를 잘 못했죠. 그래서 어떻게 해요? 지방하고 중앙권력이 타협을 한다고나 할까, 잘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까지 그런 유제가 남아 있죠. 중앙에서 지방에다가 관리를 몇 명 파견합니까? 군, 현, 구, 목. 구목군현에 파견하는 사람이 중앙에서 파견하는 사람이 한 명 내지는 두 명이죠. 군현에는 한명 파견하는 거고 구에는 도사가 큰 데는 파견되기는 했지만, 달랑 두 명이죠. 군의 실질적인 행정은 누가 해요? 이방, 호방, 예방하는 육방 관속들이 하죠? 우리가 사극을 좀 이상한 사극들만 봤어요. 이방 하면 뭐해요? 좀 간사하게, 팔 요렇게 들고, 사또가 저놈을 매우 쳐라하면, 매우 치랍신다, 하는 하찮아 보이는 인간으로 그렇게 되어 있지만. 여러분 강화도에 가시게 되면,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복원해 놨습니다. 복원이죠. 원래 있었던 건물로 강화 유수부가 있고 유수의 집무실과 이방청이 남아 있어요. 어디가 더 큰지 아십니까? 이방청이 더 커요. 이방의 권한이 막강했던 거죠. 지역의 토호로 불렸으니까. 또 재밌는 게 뭐냐 하면, 이방은 비정규직이 아닙니다. 풀타임 공무원이에요. 그런데 월급이 없어요. 사또는 월급이 나오죠. 이방은 월급이 없어요. 알아서 하는 거죠. 그건 뭐에요? 이방이 중앙권력의 통제 바깥이라는 얘기죠. 월급을 주니까 통제하는 겁니다. 이건 뭐에요? 지역의 토호가 갖고 있는 권력이 중앙하고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는 거죠. 국가가 어떻게 감시해요? 그 밑에까지는 파고들지 않는 거죠. 이방이나 지방 토호들이 알아서 감시를 하고. 그건 뭐에요? 중앙국가 권력의 통제가 밑에까지 들어가지 못했다는 얘깁니다. 개인한테까지는 가지 못했던 거죠.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호주제가 되죠. 지방의 권력자들을 주니어 파트너로 일본 제국주의가 그대로 그들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인정을 해줬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옛날 조선시대만큼 파트너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호주제가 만들어지면서 국가가 누굴 단위로 해서 파악했습니까? 호를 단위로 파악합니다. 그만큼 국가의 침투력이 늘어났다는, 더 깊이 들어갔다는 얘기죠. 일제 말기가 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런 얘기 들으셨죠? 어렸을 때 할머니한테. 일제 순사나 면서기가 와서 놋그릇 뺏어갔다, 그걸로 뭐했습니까? 무기 만들고 그랬죠. 일본 제국주의의 국가권력이 어디가지 침탈하는가? 부엌까지 안방까지 침탈한 거죠. 그러다가 이제 해방 후가 되면 어떻게 됩니까? 이제 개개인들을 상대로 하게 되는 거죠. 국가의 행정능력이 그만큼 커지는 거예요.

일제시대에도 호적제도가 있었습니다. 개개인의 주거를 파악하는 게 언제쯤 되냐 하면, 42년도에 와서. 일본은 기본적으로 호를 단위로 해서 통치를 합니다. 가령 세금을 매길 때 어때요? 개인한테서 소득세를 걷는 게 아니라 농사짓는 사람들한테서, 지주한테서 세금을 걷는 게 편하겠어요? 소작농한테서 한명 한명한테서 세금을 걷는 것이 편하겠어요? 이게 어느 게 편할까요? 지주는 딱딱 계산해서 그 땅에서 소출 얼마, 세율 얼마 지주한테서 그걸 걷고, 지주는 그걸 걷기 위해서 소작농을 쥐어짜야겠지요. 그러니까 국가는 뭐해요? 국가는 지주가 소작농을 쥐어짜는 것을 적당한 선에서, 때려죽이지만 않으면 용인해 주죠. 그렇게 해주면 됐죠. 그러다가 지주를 없애고 농지개혁을 하면서 지주가 없어지고 국가가 직접 개별 농민들을 파악하기 시작한 거죠. 행정이론 측면에서 보면 토지개혁, 농지개혁 그 의미를 여러 가지로 볼 수 있지만, 국가의 행정 능력이 어느 단위로 침투해 들어가느냐 면에서 본다면 국가가 지주 대신에 개인을 파악한다, 그런 측면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일제는 42년을 조선기류령이라는, 기류계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여관에 가면 쓰고 옛날에 더러 그랬었는데. 왜 그 제도를 만들었냐 하면 조선인들을 징병으로 일본 군대에 끌고 나가려 했습니다. 일본 군대에 끌고 나가려니까 개인을 파악해야죠. 특히 남성을. 그래서 조선 기류령이 만들어지는 게 42년이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어땠습니까? 그 이전까지는 호를 중심으로 파악했던 거죠. 일제가 조선인들을 상대로 징병제를 실시하면서 또 생긴 게 또 뭐가 있습니까? 징병을 하려고 하면서 생긴 게 국민학교가 생겼습니다. 일제가 왜 조선사람을 교육시켰겠어요? 군대 끌고 나가야 하니까. 군대 끌고 나가는데, 여러분 어떠세요? 국민학교 처음 들어가서 했던 게 뭡니까? 운동장에서 앞으로나란히부터 했었죠. 제식 훈련한 거죠. 국민학교 들어가서부터 조직의 쓴맛을 보기 시작하는 거죠. 조직의 쓴맛을 보면서 뭘 배웁니까? 규율을 배우죠. 국민학교를 안 나오면 뭐해요. 일제시대에 국민학교를 안다닌 조선 청년을 군대에 끌고 갔다, 이 친구는 단체 생활이란 걸 해본 적 없죠. 규율이란 걸 해본 적 없죠. 시간개념이란 걸 가져본 적 없죠. 옛날 전통적인 시계, 생체시계에 의존했다, 배꼽시계. 그런데 군대는 뭐에요? 8시 38분 25초를 디데이(D-day) 에이치아워(H-hour)로 해서 공격개시. 그러니까 시간개념이 들어가야 되는 것이고 그런 것들을 어디서 주입합니까? 그게 학교가 필요했습니다. 국민학교가 그 기능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일제가 조선인들을 징병을 할 목적으로 국민학교를 널리 만들었죠. 우리나라 학교의 기원이 그렇게 군대식으로, 군대식 통제와 감시 체계가 태생에서부터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거죠. 하여튼 일제 말기에 개인을 파악하는, 징병제를 염두에 두고, 그렇게 되니까, 세금 뿐 아니라 군대문제까지 겹치게 되니까, 국가가 개인을 파악해야 하는 그런 필요성이 점점 더 증대했던 것이죠.

그리고 막상 해방되고 전쟁이 터졌습니다. 감시를 했던 것 중에 제일 많이 했던 게 뭘 감시했습니까? 좌익을 감시했죠. 해방 후에 좌익이 많았습니다. 많을 수밖에 없었죠. 왜 많을 수밖에 없었을까요? 해방 되면 세상이 좋아질 줄 알았는데, 세상이 좋아졌나요? 농민들 입장에서 세상이 좋아졌나요? 해방 되면 당연히 친일파가 쫓겨날 줄 알았는데, 악독하게 굴던 일본순사들을 때려죽이지는 못해도 그 순사들이 벌벌 떨며 싹싹 비는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어떻게 됐어요? 쉽게 얘기해서 파출소장 하던 놈이 경찰서장이 됐죠. 파출소 말석이 파출소장이 됐죠. 왜? 높은 자리에 있던 일본 놈들이 다 출세하니까 농민들 입장에서는 어때요? 눈이 돌죠. 토지개혁, 북한에서는 했는데 남쪽에서는 계속해서 지주제 하면서, 지주제 할 뿐만 아니라 쌀 공출까지 계속 해가니까 눈이 돌 수밖에 없었죠. 그래서 저항을 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돼요? 그게 좌익이 된 거죠. 그런데 세상이 바뀌어 버리니까, 남쪽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서고 대한민국의 경찰력 행정력으로 쫙 찍어 누르니까 어떻게 됩니까? 좌파는 북쪽으로 가버리고 탄압을 하고 하니까 여기 있었던 일반 민중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보도연맹에 가입했죠. 보도연맹이란 게 뭡니까? 여러분 <태극기 휘날리며> 보셨죠? 거기서 이윤주가 왜 죽었죠? 이윤주가 서명을 했던 게 그게 보도연맹이었습니다. 좌익을 했던 사람들이 나 이제 더 이상 좌익 아니야, 대한민국에 충성할거야, 나는 이제 대한민국의 충실한 국민이 될 것을 맹세합니다, 서약을 하는 거기에 사인을 했던 것이 보도연맹입니다. 그렇게 보도연맹 사인 받아서 뭐했습니까? 감시, 통제, 동원을 위한 수단이었죠. 그런데 그 끝이 어땠습니까? 우리나라에서 사찰의 끝,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중요한 경험이죠. 가장 악몽이었습니다. 보도연맹 수십만 명을 학살했던 것이 그 명단 갖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찰과 감시를 위한. 사실 그건 국가라기보다는 깡패조직이에요. 제대로 민주주의적 원리 원칙이 통용되지 않고 감시의 영역을 두고 자기가 통제하려는 대상을 죽이고 싶어 하는, 우아한 말로는 배제하고 싶어 하는, 국가체계에서 배제하고 싶어 하는 그런 자들이 통제받지 않는 권력을 행사할 때 감시의 끝은 뭐였어요? 우리의 경험으로 현대사의 경험에서 그것은 학살이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감시와 통제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저항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해방 직후에 주민등록증을, 뭐 미군정도 만들려고 그랬죠, 등급표 같은 것도 만들었는데, 이게 본격적으로 만들어진 게, 양민증이란 게 만들어졌습니다. 이름이 재밌어요. 양민증. 그 양자가 무슨 양자입니까? 무슨 양? 선량하다, 좋을 양이라고 하는데 착하다는 뜻이죠, 착할 양. 양민이 있으면 뭐가 있어요? 양민이 아닌 사람은 뭐에요? 불량민이지. 사람을 나누는 겁니다. 양민증이라는 말이 기가 막히는 말이에요. 사실은 국가가 써서는 안 될 말이죠. 국민을 양민, 불량민으로 나누는 법이 어딨어요? 거기서 불량민은 누구에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신분증이 만들어지는데 처음 등장한 것이 양민증. 양민증보다 더 위에 있는 신분증이 있어요. 군인, 경찰, 군속, 이들은 별도의 신분증이 있죠. 공무원. 이런 별도의 신분증은 없지만 대한민국의 편이 사람, 확실한 사람을 양민으로 만들었어요. 그럼 양민증을 받지 못한 사람은 누구에요? 수배 받아서 지하활동을 하는 좌익이야 말할 것도 없거니와, 그런 사람을 가족으로 둔 사람, 가족 중에 좌익이 있는 사람, 산에 들어간 사람. 그건 뭐에요? 불량민이라고. 당시 말로는 뭐에요? ‘통비분자’라고 그랬습니다. 공비하고 내통했다는 뜻이죠. 그리고 그 당시에 제일 중요한 정책이 뭐였느냐 하면, 비민분류에요. 그래서 한자를 안 쓰니까 양자도 생각이 안 나네요. 우리가 양민학살이라는 말을 많이 썼죠. 거창양민학살. 양민 죽이면 안 되죠. 양민 죽이면 돼요, 안돼요? 안 되죠. 말할 것도 없이 안 되죠. 다시 한 번 물어봅시다. 양민 죽이면 안 돼요, 그럼 불량민은 죽이면 돼요? 불량민은 죽여도 돼요? 아니죠. 불량민도 죽이면 안 되죠. 사람을 어떻게 죽입니까? 그런데 이 양민증이란게 뭐에요? 양민증을 안 가진 사람은 대한민국 사회에서, 한국전쟁 전후한 시기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뭐에요? 목숨을 걸어야 하는 거죠. 죽을 수도 있는 거죠. 양민학살이란게 뭐에요? 양민이냐 불량민이냐를 나누는 거죠. 뭐로? 손가락으로. 양민증이 있는 사람은 확실하게 빠지겠지만. 양민증이 없다고 다 죽이지는 않았겠죠. 양민증이 없는 사람을 어떤 기막힌 권능을 가진 사람이 손가락을 쓰는 거죠. 일루가, 너는 일루가, 이런 까딱하는 것에 의해서 목숨이 왔다 갔다 한 거죠. 거기서 양민증이란 게 얼마나 거기서 안전보장증이 된 겁니까. 이때 막강한 사람이, 아 이 사람은 아니야, 하고 빼줄 수 있는 사람은 뭐에요? 어마어마한 권력이죠. 한국의 교회가 팽창하게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목사님이, 이 사람은 빨갱이 아닌 좋은 사람, 그렇게 해주는 거죠. 아주 중요하죠.

