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기: 강좌 보기/2강:이명박 정부와 감시 : 시민 감시를 중심으로 | 진중권

  1. 2011/05/11
    [4월 28일] 이명박 정부와 감시 : 시민 감시를 중심으로 (진중권) _영상
  2. 2011/05/11
    [4월 28일] 이명박 정부와 감시 : 시민 감시를 중심으로 (진중권) _녹취록

[4월 28일] 이명박 정부와 감시 : 시민 감시를 중심으로 (진중권) _영상

 

감시사회 대강연회 제2강(진중권) 강연영상

□ 일시 : 2011년 4월 28일(목) 저녁 7시

□ 장소 : 여의도 이룸센터 교육실

□ 사회 : 박래군

□ 강사 : 진중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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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8일] 이명박 정부와 감시 : 시민 감시를 중심으로 (진중권) _녹취록

박래군
오늘 감시사회 대강연회 두 번째 순서입니다. 올드 빅브라더에서 뉴 빅브라더로. 오늘 강사님으로 나오신 분은 진중권 선생님. 특별히 소개가 필요 없죠? 다 아시죠? 예. 굉장히 오늘 원고 쓰고 그러시느라고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대요. 엄청 피곤해 하시는데, 아마 이번 강연회는 재미있게 하실 것 같습니다. (웃음)
잠시 후에 진중권 선생님 강연 시작을 하구요. 우리가 6월 초까지 강연회를 진행하는데 다음번 다음 주 목요일 날은 5월 5일이라서 쉬고 5월 12일 날 이 자리에서 다시 세 번째 강연회를 합니다. 세 번째 강연회 주제는 상업적 감시 부분이라든지 페이스북이라든지 인터넷 사이트를 중심으로 해서 상업적 감시의 문제점을 최초로 전문적으로 연구하신 분이 있는데 그 분을 모시고 듣도록 하겠습니다. 최근에 뭐 구글이나 아이폰 이런 데서 위치추적하고 집적해 놓은 것 다 나오고 있잖아요? 이런 것들이 상업적 감시 부분이 문제가 있는데, 우리나라와 미국에 보도된 것이 있잖아요. 들어볼 수 있을 것 같고요.
매번 열리는 이 강연회는 나중에 단행본으로 묶어서 출판을 할 예정이구요, 매 실시하는 이런 내용들은 영상 중계도 하고 녹취, 녹화도 하고 있습니다. 혹시나 중계나 녹화에 노출되고 싶지 않으신 분들은 카메라 다루시는 분한테 말씀해 주시면 그 분 피해서 중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시사회 대강연회 홈페이지가 있는데요, bigbrother.jinbo.net 이쪽에 보시면 매 강연 녹취록과 영상을 볼 수 있는데 지난번 강연 녹취록이 올라가 있고요, 영상은 안 올라갔는데 곧 올라갈 겁니다. 그리고 트위터를 비롯한 현장중계를 비롯해서 강연회 내용을 알려주시는 것을 환영합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데 사람들이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까 진중권 선생님 강연회가 있는데 너 이 근처에 있으면 와라, 빨리 좀 와라, 이렇게 연락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이 강연회는 여기가 무조건 9시 이전까지 끝내야 해요. 근무하시는 분이 퇴근하셔야 해서 빨리 끝내야 해서 저희가 진중권 선생님 강연을 1시간 정도 듣고 질의 응답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까지 하구요, 그리고 참, 나눠드린 저기가 있는데요, 달력, 4월이지만 달력이 있고, 굉장히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학생인권조례,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서명 안하신 분들은 서명해서 여기 풀 붙여 가지고 우체통에 넣으면 되거든요. 우표 안 붙여도 돼요. 그렇게 해서 보내주시고, 혹시 내가 했다고 하면 다른 분들, 주변에 있는 서울시 사람들한테 권유를 해서 함께할 수 있도록, 앞으로 2주 안에 이게 학생인권조례 발의가 되냐 안 되냐, 주민발의가 되냐 안 되냐 이게 결정이 되거든요. 이 점에 대해서 많이 좀 알려주셨으면, 그리고 또 많은 주변에 공유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자, 그러면 감시사회 대강연회 두 번째 순서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진중권 선생님을 박수로 맞이하겠습니다. (박수)