그래서 그걸 받아야만, 그런 걸 받아야만, 양민증 같은 것이 있어야만 우선 죽지 않을 수 있고, 배급을 받을 수 있고, 통행을 할 수 있죠. 그걸 받아 내는 게 절체절명의 목표였습니다. 이런 제도를 실시했었던 게 만주국이 그랬어요. 만주국이 항일 빨치산이 많았잖아요. 그런데 박정희가 나중에 주민등록제도를 만주국을 모델로 만들었어요. 주민등록뿐만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를 많이 했어요. 박정희가 청년기를 만주에서 보냈잖아요. 제가 국민학교 66학번입니다. 국민학교 66년도에 들어갔어요. 제가 3학년 올라갈 때 뭐가 터졌냐? 김신조가 내려왔어요. 청와대 습격사건이었죠. 무장공작원들이 와서 청와대 코앞까지 왔죠. 청와대 뒷산에 최규식 경무관 동상이 있죠? 거기까지 정말 전혀 제어 받지 않고 거기까지 왔습니다. 거기서 청와대까지 특수훈련 받은 사람들 뛰어가면 5분 조금 더 걸립니다. 박정희 진짜 죽을 뻔 했죠. 박정히 ‘헷가닥’ 돌아서 어떻게 됩니까? 한국사회에서 어마어마한 병영국가화가 이루어지죠. 병역국가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제가 온몸으로 겪으며 자라온 셈이죠.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때는 그냥 한 학년이 올라가면 세상이 이렇게 험해지는구나, 학교생활이 이렇게 빡세지는구나. (웃음) 그렇게 생각했는데 나중에 인제 현대사 공부하면서 보니까. 그때 했었던 일들, 그때 했었던 일들을 딱 보니까 제가 항일 빨치산 공부하면서 만주 역사를 공부하다가 기절해버렸어요. 학교 상황을 묘사해 놨는데, 내가 딱 겪은 거예요. 내가 4학년 5학년 때 그대로 겪은 게 1930년대 후반의 만주국의 국민학교였습니다. 애국조례하고, 국민교육헌장 낭독하고, 교장선생님의 훈시.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하면, 끊임없이 이어지는. 옥동자가 풍자했었던 교장선생님의 훈시와 신체검사, 위생검사, 쥐잡기, 혼분식 검사, 채변, 기생충 규제, 조기청소, 국기게양, 강하, 나중에 인제 좀 더 나이 들고 난 다음에. 그 모든 학교생활 일체가 보니까 만주국에 그대로 서술되어 있더라고요. 시간적으로 치면 거의 40년 가까이, 35년 정도의 차이가 나는데 내가 겪은 생활이 거의 그대로여서 정말 놀랬었습니다. 그 만주국에 국민수장이라는게 있었어요. 우리가 갖고 있는 주민등록제도와 가장 가까운. 이건 무슨 얘깁니까? 주민등록증 제도는 지구상에 없는 제도에요. 이미 사라진 만주국 같은 나라에만 있었죠. 국민에게 일련 고유번호를 부여하는 제도입니다. 물론 미국에 가도 소셜 시큐리티(Social Security)증 보면 넘버 있고 운전면허증에 넘버 다 있죠. 그런데 그걸 하나로 통합 관리해서 국가가 부여해주는 건 없어요. 개그콘서트, 없어졌지만, 제가 아주 재밌게 봤던 코너에 ‘나를 술푸게 하는 세상’이라고 있었죠. 여러분 보셨습니까? 그거 아주 재미있는 프로였어요. 우리가 정말로 우리가 그 말을 외쳐야죠. 우리는 너무 케네디의 후예야. 케네디는 뭐라고 했습니까?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줬나 생각하기 전에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 보자. 케네디식 아닙니까. 그런데 거기서 박선광 선수는 뭐라고 외칩니까?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게 뭐있어, 라고 얘기하죠. 그런데 국가가 해준 게 있어요. 대한민국 국가가 여러분에게 많은 걸 해줬어요. 무엇을 해줬느냐? 여러분에게 출생의 의미를 부여해줬죠. 우리는 어떻게 태어났어?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갖고 태어났죠. 부모님이 사랑해서 태어난 것 아닙니다.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갖고 태어났어요. 그리고 그 사명을 잘하나 못하나 보기 위해서 국가가 여러분에게 일련번호를 주셨죠. 생년월일 앞부분에 있고, 일련번호를 주셨죠. 그것만 갖고 척 보면 굉장히 많은 걸 알 수 있죠. 나이도 알 수 있고 성별도 알 수 있고 출신지역도 알 수 있고, 동네까지 알 수 있죠. 그 번호를 잘 아는 사람은, 2063718 하면 이게 무슨 동네에서 어디쯤에서 태어났구나. 제 주민등록번호 보면, 제가 사직동 출신인데, 행정구역 잘 아는 사람은 척 보면, 사직동에서 태어나셨군요, 그래요. 저는 깜짝 놀랐죠. 주민등록번호가 어떻게 편성되는지 몰랐으니까. 그러니까 자기 생년월일 딱 들어가 있죠, 성별 들어가 있죠. 출신지역이 동 단위까지 나와요. 그것만 있어도 어마어마한 정보죠. 그리고 거기다가 주민등록번호에는 없지만 주민등록표에 보면 들어있는 정보가 백몇십 가지? 국가가 통합관리하는 게 그 중에서 절반 이상을 관리한다고 하는데, 어마어마한 정보를 국가가 갖고 있는데, 그 정보를 언제 만들었느냐, 60년대 후반에 이제 본격적으로 만들었죠. 그런 꿈이 있었죠. 꿈이 있었는데 국가가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70년쯤이던가, 그 능력이 생겨요.

한국전쟁 때 보면, 50년대 60년대 보면 병역기피자가 무지 많았습니다. 얼마 전에 국회부의장 했었던 그 양반은 그냥 탈영해서 제대를 해버렸지요. 그래도 국회의원까지 잘했어. 나중에 문제가 됐지만 우물쭈물하면서 넘어갔어요. 병역기피자를 잡으면요, 자진신고 기간에 하면, 얼마쯤이나 나오나 하면, 5년, 10년마다 한번 씩 하죠, 그 숫자가 병역기피자 숫자가 천 명 이천 명이 아니라 십만 명 단위였어요. 그건 뭐에요? 국가가 그걸 파악을 못했다는 말이에요. 도망을 가든가 어디든지 숨어서 기피를 하고 넘어갈 수 있었어요. 자기가 관직에 진출하려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안 걸리고 넘어갈 수 있었어요. 국가가 개인을 파악을 제대로 못했어요. 한국전쟁 때 어땠습니까? 북에서 넘어온 사람 호적이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없어. 군대에 끌려갈 나이인데 딱 봐서, 나 실제는 스무 살인데, 보시오 내 얼굴 보시오, 서른두 살이오. 박래군 선수 그러면 대한민국 군대 빠지는 거죠. 동안은 스무 살인데 한창 전쟁인데 저는 열다섯 살인데요, 하면 5년 동안 군대 또 안가요. 국가가 파악할 수 없잖아요. 나는 북에서 내려왔소. 호적 2개 가진 사람 많았습니다. 호적 2개 갖고 뭐해요? 결혼 두 번 할 수 있고 이중생활 할 수 있고, 여러 가지죠. 하나는 범죄, 하나는 착한. 착한 호적 나쁜 호적 가질 수 있고. 본마누라가 아는 호적과 작은마누라가 아는 호적이 다를 수도 있고. 그리고 남쪽 출신이었다고 하더라도 625때 폭격 맞아서 면사무소가 불탔다, 호적 없잖아요? 국가가 호적을 복구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리죠. 그런데 어때요? 53년 이후부터는 대개 국가가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겠죠. 백퍼센트는 아니지만 국가가 웬만큼 다 파악을 했을 거예요. 동사무소 면사무소가 특별히 불났다 그런 것 이외에 국가가 거의 대부분을 파악할 수 있었어요. 70년을 고비로 해서 전산화가 이루어지죠. 68년에 독한 마음을 품고 박정희가 병역국가로 들어가죠. 국민들에 대한 통제가 기가 막히게 이루어지죠. 차이가 어디서 당장 나타나는가 하면요, 주민등록체제 그런 체제가 완비되는 시점하고, 68년에 주민등록 실시하구요, 그 무렵부터 된 것이 행정이 전산화되기 시작합니다. 아주 초보적이지만 행정이 전산화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국가가 개인을 완벽하게 파악하게 됩니다. 박정희가 72년에 유신쿠데타를 하죠. 그래 놓고 난 다음에 어떤 일이 생기냐 하면, 그때부터 국가가 개인을 완벽하게 파악합니다. 그전까지는 40년대에 북에서 내려왔다, 호적 없다 그러면 그 파악이 힘들었는데 이제부터는 병역기피자가 없어진 거죠. 박정희의 목표가 뭐냐 하면, 군대 갔다 오신 분들 기억하실 겁니다, 오늘 집합, 한명도 열외 없다. 행정반 상황반 1명 빼놓고는 한명도 열외 없이 집합. 박정희가 그 짓을 했습니다. 전 국민을 단 한명도 열외 없이. 박정희의 목표가 뭐였냐 하면 병역기피 0%를 목표로 했습니다. 실제 그랬습니다. 우리나라에 집안의 말 못할 불치병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죠. 재벌집 아들들, 언론사 사주들, 국회의원들, 그 집안을 보면 병역기피율이 무지 높아요. 말 못할 병이 있는 불쌍한 집안입니다. 그것도 이제 개인 프라이버시니까 깊이 파고 들어가면 안돼요. 파고 들어가면 그게 나쁜 놈들이야. 그런데 박정희 때는 그것 안 봐줬어요. 재벌집, 국회의원집, 장관집, 언론사 사주 할 것 없이 다 군대에 일단 보냈습니다. 적어도 그랬습니다. 일단 군대 들어가서 뒤로 빠지고 편한 데로 빠지고 의가사 제대하거나 의병제대하거나 그런 건 적당히 눈을 감아줬는데 일단 군대는 가야했습니다. 박정희식 평등주의였죠, 박정희식. 그리고 위에서부터 그렇게 조지면서 바닥까지 어떻게 되나. 제일 피해본 게 여호와의 증인들이에요. 병역기피 0%를 달성해야 하는데 여호와의 증인들은 군대를 안가잖아요? 감옥 가겠다고. 그러니까 이걸 어떻게 했냐. 제도가 바뀌는 거죠. 그 전에는 나 안가겠소 하면 민간에서 바로 감옥에 갔어요. 그런데 이제는 훈련소에서 잡아가요. 훈련소에 잡아가서 거기서 총을 줘요. 총을 주면 안 받을 거 아니에요. 그 전에는 병역기피죄,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받았어요. 그런데 이제 군에 잡아가서 군형법 위반으로 처벌합니다. 항명죄. 그건 뭐에요? 장부상에서는 이 사람들이 일단 군에 입대한 거죠. 죄는 병역기피죄지만. 병역기피를 0%로 맞춥니다. 그리고 그게 가능해져요, 어디 집에서 가출해서 실종을 해서 죽었거나 변사체로 발견되는 그런 사람 아니면 실제 1년에 입대하는 사람이 30만 명인데, 병역기피자가 2명, 3명이야. 그건 무슨 얘깁니까? 국가가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개인을 통제하고 파악했느냐. 주민등록번호뿐만 아니죠. 거기서 완벽하게 등재를 하는 겁니다.

하여튼 주민등록 문제는 그 정도 하구요.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전자주민등록증을 만들겠다는 거죠. 우리는 국가가 너무 많이 파악해서 문제인데, 너무 많이 파악해서 문제인데 그것도 불편하다. 제가 주민등록증이 없어요. 옛날에는 만들었죠. 옛날에는 만들었는데 만주국 얘기를 글을 썼더니, 어느 날 학교에서 다큐멘터리 만드는 친구가 찾아왔어요. 다큐멘터리 제목이 <주민등록증을 찢어라>. 주민등록증 잘 모른다고 했는데 만주국 전에 썼던 글 얘기만 해달라고 해서 해줬어요. 그리고 다큐멘터리가 나와서 받아 봤죠. 그 다음에 지갑을 잃어버렸어요. 주민등록증이 들어있는 지갑을. 그랬더니 <주민등록증을 찢어라>에 출연했다는 이유로 주민등록증을 만들기가 거시기한 거예요. 여태까지 8~9년 되었는데 안 만들고 버티고 있습니다. 주민등록증 안 만들고 버티고 있어요. 동사무소 가서 싸우기도 하고. 주민등록증 내야 뭘 한다고. 그러면 거기서 큰 소리로 규정을 갖고 오시오. 주민등록증이래야만 된다는 규정을 갖고 와라. 운전면허증도 있고 여권도 있다. 그거 내면서 구시렁구시렁 대면서 해요. 한번은 운전을 하면서 지갑을 놓고 갔어요. 시골에 갔는데 검문을 하더라고. 만져보니까 지갑이 없어요. 지갑이 없는데 했더니 경찰이 괜찮습니다, 하더니 악수를 하는 듯 내밀더니 나는 무심코 내밀었더니 무슨 기계에다 대는 거예요. 그랬더니 괜찮습니다, 가세요, 하는 거 있죠. 그 기계에 내 지문이 입력이 되어 있는 거죠. 우리가 열손가락 지문을 다 입력했잖아요. 일본에서 인권운동하면서 민망했었던 것. 일본에 지문날인이 차별이라고 운동을 했었잖아요. 70년대, 80년대. 그 운동을 보면서 거시기 했던 게 뭐냐 하면, 하나 찍나, 두 개 찍나, 검지만 찍어요. 그런데 우리는 어때요? 열 손가락을 찍죠. 거기다가 회전지문을 찍죠. 회전지문이 뭐에요, 범죄인 찍는 것. 우리는 열손가락을 국가가 그걸 다 가지고 있어요. 국민들은 어때요? 저항감이 없죠. 별로 저항감을 안 갖고 있어요. 그리고 뭐라고 생각해요. 범죄수사 하려면 해야지. 범죄 수사를 할 때 지문대조를 하는 건 맞죠. 그건 뭐에요? 현장에서 채취한 지문과 수사해서 용의자의 지문이 일치하는가를 보는 것이지, 그 지문을 갖고 전체 데이터베이스에서. 이제는 가능해졌을 것 같아요, 이제는. 이제는 지문 채취해서 그 지문을 입력하면 죽 나올 텐데 전 세계에 그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어요. 대한민국 밖에 없어요. 그 시스템 말로만 듣던, 저도 무심코, 몰랐죠. 뭐야 했더니, 안녕히 가십시오. 저게 말로만 듣던 지문판독기구나, 그랬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국가가 국민을 너무 잘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서 문제에요. 그걸 제일 잘 파악하고 있는 게 중앙정보부였지요. 이른바 정보정치가 굉장히 발달한 나라입니다. 사실 올해가 5.16 50주년이죠. 5.16 50주년이 뭐냐면 중앙정보부 창설 50주년이라는 얘깁니다. 김종필이가 5.16을 실제 일으킨 자죠. 아직까지 살아 있어요, JP가. 그 JP가 유명한 얘기를 했습니다.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그 다음에 거기서 모여서 만든 것이 최고회의죠. 국가재건최고회의를 만들고, 박정희가 처음에 부의장 하다가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국가원수 격이었습니다. 그걸 장악해서 통치를 했는데. 김종필이 한 건 뭐냐 하면, 자기는 최고위원을 하려고 쿠데타를 한 게 아니다, 자기는 중앙정보부장을 하기 위해서 쿠데타를 한 것이다. 5.16을 누가 했습니까? 5.16의 핵심 주체들이 누구였냐 하면, 그 팀이 언제 짜였나 하면 실은 한국전쟁 직전에 짜인 셈이에요. 한국전쟁 직전에 어디 있었느냐, 육군본부 정보국 출신들입니다. 위로는 장도영, 백선엽에서부터, 거기 박정희가 있었고, 중앙정보부에 차장했었던 사람들, 그리고 김종필이 있었고, 그리고 박종규도 있었죠. 피스톨 박이라고 아시죠? 박정희 정권에 경호실장 했던 사람. 즉 제3공화국 정권의 핵심들 내지는 원로들이 한국전쟁 직전에 육군본부 정보국에 있었던 사람들이죠. 그러니까 뭐에요? 정보가 중요하다는 것을 가장 잘 아는 자들이었죠. 그래서 무얼 만들었습니까? 중앙정보부를 만들어서 그걸로 한국을 통치했어요. 중앙정보부라는 게 정부 안의 정부였고, 국가 속의 국가였습니다. 체제가 어땠나 하면 정부 체제와 똑같았다고 보면 돼요. 모든 행정, 국방, 안보, 경제 모든 영역에 대통령을 자문하는 비선 조직. 재무부가 있었지만 중앙정보부의 경제파트였습니다. 공식라인으로 경찰이 있었지만 중앙정보부가 사찰을 다 하는. 모든 정보가 집중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하지만 정말 웃긴 게 뭐냐 하면, 사찰에서 진짜로 중요한 게 뭐냐 하면, 국가가 어떤 정보를 중요시하느냐죠. 국가가 어떤 정보를 중요시했느냐가 중요한데. 그레그라고 주한 미 대사를 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미국대사로 여기 오기 전에 뭘 했었나 하면 60년대 말 70년대 CIA 한국지부장을 했어요. 미국도 참 웃기는 나라죠. 정보기관 책임자였던 자를 대사로 다시 내보내는 그런 웃기는 나라인데. CIA 지부장을 했는데 오래 했습니다, 한 사오년 했을 거예요. 그런데 그 사람이 기가 막힌 이야기를 했어요. CIA 지부장으로서 굉장히 중요한 게 뭐냐 하면, 미국이 획득한 고급정보를 한국정부에 주는 거죠. 그러면 당연히 한국의 CIA에서는 그것을 너무너무 고맙게 받아야 할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레그가 뭐라고 불평했느냐? 한국 중앙정보부가 미국 CIA가 주는 고급정보에 관심이 없다는 거예요. 북한 정부의 정찰기나 우주 위성으로 찍어서 고급정보를 CIA가 판독해서 정보를 주는데 관심이 없어요. 그러면 어떤 정보에 관심이 있었을까요? 박정희는. 누가 누구와 만나서 밥 먹는가? 김대중 집에 누가 드나드는가? 자, 뭐가 고급정보일 것 같아요? 대한민국에서 뭐가 제일 고급정보일 것 같아요? 이명박이 무엇에 관심을 가지느냐가 고급정보입니다. 참 비극이죠. 우리나라 정보기관이 왜 망했느냐, 이래서 망하는 거예요, 이래서. 독재정권이란 게 뭐에요? 정보의 가치가 왜곡되는 겁니다. 누가 누구하고 밥을 먹었는지, 누가 누구랑 연애질을 하는지, 그게 왜 중요해요? 그런데 그게 중요해요. 그게 중요했어요.

그리고 그 범위가, 사찰의 범위가 바뀌는 것도 유념해서 볼 필요가 있어요. 60년대 초반에는 중앙정보부는 계속 바빴죠, 계속 팽창했죠. 60년대 초중반에는 누굴 감시했느냐? 중앙정보부가 제일 바빴던 게, 권력 내부를 감시했습니다. 그때도 반공법으로 걸어 놓고 간첩사건으로 걸어 놓습니다. 60년대 초반에 반공법이나 간첩사건으로 걸린 사람이 뭐냐 하면, 요새 법원에서 무죄판결 나고 재심에서 무죄판결 나는 게 누구에요? 납북어부나 재일동포잖아요. 여기서 붙잡혀 가도 누구하나 하소연해줄 사람 없는 그런 사람들이 80년대에는 주로 쥐어 터졌다면, 60년대는 상황이 달랐습니다. 반공법 위반으로 누가 잡혀갔느냐? 박정희의 대구사범 동창인 문화방송 사장, 황용주가 반공법 필화 사건으로 구속됐습니다. 경향신문 사장이 간첩사건으로 구속됐죠. 그 배경은 복잡했습니다만. 문화방송 사장이나 신문사 사장이 언론사 사주쯤 되는데, 중앙정보부가 늘 감시했던 게 여당의 실력자들을 감시했었죠. 박정희 권력이 공고하지 않았을 때 누군가 반혁명을 일으킬지 모른다. 그러다가 권력핵심을 감시하다가 그 폭이 넓어져서 공화당을 감시했다가 그게 평정이 되면 어떻게 돼요? 야당을 감시하죠. 그러다가 야당이 깨갱하고 제도권 안에서만 움츠리고 있죠. 그럼 재야 인사로 폭이 넓어지겠죠. 그러면서 감시의 사찰의 대상, 범위들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70년대에는 사찰의 범위가, 사찰도 그렇게 많이 할 필요가 없었어요. 지금은 어때요? 지금은 굉장히 과학적이 된 겁니다. 마음먹으면 뭐든지 다 할 수 있는 세상이 됐죠. 길거리 다니면서 CCTV 다 걷어다가 분석하면, 시간이 조금 걸리겠지만 행동반경까지 다 알 수 있어요. 굳이 잡아다가 족칠 필요가 없죠. 그 전에는 어땠어요? 과학수사 필요 없었거든요. 어떻게? 잡아다가 패는 거지, 잡아다 패는 거죠.

이 권력이 왜 무너졌나를 생각해보세요. 여러분 한국이 어떻게 민주화되었습니까? 한국이 87년도에 6월 항쟁을 거치면서 민주화가 될 뻔하다가 못됐잖아요. 저쪽이 어마 뜨거워하면서 3당합당을 했잖아요. 방어선을 공고하게 쳤습니다. 방어선을 공고하게 친 거예요. 3당합당 왜 했습니까? 이대로 놔뒀다간 요번에는 양김을 갈라 쳐 가지고 간신히 이겼는데 둘이 다시 합쳐지거나 그렇게 되면 또는 합쳐지는 것보다는 제일 걱정이 그거였겠죠. 한 놈이 혹시 교통사고라도 나서 죽어버리면 이상한 형태로 단일화가 되겠죠. 그런 일이 있을 까봐 어쨌거나 저쪽에서 3당합당을 했습니다. 3당합당 하면서 뭐했어요? 지금 한나라당이 170몇 석인가 그랬죠. 3당합당 직후에는 어땠습니까? 당 4개 있던 것에서 3개 합쳤으니까 220석인가 그랬어요. 국회의 70% 이상이었습니다. 개헌선 완전히 넘었어요. 그때 뭘 만들었습니까? 민자당이죠, 그 유명한. 일본 자민당을 거꾸로 해서. 민자당을 만들고 민자의 전성시대가 열려요. 이제 집권은 말로는 50년, 속으로는 백년 까딱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했습니까. 7년 만에 걷었죠. 우리가 어떻게 바꿀 수 있었습니까? 저쪽이 비록 3당합당을 해서 의회까지 장악을 그렇게 했었지만, 사실은 뭐에요? 중앙정보부 그때 안기부가 사람 잡아서 패지를 못하게 됐죠. 전혀 안팬 것은 아니죠. 팼는데 소리 지르지 마라, 누가 듣는다하고 패게 됐죠. 그 전에는 마음 놓고 팼죠. 마음 놓고 잡아가고. 아니 정보기관원이란 게 노출이 안돼야 간첩이고 기관원인데, 안기부에서 왔는데, 남산에서 왔는데, 바바리코트에 선글라스 끼고 가죽 잠바 입고, 남산에서 나왔다는 걸 당당하게 얘기하면서 정보장사를 하고, 그렇게 위세를 부리던 자들이 그 짓을 할 수 없게 된 거죠. 세상이 바뀐 거죠. 잡아다가 두들겨 팰 수 없게 된 거에요. 두들겨 패면 뭐에요? 조사하면 다 나와. 조사하면 다 나왔는데 이제 그 짓을 할 수 없게 되니까 안기부 힘이 빠진 셈이죠. 그리고 언론을 놓쳤죠. 방송을 놓치고. 90년대 들어와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피디수첩 그런 프로그램 생기고 방송민주화 운동 생기고 그러면서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사람들이 언론이 옛날처럼 앵무새가 아니었죠. 80년대에는 땡전뉴스였잖아요. 신문은 수구언론으로 더 나빠졌지만 방송이 민주화됐죠. MBC, KBS 좋아졌잖아요. SBS도 덩달아 그만하면 괜찮아졌고. YTN 그래도 사실보도 충실하게 하고.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교육이 좋아졌죠. 전교조 생기면서 말도 안 되는 황당한 세뇌교육 그런 것 안하게 됐죠. 잡아다가 쥐어 패는 것 못하고, 방송 뺏기고 교육 뺏기니까 어떻게 되었어요? 정권교체가 자연히 됐죠.

그런데 우리가 민주정권이 그걸 잘 지키지 못해서 권력이 넘어가니까 어떻게 돼요? 저놈들이 한 게 뭐였습니까? 국정원 강화였죠. 그리고 방송 장악했죠. 정연주 쫓아내고 MBC 장악하고 그 짓 했고. 그리고 또 뭐했습니까? 전교조 말려 죽이고 일제고사 교사들 자르고 그 다음에 촛불 겪은 거죠. 촛불 겪으며 뭐라고 생각했습니까? 누가 먼저 시작했어요? 좌파 운동권이 시작했습니까? 아니잖아요. 중고생 애들이 시작했잖아요. 왜 중고생 애들이 좌파보다 먼저 길바닥에 나왔냐? 쟤들은 어떻게 해석했습니까? 빨갱이들이 새빨간 교과서로 가르쳐서 그렇다. 그래서 역사 교과서 파동 난 것 아닙니까? 전교조 쫓아내는 파동 난 것 아닙니까? 그런 방향으로 총체적으로 바뀌고, 그러면서 다시 국정원이 강화되고, 국정원뿐만 아니라 공을 세우려는 자들이 나서면서 사찰기관이 강화되는 거죠. 사찰기관이 강화되는 게 뭐냐 하면 이게 망조 드는 일이에요. 박정희가 왜 죽었습니까? 유신정권이 왜 무너졌습니까? 권력기관끼리 다툼이 생겼기 때문이죠. 사찰기관끼리. 중앙정보부는 중앙정보부대로, 보안사는 보안사대로, 청와대 경호실은 경호실대로, 박정희가 굴리는 비선은 비선대로, 각자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감시하도록 했죠. 박정희를 용인술의 천재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말로가 어땠습니까? 용인술의 천재가 왼팔이 쏜 총에 맞아 오른팔과 같이 죽는 그게 용인술의 천재입니까? 말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 일이 왜 생겼느냐? 사찰기관들을 서로 상호 견제해야, 믿지 못하니까. 사찰기관들이 강화되는 것은 뭐냐? 권력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얘기입니다. 권력이 정통성이 없고. 그리고 정권 최고 권력자가 불안해하는 정보 물어다가 그걸로 출세하려는 자들이 많은 거죠. 그런데 국익이란 건 말도 안 되게 황당해지죠. 정말로 무엇이 국익인지.