진중권
안녕하세요? 저는 이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고요, 이 주제에 대해서 연구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어요. 왜 저를 불렀을까, 반드시 전문 연구자로서 경험적 연구의 주제를, 결과를 발표해라 이런 의도였던 것 같지는 않고요. 그래서 가볍게. 사실은 처음에는 하지 말아 달라고, 기여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다만 뜻 깊은 행사에 참여한다, 참가하는데 의의가 있다는 이런 생각으로 제가 여기 왔습니다.
저한테 주어진 제목이 이명박 정권과 감시사회인데요, 사실은 재미없는 주제죠. 이런 류의, 이런 방식의 감시는 사실 과거에 속하거든요. 최근의 감시 형태는 그게 아니죠. 좀 전에 말씀하신 것처럼 뭐 페이스북이라든지, 뭐 구글 어스라든지 등등등, 민간 감시, 상업적 감시 이런 것들이 주요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제가 빅 브라더의 시대는 끝났다, 빅브라더 이즈 워칭 유(Big brother is watching you) 하던 시절은 이제 끝났다, 리틀 브라더스 워치 모아 어더스(Little brothers watch more others), 조그만 브라더들이 서로 감시하는. 최근에 신상공개라든지 뭐, 무섭잖습니까? 오히려 네티즌들이나 정권의 정치인들의 사소한 부위까지 다 찾아내는 이런 분위기가 있었는데, 이제는 이명박 정부 들어와서 완전히 빅브라더가 컴인(come in)해 버리면서 감시나 감시라는 주제로 하는 연구가 굉장히 촌스러워졌습니다. 사실 굉장히 전통으로 돌아갔다든가 고전으로 돌아갔다든가. 이명박 정권과 감시사회라는 제목을 받았는데요, 이명박 정권이 감시를 하는 방식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명박 씨의 생각과 이 사람의 멘탈리티(mentality), 뭐죠, 어떤 멘탈리티를 갖고 있는가, 그 다음에 그런 멘탈리티 하에서 어떻게 정권을 운영하고 있는지, 이 정권의 성격을 이해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잠깐 과거로 돌아가 보고 싶어요.
그 전에 정권이 국민의 정부가 있었고, 참여 정부가 있었죠. 아마 여러분 아실 겁니다. 참여정부는 인터넷을 통한 네티즌들의 참여를 통해서 정권을 창출했고, 또 그 후로도 네티즌들의 참여를 통해서 정권을 유지하겠다, 그걸 표방했던 정권입니다. 물론 그 참여정부 된 후에 여러분 분노했을 겁니다. 특히 경제적인 문제라든지, 이라크 파병, 이런 것은 상당히 비판적인 여론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굉장히 노무현 대통령의, 노무현이 대통령이 된 것이 우리 사회에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인터넷을 통해 최초로 대통령이 된 분이었기 때문이죠. 아주 전 세계에 없었던 현상이 발생했다고 생각을 하고요. 그 당시에 노회찬 씨인가요, 민주노동당이었죠, 그때는. 노회찬 의원이 시니컬하게 상당히 비꼬는 투로 얘기한 게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대의 업적은 당선된 데 있다. 저는 그 말이 약간 뭐랄까 비꼬는 투였지만 상당히 중요한 얘기다, 바로 그거다, 어떻게 보면 세계사적 의의이다, 대통령의 업적이라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만든 업적이라고 할 수가 있겠죠.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예를 들어서 이번에 오바마가 인터넷인가 트위터 이런 걸로 조금 덕을 봤죠. 그 전에는 전 세계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분이 아직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는 앞선 분이었죠. 제가 볼 때는 두 정권,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때 우리사회 성격이 상당히 변했다고 봐요.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산업사회 모델에서 이 두 정권을 거치면서 정보사회로 완전하게 진입을 마쳤다고 생각 합니다. 여러분 생각날 거예요, 슬로건이 뭐냐 하면 지식기반사회였습니다. 그것은 뭘 말하느냐 하면, 과거 산업사회에서는 생산이 물질적이었습니다. 즉 상품생산이었죠. 직접 상품을 생산했다고 하면 정보사회에 들어오면 뭘 생산하느냐 하면 정보를 생산해요. 그러니까 물질성이 있는 게 아니라, 물질성이 있는 걸 생산하더라도 물질성보다는 거기에 첨가되는 비물질적 측면, 정보의 측면, 패션의 측면, 디자인의 측면, 이런 것들이 훨씬 더 평가되는 그런 사회가 올 거라고, 그래서 지식기반 사회다, 지식기반 경제다, 라고 얘기를 했죠. 그건 생산이 물질적 생산에서 산업사회의 생산에서 비물질적 생산, 정보사회로 넘어갔다는 것을 나름대로 간파한 슬로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뭐 참여정부야 자타가 공인하는 인터넷 정부였고요. 노무현 대통령은 스스로 프로그래밍까지 했고, 청와대 이지원 시스템 같은 것, 자기가 스스로 프로그래밍 해서 이유(EU) 국가들에 수출까지 하는 그런 분이었죠. 그러다보니까 이 두 정권을 거치면서 대한민국이 아이티(IT)의 선도국으로, 전세계에서 아이티를 선도하는 나라로 떠올랐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이 두 정권을 거치면서 거꾸로 벌어진 상황이, 역전현상이 벌어진. 얼마 전에 씨엔엔(CNN)보니까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브로드밴드인가, 퀴즈가 나오더라고요, 한국이 미국보다 몇 배나 빠른가? 정답이 200배인가? 씨엔엔에서 나옵니다. 이 시기에 산업사회가 정보사회로 진입을 확 마쳤습니다. 그건 뭘 말하느냐 하면 다른 말로 하면 경제의 성격이 변했다는 거죠. 그럼 노동의 성격도 변하고, 그러면 노동에 요구되는 인간형도 달라지는 겁니다. 초기 산업사회는 그저 시키는 대로 일만 열심히 하면 됐지만은, 이제부터는 창의적, 남이 시켜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문제를 던지고 자기 스스로 디자인을 하는 그런 창의적인 인간형들, 즉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경제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경제가 되니까 문제가 되는 게 뭐냐 하면, 경제에 필요한 인간상도 달라지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뭐냐 하면, 그 창의력을 위해서는 사회분위기가 상당히 리버럴하고 자유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 그래야만 했죠. 아마도 참여정부 때가 제가 볼 때 대한민국 사상 가장 리버럴한 시기였던 것 같아요. 가장 활발하게 비판도 하고 아무런 걱정 없이 비판을 할 수도 있었고요. 그때 유시민 씨의 말에 따르면, 대통령 씹는 게 국민스포츠가 됐다, 아무 걱정 없이 정말 그런 자유로운 마음으로. 사실은 뭐 노무현 대통령이 억울한 부분도 있겠지만, 자기가 뭐랄까요, 검처럼 씹히는 것 자체가 그분의 업적이에요, 그래도 된다는 것을 보여준 거죠. 그게 아마 마지막으로 발현된 게 제가 볼 때 촛불집회인거 같아요. 촛불집회는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집회의 형태였죠. 지도하는 사람 없이 대중들이 자발적으로 네트워크로 서로 소통하면서 누가 명령하지도 않았지만 자기들 스스로 알아서 새로운 시위문화를 만들어낸 것, 이것은 아직도 세계 역사상 없습니다.
이 촛불집회가 왜 일어났느냐?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사실은 광우병 공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광우병 공포를 느낀 분들이 있을 거예요. 여중생들이라든지 아니면 애를 먹여야 하는 엄마는 굉장히 큰 공포를 느꼈을 거예요. 그런데 보통 남자는 그렇잖아요? 담배 피우는 게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피우거든요. (웃음) 갑자기 이 사람들이 왜 이러지? 식품 위생에 왜 이렇게 민감해졌을까? 사실은 그것은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광우병은 하나의 계기에 불과했고, 더 중요한 건 뭐냐 하면, 불안감을 느꼈던 겁니다. 하나의 패러다임이 있었는데 그 패러다임이 사라지고 낡은 패러다임이 도래하는데, 이걸 보니까 장난이 아니거든요. 거기서 느꼈던, 정권이 시작되면서 느꼈던 막연한 불안감이라는 것이 촛불집회로 터져 나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때 그 모든 사람들의 불만을 묶어 줄 수 있는 유일한 공통분모는 광우병 밖에 없었다는 거죠. 그래서 그랬던 거죠. 그래서 그 낡은 패러다임으로 복귀하는 것, 우리가 누렸던 자유로운 패러다임이 사라지는 막연한 불안감이 폭발적인 반응으로 나타났던 게 아닌가. 사실 지금 촛불집회하고 촛불집회 직전의 상황하고 지금의 분위기를 한번 비교해 보세요. 엄청나게 사회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알겁니다. 그때 굉장히 자유로웠잖아요. 촛불집회의 핵심이죠, 해방구잖아요. 국가권력이 침범할 수 없는 어떤 자유로운 영역이 길바닥에서 이루어졌던 거죠. 무정부주의적인 리버럴함까지도 경험을 했었는데 지금 보면 완전히 뭐 다시 70년대로 돌아가고 있다, 그런 분위기죠. 사실 모든 게 죽어있다는 느낌입니다.
왜 이렇게 됐느냐? 그게 이명박 정권의 상상력의 한계입니다. 이명박 정부, 이명박 대통령은 자기가 씨이오(CEO)라고 하지만 사실 그분이 사장할 때 씨이오라는 말은 없었거든요. 정확하게 말하면 현장감독 했던 건데 씨이오라고 붙여 놓고. 그러니까 머릿속에 든 건 딱 하나입니다. 자기가 경제 하면 이 분이 이해하는 건 딱 하나 70년대 경제입니다. 자기가 모래판에서 일할 때 그 생각 하나 나오는 거거든요. 그 다음에 우리나라 봤을 때 부동산 투기하고 토목과 투기, 이 경제였잖아요. 토목을 통한 성장제일주의 이게 유일한 경제 모델입니다, 머릿속에 든. 그분이 아는 유일한 경제에요. 저는 이게 그, 내 머릿속에 삽 한자루라고. (웃음) 그렇기 때문에 4대강 사업이라는 것도 이게 사실 경제적 의미가 있는 사업이 아니거든요. 제가 볼 때는 그 분의 개인적 신앙을 위한 일종의 종교적인 사업입니다, 이게. 쉽게 말하면 저는 이게 종교행사라고 해요, 4대강 공사를. (웃음) 그래서 아무리 이성적으로 비판해도 안 들어요. 왜냐? 이건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손익계산에서 나오는 이런 게 아니라는 거죠. 그분의 신앙을 위한 종교적 현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합리적 문제제기도 먹히지가 않는다는 얘기죠.
결국은 이 정권 들어와 가지고 우리 사회 경제의 패러다임이라는 게 정보사회에서 다시 초기 산업사회 모델로 퇴행을 해버린 겁니다.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뭐냐 하면, 이 정부 들어 와서 제일 먼저 한 게 뭐냐 하면, 뭐죠? 과기부를 없애버리는 거예요. 과학기술부를 없애버리는 걸 딱 보고, 와 대단하다, 정말 저는 감탄을 했습니다. 상상을 초월한다. 저들은 항상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웃음) 그리고 그 다음에 국가 주도 경제, 3공 시절로 회귀해버리는 거죠. 어쩔 수 없습니다. 이 분이 뭐 경제에 대해 아는 게 그것밖에 없는데 경제를 살리겠다는 모토로 당선이 됐거든요. 그러면 자기가 아는 방식으로 살릴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지금 세계경제가 그렇게 돌아가는 건 아니거든요. 어떤 식으로든 토목공사를 통해서 해보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중국이라든지 이런 나라들 같은 경우에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 자체가 경제에 선순환이 됩니다.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인프라가 다 되어 있어요. 경부고속도로 있지 고속철도 있지 항공 공항 다 깔려 있는. 여기다 투자한다고 해도 경제적 효과로 귀결되지는 않는 이런 상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는 건 뭐냐? 그분 나름대로 지가 아는 범위 내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그 점은 이해를 해야 합니다. (웃음)
사실 뭐, 칼 맑스가 그런 말을 하죠. 토대와 상부구조는 서로 조응한다는 거잖아요. 쉽게 말하면 어떤 경제시스템이 있느냐, 경제시스템이 어떠한가에 따라서 그 나라의 정치시스템이라는 게 결정되기 마련입니다. 우리나라가 아직 산업사회 초기에 있을 때 즉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갔을 때 어떻든 박정희적 리더십(leadership)은 경제적 의미에서는 타당성은 있었습니다. 정치적 정당성은 없었을지 몰라도, 도덕성은 없었을지 몰라도, 경제적 타당성은 있었다는 거죠. 왜냐 하면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넘어갈 때 그나마 당시에 대한민국에서, 이게 기계화거든요 기계화인데, 신체가 기계에 접속되어 있는 유일한 직업집단이 군인들이었어요. 그들은 한국전을 현대전을 치러본 경험이 있거든요. 그리고 나름대로 엘리트였다는 거죠. 전체 국민이 아직 농민이었을 때 인구의 90%가 농민이었을 때는 군인집단이 사회 속에서 엘리트 역할을 할 수가 있었던 겁니다. 그런 측면이 있었죠. 박정희 정권의 정치적 정당성과는 상관없이. 사실 그 당시에 어떤 정권이 들어섰다 하더라도 상당히 권위주의적이었을 거라는 생각은 한다는 겁니다. 군부독재까지는 아니고, 그렇게 극악하지 않았을지 몰라도 상당히 권위주의적인 정부고. 정부가 이른바 국민을 계몽하는, 쉽게 말하면 국민들의 신체를 농경적 신체에서 산업적 신체로 뜯어 고쳐야 되거든요. 재밌게도 아마도 북한하고 남한에서 두 지도자가, 박정희라는 지도자, 김일성이라는 지도자가 당시에 동일한 어휘를 썼습니다. 그게 뭐였냐 하면, 인간개조에요. (웃음) 살벌한 어휘지만, 나름대로, 우리가 지금 보면 살벌하게 느껴지지만, 나름대로 필연성이 있었던 겁니다. 왜냐? 산업화의 과제라는 겁니다. 그래서 경제에 대한 관념, 또는 경제 시스템 자체가 또 거기에 적합한 정치 시스템을 갖게 된다는 거죠. 그러다가 어느 정도 경제가 발달하고, 국가주도 경제가 발달하고 민간 주도로 경제가 넘어가게 되면서부터는 정부의 역할이 역기능으로 발휘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때쯤 되면 뭐가 날아가는가? 정권이 날아가 버리는 거죠. 박정희 정권이 무너지고. 우리가 전두환 정권이 굉장히 폭압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전두환 정권이 시장에 대해서는 하나도 안 폭압적이었어요. 상당히 리버럴했어요. 왜냐하면 전두환 씨가 무식하잖아요. (웃음) 그러니까 경제는 네가 해, 맡겨 버리면. 덕분에 상당히 리버럴해진 것은 사실이라는 거죠. 그런 측면이 있습니다.
어쨌든 항상 이런 식으로 정치적 리더십이라는 건 당시 경제 시스템, 또는 경제에 대한 관념을 반영하기 마련이라는 거죠. 사실 우리나라 정치 시스템은, 토대에 깔린 경제의 수준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거든요. 문제는 뭐냐 하면 통치하는 사람의 관념이 문제입니다. 이명박 식 관념 자체가 3공식으로 돌아가 있다 보니까. 쉽게 말하면 정치시스템 자체가, 경제에 대한 낡은 관념이, 자기가 경제관념이 낡았기 때문에, 경제에 필요한 리더십을 짤 거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까 정치적 리더십에 대해 아주 낡은 생각으로 나타나는 거죠. 그래서 3공식 리더십입니다. 말하자면, 내가 명령하면 국민은 따라서 하면 된다, 우리는 엘리트 집단이니 국민은 농민들이고 무식하니까 너희들은 일단 우리를 따라서 해라, 조국 근대화를 하자, 이거죠, 이런 생각을 갖고 있는 겁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국민은 다 앞에 가 있는데 지 혼자 뒤에서 지금 이러는 겁니다. 자기를 따라 오라고 하니 굉장히 큰 불행이죠. 내가 명령하면 너네는 한다. 이번에 사람을 쓰는 것도 알겁니다. 쉽게 말해 인재를 쓴다기 보다 자기 말 잘 듣는 돌쇠들을 내세웁니다. 한번 임명하면 끝까지 뭔 짓을 해도 끝까지, 국회에서 욕설을 해도 끝까지, 뒤를 봐줍니다. 쉽게 말하면 조폭의 부하들 부리는 식으로 하거든요. 왜냐하면 생각은 자기가 하면 되는 거죠. 자기 외에 사람들은 몸만 움직이면 된다, 이런 리더십이라는 거죠. 국민에 대해서도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그러다보니까 소통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중요한 건 소통이라는 말을 저들이 할 때 내용을 들어보면 3가지에요. 계몽, 또 하나는 홍보, 또 하나는 심지어는 문화부 자료에서 나오는 그 말 있죠? 세뇌라는 말이 어떻게 정부 교육 문건에서 국민을 세뇌한다는 말이 나옵니까? 버젓이. 이런 말까지 나오는.