그리고 지금은 어떤 세상이 되었어요? 이게 옛날에 60년대와는 틀려졌습니다. 비밀이란 게 없죠. 인터넷이 갖고 있는 질과 양이 어마어마한 거죠. 지금은 공개정보가 거의 다입니다. 핵심정보에서 정말 중요한 능력이 공개정보를 정확하게 수집해서, 인터넷이란 게 뭐에요? 검색해보면 다 느끼시겠지만, 정보의 바다인데 오염된 바다에요. 쓰레기 정보가 많죠. 그러니까 그 중에서 정말 필요하고 좋은 고급정보를 골라내서 그걸 정확하게 분석하는 거죠. 무엇을 버릴 것인가. 그리고 내가 건진 정보를 어떻게 분석하고 판독할 것인가가 훨씬 더 중요해진 세상입니다. 고급정보의 맥을 짚어서 끄집어내고 불러낼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된 거죠. 더군다나 행정력을 가진 국가기구라면 어마어마한 정보를 순식간에 불러올 수 있는 힘을 가진 거죠. 그렇게 정보환경이 변했는데, 이 정부가 하고 있는 짓이 뭐에요? 민간인 사찰 김종익씨, 왜 그랬습니까? 블로그에 글 올린 것. MB 비판하는 글 올린 것. 이런 짓이나 하고 있으니 국제경쟁력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 사찰하는 사람들의 마인드가, 발달된 사람은 아주 발달되어 있죠. 그런데 정보감시에서 권력에서 하는 짓은 아주 한심한 짓들을 하고 있죠. 지금의 세대가 어떤 세대입니까? 세상이 얼마나 급변하고 있는데 아직도 옛날 구닥다리 중앙정보부가 하던 짓 비슷한 그런 사찰을 하고 있는 거죠. 그걸 누가? 영포라인이나. 이건 뭐에요? 옛날 박정희, 전두환 때는 TK를 썼죠. 그만큼 범위가 넓은 겁니다. 인재풀이 그만큼 컸던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영포라인과 고대라는 아주 국한된 아주 한정된 것을 쓰니까 그 안에서 권력을 유지하려니까 불안하니까 그 생리가 아주 저열한 사찰로 저열한 사찰로 가는 거죠.

노무현 대통령 때 국정원을 좀 개혁하려고 했었습니다. 본격적인 개혁은 못했어요. 노무현 대통령이 죽음에 이르게 된 중요한 요인이 검찰과 국정원 개혁을 못한 게 크다고 생각을 합니다. 도덕적으로는 정당했다고 생각이 됩니다. 정보부나 검찰의 개혁에서 중요한 게 뭐냐 하면, 그 자체가 개혁을 해야 하죠. 또 하나는 대통령도 변해야 한다. 대통령이 검찰이나 정보기관 국세청, 감사원 같은 것들을 자기 권력 유지의 수단으로 쓰면 안 되는 거죠. 본연의 목적에 충실하도록 풀어줘야 하는 거죠. 노무현 대통령은 그 점에 관한 한 굉장히 훌륭했다고 생각이 들어요. 유혹이 컸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걸 나쁘게 사용을 안했죠. 100% 안했다고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거의 안 했습니다. 검찰 그런 방향으로 안 썼습니다. 국정원도 그런 방향으로 안 썼습니다. 자율성을 존중해 줬어요. 유혹이 컸었을 겁니다. 그러나 안했습니다. 큰 틀에서 볼 때. 예컨대 저 사건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어요? 희망돼지 사건. 노무현 대통령 선거 할 때 희망돼지 걷었잖아요? 돼지 저금통 걷었잖아요? 이회창은 차떼기를 했고 이쪽은 희망돼지 걷어서 했습니다. 희망돼지 하면서 절차상의 약간의 착오가 있었어요. 선거법 위반이 됐어요. 위반을 했으면 얼마나 했겠습니까? 그게 무슨 착오였지 심각한, 저는 세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납니다만. 옛날 같으면 어땠냐 하면 민정수석실에서 전화 한 통화하면 되겠죠. 야, 그런 것까지 하냐? 적당히 봐주라. 그럼 기소유예로 끝날만한 사안이죠. 그런데 기소가 됐어요. 벌금을 몇 백만 원씩들 물었어요. 희망돼지 모금하는데 관여했었던 시도지부 간부들이.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고 난 다음에 사진이 여러 가지로 나왔지만, 이상한 사진이 있었는데, 이렇게 옆으로 몸을 숙이고 우는 사진이 있었어요. 손수건으로 눈을 이렇게 갖다 대고. 나도 그 사진이 뭔지 몰랐어요. 나중에 물어보니까 그때 제가 아는 후배 중에 그 테이블에 앉아 있었대요. 그게 뭐냐, 얘기가 나와서 물었더니 그게 희망돼지, 그 사람들이었대요. 무슨 얘기 하다가 여러분들에게 미안하다 하면서. 그러니까 전화 안했다. 여러분 기억하시죠? 노무현 대통령 처음 출발할 때 검찰과의 대화했던 것. 검찰에서 약속했습니다. 아마 내 생각엔 검찰이 희망돼지를 기소한 것은 파워게임이었다고 생각해요. 노무현을 시험에 들게 하는 거죠. 자식, 뭐 큰소리쳤는데, 전화 하나 안하나 한번 보자, 검찰이 별렀는데 안했습니다. 대통령 쪽에서 그 사이드에서 검찰이나 국정원을 권력의 도구로 쓰지 않는다는 건 훌륭하게 지켰습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그게 다가 아니었죠. 그 점에 관한한은 훌륭했지만 너무 순진했죠. 진짜로 필요한 검찰개혁, 국정원 개혁을 해야 할 부분들을 안했다. 그 개혁으로 그나마 국정원에서 했던 것이 국정원 과거사위를 만들었습니다. 저는 과거사위에 들어가서 3년 동안 일했어요. 그런데 그것만 해서는 되는 게 아니거든요. 개혁에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과거사 정리도 중요한 부분이죠. 과거사 정리도 중요한 부분이고 대통령이 그걸 안 쓰는 것도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제도적 개혁하고 인적 개혁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 그걸 안했습니다. 검찰은 과거사 개혁조차도 안했습니다. 제도적 개혁도 안했습니다. 결국 어떻게 됩니까? 그런 검찰 이런 데가 사찰을 하는 거죠. 사찰의 방식이 옛날하고 달랐죠. 옛날처럼 무식하게 도청하고 미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어떻게 해요? 각종 사건, 예컨대 미네르바가 쓴 글, 피디수첩 나온 것, 누가 블로그에 쓴 글, 그걸 다 갖다가, 피디수첩 칠 때는 어땠습니까? 범죄성을 입증한다고 고의성을 입증한다고 작가의 이메일을 몇 년 치를 다 뒤졌잖아요. 그런 짓을 했습니다. 검찰 중에서, 검사 중에서 부장검사가 처음에 이게 어떻게 사건이 되냐고 이런 것 수사하면 안 됩니다, 했더니 어떻게 됐어요? 옷 벗겼잖아요. 그리고 어떻게 했습니까? 그 수사를 한 놈들을 승진을 시키는 거죠. 그러니까 권력의 작동양태 같은 것들이 달라지는 거죠. 사찰, 계속 합니다. 들여다보고 있어요. 그 사찰의 효과가 뭐에요? 미네르바, PD수첩, 효과가 뭐에요? 전 세계에서 유래 없는 이메일 망명사건이 있었죠. 우리나라 이메일은 검찰 압수수색 들어온다고 지메일로 옮기는. 저는 게을러서 망명을 안했습니다. 봐라, 이 새끼들아. 도청, 사찰 그런 것에 대처하는 방법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죠. 숨어 다니고, 피해 다니는 것 있고. 그리고 하나는 아예 내놓고 봐라 이 새끼들아 하고. 저는 그런 쪽으로 갔습니다. 그런 쪽으로 가서 <한겨레>에서 ‘직설’도 하고, ‘직설’하다가 박래군 선생 불러서 점 세게 이야기하라고 꼬드기기도 하고, 인제 그런 방향으로 갔는데.

하여튼 사찰이 다시 살아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정보기구는 민주국가라 하더라도 필요하겠죠. 그런데 그게 뭘 하느냐? 얼마나 어설프면 인도네시아 그쪽에 가서 거기서 걸려 나옵니까? 정보기관이 사진이 많이 찍히죠. 보안사 민간인 찍다가 카메라 뺐기고. 창피한 일이죠. 더 창피한 일은 뭡니까? 카메라를 뺏은 사람이 특수강도죄로 구속이 됐죠. 검찰권을 그렇게 행사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해요? 이거 우리가 감시해야 합니다. 우리가 감시하고 우리가 사찰하고 우리가 기록을 남기고 우리 힘으로 그런 짓을 못하게 막아야 하는 거죠.

정보기관을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되는데, 우리가 그 민주적인 통제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 속에서 국가는, 국가뿐만 아니라 이제는 민간기업까지. 인터넷이요, 인터넷이 나오고 그러면서 우리도 지렛대가 커졌어요. 이게 상호작용인 것 같아요. 예컨대 이번에 농협을 누가 어떤 맘먹고 뚫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런 사람이 청와대를 해킹해서 청와대가 한 불법적인 것을 정보를 까발리고 공개한다면 웃기는 일이 되겠죠. 위키리크스. 몇 백만 건의 고급정보가 한 개인에 의해서 쏟아져 나오는 세상이 됐죠. 그러니까 우리도 세상을 뒤바꿀 수 있는 힘이 생겼지만, 일상적으로는 어때요? 저쪽이 우리를 감시하는 수단이 훨씬 더 발전했죠. 민주주의는 항상 양면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얻은 부분도 있지만 저쪽이 앞서 나가는 부분도. 세상이 좋아졌어요, 안 좋아졌어요? 백 년 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좋아졌지요. 20년 전에 비하면 어때요? 20년 전에는 길바닥에서 학생들이 맞아 죽었잖아요. 그게 분해서 분신하고 투신했잖아요. 지금은 어떻게 됐어요? 세상이 얼마큼 좋아졌습니까? 좋아졌나요, 나빠졌나요? 소리 없이 죽어가고 있죠. 쌍용 같은 데서. 올해가 91년이 20주년 되는 해입니다. 바로 지금이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아파하고 있었던 그 시절이죠. 4월, 5월. 그때 죽어간 사람들만큼 용산에서 죽어가고 있죠. 사찰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 무렵에 윤석양이라는 보안사 이병이 보안사에서 디스켓 들고 나와서 세상이 또 발칵 뒤집혀졌었죠. 90년인가 그랬죠. 지금은 어떻습니까? 국가가 사찰 합니까, 안합니까? 방법이 틀려진 거죠. 방법이 틀려졌고 상당히 많은 부분이 그 수집을 은밀하게. 수집해놓은 것을 여러 가지 법으로 차단을 해놓긴 해 놨을 거예요. 그런데 사실은 다 하고 있죠. 금융정보, 카드정보, 핸드폰 정보, 이메일 정보, CCTV까지. 그거 합쳐 버리면 어떻게 돼요? 당신의 하루가 완벽하게 다 나오는 거죠.

국정원에서 옛날에 궁금했던 게 뭐에요? 저 놈의 생각이 궁금했던 거죠. 그래서 일기 같은 것을 뒤졌죠. 우리 세대는 일기 쓰는 사람도 없어요. 편지도 안 써. 학생운동 조직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교육받은 게 일기 쓰지 마라 편지 쓰지 마라. 지금은 어때요? 이메일, 블로그 다 개인이 알아서 올려주고, 그걸 누가 봅니까? 일반인들이 볼 수 있고 고도의 수집능력을 가진 기업이 볼 수 있고. 마케팅을 하면 어때요? 카드 쓴 것 쫙 분석하면 타깃팅 마케팅이 가능합니다. 페이스북 같은 게 진화를 그런 방향으로 하면 이제 어떻게 돼요? 자본주의 사회의 더 노예가 될 수 있는 거죠. 국가가 훨씬 더 많은 걸 파악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국가가 전에는 주체가 됐는데 무슨 일이 일어나면 쫓아가서 막았던 건데 이제는 국가가 미리 예방해서 아웃을 시켜버리죠. 신용불량자, 뭐, 아예 입국을 못하게 하고, 출입국에서, 노동자 이동이 상당히 자유롭게 된 세상에서 아예 입국을 못하게 하고. 여러 가지로 배제를 해버린다. 그렇게 합니다. 기업이 갖고 있는 정보도 막강해졌습니다. 우리가 경품 할 때 개인정보 다 쓰죠. 이것도 해킹해서 왔다 갔다 하고 있죠. 그러니까 이제는 국가가 개인을 훨씬 더 잘 파악하고 있는 사회입니다. 과거의 사회에서 벌어졌던 것과는 또 다른 방식과 민주주의의 힘으로써 대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구체적인 부분은 저보다는 제 뒤에 계신 분들이 더 좋은 말씀을 해주실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제 말씀은 이걸로 마치겠습니다.