 

푸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프랑스의 유명한 철학자죠, 판옵티콘 얘기 했던. 이 사람이 말하는 게 시선 권력이에요. 쉽게 말하면 시선에 포착되면 그건 지배를 당한다는 걸 말합니다. 폴 비릴리오(Paul Virilio)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했죠. 미국의 국방장관이 그랬다 그러더라고요. 레이더시스템, 추적시스템이라고 있잖아요? 우리가 그것을 탐지하면 파괴를 100% 보장하겠다, 우리 눈에 보이기만 하면 파괴는 100% 보장하는 거죠. 그와 마찬가지로 눈에 뜨게 되면 권력은 항상 지배, 100% 지배하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의 눈에 띈다는 건 꼭 권력에 의해 지배당한다는 뜻이고, 그래서 권력은 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는 것을 참지를 못해요. 쉽게 말하면 자기가 사회를 바꿀 때 그 사회는 푸코가 말한 판옵티콘이 되어야 됩니다. 구석구석까지 내 눈에 다 보여야지 돼요. 그렇지 않고 뭔가 어두운 부분이 남아 있다고 한다면 불안해합니다.
사실은 주민등록증이라든지 이런 것들, 옛날에 원래 68년도에 생겼죠? 69년에. 사실은 아마 여러분 익숙해졌을 겁니다. 주민등록증 없는 삶이 생각이, 상상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69년 이전에 우리나라에 주민등록증이 없었어요. 모든 국민한테 번호를 매겨서 관리하는 시스템이 왜 나왔냐 하면은 간첩 적발, 김신조 내려왔을 때 간첩을 적발한다는 이런 발상이라는 것인데, 실제로 국민을 완벽하게 다 통제하겠다는 의지가 있는 거죠. 어쨌든 모든 국민들한테 넘버링이 된다는 것, 그건 다른 말로 하면 시간문제라는 겁니다.
반면에 권력은 또 자기가 눈에 띄는 것은, 왜 눈에 띄는 것은 일단은 뭡니까? 지배당하는 걸 말하는 거죠. 자기가 하는 일은 국민들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해요. 사실 지금 정권도 그렇잖아요? 정권에 투명한 이런 건 하나도 없습니다. 뭐든 뭔가 결정되긴 결정돼요. 갑자기 뭐 운하나 갑자기 4대강이 뚝딱 결정되니 추진이 돼 버립니다. 그런데 여야 합의 통과된 법률이 있는 세종시 같은 건 갑자기 안 하겠대요. 그리고 이번에 또 뭘 하나, 갑자기 뜬금없는 이야기가 툭툭툭툭 튀어나오거든요. 그런데 도대체 어떤 절차를 통해서 어떻게 결정되는지 우리는 하나도 알 수가 없다는 겁니다. 사실 재밌는 건 뭐냐 하면, 그러니까 보수언론에서도 뭐라 그러더라고요. 조선일보에서 비판을 해요. 뭐라 그러는가 하면 역대 대통령이 재임기간 중에 어떤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기자회견을 하거든요, 설명을 하잖아요. 이명박 정권에 들어와서는 두 번인가 세 번 했대요. 그 전 정권은 수십 번을 했는데. 그나마 두세 번도 천안함, 천안함이 아니라 아덴만 여명 해서 자기를 홍보할 때. 쉽게 말하면 알리지 않겠다는 거죠. 너희들은 관심 갖지 말라는 겁니다. 반면에 국민들은 완벽하게 투명하게 잡아두려고 합니다. 그리고 처음에 정권이 성립하자마자 이 사람들이 했던 게 바로 그 단도리질이었던 것 같아요. 일단 네티즌들이 가장 큰 문제였죠. 여러분 생각날 겁니다. 인터넷 실명제라든가. 사실은 그 제목이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사이버 스페이스 매니페스토(Cyber Space Manifesto)인가, 사이버 공간에서의 선언인가, 미국에서 나왔는데. 거기에 보면 초기 사이버공간이 처음 등장했을 때, 상당히 좌파들이죠, 좌파 이상주의자 내지 좌파 오피니스트들이 이제 해방구가 열렸다고 얘기하면서 그 선언을 합니다. 현실의 권력은 여기서 멈춘다. 여기서 현실의 권력은 무효다. 현실의 권력에게 선언하기를 여기는 내버려 둬라, 너희들은 들어오지 마라, 이런 얘기를 합니다. 물론 사이버 공간이라 하더라도 현실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죠. 현실이 주는 의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이버 공간은 말한 대로 상대적 자율성이 있고 그걸 인정해줘야 되는 거거든요. 인터넷실명제라는 것은 그걸 인정하지 않겠다는 거죠, 한 마디로. 인터넷의 특수성이라는 것, 인터넷 공간의 특수성이라는 건 절대 인정하지 않고, 현실사회는 자기들이 남김없이 지배하고 있거든요, 현실공간은. 현실공간의 지배의 논리를 그대로 사이버공간까지 연장하겠다는 의도가 인터넷 실명제로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사이버공간에서도 사이버공간마저도 현실공간과 마찬가지로 완벽한 판옵티콘으로 만들겠다, 그런 의도가 있는 거죠.
그 다음에는 사이버 공간에서 말 함부로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기 위해서 뭐가 도입되느냐 하면 사이버모욕죄라는 걸 도입하려고 하죠. 그것도 상당히 우스운 게, 모욕죄라는 것 자체가 사실은 다른 나라에는 없습니다. 모욕죄라는 게 다른 나라에 있었던 건 왕정시절 때 백성들이 임금님 욕하는 걸 막기 위해서 처벌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모욕죄거든요. 그 흔적이 계속 남아 있었던 겁니다. 제가 법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제가 알고 있기로는 전 세계에서 일본이나 독일 정도에만 남아 있었던 걸로 알고 있고, 독일 같은 경우에도 마지막 판례가 1966년인가 그래요. 그 후로는 없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모욕죄가 있습니다. 명예훼손죄 있고 이걸 가지고 형사처벌 하는, 민사가 아니라 형사에요. 이걸로도 모자라서 사이버공간에 모욕죄를 또 만들겠다는 거죠. 이 사람들이, 뭐랄까요, 철저하게 국민들의 입을 막겠다는 의도를 보여주는 거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는 아마도 인제 네티즌들에게 직접 대하는 조치라기보다도 네티즌들이 즐겨보는 공간이 있어요. 그게 그 포털사이트. 네티즌들이 언급하는 것도 대개 포털사이트 대문에 걸린 뉴스 보고, 네티즌들이 포털사이트 토론 마당이나 포털사이트에 실린 기사에 댓글을 다는 것으로 자기들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곤 했는데 이게 무지무지 거슬렸던 모양이에요. 이 사람들이 제일 먼저 했던 게 네이버 뉴스캐스트제인가, 그랬다는 거죠. 변했을 때 사실 저는, 크게 차이는 못 느낄 겁니다, 현상적으로는. 왜냐하면 클릭하면 기사가 열리는 건 똑같으니까요. 그런데 그 전에는 아마도 이게 기사가 와서 네이버 상에서 열렸을 때는 사람들이 댓글을 달 수 있었다는 거예요. 이제는 댓글을 달려면 어디로 가야 되냐 하면 그 신문사 사이트가 열리거든요. 그러면 거기다가 로그인을 해야 하거든요. 사람들이 원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이 제도가 도입되고 난 다음에 네티즌의 댓글이 확 다 죽어버렸어요. 그 다음에 다음 같은 경우에는 아고라 같은 경우. 다음 아고라가 그들의 골칫거리였죠. 왜냐 하면 아고라 자체가 광장이라는 뜻이잖아요, 민주주의의 광장이라는 것. 그래서 이들이 눈엣가시였죠. 그래서 그때 배치가 예전에는 다음 딱 열자마자 아고라에 들어갈 수 있었던 걸 이걸 숨겨놨습니다. 아고라에 올라온 글 계속 명예훼손 걸고, 계속 경찰이 내사하고 해서 그 활동을 아예 죽어버렸죠. 네이트는 아예 실명을 썼던 것 같아요, 실명 아니면 글을 못 달게. 이러다보니까 사실 인터넷 공간의 익명성과 평등성과, 이런 것들을 완전히 죽여 버리면서 쌍방향 소통을 완전히 죽여 버림으로써 일방적 소통을 강화했죠. 아마 포털사이트에 뉴스라든지 통제하는 것도 유명한 일이 있죠. 진성호 의원이 신정아로 바쁘기 전에는 그보다 더 유명한 사건이 있었죠. 네이버는 평정됐다는 그 유명한 말. 실제로 그렇습니다. 저도 포털사이트에 가 가지고 출연한 적 있었는데 그때 사회자가 그런 말을 합니다. 한나라당 이한구 의원이 나오는 데도 그것도 청와대에서 전화가 온대요. 왜 불렀냐, 그런 식으로 통제를 하는 거예요. 다 모니터링을 하는 거예요. 할 일도 되게 없어요. (웃음) 청와대가 이것저것 다 모니터링을 해서 전화질을 해 가지고 이렇게 한다는 거죠. 황당한 건 뭐냐 하면 지금은 정보화 사회인데 현 정권이 인터넷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 불구대천의 원수를 대하는 것 같아요. (웃음) 정보화 사회인데 인터넷 공간을 이렇게 적대하는 정권이 어디 있냐는 거죠. 이게 이 사람들의 패러다임 자체가 옛날 패러다임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면 인터넷은 온갖 만악의 근원이에요. (웃음) 그런 식의 묘사를 많이 하죠. 그 밖에도 뭐 이제 원칙적인 관계에 있는 건 아니지만 방송 장악하는 것들, 예컨대 김미화라든지, 김제동 씨라든지, 뭐 손석희 씨라든지 이런 사람들, 잘라 내잖아요.
자, 이러다보니까 사실은 권력이 국민을 불신해요. 왜냐하면 이 사람들이 갖고 있는 모델이 계몽주의 모델이거든요. 일제시대, 박정희 모델입니다. 즉 국민들이 아직도 뭐랄까 무지몽매한 상태에 있다고, 그 생각을 지금 이명박 씨는 그렇게 하고 있는 거예요. 정보화 사회가 아니라 산업화 사회에 있거든요. 후진적인 것은 자기 자신인데 그게 아니라 국민을 자기가 이끌어야 된다고 믿어버리는 거예요. 국민을 믿지 않고 국민들이 하게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국민들이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권력이 국민을 불신하는 겁니다. 국민의 자발성, 참여, 이런 걸 오히려 적대시하고 위험시해요. 그러다 보니 당연히 국민들도 권력을 불신할 수밖에 없죠. 그러니까 이게 민주적 통치가 국민의 신뢰 위에서 국민의 자발적 참여라는 그런 식의 통치가 되어야 하는데, 신뢰 위에서 통치하는 게 아니라 불신 위에서 명령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강제성을 띨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 다음에 이 사람들은 한편으로는 국민을 두려워하는 겁니다. 국민들이 뭔가 말만 하려고 하면, 달려들어서 초기진압을 하느라 여념이 없죠. 국민들이 뭘 하는지 늘 알아야 한다, 다 모니터링 하고 해서 걸고넘어지잖아요.
과거에는 인제 국민들을 탄압하는 데 언론을 탄압하고 국민들의 의견을 탄압하는 데 초법적인 수단들이 동원됐을 겁니다. 체포, 납치, 고문, 구금 뭐 등등. 아마 이명박 씨도 그거 하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사실 그렇게 못하죠. 우리 사회가 20년에 걸쳐서 쌓아온 게 있거든요. 민주화라는 것. 그 패러다임 자체를 이 사람들이 전적으로 엎어버릴 수는 없는 겁니다. 또 그걸 엎어버리려 했다가는 어떤 사태가 올지 자기들도 잘 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뭐냐 하면 탄압의 방식이 상당히 합법적인 수단을 써요. 초법적이거나 불법적이거나 이런 게 아니라 합법적이지만 굉장히 부도덕한 수단을 씁니다. 그러니까 법과 윤리가 같이 가는 게 아니라 법과 윤리가 어긋나는 상황, 엇박자 식의 전략을 쓴다는 거죠. 보면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는데 분명히 부도덕하고 비윤리적인 방식이에요.
첫 번째가 뭐냐 하면, 감사하는 방식. 감사를 하는데 이번에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모든 감사 털어서 다 무죄가 나왔죠? 문광부에서 했던 감사라든지, 케이비에스(KBS)에서 했던 감사라든지 털어서 나오는 게 없거든요. 심지어 정연주 사장 같은 경우 기소까지 했지만 결국 뭐예요? 무죄가 됐죠. 그 밖에도 제가 듣기로는 야당 국회의원에게 후원한 사람들, 10만원 이상 후원한 사람들 세무조사하고. 뭡니까? 자기들은 늘 하던 세무조사를 했다 하고 얘기해요. 합법적인 겁니다. 문제는 이걸 당하게 되면 사람들은 뭐에요? 어떤 생각을 하느냐? 아, 내가 뭘 하든지 저들은 내 옆에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겁니다. 당한 사람이 다음에는 야당의원에게 정치후원 할 수 있겠어요, 없겠어요? 못합니다. 심지어는 전 대통령이 가던 삼계탕 집은 세무조사를 받아 가지고 10억이 발견됐다, 등등등. 사실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털면 안 나오는 데가 없잖아요? 어떤 식으로든. 문제는 뭐냐 하면 웬만한 걸 털어야 하는데, 사실 감사도 그런 말 있잖아요? 100만원 이하는 털지 않는다. 왜냐? 100만원 이하 발견하는 데 노동력이 더 많이, 경제적이지 않기 때문에. 위만 봐야 되는데 완전히 그 아래까지 털어버린다는 건 분명히 경제적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에요. 정치적 탄압의 목적이라는 거죠. 전방위적으로 행해지는 거예요. 모든 영역에서 다 행해지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서 사람들이 뭐냐? 분명히 합법적인데, 뭔가 윤리적이지 못하다는 느낌,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왜냐하면 감사의 목적 자체가, 감사라는 제도 자체가 생긴 원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방식으로 사용이 되고 있거든요. 정치적 무기로 사용되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효과가 굉장히 큽니다. 한번 털려 봐요. 옛날에 잡혀가면 그냥 민주투사라도 됩니다. 김영삼 씨처럼. 닭장차에 실리면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대이, 이러면서 폼도 잡을 수 있었지만, (웃음) 이런 거 걸리게 되면 파렴치범이 돼버려요. 횡령 이런 식, 조세포탈. 단돈 몇 천 원 몇 만 원 때문에. 이런 식으로 사람을 부도덕하게 만들어버리는 이런 방식을 지금 사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결국은 인제 뭐죠? 기소된 다음에 뭐로 나와요? 다 무죄로 나와 버려요. 하지만 문제는 뭐냐 하면 그 동안에 이미 언론에서 다 완전히 매장을 당하는 거죠. 보수언론에서 때려 대고 이렇게 되면. 사회적으로 매장 당해버리거든요. 나중에 무죄 되도 신문에 거의 실리지도 않아요. 사실상의 탄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기소에요. 사실 기소라는 게 참 웃긴 게, 사실은 기소한다는 것, 구속하는 것 있잖아요. 검찰에서 물론 법원의 영장을 받기는 하지만 재판 전에 구속한다는 건 재판 전에 행사하는 처벌권이거든요, 어떻게 보면. 미네르바 같은 사람은 한 달 동안 구속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재판받아 보니까 무죄였거든요. 사실상 이 사람은 한 달 동안 구속당한 겁니다, 처벌을 받은 거예요. 무죄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검찰이 행사하는 처벌권이거든요. 이걸 광범위하게 행사하는 겁니다. 이것도 합법적이에요. 그래서 대부분 다 이렇게 이른바 뭡니까? 무리한 기소잖아요. 그러니 대부분 무죄가 나와 버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밌게도 대한민국 검사들은 승소율로 평가받는 게 아니라 기소율로 평가 받아요. 자기가 봐서 말이 안 되는 건 기소하면 안 되거든요. 그런데 일단은 기소하는 게 정권에 충성하는 길이거든요. 이런 상태라는 거죠. 그러니까 사실은 합법적으로 부여된 권한인데 상당히 부도덕적하고 뭐랄까 비윤리적으로 지금 활용함으로써 일종의 탄압의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쥐 그림 같은 것. (웃음) 아니 포스터에 쥐 좀 그렸다고 기소를 할 일입니까? 징역 10년을 살아야 할 일이에요? 낙서 좀 한 것. 검찰의 기소 요지를 보세요. 뭐라 그러는지 아세요? 그 자가 청사초롱과 번영의 꿈을 강탈했대요. 이게 무슨 문학입니까? 애들 초중고등학교 백일장 하는 것 같잖아요. 검사의 수준이 이렇습니다. 알고 있어요, 말도 안 된다는 것, 자기들 스스로. 이걸 하는 겁니다. 왜? 억압하는 거예요.
세 번째가 사찰입니다. 아마 여러분 총리실에서 민간인 사찰 한 것 아실 겁니다. 대운하 반대 교수들 다 사찰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 뭐 사찰한다고 뭐가 잘못 되는 건 아닙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항상 네들 옆에 우리가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거죠. 사람들 스스로 위축시켜 버리는 거죠. 여기다 더해지는 것은 아주 구조적 방식, 옛날부터 있었던 이념, 반공 이념, 빨갱이. 천안함 사건 같은 경우, 저는 천안함 누가 침몰시켰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판단하기 힘들다고 봐요. 북한이 아마 침몰했을 가능성이 크죠.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뭐냐 하면 정부의 발표가 엉터리잖아요. 정부에서 발표하는 것도 굉장히 일방적이라는 거예요. 믿어라 이런 식이잖아요. 문제는 일각에서 과학적인 반론이 제기가 됐거든요. 그러면 과학적인 의혹이 제기되죠, 그럼 과학적으로 해명하면 끝이에요. 그런데 그걸 안 해요. 하지 않습니다. 지금 뭐, 의혹 제기하는 분들이 물리학에서 그걸 전공하는 분들이 제기를 했거든요. 이 분들이 특별하게 정치적인 분들도 아니잖아요. 정부의 발표에 과학적으로 말도 안 되는 부분이 있다. 그걸 해명을 하라고 하면 과학적으로 해명하면 되잖아요? 안 해요. 안하고 뭐라고 하냐 하면 믿으라고 얘기해요. 종교가 되어 버립니다. 과학이 아니라 종교죠. 그 다음에 안 믿으면 뭐가 되는 거예요? 빨갱이. (웃음) 뭐, 이런 방식이란 거죠. 어쨌든 지금 그러니까, 법의 자의적 해석이라고 하는 게 큰 문제입니다. 법을 갖다가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하는 거예요. 법이라는 것은 윤리와 도덕의 가장 극단적인 경우만 규제하게 되어 있는 게 법이잖아요. 그런데 쥐 사건 이런 걸 보게 되면 도대체 사람이 잡혀서 유치장에 갇혀서 기소되어야 할 상황이에요? 징역 10월을 구형받아야 하는 상황인가? 재밌게도 보니까, 법 해석이 자의적이다 보니까, 시민들은 말이죠, 보통 그래요, 내가 물건을 훔쳤거나 세금을 포탈했거나 누구를 때렸거나 하면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인식이 있잖아요. 경찰에서 전화가 와야 아, 그게 범죄라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예컨대 유모차 아주머니들, 아동학대죄래요 그게. 세상에. 이렇게 볼 줄 누가 상상했겠어요. 이현령비현령 마구 갖다 대는 겁니다. 사람들 귀찮게 하는 거예요. 법정에 가면 다 무죄죠. 말도 안 되죠. 그런데 일단 걸고 귀찮게 한다는 겁니다. 그거 걸리게 되면 경찰 조사 받아야 해요. 그 다음에 기소 당하면 법원에 법정에 서야 하는 이런 거예요. 사실상 이런 식으로 하게 되면 나중에 무죄를 받는다 하더라도 사람들이 위축이 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사실상 미리 처벌을 받는 거죠. 경찰서에 간다는 게 처벌 받는 겁니다. 검찰에 간다는 게 처벌 받는 거고. 또 다시 법정에 나간다는 게 귀중한 시간과 스트레스거든요. 시간을 빼앗기고 스트레스 받는 일이라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이때 국민들은 이제 자기 검열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요즘은 인터넷에 굉장히 흔해요. 옛날에는 막 썼는데 아무 문제없이 썼는데 요즘 뭐라고 쓰냐 하면 네티즌들이 교수님 살살 해주세요, 이러다 잡혀 가실라. 이러다 잡혀 가실라는 말을 제가 몇 십 년 만에 듣는지 모르겠어요. 적어도 노태우 때는 안 그랬어요. 노태우, 김영삼 때도 없었던 말이거든요. 이러다 잡혀가실라 이 말은 사실 김대중 정권이나 노무현 정권은 물론이고 김영삼 정권하고 노태우 정권 때도 듣기 힘들었던 말이었거든요. 이제 20년 만에 부활한 겁니다. 뭘 말하는가 하면, 이제 자기 검열이 내재화된 겁니다. 옛날에 글들 자유자재로 퍼오고 거기다 자유자재로 코멘트를 붙였던 사람들이 이제 굉장히 조심해요, 조심스러워 해요. 굉장히 조심스럽고 심지어 나한테 와서 교수님 이거 제가 퍼가도 되겠습니까? 아니 트위터, 당연히 퍼가라는 거지 그게 무슨 대단한 저작권이라도 된다고. 예를 들면 이런 겁니다. 누구죠, 김재철인가요? 엠비씨(MBC) 사장, 아니 케이비에스 사장 이름이 뭐죠? 김인국. 그분이 예전에 5공 때 했었잖아요? 전두환 찬양하는 발언 했었잖아요? 기자로서 전두환 찬양하는 보도를 했거든요. 그게 동영상이 딱 올라왔거든요, 인터넷에. 그런데 저작권에 걸린다는 거예요. 황당한 거죠. 이런 식으로 자꾸 거니까, 이게 무슨, 그게 뭐 대단한 저작권의 침해인가? 사실 다른 목적이 있는 거죠. 저작권 침해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저작권 침해로 인한 경제적 손실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정치적 목적이 있는 거거든요. 이런 방식으로 사용되다 보니까 네티즌들은 글 하나 퍼올 때도 굉장히 조심스럽고 뭐라고 하게 되면, 뭐랄까, 글 하나 쓰게 되면서 자기가 불안하거든요. 심지어 지워요. 그 당시 많이 일어났던 것이 블로그에 블로거들이 자기 글 자진삭제하고 사라져 버리는 이런 현상들이 많이 나타났거든요. 지금은 일상화됐어요. 촛불집회 직후만 해도 굉장히 낯설게 느꼈는데 지금 아마 굉장히 일상적입니다. 낯설다는 것을 의식을 못하게 된 거죠. 그만큼 억압에 사람들이 익숙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게 사실 무서운 거예요. 억압이 계속되고 계속되고 계속되면 사람들이 억압이라는 사실 자체도 잊어버리게 돼요, 어느 순간에는. 그냥 익숙함 속에서. 그러니까 이걸 다시 되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거죠. 그게 문제라는 겁니다. 정권 하나 바뀌면 끝이냐? 그렇지 않죠. 정권 하나 바뀌면 이 기간을 또다시 밟아서. 사실은 독재정권의 폭압에서 거의 20년에 걸쳐 가지고 우리가 이 정도의 리버럴한 상태를 유지하는 거거든요. 사람들이 권력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서. 그런데 국민들이 이제 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됐다는, 자기 스스로 검열을 하게 됐다는 거죠. 검열의 기제를 푸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릴 거라는 겁니다. 그만큼 퇴행을 시켜 버렸다고 할 수가 있죠. 어쨌든 바로 이런 식으로 저들은 자기 목적을 달성하는 겁니다. 사람들이 자기 검열을 하게 된다는. 그건 사람들이 자기 검열을 하게 되면 그들은 자기들이 검열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왜? 자기들이 아니고 그들 스스로 알아서 검열을 하니까. 그들은 목적을 달성한 겁니다.