 

박래군

한홍구 교수님이 정확하게 1시간 30분 동안 강연을 해주셨어요. 대학에서 강의를 해서 그런지 시간이. 재밌으셨습니까? 빙그레 웃네요. <한겨레>의 ‘직설’ 하시잖아요. 되게 재밌게 하던데 오늘 별로 재미없었죠? (웃음) 그때처럼 하시면 재밌을 텐데. 쪽지 나눠주셨나요? 나눠준 건 아닌가요? 안 나눠줬어요? 쪽지 없이 질의응답을 할까요? 한홍구 교수님 강연이 끝났는데 한홍구 교수님께 질의할,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손을 들어주시면 제가. 혹시 있으신가요?

오늘 강의할 때 그런 얘기가 많이 빠졌어요. 앞에 국정원에 가서 3년 있으셨다고 하셨잖아요. 국정원 과거사 정리위원회인가요. 거기서 3년간 일하셨고 나중에 거기서 상근을 하셨어요. 국정원에서 밥을 얻어먹은 거죠. 그때 뭘 보셨냐? 국정원에 가서 자료 엄청 뒤졌는데 뭘 보셨는지, 이런 것들을 말씀 안하셨어요. 한번 뭘 보셨는지 말씀하실 수 있는 것까지만 해주세요.

 

한홍구

본 것은 보고서에 다 썼습니다. 한 마디로 줄이면 못 볼 걸 봤죠. (웃음) 못 볼 걸 봤다고 생각을 합니다. 국가가 해서는 안 되는 걸. 그런데 정말로 중요한 자료들을 많이 없애버렸어요. 없애버렸고 우리가 자투리를 찾았지만 소문으로 떠돌던 일들을 대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개인사찰카드 같은 게, 이름을 여러 개를 넣어 봤죠. 박래군은. 하여튼 많이 있어야 하는데 없어요. 아마 현업 부서에서 갖고 있어서 그런가 봅니다. 우리가 본 것은 정보관리단이라고 해서 그쪽에 문서 아카이브가 있습니다. 아카이브에 일단 넘어온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었는데, 현업 부서는 건드리지 못했고. 아마 저기는 현업부서에서 관리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정보라는 게 참 웃겨요. 그러니까 조사하면 다 나오는 게, 그게 저, 다른 얘기 하죠. 그때 하여튼 문서를 여러 개 빼보니까 사찰했던 기록이 첨부된 경우가 있어요. 사찰 기록 자체는 없어졌는데, 가령 예컨대 평화박물관 이사장이신 이해동 목사님. 이해동 이름으로 치면 사찰 기록이 없었는데 다른 데서 튀어나와. 다른 문서에 사찰기록이 첨부된 게 튀어나오는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를 보면 누구 만나서 한 거, 전화한 얘기가 다 나옵니다.

만나서 한 거는 2가지죠. 한 서너 가지 가능성이 있죠. 소스는 기록이 안 돼 있었는데, 그 옆에 있던 3자가 들어서 전해줬거나, 당사자가 직접 얘기를 해줬거나, 아니면 도청기를 설치했거나 중에 하나겠죠. 그런데 정보기관에서 그 소스를 관리했기 때문에 그 소스를 따로 관리했기 때문에 그 소스 자체가 기록돼 있지는 않았지만, 무슨 얘기를 했다, 무슨 얘기를 했다, 무슨 얘기를 했다가 매일 있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그래도 1년 치 모아 보면 몇 페이지가 될 정도입니다. 상세하게. 그날 얘기한 게 서너 줄씩 들어 있는 그런 기록들이 있었습니다. 주요인물마다 그렇게 관리됐을 텐데. 그런 것을 따로 모아놓은 것은 보지를 못했습니다. 따로 모아놓은 것은 보지를 못했고.

그리고 사찰이란 게 이런 식입니다. 가령 김대중 집에서 나온 누가, 예컨대 정치인 모 아무개가 신원불상의 여인과 접촉을 했다. 이렇게 나오죠. 그리고 이틀 후쯤에 올라온 정보보고에 따르면, 신원불상의 여인의 신원이 파악되죠. 무슨 얘기를 한다. 보니까 둘이 내연 관계다, 또는 둘이 친척 간이다, 뭐다. 정보 가치 없으니 이쪽은 더 추적하지 않겠음. 이쪽은 다 파봐야 하겠으니까 인원을 더 배치하겠음. 이런 식으로 되는 거죠. 심할 때는 이런 얘기도 해요. 김대중 감시하는데 정보부 예산의 1/3을 썼다. 그게 아까 잠깐 얘기했지만, 지금은 그게 신문에서 없어졌는데, 신문에 보면 가쉽란이라고 있었죠. 90년 신문 한 면이 누가 누구와 만나서 밥을 먹었다가 한 면이 다 찼을 때도 있었습니다. 노태우 때 김영삼 초기 가쉽란, 동정란이 거의 한 면을 차지했었습니다. 그게 바로 정보의 위력이 극심했던 시절이죠. 신문사에서 가령 대통령이 누가 누구를 만나서 밥 먹었다는 걸 중요하게 여기니까 밑에 놈들도 그렇게 되고. 그게 정보가치가 있는 것처럼 신문사에서도 그걸 취급하고. 그러다가 그게 90년대 중반쯤부터 없어지기 시작했죠. 이런 부분입니다. 정보라는 게 그렇습니다. 정보라는 게 또 시간문제가 있기 때문에 중앙정보부에 지금 있는 자료 중에 상당수는 쓰레기에요. 마이크로필름으로 어마어마한 양이겠지만, 예컨대 로동신문에 실린 기사의 요약, 그건 지금 로동신문 보면 되죠. 그런 정보들, 정보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은 시간이 문제가 있습니다. 시간을 요구하는 사람이 빨리 보도록 해주는 것. 거기에다가 국가가 많은 돈을 쓰고 있죠. 그건 아마 지금도 그럴 겁니다. 그런 부분이 있고, 은밀한 부분이 있고, 정확도가 있는데 지금은 이 정확도라는 부분에 훨씬 더 중점이 가야하지 않을까. 그런데 문제는 뭐냐. 우리나라 중앙정보부나 사찰 기관의 문제가 뭐냐? 인원 많아요. 그리고 사회가 복잡해지니까 정보기관 인원이 더 필요할지 모르죠. 그런데 멀쩡한 사람 잡아다가 두들겨 패서 정보를 빼내던 놈들이 이 바뀐 정보환경에 적응할 수 있습니까? 테러방지법에 왜 사활을 걸었어요, 국정원이? 그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게. 그건 국가안보가 아니라 잡 시큐리티(Job Security)입니다. 직업안보를 위해서 했었던 것이죠. 그 사람들이 사찰하고 이상한 사람 있으면 잡아다가 조사하는 그런 시스템.

국정원 3년 가서 뭐 하여튼 이것저것 했는데, 제일 가슴 아픈 건 그겁니다. 도루묵. 저는 그래도 가서 나름 죽어라고 했는데 도루묵 됐다. 즉, 도루묵 된 건 뭡니까? 과거사를 밝혔고, 국정원이 이렇게 나쁜 짓을 했고, 밖에서 기대한 만큼 원했던 만큼 밝혀 내지 못했지만 나름 밝혀냈습니다. 그런데 밝혀내면 뭐하냐는 거죠. 똑같은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 하나는 이명박이라는 자의 캐릭터.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한국사회의 권력집단이 갖고 있는 사고방식 자체가 있습니다. 쓰레기 같은 정보를 요구하는 거죠. 쉽게 얘기해서 이런 겁니다. 촛불을 보고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 갔다 온 다음에 뭐라 그랬습니까? 중국 갔다 오자마자 공항에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비서관들 다그쳤다는 게 그거 아니에요? 보고하니까, 아 그런 거 말고 배후가 누구야, 누가 돈 댔어. 그게 국가보안법적 사고방식이죠. 시민들이 어린 학생들이 자발적인 의사에 의해서, 자기 주체적인 시각에 의해서 나왔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죠. 그럼 어떻게 돼요? 현실에서, 아니 그게 아닙니다, 얘네들이 그냥 나왔습니다, 하면 뭐 이런 닭 같은 새끼가 있어, 조사도 안하고 어디 가서 헛소리야, 하고 물리쳐 버리면 어떻게 돼요? 정보의 흐름은 순식간에 왜곡되는 것이죠. 그럼 어떻게 돼요? 원정화 같은 간첩이 선동해서 촛불이 일어났다고 그걸 만들어줘야 하는 거죠. 그런 왜곡된 시스템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것은 구조의 문제입니까? 문화의 문제입니까? 인물의 문제입니까? 어느 하나만 문제라고 얘기하기가. 이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 놈을 권력기관에 들어가지 못하게 해야죠. 민주주의가 발전해서 민주주의의, 뭐라고 해야 할까, 선구안이 주어져서 그 사람들을 권력을 잡지 못하게 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겁니다.

 

질문1

근현대사를 하셨던 한홍구 선생님이시기 때문에, 저는 좀 더 근현대사 쪽으로 접목을 시켜서 얘기를 원하는데요. 일제시대에 독립군이나 독립운동을 했었던 사람들을 감시하는 시스템이 그대로 우리나라 근현대사, 일제시대를 넘어서 독재정권 박정희, 노태우까지 와서 정보부, 국정원 얘기 나오는 것처럼 옛날의 이런 시스템들이 거의 그대로 친일사상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권력에 있다 보니까 권력의 수단으로써 된 것 같아요. 말씀하셨던 대로 촛불 얘기하셨던 대로 며칠 전에도 제가 선관위가 투표 독려하는 것조차도 명패를 차고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기는 부정감시단이다 얘기해서, 그런 식으로 자기네는 사람들을 채증하고 사진을 찍더라고요. 이것 분명히 위법이고, 여기 말하는 감시체제와 연관되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것들이 제재가 안 이루어지고 있는 사회가 되고 있고, 제가 묻고 싶었던 것은 근현대사 쪽으로 연결을 시켜서 한 번 더 말씀을 해주시고요. 노무현 정권이나 이명박 정권의 그 느끼는 차이점이 굉장히 많거든요. 역사적으로 또 옛날로 되돌아가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 뭐라 그래야 되나, 대항할 수 있을까 얘기를 할 수 있을까, 그런 방법은 없을까요?

 

한홍구

질문이 너무 많아서 제가 다 답할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근현대사 흐름이 중요하죠, 중요한데. 적어도 본질은 뭐냐 하면 주민들의 동의를 받지 못한 정부라는 겁니다. 친일파가 그냥 살아남았다는 정도가 아니라. 억압하고 감시할 수밖에 없었죠. 권력을 주민들에게 위임받아서 빌려 쓰고 있고 곱게 쓰다가 다음 사람에게 물려준다가 아니라, 나에게 저항하는 자들을 짓밟고 해체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요? 그 내부가 어떠한지를 알아야 하니까 그 내부에서 끊임없이 변절자들을 불러내야죠. 권력 자체가 그런 짓을 하고, 잡아다가 두들겨 패야 하고. 두들겨 패는 건 뭐에요? 내가 잡아 온 그놈의 조직을 이 사람이 잡혀 왔다는 것을 알기 이전에 가서 더 잡아와야 하는 거죠. 잡아오는 순간부터 두들겨 패서 빨리 정보를 캐내서 관련자들이 도망가기 전에 해야죠. 그리고 감시와 의심은 굉장히 극에 달했습니다. 의심이 극에 달하니까 뭐에요? 저 자식은, 그리고 내가 한 게 나쁜 짓을 워낙 많이 했잖아요, 저 놈은 무슨 일이 생기면 나를 죽일 놈이다. 저 놈은 평시에 나를 미워해 하지만, 상대방이 저 놈은 나를 미워하지만 그렇다고 내 등에다 칼을 찌를 놈은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것과, 저 놈은 지금은 내 앞에서 싹싹 빌고 웃는 낯짝을 하고 있지만 무슨 일 터지면 제일 먼저 나한테 칼침 놓을 놈이야 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다른 일이죠.

그런데 이 권력이 그렇습니다. 일본이 한 짓이 뭐냐 하면, 사상범 보호관찰령을 만들고 사상보국연맹을 만들고. 몹시 관찰했고 그냥 관찰한 정도가 아니고 전향을 시켰죠. 전향을 시키고 전향을 한 사람들을 관리를 했습니다. 전향 안한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거나, 못 잡아넣으면 할 수 없지만, 다 감옥에 가두고. 관찰을 했지만 어떻습니까? 이놈들은 나중에 소련이 쳐들어오면 소련 편에서 반란을 일으킬 놈들이야. 죽이려고 한 거죠. 그냥 관리하는 게 아니라 유사시에 처리하려고. 그 시스템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게 바로 보도연맹 학살로 이어진 거죠. 일본이 그 시스템을 만들어 놨는데, 일본은 그 시스템을 작동시키지 못했죠. 왜냐하면 소련군이 너무 빨리 진격을 해왔고 일본이 급하니까 무조건 항복을 해버렸죠. 왜? 소련이 더 남하해서 홋카이도에 한 발짝이라도 들여놓으면 어떻게 돼요? 천황제가 날아가게 되니까. 일본이 서둘러서 항복했습니다. 그래서 한반도에서 다행히 사상범들이 그때 죽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떻게 됐어요? 한국전쟁에서 그 시스템, 그 방법이 그대로 이어져서 한국전쟁 때 민간인 학살이 벌어지는 거죠. 그리고 그 다음에 어떻게 됐습니까? 일제시대에 고문했던 놈들, 일제시대에 사찰했던 놈들이 그대로 한국의 뭐가 됐습니까? 경찰에 특무대에 남아 있다가 중앙정보부로 다. 그런 문화들이 이어지니까 고문하고 팔 비틀고 하는 게 그대로 이어졌던 거죠.