이명박 정권이 왜 출범했는지 한번 생각해 보죠. 한동안 사람들이 자유에 싫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쉽게 말하면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사람들은 일단 자기가 없었던 걸 되찾게 되면 소중한 걸 알게 되지만 누리게 되면 그 고마움을 모르게 돼요. 나중에는 지루해집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걸 누리게 된 데는 당연한 이유가 있었어요. 그건 왜 그런가 하면, 사실 그 자유라는 게 굉장히 허무한 자유였거든요, 어떤 의미에서는. 왜냐하면 사실은 그 전에 참여정부와 국민의 정부 때 어떤 일이 벌어졌냐 하면 경제적으로는 중산층이 붕괴했어요. 그 다음에 고용안정성이 희미해졌습니다. 빈부격차가 다시 확대가 됐습니다. 사람들이 뭐냐 하면 자유는 누렸는데 이건 뭐냐는 거죠. 굉장히 자유라는 게 공허하다고 생각된다는 거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느냐 하면 이 따위 공허한 자유는 포기해도 된다, 경제만 살려 준다면. 그때 이명박이 딱 튀어나오는 겁니다. 사람들이 자유의 고마움을 느끼게 되는 순간에 질서로 회귀하고 싶은 본능을 느꼈다. 그걸 잡아준 아버지, 그게 누가 되냐 하면 이명박이 되는 겁니다. 이명박은 짝퉁 박정희예요. 사실 박정희 정권 이후에 아버지, 사실은 전두환이 누리던 아버지의 지위를 누리지 못했어요. 후레자식이었죠. (웃음) 아버지 자리에 들어온 후레자식이었다는 거죠. 박정희가 죽으면서 이제 사람들이 국민들이 뭐랄까, 심리적 의존상태라고 하나요, 집단 심리적 의존상태를 벗어나서 자율적 주체로 성장해 갔던 겁니다. 가부장 권력이 상당히 무너졌던 거죠. 그런데 그 가부장 권력을 다시 불러낸 겁니다. 돌아가셨던 아버지가 무덤에서 돌아오신 셈인데. 결국 아버지에 대한 향수예요. 왜냐하면 박정희 때 자유는 없었지만 뭐가 있었어요? 경제성장은 있었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그게 향수인데, 문제는 뭐냐 하면 아버지에 대한 향수는 좋지만 시체는 냄새가 나기 마련이죠. (웃음) 향수가 냄새를. 이번 재보선에서 드러난 게 바로 그거라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3년이면 환상이 깨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던 겁니다. 저야 처음부터 알았지만. (웃음) 저거 딱 보니까 뭐, 처음부터 딱 보니까. 얼굴 딱 보면 알잖아요. (웃음) 사람들이 그래도 그래도 그래도 이러는데 3년쯤 딱 지나니까 이제 경제대통령 허상 완전하게. 재밌게도 이번에 분당 사람들이 지적한 게 뭐냐 하면 경제적 실패를 지적했다고 나오는. 사실은 분당우파의 문제, 경제적 문제도 있겠지만, 사실 그 분당 사람들이 경제가 어렵다고 타격을 직접적으로 받는 계층은 아니거든요. 그 사람들은 받아도 제일 나중에 받아요. 그렇기 때문에 이 사람들이 왜 반발했는가? 제가 보기에는 일반 민주주의, 일반 민주주의가 후퇴되는 데 대한 반발이 굉장히 심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마디로 뭐냐 하면 엠비(MB)가 통치하는 방식이, 그래도 중산층 엘리트들이거든요, 나름대로 수준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엠비의 통치 방식이 중산층 엘리트들의 세련된 수준에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기에는 저질이라는 느낌이 드는 거거든요. 저런 것들이 다 있나. 내가 우파지만 그래도 저런 수준은 아니다, 저런 수준은 아닌 것 같다, 이런 게 있다는 겁니다. 자기들이 보기에도 저건 아니라는 거죠. 우파라 하더라도 세련된 우파들이 있잖아요. 딱 보니까 단순 무식 그 자체잖아요. 저건 좀 아닌 것 같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이명박 정권에서 내세웠던 게 뭐냐 하면 정치적 자유를 희생해서라도 경제를 성장시키면 오케이다, 묵인하겠다, 국민들이 거기에다 표를 던진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경제는 별 볼일 없어요. 경제는 별 볼일 없는데 정치적 자유는 확실히 축소됐거든요,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국민들이 반란할, 심판할 기회를 찾았는데 그동안 심판할 기회가 없었죠. 왜냐하면 대선 한번 있고 총선이 중간에 끼면 좋은데, 총선과 대선이 이게 2개가 항상 붙어 있었잖아요. 한번 심판하려면 4년. 이럴 때 재보선이 딱 있었던 거죠. 재보선이 큰 의미를 가졌던 것이 바로 그거죠. 중간평가 할 기회가 없었어요. 중간평가 할 기회가 있으니까 바로 이제 국민들은 이때 법으로 보장된 반란과 심판의 기회를 쓰는 거거든요. 권리를 행사했던 거지요. 저희가 볼 때는 사실은, 모르겠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정권장악의 문제가 아니라, 정권은 바뀌면 그만이고, 제가 볼 때 저렇게 무식한 정권이 다시 나올 것 같지는 않아요. 아주 극단적인 정권이고 아마 인류 역사상 대한민국 역사 정치 사상 기억될 겁니다, 황당한 대통령으로 정말. 이 시기가 어두운 시기로 기억될 텐데. 생각해 보세요. 다른 대통령들은 다 업적이 있어요. 나름대로 업적들이 있습니다. 전두환만 해도 국가 주도형 경제를 시장 주도형 경제로 바꿨습니다, 리버럴하게. 또 뭐가 있습니까? 노태우만 해도 북방정책이니 뭐니 이래 가지고. 그 다음에 자기를 대통령을 코미디 소재로 써도 좋다는, 이 정도의 리버럴한. 김영삼 각하. 무시하지 마십시오. 제가 보기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긴 분 중에 한 분인데, 금융실명제 했어요. 하나회 척결했습니다. 한국이 군부독재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을, 아니 민주주의를 비가역적으로 만든 것이 김영삼 대통령이란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뭡니까? 금융실명제. 이것 때문에 지금 비리들이 드러나는 거예요, 그나마. 비리를 잡을 수 있는 거라는 거죠. 그 다음에 김대중 대통령. 남북 간에 화해했잖아요. 우리가 북한 왔다 갔다 하는 것 상상을 할 수 있었냐는 거죠, 그 전에. 그 다음에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것 했죠. 그 다음에 보복이 없었죠, 정치보복이. 그 다음에 노무현 대통령 누가 뭐라 하더라도 인터넷, 한국 사회에서 인터넷 문화가 가장 리버럴한 문화를 만든. 그런데 각하는 뭘 하셨는지 모르겠어요. 삽질한 것 밖에, 4대강. 얼마나 한심하냐는 거예요. 그리고 민주주의 후퇴시켰죠. 그 다음에 지금은 4대강, 4대강도 좀 웃기잖아요. 맨날 우리가 얘기했잖아요. 홍수피해는 지천에서 난다. 수질을 개선하려면 지천에서 정화시설을 해야 된다, 얘기했잖아요. 4대강 막 끝날 때쯤 되니까 아, 지천이 있지, 20조를 더 들여야 한다. 똘아이 아닙니까? (웃음) 한 마디로 말하면 4대강 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자기들도 인정한 겁니다. 모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 얘들이 왜 그랬느냐? 아까도 얘기했죠? 4대강 사업은 경제적 사업이 아니라, 뭐예요? 종교적 행사니까. 종교적 행사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굉장히 비영리적일 수밖에 없다는 겁니다. 그거 하나라는 겁니다. 문제는 뭐냐 하면 그 사이에 3년 4년 사이에 우리 국민들이 상당부분 감시, 억압을 내면화. 사람들이 자기가 자기를 감시하고 있다는 겁니다. 검열, 내면화해요. 자기가 자기를 검열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 습속을 벗어나는 게 어렵다는 겁니다. 굉장히 오래 걸릴 거라는 거죠. 다음 정권이 들어서도 이번 이명박 정권의 교훈이 있으니까 보수정권이 들어서도 이렇게까지 하지는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는 뭐냐 하면 우리가 한때 이뤘던 자유분방함, 쉽게 말하면 정보화 사회에 요구되던 경쟁력이거든요, 이제는 창의력, 상상력이 이른바 경쟁력이거든요. 지금처럼 영어실력 이런 걸로 경쟁하는 시대가 아닙니다. 수학 잘 하는 걸로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거든요. 예컨대 실리콘밸리 같은 곳에서는 프로그램 안 해요. 하청 줘요. 중국, 한국, 인도에 하청 주죠. 자기들은 상상합니다. 디자인만 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하청경쟁이다. 카이스트에서 학점경쟁 이런 것들이 상당히 뒤처진 모델입니다. 미래는 상상력의 경쟁이거든요. 상상력이 창의력이 나오려면 공포에 사로잡혀서는 안 되는 거예요, 이 사람들이. 공포에 사로잡힌 사람은 남들과 다 똑같이 행동하려고 해요.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세요. 들판에 사람들이 갑자기 이유도 모르는데 일군의 사람들이 한쪽 방향으로 계속 뛰어가고 있잖아요. 그럼 일단 같이 뛰세요. 뭔 진 모르지만. 그건 본능적인 겁니다. 남들과 똑같이 한다는. 거기서 창의력은 나올 수 없다는 겁니다. 공포감이 없어야 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정치적인 공포감, 내가 어떤 말을 하면 처벌을 받는, 내가 어떤 일을 하면 누구한테 감시당하는 이런 공포감이 없어야지 거기서 창의력이 나오는 거고 그래야 경제도 발전하고 문화도 발전하는. 앞으로 21세기는 그런 시대라는 거죠. 그래서 다음 정권, 이 정권 끝난 다음에도 남는 것은 이 후유증들, 이 후유증들 어떻게 극복하고 우리가 함께 자유의 수준을 확장해야 할까 그걸 좀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박래군
굉장히 피곤한 중인데도 강연을 해주셨습니다. 진짜 그렇죠? 감시와 검열의 내면화, 자기검열, 이런 것 벗어나기 굉장히 힘든 건데. 그래도 참 오랫동안 벗어났는데 이명박 정권 들어서 참 씁쓸합니다. 질의 응답 시간입니다. 질의 응답 하겠습니다.

청중
아까 말씀하신 것 중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유에 대한 싫증, 지루함이 있다고 했는데 그런 것들이 인간 내면에 공통적인 그런 것이 있는 건가요? 아니면 우리나라의 특수성이 있는 건가요? 그러니까 자유에 대한 싫증이라는 것이 인간의 본질이라 그럴까요, 그런 걸로 나타나는 건지?

진중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예술에서도 항상 그렇거든요. 미학에서도 그런 게 있습니다. 다다이즘이니 초현실주의가 있다가 20년대 또 다시 사실주의가 등장해요. 질서로의 회귀. 이런 게 있고. 한창 발랄하다가 발랄함 자체가 의미가 없다, 공허해지면 다시 질서로 회귀하려는 그런 움직임들이 문화적으로 나타나죠. 제가 볼 때는 우리 사회가 그랬던 것 같아요. 항상 자유라는 건 누리고 있을 때는 모르거든요, 소중함을. 그러니까 또 그 다음에 자기가 누리고 있는 것은 상당히 공허하게 느껴질 수 있죠. 그때 돌아가는 거죠. 그런 식의 역사적인 사이클이 있는 것 같아요.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독일에서도 바이마르 때 완전 자유주의잖아요. 국회에 딱 가면 1인 1당, 의원 하나에 당 하나. 그러니까 사람들이 싫증이 나잖아요. 그때 강력한 지도자, 히틀러가 나타나죠.

청중
권력의 속성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보는 것의 중요성에 대한. 특히 근대적인 권력의 행사 과정에서 보는 것과 함께 특정인을 배제한다는 속성도 되게 많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예를 들어서 예전에 부랑자라든지 장애인이라든지 이런 경우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배제적 권력의 속성인 것 같은데, 그런 배제적인 속성은 어떻게 설명이 되는 건지?

진중권
푸코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근대 초기에는 그런 경향들이 있었을 겁니다. 근대 초기에는. 그런데 요즘은 그런 배제라는 것들이 그런 식으로 이뤄지진 않죠. 듣자하니까 평양에는 장애인들이 못 들어가는, 그런 얘기가 있더라고요. 그게 아마 전형적인 근대적인 배제겠죠. 하지만 우리 사회에도 그런 것 많을 겁니다. 아직도 우리 옆에 장애인 아파트 못 들어오게 하는 반대, 이런 것 있잖아요. 그런 식의 일상적인 그런 것 있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하는 예는 없다고 생각을 하고요. 왜냐 하면 우리가 그 수준은 넘었으니까. 그 수준은 넘었고 아마도 아직 남아 있는 게 동성애자에 대한 차별이 있고. 이번에 판결도 이상하게 났잖아요. 그 다음에 여성에 대한 차별들도 있고 등등등.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도 어느 정도의 어떤 제도적 차별이 어느 부분에 있을지도 모르죠. 그런 건 있죠. 배제라는 게 워낙 사회가 다원화되고 있기 때문에, 사실 우리가 근대가 아니고 후기 근대이고, 탈근대 되고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오히려 탈근대화 된다는 사회에서는 주요한 정치적 소재들보다도 옛날처럼 계급이니 혁명이니 보다 그런 것들이 정치적 의제로 떠오르고 있거든요, 사회가 받아들여지고. 그리고 환경, 그런 것들은 탈근대적인 정치적 의제. 국가 권력 차원에서 행사되거나 그런 차별이 행사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고 봅니다. 다만 잔재들이 많이 남아 있고 아주 공고하게 변화를 거부하는 자들도 있죠, 분명히. 동성애자들이, 아마 군대에서의 동성애자 관계, 예컨대 예전에는 미국에서는 커밍아웃하면 군대를 떠났어야 하거든요. 이번에 하나 얻어냈죠. 얻어내 가지고 동성애자가 커밍아웃한 상태에서도 군인이 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판결이 이상하게 났더라고요. 바꿔야 될 게 많습니다. 일단 법원의, 흔히 영감님들이라는 사람들이, 교양이 많이 없거든요. (웃음)

청중
연관된 질문인데요. 우리 사회가 이미 후기 근대사회로 많이 갔는데, 아까 말씀하셨듯이 근대의 그런 안 좋은 것이 잔존해 있잖아요. 탈물질적 가치가 많이 추구되고 여성이니 인권이니 환경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선생님 보시기에, 대통령으로 박근혜라는 사람이 유력하잖아요. 이 대권주자는 여성이잖아요. 그렇게 봤을 때 선생님은 어떻게 보시는지?

진중권
옛날에 최고은 씨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그래도 괜찮겠다. 그건 남자한테 당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웃음)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예컨대 여성주의자들 입장은 그렇거든요. 사회주의든 공산주의든 남성 지배적이고 여성들이 탄압받는 건 다 똑같다. 당연히 그렇게 보는 거죠. 반면에 좌파들 입장에서는 저 여성주의자들 보면 가난한 집 프롤레타리아트 집 부인들은 여성운동 하지도 못하고 여성운동 하는 것들은 부르주아 마누라들이야, 이런 식. 그런 게 있죠. 저는 예컨대 박근혜 씨가 여성 대통령 후보이기는 하지만 문제는 뭐냐 하면 그분이 여기까지 왔을 때 남성권력이거든요, 아버지 권력이고. 그 후광 때문에 그렇게 됐기 때문에. 그분이 무슨 여성주의의 화신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된다면 나름대로 제한적 의미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의미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같은 사회 속에서는. 여성이 대통령이 되려면 아버지 권위를 입을 수밖에 없지만, 항상 인류 역사 상에서 모든 게 한꺼번에 이뤄진 적은 없거든요, 항상. 그렇게 이뤄져 왔던 거니까. 나름대로 여성주의적 관점에서는 의미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그렇게 한쪽 틀 가지고 이건 이 틀이니까 얘는 보수니까 이렇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다양한 가치관을 가지고 다양하게 평가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박래군
저도 하나 여쭤볼게요. 사회현안이나 정치현안에 대해서 계속 발언하시잖아요? 독설이라는 평가를 받으시는 데. 정부에 대한 평가, 비판 이런 것들 하는 것 때문에 혹시 개인적으로 고초를 당한 게 있나요?

진중권
글쎄요, 뭐, 공식적으로는 없죠. (웃음) 그냥 3군데에서 잘렸는데 공식적으로는 없죠. 쟤들이 그렇잖아요. 너 그것 때문에 잘랐다고 결코 얘기하겠어요? 결코 말하지 않죠, 그렇게는. 누구나 다 뻔히 아는 얘기지만은. 아까도 얘기했잖아요. 방식이란 게 매우 합법적이에요. 사찰을 한다든가 예컨대 감사를 한다든지. 감사를 해서 제 껄 다 털었잖아요. 한예종에서 제가 프로젝트를 한 게 있었는데요. 아쉽지만 저는 교수들이 그런 거 되게 싫어하거든요. 프로젝트 따가지고 그 돈 가지고 쓰고 대충 연구 결과 내서 이렇게 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프로젝트 예산을 하나도 안 땄었어요. 모든 프로젝트를 내가 사비 들여서 하자. 내가 사비 들여서 프로젝트 했다, 그랬더니 이상하다. (웃음) 책이 나오니까 회계부정을 한 게 틀림없다, 이렇게 나오더라고요. 털다 털다 털다 보니까 안 나왔던 거예요. 그러니까 걸 수가 없었던 거죠. 그런 식이에요. 그 다음에 어떤 한 학교에서는 모 장관님께서 시비를 거셨다는 얘기를 제가 들었고요. 뭐, 그렇죠. 홍대 같은 경우에는 강의를, 시간강사 강의였는데, 하라 그래서 하겠다 그랬더니, 개강하고 나서 잘랐어요. 9월 1일인가 2일엔가 개강하고 나서 잘렸더라고요. 사유가 뭡니까 그랬더니, 그게요, 말을 못해요, 사유를 말하지 못하는 거예요. (웃음) 그런 것들이 있죠. 에피소드죠. 저한테 대학 강의라는 건 경제적으로 의미가 없는, 저는 대학에 봉사하는 느낌으로 가는 건데, 그런데 자르니까 좀 황당했죠.

박래군
국가정보원이 옛날로 원대복귀했어요, 사실은. 김대중, 노무현 때 국가정보원장 독대를 안했거든요. 이명박 정권 들어서 독대를 다시 하니까 국정원에 힘이 실리고 그러다보니까 사찰이 되는데. 무슨 압력이 들어갔을 거거든요. 정부 쪽이나 국가정보원이나 압력이 들어가고, 학교는 압박을 받고 잘라 버리는 거죠, 진중권 씨를 잘라라. 이런 부분은 증거를 잡을 수 없어요.

진중권
제가 볼 때는 국정원까지 가지는 않았을 것 같고요. 거기까지는 가지 않았을 것 같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죠. 이유가 있겠지만 저한테는 불쾌한 일이에요, 불쾌한 일이고. 지금도 대학에 강의를 나가고 있지만 그 후로는 대학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이 됐어요. 저래도 되는가? 그 다음에 강의를 하고는 있지만 하기 싫어요, 솔직히. 앞으로 다시는 대학에서 강의할 일이 없을 거예요, 아마. 재미가 없어졌어요. 이런 일 딱 겪고 나니까 회의가 오더라고요, 대학이라는 제도에 대해서. 특히 그러지 않아도 요즘 대학이 이상해지고 있잖아요? 굳이 학문을 하는 데 대학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가 볼 때 학문은 다른 데서 할 수도 있다, 다른 건 몰라도 인문학은. 사실은 대학에서 인문학 세미나가 안돼요. 안되고 오히려 아카데미 바깥에 있는 데 있잖아요? 아카데미 이런 데는 모티베이션(motivation) 있는 애들이 오거든요, 학생들이. 자기 돈 내고 자기가 들어오니까 책도 읽어 오고. 그런 데서는 제대로 된 강의하고 제대로 된 질의 응답과 제대로 된 토론이 되는데 학교에서는 그게 안 되거든요, 대학은. 학점 이런 식으로 되다보니까. 그리고 이런 식으로, 시장까지는 오케이야, 그럴 수 있다 쳐도 정치에까지 휘둘려버리잖아요. 이걸 딱 보는 순간에, 대학이란 것은 시장과 정치권력과 협력할 때 협력하지만 항상 떨어져서 비판적 거리를 갖고 있으면서 일종의 소금의 역할을 해야 되는데,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한편 시다바리가 됐거든요. 저 안에서 내가 뭐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청중
이명박 대통령이 뽑힌 이유가, 그러니까 경제적인 것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지금 겪는 개인들의 고통이 계속적으로 그게 전체적으로 어떤 정신병적 증상을 겪는 것으로 보이잖아요.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경제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강하고, 솔직히 민주당이나 한나라당이 경제적인 면에 있어서는 별로 다른 게 없었던 것 같은데. 그런 부분에 있어서 어떻게 국민들이 왜 집착을 계속 하고 있는지? 그게 경제적인 것에 대한 집착이 감시까지 용인하게 되는 상황이잖아요.