그리고 그 자들이, 친일파들뿐만 아니라, 저는 친일파 문제가, 누구 아들, 누구 딸 그렇게만 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보다도 훨씬 중요한 문제는 무엇입니까? 그런 패턴, 그런 문화, 그게 이어지는 것입니다. 예컨대 고문. 민주화운동 시절에 이근안이 고문을 제일 많이 했죠. 이근안이 친일파입니까? 아니죠. 이근안이 해방됐을 때 어린애였죠. 그런데 이근안을 쓴 사람이 누굽니까? 박처원이죠. 이근안이 숨었을 때 돈 대줬죠. 박처원이 친일파입니까? 아니에요, 박처원도 아니에요. 해방 뒤 경찰에 투신했죠. 그런데 박처원에게 일을 가르친 사람이 누굽니까? 그게 노덕술 아닙니까. 노덕술이 누굽니까? 악질 친일경찰의 대명사입니다. 해방 후에도 사람을 때려 죽였죠, 고문해서. 그러고 어떻게 했습니까? 시신을 한강에다 내다버리고 한강이 얼어 있는데 얼음낚시하는 그 구멍으로 바다로 흘려보내고 서울시경으로 돌아와서 창문 열어젖히고 저놈 잡아라, 조사받다 도망간 것처럼 위장했죠. 그것과 책상을 탕치니까 억하고 죽었다, 뭐가 다릅니까? 그게 그렇게 이어진 거죠. 이근안은 그래도 잡혀 갔지만 이근안 같은 사람을 불러서 출장고문을 했던 사람은 어떻게 됐습니까? 그냥 민정당에 한나라당에 남아, 그렇게 이어진 거죠. 사찰 따로 있고 고문 따로 있었던 건 결코 아닙니다. 사찰, 고문, 학살, 이게 사실은 크게 볼 때 한 묶음이었죠. 한 묶음이었고 그 사찰의 끝이었던 학살을 한국전쟁 때 경험을 했던 것입니다. 군사정권 때는 사찰로 바로 학살로까지 나아가지는 안았지만, 그러고 싶어 죽겠는 놈들이 권력을 갖고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는 거니까 우리가 불안 불안한 거고, 그것을 못하게 하는 과정이 바로 민주화 과정이죠. 그런데 민주화 과정이 어땠습니까? 철저하지 못했죠. 얼마나 철저하지 못했나? 예컨대 이런 겁니다. 김영삼 때 김영삼의 오른팔이라고 하는 최형우가 있었죠. 최형우가 누굽니까? 이른바 민주투사입니다. 상도동의 최고로 가는 민주투사. 본인이 고문피해자입니다. 본인이 사찰피해자였습니다. 그런 자가 내무부장관 하면서 뭐라 그랬습니까? 간첩은 고문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간첩이 제대로 불겠습니까? 그런 마인드를 갖고 있었던 거죠. 그게 우리 현실이었고, 20년 전 당대 최고의 민주투사 중에 한 명이었던 사람이 보여준 수준이었던 거죠.

우리가 그만큼 얼마만큼 사찰이 내면화 되어 있습니까. 사찰이나 고문이나 감시에 대해서, 우리가 뭐냐, 한 수가 아니라 열 수쯤 접어주고 들어가죠. 왜? 우리는 개인주의가 발달했던 경험이 없었죠. 프라이버시, 이런 것 없습니다. 국가가 늘 사찰했고 국가가 열손가락 지문을 다 갖고 있습니다. CCTV 지금 길거리 나가서 투표하면 어떨까요? 여기 오신 분들은 CCTV 설치를 반대하시겠죠. 그러니까 뭐에요? 극소수 좌빨이죠. (웃음) 70%의 국민, 한 8대2쯤 나오지 않을까요? 7대3은 충분히 넘을 것입니다. CCTV를 증설하는 게 좋으냐, 프라 이버시 침해가 있으니까 CCTV 그런 거 함부로 설치하면 안 된다. 그거 길바닥에 나가서 물어 보면 70% 이상 CCTV 증설해야 한다. 범인 잡은 사례, CCTV 추적으로 범인 잡은 사례 쫙 보여주면 9:1 나올 겁니다. 우리가 그만큼 정보, 감시, 사찰에 대해 무감각해져 있는 겁니다. 우리 출발부터 민주주의, 개인주의, 프라이버시, 인권 이런 것하고 거리가 먼 역사를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질문2

앞에 말씀하셨던 내용을 듣고, 현재 시점에서 바라볼 때, 이해가 안가는 점이 몇 가지 있어서 질문을 하려고 했는데요. 제가 선생님을 잘 모르지만, 현재와 같은 정보에 민감하고 정보통신기술에 능숙한 국민이 이렇게 많이 있는데, 지금과 같은 정부가 있는 이유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민주적 개혁이 철저하지 못해서 국민들의 의식개혁이 많이 이루어지지 못한 점 하나와, 또 다른 하나는 정보를 다루는 기관에 민주적 통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두 가지를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첫 번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 국민의 의식개혁이 철저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처럼 제어나 반대를 명확히 드러내지 않으면서, 그런 점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고요. 왜냐하면 포스트모던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는 않은데 사람들이, 예전에 70년대에 정확한 굉장히 정치한 조직을 감시체제를 만들려고 했던 것이 점점 변해갔다가 지금 상황에서는 그때처럼 회귀하는 이유가, 국민의 변화 외 다른 요인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직 답은 없는데. 두 번째, 민주적 통제와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후반기에 출범하게 되는 개인정보위원회 같은 그런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예상하시는지요?

 

박래군

그에 더불어서, 이명박 정부 들어 와가지고 민간인 사찰 문제뿐만 아니라 정치 사찰 문제도 불거지고 있잖아요?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비선라인으로 생겨버리고. 이게 이명박 대통령, 최고 권력자의 통치스타일과 관련이 있는지, 구조적인 문제 때문인지? 더 나아가서 얘길 하면 왜 김대중 전 대통령 같은 사람은 정보사찰의 피해자인데 왜 권력을 잡았을 때 국정원을 개혁하지 못했을까 하는 점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홍구

저도 궁금합니다. 이게 거의 마지막 질문이죠? 마지막 질문이니 마지막 광고를 드리면, 평화박물관 후원회원으로 가입해 주시면 박물관에서 제가 사인해서 책 한권씩 보내드립니다. 회원으로 많이 가입해주셨으면 하고요.

그 문제는 글쎄요. 질문을 많이 해주셨는데, 정치문화, 개인들의 의식개혁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왜 필요해지냐? 이게 룰이 바뀌고 있어요. 교정수단이. 과거에는 민중이 가진 교정수단이 거리의 정치였어요. 4월 혁명, 5월 광주, 부마항쟁, 6월항쟁, 미선이 효순이. 최대의 인파가 나왔었던 것이 뭐였습니까? 촛불이었습니다. 촛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물론 시기가 안 좋았어요. 다른 것은 판을 완전히 엎거든요. 선거하고 결부가 되었습니다. 선거하고 결부되니까 나름대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는데 다가오는 선거와 연관해서. 4.19는 선거가 끝난 다음에 일어났죠. 4.19는 선거가 끝난 다음에 일어났지만 판을 완전히 뒤엎었는데, 촛불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다 지고 난 다음에 일어나니까 다음번 선거가 너무 멀리 있었죠. 유야무야 흐지부지 됐습니다. 즉 민주화 되고 난 다음에, 과거에 정통성이 없는 권력이었을 때는 어때요? 촛불의 반에 반만 나와도 그게 민심이었죠. 6월 항쟁 때 얼마 나왔습니까? 연인원 다 합쳐야 백만이에요. 촛불집회 6월 10일 날 하루 나온 정도 밖에 안돼요. 그런데 그게 민심이었죠. 이제는 어떻게 되었냐 하면 이명박이 촛불집회 백만이 나왔을 때 뭐라고 생각했을까요? 4900만 집에 있다고 생각했죠. 4900만 집에 있잖아, 2%도 안 되잖아. 즉 우리의 힘이 그만큼 빠져 버린 건지 모르겠어요. 민중들이 가진 권력에 대한 견제장치, 견제장치로서의 거리의 정치라는 것이 우리 사회가 그만큼 민주화 되고 발전한 건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면서 힘이 약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뭐에요? 현재 정치가 거리의 정치만으로는 안 되는 세상이 된 거죠. 선거가 굉장히 중요해 진거죠. 그 선거에서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선거에 임하는 개개인의, 한 표, 한 표의 의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선거에 가장 중요한 게 뭐가 됐어요? 투표율이죠. 그거 바뀌어야죠. 그런 면에서 밑바닥에서의 민주주의, 그걸 위한 의식개혁, 참여, 이런 부분이 대단히 중요해졌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굉장히 어렵죠. 예컨대 비정규직. 우리가 대의민주주의라면 국회의원들 중에 비정규직 70 내지는 비정규직 대변하는 사람이 최소한 50명은 있어야 할 것 아닙니까? 비정규직이 가족까지 하면 국민의 절반이에요. 비정규직이 900만인데 거기다가 3인 가족만 쳐봐요, 국민의 절반 아니에요? 국회의원 300명 중에 최소한 50은 비정규직을 대변해줘야지. 우리 국회에 비정규직 대변자가 50명이 아니라 말귀 알아듣는 사람이 50명이 됩니까? 비정규직 문제 말귀 알아듣는 사람도 20명, 30명 정도 밖에 안 될 거예요. 민주정치라는 게 극도로 왜곡돼 있죠, 형식은 우아하지만. 형식은 우아하지만. 이 부분을, 이 갭을 우리가 어떻게 메워 내느냐, 결정적으로 필요하죠. 우리가 갖고 있었던 정통적인 거리의 정치라는 수단은 약화되고, 저쪽이 우리를 통제하는 수단은 훨씬 더 강해지고.

그리고 더 중요한 게 뭐냐 하면 우리가 이 권력이 갖고 있는 상업 무기에 아직 우리가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접어주고 들어간단 말이에요. 사찰에 대해 접어주듯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해 저항을 못하잖아요. 내면화 되어 있잖아요. 룰 자체를 바꾸고 판 자체를 깨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고. 시장에 의해 탈락하는. 국가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어버렸는지 바뀌어가고 있는지 좀 더 두고 봐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과거에는 국가는 어땠습니까? 개인을 상대로 못된 짓을 많이 했지만, 박정희 정권이 못된 짓 많이 하고 독재도 많이 했지만 어떻습니까? 박정희나 전두환이 스스로 자기들 포지션을 뭐로 했어요? 국가라는 공동체의 수장으로 했어요. 어쨌거나 아버지 구실을 하려고 그랬죠. 손버릇이 나빴지만. 가정에서 폭력을 많이 행사했죠. 어쨌거나 아버지로서 모든 문제를 책임지려고 했죠.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쟤는 우리 식구 아니다. 호적 파. 국가가 지키려는 게, 무엇을 지키려고 합니까? 가족을 지키는 게 아니라 집을 지키려고 하죠. 시장의 횡포로부터 약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국가가 수행했는데 지금은 뭐에요? 시장을 이상한 불온세력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는 게 국가의 임무가 되어버리는 그런 와중이죠. 그러면서 정보나 사찰이 분명히 바뀌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과학기술이 바뀌는 측면이 하나 있고, 그 다음에 국가의 성격이 바뀌는. 거기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느냐?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우리한테도 필살기가 생기고 있는 거죠. 전에 어때요? 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는데 그래도 어쨌거나 미네르바 잡아가고 어쩌고저쩌고 한다 하더라도, <한겨레>에서 ‘직설’에서 매주 나와서 이명박 씹어대도 아직 살아 있을 수 있는 영역이 있고, <오마이뉴스>가 있고, 기술적 능력을 가진 사람은 위키리크스 같은 한방을 터뜨릴 수 있는, 슈퍼 인더비쥬얼이 나오고 있는 거죠. 그 싸움이 계속 밀고 당기기가 계속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까 저, 박래군 선생 질문한 것은, 답을 미리 좀 했었던 대목이기도 한데요. 권력 자체가, 모든 권력의 속성이, 안 놓고 싶죠, 계속 하고 싶죠, 그리고 그 다음에 보복이 두렵죠. 그러니까 자기가 가진 권한, 정보 그걸 이용해서 어떻게든. 뭔가 불안하니까 박근혜의 약점 하나 잡아서 내가 갖고 있어야 이게 내 보험이다, 이게 내 생명줄이다, 그게 돼 버리죠. 그렇게 은밀하게 나쁜 짓을 하려니까 믿을 놈이 없는 거죠. 시스템이 아니라 믿을 놈은 결국 뭐에요? 우리 역사에서 보니까 고향 놈 밖에 없더라. 같은 교회 나가고. 그러니까 그런 소수 집단에 의해서 권력이 농단됩니다. 그러니까 노무현 정권 안에서도 그게 있었죠. 노무현 정권은 그래도 이념적인 측면이 작용을 하면서도 그 안에 부산 그룹 같은 것이 또 있었던 반면에 이건 이념이 없으니까 그것만 드러날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보호해야 할 대상이 많아진 거죠. 형님을 보호해야 돼. 전에는 어때요? 청와대가 형님을 관리했죠. 청와대가 형님을 관리했고, 형님 때문에 좀 골치아파하고 형님의 부탁을 많이 들어주고. 아우님 있고 형님 있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형님이 청와대를 관리하고 있죠. 영일대군이 만사형통 시스템으로 관리하고 있죠. 재벌이 관리하는 거죠. 그러니까 문제는 뭐냐 하면 국가가 정보를 동원할 수 있는 힘이 막강해졌죠, 비교도 안 되게. 옛날 전제군주라고 하지만 전제군주와 대통령을 비교해보면 민주사회의 대통령을 비교해보면 민주사회의 대통령이 동원할 수 있는 정보와 자원이란 건 비교가 안 됩니다. 그런데 이제는 어떻게 됐어요? 그걸 누가 통제해요? 그걸 통제하는 시스템을 우리가 민주화를 해 놓은 게 허당이다 보니까 형님이 통제하고 삼성이 통제하고. 그런 식이 되어 버렸죠. 거기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싸워 나가느냐 인데. 아직까지 우리의 싸움법은 뭐에요, 80년대식은 우리가 좀 익숙한데, 우리가 삼성이 지배하는 세상과 싸우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삼성이 지배하는. 가령 전두환 때는 우리 편을 모으는 법이 분명히 있었어요. 다 공유가 됐어요, 다 알았어요. 별로 호루라기 안 불어도 사람들이 늘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 삼성이 지배하는 이런 세상, 조선일보가 지배하는 이런 세상에 대해서 조선일보의 반대편에 서서 악을 쓰는 사람은 몇 명 있지만 저걸 거꾸러뜨리고 효과적으로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고.