진중권
보수성이죠, 우리 국민들이 갖고 있는 보수성인데. 쉽게 말하면 앞을 봐야 하는데, 프로스펙트(prospect)라고 하죠, 전망. 프로(pro)가 앞이라는 뜻이고 스펙트(spect)는 보다라는 뜻이고, 프로스펙트를 해야 하는데 이게 안 되다 보니까 리트로스펙트(retrospect), 뒤를 보는 거예요. 쉽게 말하면 앞으로 뛰쳐나갈 때 기획을 프로젝트를 못하다 보니까 옛날에 썼던 것 중에 괜찮았던 것 있잖아요? 잘 나갔던 것, 그리로 자꾸 돌아간다는 겁니다. 우리가 상상력이 막혀 버린 거예요, 우리 사회가. 여태까지 뭐냐 하면 시키는 대로 하고 우리나라 경제도 남들이 만들어 놓으면 그걸 베끼는 수준, 그런 식으로 발전해왔거든요. 그런데 어느 정도 비슷해 진겁니다. 이제부터는 어떻게 되나?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우리 스스로 창조하고 우리 스스로 디자인해야 되는데, 거기에 대한 상상력이 없게 되는 거예요. 그리로 나가야 되는데. 그리로 나가고는 싶어요. 나갈 방법은 없고. 나갈 방법으로 어디를 보냐 하면 옛날에 통했던 것, 경제성장, 고도성장, 당연히 이렇게 됐다는 거죠. 우리 사회에 뭐가 없나? 비저너리(visionary)가 없는 거예요, 프로스펙트를 제시하는. 이명박이 그나마 던진 것이 뒤로 던져 버린 거죠. 그런데 그 당시 민주당은 뭐냐 하면, 아예 던진 게 없어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누구였죠? 정동영? 정동영의 슬로건이 뭐였죠? 기억나는 사람 있어요? 뭐였죠? 기억이 안나요. 그렇죠. 없었다는 거예요. 그나마 뭐 하겠다고 명확하게 얘기한 건 이명박 밖에 없었다는 거예요. 그건 앞으로도 반복될 겁니다. 사람들이 앞을 못 보면 뭐예요? 가능한 방법을 찾아서 지금까지 경험을 볼 수밖에 없는 거예요. 미래를 어디에 저당 잡힙니까? 과거에 저당 잡힌다는 거죠. 그게 보수성입니다. 앞으로도 아마 많이 그럴 겁니다.

박래군
이 정부의 특징이, 탄압을 하는 게 운동권이나 정적을 탄압하는 식으로는 안하잖아요. 도리어 미네르바라든지 김종익 씨라든지 어떤 시민들을 계속 추적을 하고 사찰을 하고 또 기소까지 하고 구속까지 시키고 이러고 있어요. 예전 정권의 이런 부분들하고는 상당히 다른 상황이잖아요. 이런 부분들이 인터넷의 확산, 인터넷 문화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라서 강연 중에 좀 나오기는 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왜 이럴까? 전통적인 공안탄압 방식은 아니고, 운동권이 지리멸렬하지는 않지만.

진중권
전통적으로 공안탄압할 만한 상황은 아니죠. 학생운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노동운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상당 부분이 제도권화 됐잖아요. 진보세력들도 이른바 진보정당을 만들어서 의회정치 안으로 들어와 있는 상황 속에서 그걸 할 필요도 없고. 그동안 또 우리가 20년간 몇 개의 정권을 갖다가, 아마도 노태우 때부터 연성화가 되기 시작했을 건데, 노태우 정권, 김영삼 정권, 4개의 정권이 벌써 몇 년입니까? 20년이거든요. 20년 동안 싸워 온 이 성과를 완벽하게 되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시도한다면 아마 정권이 엎어질 겁니다, 그때는. 확신하고 엎어지죠. 그러니까 이제 그들이 생각한 방식은 바로 그런 거라는 거죠. 탄압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하고는 싶잖아요. 할 방식을 찾는 거죠. 그런 꼼수를 찾는 거죠. 아까 얘기했듯이 합법적이지만 부도덕하다. 쉽게 말하면 합법적이면서도 도덕적인 수단이 아니라 부도덕하면서 그 부도덕을 합법 속 내에서 하는 양상을 보이는 것 같아요.

박래군
그렇다고 해서 없는 것까지 찾아내서.

진중권
그게 야쿠자 모델이에요. 걔들 특색이 그렇잖아요. 법적으로 걸리지 않는 건 모두 다 도덕적이다. 쉽게 말하면 야쿠자는 때리거나 그러지는 않습니다. 야쿠자는 사업체에요. 온갖 못된 짓을 다 하는데 대부분 다 합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온갖 못된 짓을 다 하거든요.

청중
의견을 듣고 싶은데, 트위터나 페이스북 이런 소셜네트워크를 많이 사용하잖아요. 그것이 어떤 영향력 같은 게 있는 것 같고, 선생님 비롯해서 열심히 잘 활용하고 계신데. 그런 부분이 예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좀 더 가깝게는 블로그와 다른 인터넷 매체와의 차이점, 좀 더 나아가면 기존의 소통방식이나 전달방식과의 다른 점, 그런 것들이 제 개인적으로는 고민들을 갖고 있는데 선생님이 생각하고 있는 한계나 문제는 없을까? 문화평론가로서.

진중권
그거 뭐, 미디어론이거든요. 예를 들어 보자면 그런 논쟁이 있었을 거예요, 제가 기억하는 게. 고재열 씨하고 허지웅 씨가 논쟁을 했고 그때 김규항이 끼어들었고 제가 또 한마디 거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웃음) 그런 식이었어요. 트위터가 세상을 바꾼다인가? 고재열 씨가 아마 그렇게 썼던 모양이에요. 허지웅이라는 분이 시니컬하게 트위터가 뭐 세상을 바꾸냐, 세상을 바꾸는 건 매체가 아니다, 사람들의 운동이다, 이런 식으로 굉장히 진지하게 했고, 그 다음에 김규항이 한마디 거들었죠. 2가지 관점이 있어요. 하나는 뭐냐 하면 도구주의적 관점이 있습니다. 인터넷은 매체다, 매체는 매체에 불과하다, 도구에 불과하다, 수단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매체 자체가 아니라 그걸 통해서 어떤 얘기가 오가느냐. 그 사람들이 보기에는 트위터에 오가는 얘기가 뻔한 것 아니냐. 다 잡담들이고 이명박 욕이나 하고, 잘해야. 확산돼야 세상이 바뀌겠느냐고 얘기할 수 있다는 거죠. 미디어를 보는 도구주의적 관점입니다. 미디어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다, 도구에 불과하다. 소통의 창에 불과하다.
두 번째 관점은 미디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미디어를 통해서 전달되는 메시지가 아니라 미디어 안에 구성되는 메시지다. 대표적으로 마셜이 얘기한 걸 겁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 미디어 자체가 메시지라는. 가장 중요한 건 트윗질을 하고 있다는 사실 이 자체가 중요하다는 거죠, 굉장히 중요한 건. 저는 후자의 입장이 옳다고 봐요. 우리가 트위터를 사용한다는 것은 내 삶 속에 안하던 짓이 하나가 첨부되는 게 아니라 트윗이 깔아준 망 속에 편입이 된다는 거거든요. 타임라인이라는 것은 집합적인 의식이거든요. 의식의 흐름에 접속하는 것이고 완전히 다른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고 내 삶을 다시 조직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본다는 거죠.
그 논쟁이 있고 나서 얼마 후에 터진 겁니다. 제일 먼저 튀니지에서 터졌죠. 에스엔에스(SNS) 혁명. 튀니지에서 시민혁명 터지고, 그게 바로 뭡니까? 이집트로 갔다가 리비아로 갔다가 지금 예멘까지 갔죠. 그래서 국왕 사퇴하고. 거기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게 에스엔에스거든요. 왜냐 하면 저들이 언론을 통제했기 때문에. 트위터가 세상을 바꾸네. 거긴 트위터가 아니라 페이스북. 사용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적어도 뭔가가 그걸 통해서라도 일단 정보가 유통됐다는 거예요. 재미있는 건 뭐냐 하면 아마 통치자는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트위터라는 거 뭐, 페이스북이라는 거 써. 도구에 불과하고 수단에 불과한 것, 너희들 삶에 없던 것 하나 더 들어오면 좋지 뭐. 그런데 문제는 뭐냐 하면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들어와서 인간 삶의 방식 자체를 재조직화 한다는, 사고방식 자체를 재조직화 할 수 있다는 걸 못 깨달은 거예요. 그래서 결국은 그게 들어왔을 때 자기들의 전통적인 통치가 먹히지 않는 통용될 수 없는 어두운 지대를 만들어 버렸다는 거죠. 거기서 터져버린 거예요. 그 사람들이 그걸 알았다면 허용 안했겠죠. 북한처럼 중국처럼 검열을 하거나. 그들도 단순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단순히 도구의 하나에 불과한데 그 도구가 들어와서 그들의 통치 방식, 전통적인 통치 방식 자체를 무력화시켜버릴 정도까지 되었다는 것을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는 겁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요.
페이스북이 사적인 인적 망을 만드는 것으로 사용된다면 제가 보기에는 트위터는 훨씬 공적인 것 같아요. 쉽게 말하면 트위터는 친분을 맺을 수 있지만, 사실 프렌즈가 아니잖아요, 팔로어잖아요. 그게 뭘 말하느냐 하면 구독의 경험이에요. 명망가라든가 파워 트위터 중심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고 그들의 의견을 듣고 알티하고, 파워 트위터들이 내 견해를 보고 그걸 알티 해주고. 이런 식의 그런 구조를 갖고 있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정치성을 갖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마 파워 불로거라는 말은 있지만 파워 트위터러라는 말은 들어봤지만 파워 페이스부커라는 말은 못 들어봤죠? 그게 아마 성격이 달라서. 오히려 사적인 용도로 페이스북은 맞는 것 같고, 트위터는 생각보다 쌍방향적 매체가 아니다, 수평화 매체가 아니다, 일종의 신문 구독하는 개념이 강하다, 개인들이 발행하는 개인 신문들을 내가 구독한다, 이런 개념이 강하다는 거죠. 트위터는 2가지 기능을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종 맞팔 안해 주면 당신은 트위터를 모독하는 거다, 민주주의자가 안되는 거다고, 저는 무시해 버리거든요. 무시해버리기는 하는데. 그런 상태가 있는 거죠.
우리가 주목해야 될 것은 벤야민이 얘기했듯이 복제 매체라는 것은 사실 묘한 구석이 있습니다. 공적인 것과 사적인 것의 구별이 있잖아요, 그 구별을 뒤섞어 버립니다. 사적인 것을 공적인 것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예컨대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내가 옛날에 집에서 혼자 썼던 것이 인터넷 네트에 올라가잖아요, 몇 분 만에 공적 견해가 될 수 있어요. 이렇게 만들어 버리거든요. 그러니까 사전 견해를 공적 발언으로 추천받을 수 있는, 누구라도. 아주 진보적인 역할들이 있죠. 반면에 거꾸로 공적인 주제를 사적인 것으로 끌고 들어가 버리는 것도 있습니다. 박근혜, 중학교 때 사진 너무 예뻐, 짱이야, 그런 거 있잖아요. 사적인 측면으로 만들어버립니다.
매체마다 좀 다를 것 같은데, 2000년대 초반인가 우리나라 활발한 문화가 인터넷이었어요, 게시판 문화였거든요. 확 죽어버린 게 뭐냐 하면 사람들이 게시판에서 어디로 들어갔느냐 하면 블로그로 갔어요. 사람들이 블로그로 들어가면서, 블로그는 공적인 공간이 아니라 사적인. 논객들이 자기 블로그로 후퇴를 해버렸어요. 가다가 다시 트위터가 등장하는 겁니다. 트위터가 아까 얘기했듯이 생각보다 사적 관계를 맺는 매체인줄 알았는데 실제로 사용해 보니 공적 매체에요. 그렇게 돼버린 거죠. 우파들이 항상 그랬잖아요. 좌파들이 떠나가 버린, 진보적인 세력들이 떠나버린 곳에서, 어디가나 인터넷 게시판들 걔네들이 다 장악했어요. (웃음) 우리가 떠난 공간에서 (웃음) 좀 있으면 걔들 트위터 시작할 거예요. (웃음) 문제가 뭐냐 하면 걔들이 왔을 대 우리는 더 진화된 어떤 것을 쓰고 있지 않을까. (웃음) 인터넷 들어가서 절망하지 마세요. 어떻게 보면 게시판 문화라는 건 다 지나간 문화잖아요. 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웃음) 재밌는 건 정치성하고 미디어의 진보성하고, 미디어 산업에서 진보성이나 정치성이 드러나요. 내가 보기엔 진보적인 사람은 미디어를 진보적인 방식으로 사용하고 얼리어답터적이고, 보수적인 사람들은 미디어 체험도 보수적이에요. 사용방식도 보수적이고. 그런 게 있어요. 재밌죠, 그런 건.