그리고 더 큰 게 뭡니까? 옛날에는 이렇게만 싸우면 됐죠. 그런데 우리가 지금 이길 수 있는 법은 뭐에요? 비정규직 50만이 투표 더 하면 우리가 이겨요. 나는 그런 방법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삼성과 바로 맞짱 떠서 절대로 삼성을 못이길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법은 뭐냐?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에서 우리가 이길 수 있는. 대립선을 첨예하게 만들고, 그 대치선에서 우리가 보다 많은 사람을 투표장으로 끌어들이고, 그 사람들이 국회에서 법을 바꾸고. 법을 바꾸려고 하면 삼성이 어마어마한 로비를 하겠죠. 그럴 때 우리가 조직된 민중이. 이번에 당신이 어느 선에 서느냐에 따라 당신의 재선이 걸려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그런 방법을 쓰지 않는 한 개혁은 없겠죠. 우리가 싸워 온 만큼 바뀌는데, 우리가 가진 힘은 뭐냐 하면, 저들과 능히 싸워 왔죠, 여기까지 왔죠. 갑오농민전쟁 때 100만이 죽고, 한국전쟁 때 100만이 죽고, 그거 생각하면 진작 깨졌어야죠. 그래도 우리가 싸워서 여기까지 왔어요. 여기까지 왔지만 저들은 어때요? 우리가 성취한 것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돌리면서 그걸 딛고 한발씩 더 앞서 나가잖아요.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따라가느냐. 계속해서 우리가 새롭게 고민하고 우리가 많이 당할 수밖에 없고 당한 것에 대해서 같이 공감하고 아파하고. 그 공감하고 아파하는 게. 정보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정보가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공감하는 능력을 이기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들이 암만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더라도 우리 머릿속을 들여다보고 행동의 일거수일투족을 지배하고 있더라도 우리의 마음이 어느 쪽으로 쏠리느냐, 그걸 통제해 본 적은 저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걸 우리가 어떻게 지켜나가느냐. 긴 싸움에서 장기적으로 역사적으로 볼 때 그 싸움의 향방은 거기에 달려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박래군

예. 한홍구 선생님이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훑으시면서 사찰 정보기구 문제 이런 것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시간이 더 있으면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보의 성격이 바뀌고 있고 바뀐 정보에 대한 정보기관의 작동도 많이 달라지고 있고, 민간기업이 정보를 수집하고 개인을 감시하고 있는 이런 사회에 우리가 있는데 이런 것들은 어떻게 할 것이며, 또 뭐 여러 가지 등등의 문제가 있습니다. 국정원, 정보기관 과연 해체하는 게 맞느냐, 개혁하면 어떤 방향으로 할 건가 이런 부분들이 많을 것 같은데, 시간 관계상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이 나머지 질문들은 이후 이어지는 강의에서 계속 이어질 겁니다.

그리고 앞으로 다섯 번이 남았는데요, 다음 주 목요일 4월 28일에는 진중권 씨가 ‘이명박 정부와 감시: 시민감시를 중심으로’라는 문제로 해서 발표를 해주실 텐데, 진중권 씨는 원고가 없어요. 그래서 오셔서 들으셔야 합니다. 나중을 기대하지 마시고 오셔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4월 28일, 1주일 후에 다시 뵙고요. 그리고 5월 5일 휴강하고, 최철웅 교수, 엄기호 씨, 홍성수 교수, 한상희 교수가 각각의 이런 오늘 다 못한 이런 것들에 대한 얘기를 주제 삼아서 계속 이어갈 겁니다. 2시간 동안 함께 해서 고맙고요, 감시사회 대강연회 첫 번째 강연 스타트 잘 끊어주신 한홍구 선생님께 큰 박수. (박수)

그리고 평화박물관 적어주시고, 진보네트워크센터 후원서도 해주시고, 인권센터 약정서도 작성해 주시고, 또 필요한 게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 작성 안하신 분, 서울시민인데 학생인권조례 서명 안하신 분 꼭 좀 바깥에 나가시면서 해주시기 바랍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음 주에 뵙겠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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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1일] 한국 현대사와 감시 : 사찰과 정보정치 (한홍구) _강연요지문

  


 


 

누군가 들여다보고 있다 - 한국 현대사와 감시체제

 

 

 

한홍구 (성공회대ㆍ평화박물관)

 

 

 

 

1. 들어가는 말

 

- 이명박 정권의 민간인 사찰 / 사찰, 그 아련한(?) 추억

- 누가 누구를 감시해야 하는가?

- 국민이 권력을 감시해야 하는데 / 권력이 오히려 국민을 감시

- 어디에도 국민을 감시하라고 되어 있지 않다 / 그러나 다 한다

- 누군가를 감시해 본 적 있는가?: 떠든 애들 이름적기에서부터...

- 누구에겐가 감시당해본 적이 있는가?: 어느 수준부터 감시이고 사찰인가?

- 사전적 정의: 감시: 단속하기 위하여 주의 깊게 살핌 /

- 사찰: 1 조사하여 살핌. 또는 그런 사람. 2 주로 사상적(思想的)인 동태를 조사하고 처리하던 경찰의 한 직분.

 

2. 감시체제로의 편입과 내면화

 

- 상호감시

- 감시의 내면화: 인터뷰, 밀착다큐의 경험: 카메라가 돌고 있다는 사실을 곧 잊게 마련

- 수많은 CCTV가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사는 사람 거의 없음

- 감시에 대한 저항 약화

- 척 보면 압니다 - 잘 보면 보입니다

- 그걸 꼭 봐야 아남유? / 안 봐도 비디오 - 조사하면 다 나와

 

* 신고체제의 강화

- 오가작통법 / 연좌제 / 족징ㆍ인징

- 부모 고발 / 자식 고발

- 불고지죄

- 부천서 성고문사건도 신고에 의해서 발단

 

- 공개적으로 하는 감시

- 몰래 하는 감시

- 공공연히 하는 감시

 

* 행정력과 과학기술의 강화

- 국가가 어느 차원에서 파악하고 있는가?: 마을 / / 개인

- 행정의 전산화: 1970년대

* 북쪽과 남쪽 중 어느 쪽 정부가 자기 사회 구성원들을 잘 파악하고 있을까?

* IT기술의 발전: 블로그 / 미니홈피 / 트위터 / 페이스북 //

신용카드 사용내역 //

이동전화 통화기록

 

3. 주민등록증 제도

 

* 신분등록

- 마을에 대한 감시와 통제

- 호에 대한 감시와 통제

- 개인에 대한 감시와 통제

- 호패제도 / 인보제도

- 규율을 어겼을 때 어느 단위에서 어느 정도의 처벌을 가하는가? / 최고 권력이 누구와 관계를 맺고 있는가?

 

 

* 일제시기 호적제도: 1909년 민적법 / 1922년 조선호적령 // 일제의 주민통제는 호주를 통한 혈연 중심의 주민통제 / 실제 거주민에 대한 파악과 통제는 상대적으로 취약 / 도시화와 사회적 유동성의 증가로 본적지와 주소지의 불일치현상 심화

- 일제시대의 조선기류령: 1942: 주거지 신고 의무화

- 1944년 징병제 시행을 앞두고 실시

- 미군정: 1947년 초 주민등록의 실시와 등록표 발부

 

* 1949년 ‘공비토벌’과 ‘양민증’: 전국이 아니라 공비토벌 지역 / 등록표는 주민의 거주파악이 목적 / 국민증이나 도민증은 비민분리가 목적 / 군인, 군속, 경찰, 공무원 등 별도의 신분증명서가 있는 사람은 발급대상에서 제외

- 만주국에서도 비민분리를 목적으로 신분증 발급: 국민수장(國民手帳)

 

* 한국전쟁과 시ㆍ도민증 / 전시배급과 전시인력 및 물자동원의 근거로 신분증 필요성 증대 / 비민분리 여전히 필요

- 시민증이나 도민증을 소지하지 않으면 간첩이나 병역기피자로 간주 / 전시상황에서 국가와 시민은 매우 불평등하고 비정상적인 관계를 맺게 됨

- 한국전쟁과 병역제도의 변화 / 1950년대 이남정권의 개인에 대한 파악 수준은?: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 / 애초부터 호적제도 미흡 / 전쟁으로 인한 혼란과 호적 소실 / 높은 인구이동과 도시화 / 매우 높은 수준의 병역기피 가능 / 호적의 위조와 세탁 만연

- 도민증 / 양민증: 빨치산 세력과 일반인을 구분하기 위한 형사적, 군사적 목적

- 철저한 사상검열에 의해 발급: 좌익혐의자는 발급대상에서 제외

- 시민증 없으면 배급도 받을 수 없고 통행도 불가능

- 정부는 시도민증 발급의 목적을 여전히 ‘간첩색출’이라 표방: 1950년대 시도민증은 간첩 색출을 위해서는 효용이 없었으나 국가의 주민사찰 제도로서 유효성 입증 (김영미)

- 1968년의 위기: 121 사건 등 / 한국사회의 병영국가화 급속히 진행

- 한국사회의 병영국가화를 떠받칠만한 기술적 진보와 행정력 강화

 

* 주민등록증:

- 주민등록법: 19625월 최초 도입 /

- 196818세 이상 남녀에게 개인별 영구번호 부여 / 대공 목적

- 1975년 발급 및 휴대의 의무화 / 명분은 행정의 효율화

 

- 1970년 이후 병역기피자 비율 급격히 감소

- 당국의 의지

- 한국전쟁 이후 출생자들이 징병대상으로 성장

- 행정력 강화: 국가의 개개인에 대한 파악능력 제고 / 전산화

- 강력한 집행: 병역기피자 0%를 목표: 여호와의 증인에 대한 심각한 박해

- 일체의 예외를 불허 / 한 명도 열외 없이...

 

4. 중앙정보부-안기부와 한국현대사

 

* 중앙정보부의 창설

- 5·16쿠데타 주동자들은 장악한 권력을 공고하게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권한을 지닌 정보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 당시 김종필 중령은 쿠데타가 성사되던 516일 아침 10시에 최우선적으로 중앙정보기구에 관한 복안을 제시한 후 곧바로 설치 작업에 착수

- 최고회의 위에 군림: 김종필: “나는 최고위원이 되기보다는 중앙정보부장을 일하려고 했을 뿐”

- 중정은 처음부터 정권안보를 목적으로 조직

- 장면정권은 실패한 정권이었나?: 정통성 지닌 정권의 실패를 임기 1년도 지나지 않은 상황에서 논해선 안 됨: 단 정보에서 실패했다는 점은 분명 //

- 516은 정보장교들이 일으킨 군사반란: 박정희 정권의 핵심주체들, 중앙정보부 창설 주역들이 처음 만난 곳은 육본 정보국: // 유사한 반란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

- 중앙정보부가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권력투쟁의 도구: “혁명과업 수행의 장애를 제거”(국가재건최고회의법) / 경쟁자에 대한 정보수집: 누구와 누가 만나 술먹나: 일반인에게는 가십성이지만 정권투쟁하는 자들에게는 극히 중요 ---> 정보의 가치가 왜곡되는 현상 발생

 

- 국익을 위해 복무하는가, 정권을 위해 복무하는가? //

- 국익은 누가 정하나?: 민주적인 국가에서의 정보기관인가 독재국가에서의 정보기관인가?