청중
전두환 정권 때 정부 주도의 경제가 시장주도 경제로, 그 당시에도 정부가 경제 시스템을 주도하려는 시도가 계속 있었는데 과도기였지 않나, 어떻게 해석해야 되는 건지 궁금합니다.

진중권
초기에는 무서웠죠. 깡패였거든요. 와 가지고 재벌을 해체시켜 버렸어요. 상상을 초월했죠. 지금 청와대의 누구에요, 청와대의 누가 삼성 때리잖아요. 삼성 어떻게 해보겠다고 했더니 난리가 나잖아요. 그때는 각하 말씀 한마디면. 헤쳐, 누구 줘, 없어져. 말하자면 창세기에요, 창세기. 완전히 폭압적이죠. 200명씩 죽이고 권좌에 오른 사람이 눈에 뵈는 게 있겠어요? 그렇게 했었죠, 처음에 초기에는. 실제로는 억압적이라는 건 국가주도 경제가 소위 자유주의화 되는, 신자유주의화 되는 거죠. 그런 건 전두환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미. 과도기가 있었겠죠. 그런데 전두환은 삥 뜯는 겁니다. 돈 뜯어 가는. 그래서 5000억인가 7000억인가 챙겼잖아요. 노태우하고. 그 사람들 수준은 그거예요. 이걸 뭐 어떻게 해가지고 기업을 움직여서 기업을 국가의 뜻대로 움직여서 경제를 어떻게 발전시키는 이런 게 아니라니까요. 그러니까 조폭이에요. 말 좀 들어, 딱 그러면 5000억, 7000억 이런 식이에요. 약간 야쿠자 식이었죠. 그렇게 개입을 했지, 지금은 그게 아니잖아요. 삼성이 국가경제를 위해서 뭔가를 해주기를 원하는데 삼성의 방식이 있거든요. 우리는 연기금 갖고 너희를 한번 쳐 보겠다, 이런 식이죠. 차원이 다르다는 거죠.

청중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되게 개개인에 대한 감시가 더 용이해지는 그런 게 있잖아요. 정부가 감시를 하는 것을 떠나서 개개인 자체가 구글링을 한다든가, 어떤 사람의 신상을 턴다거나 이런 일이 많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런 것은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진중권
나쁘게 생각하죠. (웃음) 제발 그만해라. 사실은 기술적으로 가능해요. 제가 볼 때 모든 건 기술적으로 가능합니다. 사람들이 가능한 못하게 할 방법은 없어요. 중요한 건 윤리입니다, 도덕이고. 누군가 하는 경우는 있습니다. 문제는 공개적으로 공공연히 하지는 못하게 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렇게 되는 건 뭐냐 하면 기술은 다 양면이 있거든요. 편의성이 있다는 말이죠. 예컨대 내가 감시를 당하고 있지만 그게 또 나름대로 그게 방범의 효과라든지. 여러분들 네비게이션 편하잖아요. 나도 지금 택시 타고 오면서 여기 주소 찍고. 내가 지금 추적당할 수 있는 가능성이잖아요. 양면이 다 있기 때문에. 저는 어느 한 면만 일방적으로 강조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해요. 두 면이 다 있다는. 다만 한쪽만 강조해서 다른 쪽의 위험을 뭐랄까, 문제는 뭐냐 하면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가 우리의 삶을 사생활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 예를 들어가지고 그들이 원하는 것, 내가 했던 모든 일정을, 나도 까먹잖아요, 나보다 더 정확하게 구성할 수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택시 타면 찍히죠. 카드 쓰면 찍히죠. 버스 타면 씨씨티비(CCTV)가 있죠? 길바닥에 씨씨티비가 다 있더라고요. 이것만 나가면 내 삶을 완벽하게 라이브로 완벽하게 재구성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문제는 뭐냐 하면 그렇게 되면 거기에는 민주적 통제가 있어야 한다는. 그런 통제 시스템을 어떻게 만드느냐. 쉽게 말하면 우리가 어떤 필요에 의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개인 신상의 정보는 권력에서 어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어프로치할 거라는 거예요. 그걸 어떻게 막을 것인가라는 이런 부분이 있고, 공적 차원에서는. 사적 차원에서는 사실 우리가 해킹이든 온갖 방법을 써서 남의 신상정보를 캐내잖아요. 그걸 못하게 막아줘야 되거든요.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하는 짓이에요. 내가 딱 보니까 얘가 옛날에 결혼했대, 어머 정말이야, 댓글 붙여 주니까 그런 짓들을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생기잖아요. 그러니까 윤리가, 시민들 사이의 어떤 윤리가 있어야 한다는. 그러니까 두 개 다 있어야 합니다. 신상털기 이런 거 할 때 강력하게 비판하고 못하게 하고 시민사회의 윤리를 만드는 것,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까도 얘기했듯이 신상정보에 대한 권력의 접근을 어떻게 민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들을 해야 되고. 이 토론도 그런 문제의식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청중
상업감시 같은 경우에는 포스퀘어(foursquare) 같이 자기 정보를 흘리고 다니기 때문에 자기가 자기 정보를 내놓고 다른 가치를 얻는 트레이드가 있으니까 가능해지는 것 같고, 점점 더 뭐라고 하기 어렵게 되는 것 같은데. 정권에 의한 권력에 의한 것 같은 경우는 말씀하셨듯이 이번 정권은 감시의 내재화와 자기 검열, 정권의 성격 때문에 그런 부분인데. 만약에 다음 정권에서 정보사회 특성에 맞게 권력에 대한 감시가 얘기되는데, 역감시에 대한 얘기가 되게 많은데 그런 것이 되려면 그냥 될 것 같지는 않고요 국민들의 어떤 집단적인 경험이 필요하다는, 어떤 게 있으면 그게 될까, 정권이 직접 자기가 투명성이 중요하다 이래서 하지 않는 한, 방법이 뭐가 있을까?

진중권
항상 위험이 있으면, 그렇잖아요, 비행기와 더불어서 추락도 함께 발명된 거라는 말이 있듯이. 위험이 있으면 그것은 터지거든요. 그런 자연스러운 계기가 있겠죠. 그 전에 암만 얘기해봤자 사람들이 뭘 알겠습니까? 어떤 면에서 원전이 지금 터져 놓으니까 문제가 있다고 비판하지, 그렇지 않으면 와 닿지가 않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 사건을 인위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고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떤 계기가 분명히 있을 겁니다. 그런 계기가 있을 때 정권에서는 묻어버리려 할 텐데 묻어버리지 않고 살려내서 그 사회에서 이슈화하는데 성공하는, 그게 중요하죠. 사실 원전도 많이 가버렸잖아요. 좀 더 밀어붙여 가지고 원자력 정책에 대한 제고까지, 국민들 사이에서. 지금 강원도 도민들만 제고하고 있잖아요. (웃음)

박래군
감시와 억압의 내면화, 자기 검열 이런 부분들을 극복하는 게 아주 어려울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 인터넷에 대한 것을 기소하고, 벌금 내고 이러니까 굉장히 위축되어 있는데 이걸 극복해가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 저항하자, 그런 부분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 같이 고민해야 할 텐데, 풀어야 할 과제일 것 같아요. 그런데 자꾸 잡혀가니까 뭐 말을 하면 할수록 표현의 자유는 위축되는 그런 효과를 노리는 건데 그걸 어떻게 극복해가야 할 것인지? 과연 좋은 정권이 들어서 좋은 정부가 들어서 정치세력화 해서 해결을 할 건가? 주어진 식의 어떤 것이라고 하면 또 다른 상황에서 또 다시 위축되고 그럴 텐데, 시민사회의 어떤 표현의 자유 이런 것들이 참 걱정스럽습니다.

진중권
프랑스혁명 당시에 당통이 했던 말이 있어요. 담대함을, 좀 더 담대함을, 항상 더 담대함을. 그래야 될 것 같아요.

박래군
자, 마지막 질문? 없나요? 예, 오늘 굉장히 일찍 끝났어요. 진중권 선생님 어제 잠을 못 주무시고 또 원고 쓰시고 굉장히 피곤하실 텐데 질의 응답까지 굉장히 재미있게 얘기해 주셨습니다. 큰 박수 부탁드립니다. (박수)
다음 주 한주 건너뛰고요, 5월 12일 7시에 세 번째 강연회를 시작합니다. 상업적 감시의 문제점에 대해서 전문적으로 연구하시는 최철웅 선생님 모시고 강연을 듣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던 것, 학생인권조례 서명 하신 것 있잖아요? 나가시면서 그것 앞에 놔 주시고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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