* 정통성 없는 정권이 정권 유지 위한 공포정치를 위한 도구로 국가 속의 국가, 국가 위의 국가를 만들어 악용: 국정 전 분야에 걸쳐 불법ㆍ탈법적 개입

 

***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내에서 남산공화국, 중앙정보부의 위상

- 중앙정보부는 최고 독재자에게만 머리를 숙일 뿐, 제도적으로 국가의 어떤 기관보다도 우월한 지위를 점하게: 박정희에게만 책임을 지는 기관: 국회 등의 감시와 견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함 // 국가 속의 또 다른 국가 / 국가 위의 국가

- 중앙정보부가 막강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중앙정보부가 지켜야 했던 박정희 정권이 극도로 취약했기 때문이다. 정통성이 없는 정권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꾸 정보기관에 의존해야 했고, 정보기관은 자신에게 기대려는 독재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꾸 무리수를 두지 않을 수 없었음

- 정보기관은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그런 존재이어야 하지만, 박정희 시대의 중앙정보부는 국민들에게 어디에나 있고,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그런 기관으로 비쳐짐. 어떤 의미에서 중앙정보부는 국민들이 중앙정보부의 능력을 과대평가하는 것을 한편으로 즐기며, 활용

*** 박정희: 기본적으로 중앙정보부에 의존: (김형욱의 방약무도함은 박정희가 보장해 준 것): // 그러나 다른 정보기관 통해 중앙정보부 견제 // 특히 방첩대 - 보안사 // 경호실: 정보처 내지는 비선 정보조직 운용 (차지철: 이규광 라인)

- 실력자 키우고 서로 경쟁시키는 방식: 그러다 보니 중앙정보부장이나 방첩대장-보안사령관들의 뒤끝이 좋을 수 없음

- 김형욱 / 이후락 / 김재규 / 장세동 / 권영해

- 정승화 / 윤필용 / 강창성 / 김재규

국가최고정보기관의 일탈과 왜곡

- 중정-안기부가 막강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중정-안기부가 지켜야 했던 군사정권이 극도로 취약했기 때문: 정통성이 없는 정권은 권력을 지키기 위해 자꾸 정보기관에 의존해야 했고, 정보기관은 자신에게 기대려는 독재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자꾸 무리수를 둘 수밖에

- 국가최고정보기관의 일탈: 그러다보니 중앙정보부장-안기부장-국정원장을 지낸 사람들 중 뒤끝이 좋지 않았던 사람이 많음

- 중정-안기부는 최고 독재자에게만 머리를 숙일 뿐, 제도적으로 국가의 어떤 기관보다도 우월한 지위를 점하게: 독재자에게만 책임을 지는 기관: 국회 등의 감시와 견제의 손길이 미치지 못함 // 국가 속의 또 다른 국가 / 국가 위의 국가

- 정보기관은 정보장교끼리의 파워게임의 수단이 됨: 정보기관 간의 경쟁: 1026사건의 원인: 권력의 최고 상층부 내에서 중앙정보부 대 중앙정보부를 견제하기 위해 직제에도 없는 비선 정보조직을 만든 경호실간의 갈등이 폭발

- 정보기관이 국가나 국민이 아니라 정통성이 없는 독재자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다닌 결과는 부메랑이 되어 정보기관을 압박

- 최고의 불신

 

* 1026도 기본적으로는 정보 채널 사이의 경쟁: 경호실 vs 정보부

- 지금 국정원 과거사로 문제가 되는 사건이나 국정원의 행태는 모두 국가의 최고정보기관이 독재정권의 사병(私兵)집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들임

- 중앙정보부-안기부가 자꾸 사사건건 개입해서 얻은 것이 무엇인가?

 

* 한국의 과거청산 작업에서 국정원 과거청산이 갖는 의미

* 한국현대사에서 공포정치의 구조화

* 공안ㆍ정치사찰 등 중앙정보부-안기부 권력의 공포정치의 대상이 시기별로 변화

- 60년대 전반: 집권 세력 내부의 권력 투쟁

- 각종 ‘반혁명’ 사건 등 // JP - JP 투쟁

- 황용주 사건 (반공법)

- 부일장학회 / 경향신문: 언론 사주 (경향신문은 사주를 간첩 조작)

- 물론 인혁당 사건도 있었음

- 60년대 후반: 권력 내부에서 박정희의 위치 확립: 권력 투쟁에서 통제ㆍ사찰로

- 공화당 항명사건

- 3선개헌 개헌

- 70년대: 대상이 여당에서 야당으로 // 김대중 감시에 전력투구

- 80년대 초반: 야당이 침묵하자 재야ㆍ학생ㆍ노동으로

 

- 보안사의 민간인 사찰

 

5. 참여정부의 국정원 개혁

 

- 참여정부는 ‘권력기관 제자리 찾기’를 주요 국정 개혁과제의 하나로 제시 / 국정원에게는 과거 ‘정권안보기관’이라는 오명을 탈피하고 오로지 '국민에게 봉사하는 정보기관'으로 거듭나라는 과제가 주어짐

- 이에 따라 우선적으로 추진한 과제는 ‘탈정치·탈권력화’: 그동안 국정원 특권의 상징이었던 주례 대면보고를 중지하고, 정치권 동향 보고 등 정치개입과 사찰 의혹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일체의 활동을 중단

- 노회찬: 노무현 대통령은 대선공약을 지키기 위해 취임 초부터 국정원직원의 기관출입을 금하고 국정원으로부터 국내정치관련 정보보고를 듣지 않고 있다. 이것은 모든 권력기관의 정권안보기관이 아닌 정상적인 국가기관으로 되돌려 놓기 위한 조치의 하나이며, 국정원을 정상적인 정보기관으로 탈바꿈시키기 위한 노력의 일환

- 국내 정보 수집요원의 행정부처·언론사 상시 출입관행을 정보수요 파악 등을 위한 연락관 개념으로 전환하는 등 정보수집활동 방식도 변화

 

- X파일 문제: 도청사건 / 삼성 관련 사항

- 일심회 간첩단 논란 / 386실세와 국정원 갈등 논란

- 이명박 재산형성과정 조사

- 원 출신 원장 임명

 

- 과거 국가정보기관의 음습한 이미지는 민주정권 10년을 거치면서 얼마만큼 불식되었나?

- 참여정부가 힘을 쏟은 과거사 정리 작업은 어느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는가?

 

- 대통령 자신부터 정보기관을 자신의 정치적 도구로 보지 말아야: 노무현 대통령은 이점에서는 평가할 만함: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나이브하게 생각: 자신의 후임자도 정보기관을 정치적 도구로 삼지 않을 것이라고 근거 없이 기대하거나, 자신이 국정원을 개혁한 정도면 후임자가 정보기관을 정치적 도구로 삼고자 해도 별 문제가 없이 정치적 중립성이 유지될 것이라고 생각

- 인수위원회 시절 국정원 개혁 방안을 검토했으나 너무나 상처가 깊은 것을 보고 그대로 덮어버렸다. 대신 조직을 축소하고, 힘을 빼는 한편 대통령이 국정원을 정권 보위의 수단으로 악용하지 않으면 된다고 보았다.

 

- 2005818일 정치부장 초청 간담회에서 나온 노 대통령 발언

국정원을 산업정보 지키기, 사이버 보안, 테러 정보에 집중하도록 바꾸었다.”

국정원에 토착비리 조사 기능이나 맡겨볼까 했는데 두어 번 보고서를 받아보았는데 별게 없어서…”(언론사에 국정원 직원이 여전히 출입하고 있다는 질문에 대해) “국정원 직원들의 출입처를 없애라고 했는데 뒤에 확인 못했다. 지금도 출입처가 있다고 하니 난감하다.”

“‘정책보고’는 대통령이 직접 읽어보지는 않지만 관련 부처 장관에게 참고하라고 보낸다.”

 

- 참여정부: 국가정보원을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지 않으려는 의지: 그러나 더 나아가 정보기관 개혁을 위해 적극적으로 Agenda를 설정하고 개혁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식의 조치는 취하지 않음 // - 제도 / 인사 // - 국정원의 조직이기주의와 타협

- 이명박 정권 두어 달 만에 이런 생각이 얼마나 헛된 기대였는지 처절하게 증명됨

- 노회찬: 國家情報院改革論議의 失敗原因 / 첫째, 국정원의 가장 중요한 개혁실패의 원인은 정권 재창출을 추구하는 집권여당이 철저하게 국정원을 이용: 정보기관이 권력에 봉사하고 또한 권력을 나누어 가지고자 하는 속성 / 둘째, 국정원의 개혁이 어려운 이유는 조직이기주의를 꼽을 수 있다./ 국정원과 같이 비밀활동을 하면서 비용을 마음대로 끌어다 쓸 수 있는 기관의 경우 모두가 기득권자가 되기 때문에 기득권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며, 결국 이것이 조직이기주의로 발전

- 노회찬 자료: 최고국정책임자도 그 정보기관의 조직이기주의에 반하여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지경

- 노무현은 왜 국정원 개혁에 실패했을까? 노무현은 개혁을 원한 지지자들보다는 시스템이라는 명목하에 공무원들에 의거하여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 국정원에 대해서도 자기가 악용 안하면 된다 정도로 안이하게 생각하고 국정원의 조직이기주의를 방치한 것 / 개혁을 불철저성은 정권이 바뀌자마자 국정원이 너무나 빠르게 과거로 회귀하는 결과를 낳았다

 

6. 이명박 정권 하의 국정원

 

- 이명박 정부는 대선 과정에서 국정원의 국내 정치 불개입을 촉구하고, 해외·경제정보 역량 강화를 공언해 왔다. 그러나 집권 후에는 국정원의 국내 정보수집 기능 강화를 주문

- 촛불집회가 국정원이 제 기능을 못해서 확대되었다는 황당한 주장

- ‘등’ 법안: 국가정보원법 개정 움직임: 과거 국정원의 부정적 유산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하여 국정원의 업무범위를 엄격하게 규정한 현행법에 ‘등’ 이라는 한 글자를 집어넣어 업무의 범위를 무제한적으로 확대하려 하고 있음

- 장유식: 현행법에 국정원의 직무범위를 제한적으로 열거해 놓은 것은 과거 독재정권시절에 정보기관이 저지른 숱한 인권유린과 정치개입으로 국민들의 원성을 샀던 점을 반성하고 다시는 그러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

- 개혁 되돌리기

- 테러방지법

- 사이버 영역

 

* 정보 환경의 변화

- 1990대 이후 비밀정보기관은 전 세계적으로 보더라도 그 존재의의가 감소: ① 냉전의 종식으로 ‘침투’해야 할 적국이 사라짐, ② 급격한 사회변혁의 위험 감소, ③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로 인한 기업환경 변화.

- 공개정보 비중 압도적: 정보환경의 변화 // 선별, 분석, 판단 능력이 보다 더 중요: 비밀첩보활동, 내사활동에 주로 종사해온 정보기관원들에게 이런 일을 기대하기란 어려움

- 신용카드 사용정보만으로도 사람의 행동, 활동, 영역 등을 모두 파악할 수 있는 등 정보 개념이 바뀌고 있음

- 이계수: “전 지구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정보획득‘전쟁’에서도 정보기관의 가치는 감소하고 있다. 정보기관은 ‘가공되지 않은 정치적으로 유용한 情報’가 부족한 시기에 유용한 조직이다. 오늘날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정치적 행위자들은 자신들의 입장과 이해관계를 공개적으로 제시하고(인터넷을 통한 공개 등), 모든 사람들이 그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자신들에게도 유익하다는 점을 알고 있다.”

- 오늘날에는 예전처럼 방첩정보, 모반음모, 역정보를 캐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안의 배경, 콘텍스트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

 

* 국정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문제

- 비밀정보활동을 하는 국가정보기관이 불법 활동을 하지 않고 국가안보의 수호라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1970년대 후반 이후 미국, 독일 등 선진민주국가에서는 의회가 국가정보기관의 활동을 감독하는 민주적 통제 제도가 확립 / 대신 이들 국가에서는 정보위원회 소속 의원과 직원들이 정부로부터 지득한 비밀내용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도록 하는 엄격한 안전장치

- 국정원은 법적 규정이 미비한 우리나라에서는 비밀 공개 위험성이 더욱 커서 국회 정보위원회에 대한 국정원의 정보 제공을 위축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주장 /

- 국정원의 비밀주의가 더 큰 문제 아닐까?: 정보기관의 ‘과잉’ 비밀주의를 해체하기 위한 정비가 필요

- 비밀주의, 경직성과 관료성은 이들 기관에 근무하는 직원들을 사회와 시대의 변화, 흐름으로부터 낙오

 

- 통제와 감시의 효율성

- 세금을 위한 파악 / 병역을 위한 파악

- 간첩 및 저항세력의 적발을 위한 감시

- 감시의 결과는? / 보도연맹 학살

- 왜 감시하나? / 어디에다 써먹나?: 미리 들여다보고 무슨 짓을 하나 알아보게 / 예방과 차단 / 조작 사건의 기획 / 처벌 / 관음증 / 불안해소

- 감시: 어떻게 막아야 하나?

 

* 노무현 정권시기 권력기관의 과거사 반성과 정리

 

7.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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